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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학

계절도 없는 LA에 웬 춘곤증

어제 오랜만에 들른 사람, ‘왜 이렇게 피곤하지? 이유도 없이.. 아주 죽겠는데..’

봄이면 이상스럽게 피곤해지는 이런 증상, 예로부터 이걸 춘곤증이라고 불렀다. 새순이 돋고 싹이 트고 꽃이 피며 움츠렸던 대자연이 생동하기 시작한다는 봄인데 희한하게도 우리들은 반대로 나른하다. 이상스런 일이다. 이 춘곤증의 원인은 도대체 뭘까?


영양소 특히 비타민의 부족
봄이 되면 활동량이 늘어나는데 이렇게 늘어난 활동량 때문에 각종 영양소의 필요량이 증가하고 그 중에서도 비타민 소모량은 겨울보다 3∼10배 증가한다고 한다. 근데 겨우내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영양 불균형이 춘곤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에너지 소모의 증가
기온이 올라가는 봄에는 기온과 피부체온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피부혈관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자주 일어나고 심장박동의 변화가 커진다. 이를 조절하는 아드레날린, 인슐린, 멜라토닌 등의 호르몬 분비가 많아지면 별로 일을 하지 않아도 몸에서 소비되는 에너지가 많아져 피로를 느끼게 된다.

홀몬 분비의 불균형
봄에 낮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밤이 길었던 겨울에 적응해 있던 인체는 이에 바로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졸음이 자주 오게 된다.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관여하는데 멜라토닌은 계절적으로 겨울에, 하루 중에는 밤에 많이 분비되어 수면을 유도한다. 춘곤증은 생체시계의 셋팅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잠시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혈행분포 재배치
겨울철에 비해 기온이 올라가면 인체는 대기와의 온도차를 줄이기 위해 피부의 체온을 상승시킨다. 이렇게 되면 피부에 피가 몰리는 대신 내부장기나 근육에는 피가 부족해지면서 근육이 이완돼 나른한 느낌을 갖게 된다.


얼핏 들으면 모두 그럴듯하지만 사실 모두 애매한 설명들이다. 하지만 겨울이라고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 인류는 요즈음 없으며, 활동량에 전혀 변화가 없는 사람에게도 춘곤증은 있다. 또 봄에 갑자기 에너지의 소모가 많아진다는 것도 왜 그렇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우며, 서서히 진행되는 일조량의 변화에 인체의 생체시계가 그걸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또 실내생활을 주로 하는 현대인들에게 외부 기온변화에 따른 혈류의 재배치, 피부체온의 변화가 심하게 일어난다는 것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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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담 한의학에서는 이 춘곤증을 어떻게 볼까? 봄은 木의 기운이 왕성한 때다. 새싹이 돋고 새순이 돋는 것은 다 이 木의 기운이다. 하지만 이 木의 기운이 활발해지면 土의 장기인 비위의 기능을 억제하게 되고(木克土) 소화흡수기능이 떨어지게 되어 피곤을 느낀다. 아 띠바 또 그놈의 五行타령이다. 陰陽과 五行이 위대하긴 하지만 너무 자주 들이대니 때로는 지겨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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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순환한다
오래도록 누워있으면 일어나고 싶어진다. 일어나 앉아있다 보면 일어서고 싶어지고, 서 있다 보면 걷고 싶어진다. 걷다 다리가 아프면 멈춰서고 싶고, 멈춰 서있으면 이젠 앉고 싶다. 그렇게 앉아있다 보면 나른함에 눕고 싶어진다. 오래도록 누워있으면 몸이 뻐근해서 다시 또 일어나고 싶어진다.. 또 동이 터오면 잠에서 깬다. 해가 뜨면 나가 돌아다니고 싶다. 해가 질 무렵이면 집에 돌아가고 싶다. 깜깜해지면 자고 싶다. 동이 트면 일어나고 싶다..

계절도 마찬가지이다. 차가운 땅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따뜻함이 온다. 봄의 따뜻함이 피어올라 여름의 뜨거움이 되고, 그 뜨거움이 흩어지면 가을의 서늘함이 찾아오고, 그 서늘함이 내려앉아 겨울의 차가움이 된다. 이것이 계절의 변화다.

이 계절의 변화에서 두 군데는 부드럽지만 두 군데는 껄끄럽다. 따뜻함이 뜨거움이 되고(봄-여름), 서늘함이 차가움이 되는(가을-겨울) 두 부분은 어차피 앞뒤가 비슷한 느낌이라 연결이 부드럽다. 하지만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바뀌는 곳(겨울-봄)과, 뜨거움이 서늘함으로 변하는 부분(여름-가을)은 그렇지 않다. 앞뒤의 느낌이 상반되어 연결이 약간 껄끄러운 것이다. 그래서 봄을 타는 사람도 많고, 가을을 타는 사람도 많다.

근데 이 껄끄런 두 군데 중에서도 특히 겨울-봄의 부분이 훨씬 더 껄끄럽다. 이건 왜 그럴까.

지구는 원래 차갑다
우리 지구의 원래 모습은 차가움이 기본이다. 태양이라는 존재가 없으면 극한의 차가움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따라서 뜨거움이 서늘함으로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뜨거움은 저절로 서늘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변하는 부분.. 이건 저절로 되지 않는다. 차가움은 절대 저절로 따뜻해지지 않는다. 열이 있어야 한다.

버너는 켤때가 힘들다
물은 원래 차다. 그 물을 데우려면 불이 필요하다. 그래서 버너를 켠다. 찬물이 점차 따뜻해지고, 따뜻한 물은 곧 뜨거워 진다. 버너를 끈다. 뜨겁던 물이 점차 식어 곧 찬물이 된다. 

버너를 켤 때, 예열구에 알콜을 붓고 거기에 불을 붙이고 예열구가 뜨거워지면 밸브를 잠그고 힘들게 뻠쁘질을 해야 한다. 하지만 버너를 끄는 건 아주 쉽다. 공기 밸브만 열어주면 공기가 빠지고 버너는 바로 꺼진다. 보다시피 물을 덮힐 때가 훨씬 스트레스가 크다. 

겨울-봄의 연결부분은 바로 이렇게 버너에 불을 붙이려는 시기이다. 그래서 힘이 많이 든다.

춘곤증은 아주 자연스럽다
걷다가 뛰기 시작하거나, 쉬다가 자는 것은 쉽다. 하지만 뛰다가 갑자기 멈추거나,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는 건 쉽지 않다. 뛰다가 멈출 땐 그냥 팍 멈춰도 되긴 되지만 가능하면 한동안 걷다가 멈추는 것이 좋다. 하지만 자다가 일어날 땐 또 다르다. 기운이 없기 때문에 갑자기 일어날 수도 없다. 그래서 한동안 앉아서 기운을 차린 후에 일어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시동안 몸에 기운이 없고 입맛도 없는 거, 이거 당연하다. 자는 동안 최소한의 에너지로 몸을 지탱하다가 아침에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에너지의 소비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일시적으로 공급이 그에 못 미치기 때문에 그런거다. 밤새 수면 모드에 있던 신체 셋팅이 기상모드로 바뀌면서 순간적으로 몸이 부담을 느기는 거다. 에너지의 공급이 원하는 수준으로 올라오면 우린 다시 정상적으로 힘을 낸다.

봄도 마찬가지이다. 봄이 막 시작될 때 한동안 몸에 기운이 없고 입맛도 없는 거.. 이거 아침에 잠시 동안 기운 없고 입맛 없는 거나 똑 같다. 겨우내내 동절기 모드로 맞춰져 있던 신체의 setting 을 하절기 모드로 올리기 시작하면서 일시적으로 몸에 무리가 가서 부담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LA 춘곤증 - DST Syndrome
그렇다면 사시사철 겨울이거나 여름인 곳은 어떨까? 그런 곳엔 춘곤증이라는 게 아예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는 이곳 LA사람들에게도 춘곤증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영어로 춘곤증을 뜻하는 말로 spring effort syndrome (봄철피로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이 용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제 찾아와서 '이유도 없이 이상하게 피곤하다'고 했던 사람은 뭘까? 사실 그 사람 뿐만 아니라 이 무렵엔 누구나 춘곤증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이게 춘곤증은 아니다.

바로 써글놈의 서머타임이다. 이곳 말로 Daylight Saving Time 일광절약시간 DST. 인위적으로 시간을 앞당겼다 늦추었다 하는 그거. 지난 토요일 새벽 한시가 갑자기 두시로 바뀌었다.

사회적으로는 시간을 벌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좋은 제도라지만.. 개인들에겐 참 불편하다. 특히 그게 시작되는 봄엔 졸지에 잠을 잘 수 있는 한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에 수면의 패턴을 억지로 바꾸려다 보니 이만저만 피곤한게 아니다. 잠이 드는 시간은 아직 땡기지 못했는데 일어나는 시간만 땡겨졌기 때문이다.

나도 요즘 죽겠다. 오후에 나른하고 졸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