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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종차별 4 - 상당부분 조상탓

오늘 이야기는 굉장히 기분이 나쁘고 착잡할 이야기들이다.

‘Am I speaking Chinese?’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 내뱉는 말이다. ‘내가 지금 중국말 하고 있냐? 왜 이렇게 못알아 쳐먹어?’ speaking ‘to’ 가 아닌게 천만 다행이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가장 시끄럽고 듣기 싫은 언어가 중국어와 그 영향을 받은 동남아 국가들의 언어이다. 우리가 흔히 ‘땅콩’이라고 말하는 그 언어들. 아프리카 토인들의 언어처럼 오르락 내리락 몹시 시끄럽다. 우리가 듣기에도 이러니 미국인들이 듣기에 중국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웠겠는가. 그래서 괴상스런 언어의 대명사가 바로 중국어이고 그게 바로 ‘Am I speaking Chinese?’ 가 나온 배경이다.

중국인과 일본인의 영어표현은 Chinese와 Japanese다. 사람들을 칭할 때 끝에 ‘ese’ 로 끝나게 하는 것은 상당한 무시와 비하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것들 …뗴거리들’ 정도의 뉘앙스. 다행히 우리는 Korean이다. 우리가 세계에 소개된 게 늦었던 덕이다. 일렀었다면 우리도 Korenese가 되었을거다. 아무튼 백인들은 자기네가 처음 접한 동양인들을 이렇게 ‘니즈’라는 이름을 붙여 깔보았다.

백인과 가장 먼저 접한 황인종은 중국인들이었다. 중국인은 앵글로색슨들과 근처에 살았던 적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얽힌 감정이 없다. 민족감정 같은 것이 애당초 없다. 또 종교의 색채도 강하지 않기 때문에 아일랜드인이나 유태인과도 전혀 틀리다. 다만 하층 노동직에 종사하게 되면서 저절로 형성된 하층계급 의식, 즉 무식한 막노동꾼이라는 선입견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더 심한 차별대우를 받았다.

원인은 세가지다. 이질적인 문화와 생김새, 그리고 언어다.
그리고 이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대로 우리들에게도 해당이 된다.

이중 문화와 생김새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면서, 들으면 굉장히 기분이 나빠질, 상당히 기분이 더러워질 얘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1. 유럽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아마 똑같이 느끼는 기분이 있을 거다. 유럽은 아름답다. 나라의 어느 구석엘 가도 빈틈없이 아름답다. 자연은 자연대로 아름답고, 도시는 도시대로 아름답고, 시골은 시골대로 아름답다. 어느 한구석 소홀한 곳이 없다. 어느 동네건 어느 집이건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면 그대로 예쁜 그림엽서가 된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다가 결국엔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약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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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야 원래 유럽이 아름다울 수도 있고, 마을이야 잘 가꾸면 그렇게 될 수 있으니 이건 그렇다 치자. 진짜로 열받는 건 따로 있다. 그들의 자랑스런 역사와 웅장한 문화유산들,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들의 자부심이다. ‘배달민족은 오천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민족’으로 세뇌받아온 우리들 입이 떡 벌어진다. 그리고 자괴감에 빠진다. 우리 선조들은 뭐 하셨나.. 맹자왈 공자왈 당파싸움외엔 한게 없어 보이는 ‘근세’의 우리 선조들이 원망스럽다. 4천 5백년은 잘 앞서나간 것 같은데 마지막 5백년을 망가뜨린 근세의 선조들이 원망스럽다. 뜬금없이 李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미워진다. 이황 이퇴계도 미워진다.

2. 우리의 현재 생활상을 들여다보면 비참함은 더 심해진다. 우리는 모든 걸 그들을 따라 하고 있다. 종교를 필두로 백인종들의 문화가 우리를 점령하고 압살하지 않은 게 없다. 우리 전통의 문화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야 이건 미국의 악영향이야’ 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실제로 우리 문화는 너무 불편하고 너무 고리타분하다. 서양문화의 침투는 누가 강권한게 아니다. 우리 스스로 불편하고 따분한 우리것을 버리고 백인종의 문화를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2천년전동안 거의 똑 같은 생활모습으로 살던 우리 민족에게 백인종들의 과학기술이 들어오면서 비로소 우리는 개량되었다고 해도 달리 할말이 없다.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게 다 그들 덕이라고 해도 반박할 말이 없다. ‘오천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민족’ 이라며 세뇌하기엔 우리의 지금 모습은 너무 참담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집에 들어가기까지의 하루의 일상에서 우리의 것이라곤 ‘언어’와 ‘음식’밖에는 없다. 나머지는 깡그리 다 백인들로부터 전해 받은 서양문화이다. 이쯤 되면 우리 민족이 이어왔다는 자랑스런 5천년 세월을 자랑하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워 진다. 마지막 5백년정도만 뒤진거지 그 전까지는 우리가 월등했었다고 해 봐야 공염불이다.

지금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백인종이 생물학적으로 지적 능력과 문화적인 감성이 월등히 높다고 생각하는데 대해 달리 반박할 말이 없다. 옛날엔 분명히 우리가 더 앞섰었는데..
죽은 남편 자지 만지기다.

3. 게다가 길거리에서 만나는 그들, 모두가 늘씬하고 잘 생겼다. 시골의 농부도, 거리의 청소부도, 막노동 일꾼도 다들 모델처럼 잘 생겼다. 동양인이 아무리 키가 크고 잘 생겼어도 그들과 나란히 서면 왜소해 보이고 초라해 보인다. 미에 대한 기준이 다른 것이라고 아무리 자위를 해보지만 객관적으로 동양인들은 백인들에 비해 볼품 없고 작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가슴 근육이 잘 나오지 않는 동양인 남성들에 비해 백인들은 약간의 운동만으로도 가슴 근육이 탐스럽게 발달한다. 특별히 드물게 젖가슴이 풍만한 동양인들에 비해 백인들은 대부분 여성들의 젖가슴이 자연산으로 풍만하다.

상체와 하체의 길이 비율과 허리와 엉덩이의 둘레 비율은 더더욱 동양인들을 비참하게 만든다. 이건 꼭 백인들과의 비교뿐만이 아니다. 동양인의 외모를 비하하는 말중에 ‘Yellow Monkey’가 있다. 체형이 원숭이 체형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흑인들을 원숭이같다고 놀리는데 정작 백인들은 동양인을 원숭이같다고 놀린다. 다리는 짧고 엉덩이는 빈약하고 머리통은 크고.. 가장 열악한 신체조건을 가진 게 동양인인 것은 사실이다. 백인 흑인 중동인 남미인들은 대충 입어도 폼이 나는데, 유독 동양인들만은 아무리 비싼 옷을 입어도 폼이 안난다.

다운증후군이라고 부르는 병을 가진 아이들은 예전엔 ‘몽고천치’라고 불렀었다. 난 왜 그 병에 걸린 아이들을 그렇게 부르는지 몰랐었다. 그걸 미국에 와서 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알게 되었다. 이 다운증후군의 속칭이 바로 ‘몽골로이드 Mongoloids’였다. 황인종을 일컫는 말. 즉, 백인들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이 병에 걸린 아이들의 외모가 꼭 황인종을 닮았다는 것이다. 눈 사이 넓고, 눈은 작고, 얼굴전체가 평편하고.. 이걸 알았을 때 기분이 굉장히 나빴고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어떤 병에 걸려 외모가 펑퍼짐하고 이상하게 변한 아이들을 황인종을 빗대 불렀었다니. 황인종의 외모처럼 변하는 병.. 그들 백인은 우리 황인종들을 그렇게 이상하고 못생긴 인종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근데 그것도 모르고 우리들은 그걸 그대로 번역해서 누워 침 뱉듯 ‘몽고천치’라고 불렀으니.. 참담한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절망에 빠진다. 작금의 상황만을 놓고 보니 백인들이 더 우수한 종족이라고 우겨도 별로 할말이 없다. 가슴이 답답하고, 이게 아닌데.. 심증은 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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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이야기 한다. 이미 우리는 그들에게 모든 기득권을 완전히 빼앗긴 상태다. 먼저 이걸 인정해야 한다. 이걸 인정하지 않고서는 인종차별문제, 더욱 수렁에 빠진다.


→ 인종차별 1 – 생물학적 편견?
→ 인종차별 2 – 싫어하는 건 그들의 자유의사
→ 인종차별 3 – 인종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 인종차별 4 – 상당부분 조상탓
→ 인종차별 5 – 일본인과 한국인
→ 인종차별 6 – 이슈화하면 오히려 손해
→ 인종차별 7 – 우리가 변해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