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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Hotel California 전주의 비밀

Hotel California의 전주

어릴 적 통기타를 처음 익혀나가던 시절, 내 최고의 로망은 The Boxer였습니다. 더박서의 3-finger 주법을 흉내내기 위해 정말 무던히도 노력했었습니다. 선생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오로지 카셋으로 음악을 듣고 그걸 기타로 흉내내고.. 하지만 무슨 수를 써봐도 제대로 된 흉내는 낼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실력없음을 한탄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알게 되었죠.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었다고. 오랜기간 동안의 추적 끝에 지난번에 얘기했던대로 더박서 원곡의 3-finger 주법은 여러 대의 기타, 여러가지 튜닝이 합쳐진 것이었던 겁니다. 그러니 애당초 통기타 한대로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겁니다 → The Boxer 기타 반주의 비밀


더박서만큼이나 로망인 곡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게 바로 그 유명한 Hotel California의 전주 부분입니다. 뒷부분 일렉기타 두엘 부분도 멋지지만 이 곡의 정수는 역시 전주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미로웠던그 느낌.. 이걸 흉내내어 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던 것이라곤 Bm – F#7 – A 로 이어지는 코드웍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박서 시절보다는 기타실력이 많이 늘었던 때였지만 이곡 역시 원곡의 느낌을 전혀 살릴 수가 없었습니다.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Bm로 시작하는 통기타 연주로는 하늘이 무너져도 원곡의 느낌을 낼 수가 없습니다.

 

 

12현 기타로 친 거란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그 전주부분이 ‘12현 기타로 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름신이 불끈불끈.. 그래서 1990년도(신혼시절^^), 당시로선 거금(20만원)을 주고 Pickup이 달려있는 오베이션 12현 기타를 하나 샀습니다. 바로 호텔캘리포니아 때문이었습니다. 전축에 픽업을 연결하면서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전주부분을 제대로 소리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12현 기타는 시작부터 저를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왼손에 가해지는 엄청난 압박.. 하이코드(Barre Chord)로 이어지는 호텔캘리포니아 전주를 12현 기타로 맑고 청랑하게 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손에 쥐가 날 정도로 맹 연습.. 드디어 소리가 제대로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왼손의 압박이 아니었습니다. 12현 기타로 잘 쳐도 도무지 원곡의 맛이 나질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물론 일반 6현 기타로 쳤을 때보다는 훨씬 풍성하게 원곡에 근접하지만, 그래도 원곡과는 여전히 많이 달랐습니다. 결국 실력없음을 다시 탓하며 도전을 거기에서 포기하고, 6줄을 빼내 일반 6현 기타로 만들었습니다.

 

 

Capo 7th Fret에 걸고 Em로 친 거란다

세월이 이십여년 흘렀습니다. GuitarPro 악보들을 뒤지다가 우연히 호텔캘리포니아를 봤습니다. 아 이 곡..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다운받아 열어봤습니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Bm Bm인데 Barre Chord로 잡고 치는 게 아니라, 카포를 7번째 프렛에 걸고 Em로 치랍니다.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바로 그렇게 해봤습니다. .. 그제서야 드디어 원곡의 느낌이 있습니다. 바로 이거였구나.. 그렇게 노력을 해도 느낌이 안 살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유레카 희열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약간 어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기타프로 악보에 나온 피킹이 조금 어색했던 겁니다. 마치 처음 밴조를 배울 때 본 중구난방 핑거링(Lick) 같았습니다. 호텔캘리포니아는 Pick으로 연주를 해야 할 것인데,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up 피킹과 down 피킹이 교차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악보엔 여러군데 부자연스런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킹은 어색해도 느낌은 원곡에 근접합니다. 이게 맞겠지 뭐.. 


끝도 없이 반복하며 황홀경에 빠져있다가 불현듯 떠 올랐습니다. ‘아 맞다. 이거 12현 기타로 치는 거랬잖아’ 이걸 잊고 있었던 겁니다. 6현 기타로는 아무리 7 프렛에 카포를 걸고 Em로 쳐도 여전히 원곡과는 너무 많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12현 기타줄을 주문했습니다. 오랫동안 자기 정체성을 잃고 6현기타로 지내던 오베이션 기타에 12줄을 돌려주자..

 

 

12현 기타 + 7프렛 Em

정말 오랜만에 잡아보는 12현 기타입니다. 역시 왼손의 압박이 장난이 아닙니다. 게다가 카포가 12현 기타용이 아니라 일반 6현용 카포이다 보니 제대로 줄을 잡아주지 못해 개방현을 쳐도 소리가 둔탁합니다. 겨우 카포를 끼우고 첫 연주.. 아- 바로 이거였습니다. 이제 12현 카포를 새로 사서 끼우고, 왼손의 악력도 세어지면.. 드디어 호텔캘리포니아를 원곡과 똑같이 연주하게 될 것이다.. 가슴이 벅찼습니다


하지만 두가지가 여전히 걸립니다. 오른손의 피킹 방향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 그래서인지 원곡과 많이 흡사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느낌이 조금 다르다는 점. 그러나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익숙해지면 나아지겠지 뭐.. 이 정도면 됐지 뭐.. 하고 말았습니다.

 

 

 

12현 기타 + 7프렛 Em + 12현 기타의 독특한 줄 배열

기타줄을 끼우면서 새삼스레 12현 기타의 기타 줄 배열이 독특함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1 2번 쌍과 3 4번쌍은 줄이 같지만(EE BB) 나머지 4쌍은 서로 한옥타브씩 차이가 난다는 것(gG dD aA eE).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12현기타로 7프렛에서 쳤을 때, 피킹이 약간 부자연스러운 것과 어딘지 모르게 원곡과 느낌이 약간 다른 게 혹시 이 때문이 아닐까? 악보를 열고 다시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무릎을 쳤습니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모든 호텔캘리포니아 악보는 모두 6현 기타를 위한 악보였던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6현기타로 12현기타가 연주하는 원곡을 흉내내려다 보니 부자연스런 피킹을 억지로 할 수밖에 없던 거였습니다. 근음을 치고 나서 갑자기 1번현으로 건너뛰는.. 12현기타에선 8번줄 2 프렛에서 내는 소리를 6현기타에서 하다보니 1번 개방현으로 내야하는.. 뭐 이런 식인 겁니다. 이거 참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12현 기타를 한번도 본적 없는 분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 안 되실 겁니다. 


아무튼.. 이렇게 하다보니 피킹이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러워 지고, 또 탄현되는 줄이 6현기타(e 하나)와 12현기타(e & E)로 서로 다르다 보니 원곡의 느낌과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6현기타 악보를 무시하고 일반적인 주법, 즉 업과 다운이 자연스럽게 교차되게 쳐 보았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원음에 훨씬 가까운 소리(몇군데 예외)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피킹 몇군데만 교정하면 되는 것이니, 드디어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12현 기타가 두대 (일렉 + 어쿠스틱)

그래도 아직 남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필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왜 그런지 더 깊이 조사를 해보니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원곡의 연주는 '두대의 12현 기타'로 연주한 것이었던 겁니다. 하나는 일렉트릭 12현 기타 또 하나는 어쿠스틱 12현 기타.. 그러니 어쿠스틱 12현기타 하나로 연주할 때와 당연히 필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거였습니다.

 

이글스가 정확히 어떻게 한 것인지 기록이 없어서 이글스 실황 동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동영상 링크가 안됨) 근데 하필이면 전주부분 연주영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중간중간의 영상을 보면서 유추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영상 화면을 캡춰했기 때문에 선명하게 보이진 않지만.. Don Felder가 치는 일렉트릭 12현 기타는 7 프렛에서 Em 이 맞습니다.


그런데 Glen Frey는 어쿠스틱 12현 기타를 2 프렛 카포로 Am로 연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론입니다. 호텔캘리포니아 전주는 두대의 12현 기타가 연주합니다. 첫번째 일렉트릭 12현 기타는 7 프렛에서 Em로 연주하고(100% 확실), 두번째 어쿠스틱 12현 기타는 멜로디 부분부터 들어오는데, 2 프렛에서 Am로 연주하는 것 같습니다. 이 두소리가 합쳐진 풍성한 소리가 우리가 듣는 호텔캘리포니아의 전주인 겁니다.  


그러니 어쿠스틱 6현 기타로 원곡의 느낌을 못 살리는 분이 계시다면 전혀 자신을 자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주 당연한 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