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피해를 입혀 놓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좋게 이야기를 하고 설득을 해도 상대방이 전혀 인정하지 않고 알아듣지 못한다면 이건 둘중의 하나다. 바보천치이거나 아니면 자기의 행동에 대해 전혀 잘못된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세상사 인간사 모든 것엔 양면이 존재한다. ‘절대 나쁜놈’이나 ‘절대 착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측면에 따라 배신자도 되고 영웅도 되고, 착한사람도 되고 바보도 되며 은인도 되고 악당도 된다.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우리 아버지가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데 어느날 느닷없이 힘센 옆집 아저씨에게 힘으로 눌려서 강제로 전답을 빼앗기고 소작을 한적이 있었다. 우리 증조할아버지대에는 그쪽 집안이 워낙 무식해서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그집 사람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쳤었다고 했고, 할아버지대에는 그집 사람들이 머리 좀 깨쳤다고 우리 할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심하게 싸운 적도 있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혼내줬다고 했다.
그러더니 아버지대에서는 그집 아저씨가 일찍부터 서울생활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오고 힘이 세어져서 아예 우리 아버지를 자기 부하로 만들 요량으로 강제로 찍어 눌렀던 것이라고 했다.
작은아버지는 그 아저씨에게 대들다가 맞아서 죽었고, 고모는 그 아저씨네 인부들에게 겁탈까지 당했다고 한다. 심하게 두들겨 맞은 적은 부지기수로 많았다고 한다. 눈에서 피눈물이 솟았지만 힘이 없던 우리 아버지는 그 비극과 굴욕을 어쩔 수 없이 감내했어야만 했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아저씨에게 복종하면서 사는척 해야만 했었다.
그렇지만 자기 밑으로 들어오면 잘 살게 해주겠다는 그 아저씨의 강압적 요구는 끝까지 거부하고, 마침내 착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빼앗겼던 전답도 되찾고 못된 아저씨도 완전히 몰아내었다.
악몽과도 같았던 소작시절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치가 떨린다고 한다. 아버지의 소원은 돌아가신 작은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겁탈당한 고모에게 정신적, 금전적 보상을 받게 해주는 일이었지만, 뻔뻔한 옆집아저씨는 잘못한 일이 전혀 없다며 오히려 우리아버지를 과거에 연연하는 못난 사람, 과거를 빙자해서 돈을 뜯어내려는 치사한 인간으로 치부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 자식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렇게 반성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 집안은 기필코 단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대명천지에 이렇게 못 되어먹은 집안이 아직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비슷한 짓을 했었던 다른 동네 다른 집은 피해를 끼쳤던 집에 사과도 하고 보상도 했다는데 이눔의 집안만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자기넨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아직까지 우긴다. 그러더니 얼마전부턴 우리 집 뒷마당 자투리 땅이 자기네 땅이라고까지 우기기 시작했다. 미안하다고 사과는 못할 망정 땅까지 훔쳐가려고 수작이다.
도대체가 용서치 못할 악질들이다. 이눔의 집안이 잘되는 꼴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이 철천지 원수를 기필코 우리앞에 무릎을 꿇려야 한다. 이것을 자손대대로 교육하고 또 교육해야 한다.
2.
우리 아버지가 옛날에 옆집 아저씨네 전답을 잠시 빼앗은 적이 있었다. 그집 아저씨가 워낙 고집만 세고 게을렀었기 때문에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못 살던 집이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우리 땅도 좀 넓힐 겸, 또 무능한 가장 때문에 어렵게 살던 그집 사람들 잘 살게 해줄 요량으로 그랬었다고 했다.
그 아저씨의 동의를 구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때에는 누구나 힘센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의 전답을 빼앗던 시기였기 때문에 어차피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당하게 놔두느니 이왕이면 그집 사정을 잘 아는 우리가 그러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 집의 전답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고 한다. 개간도 아직 안 되어있고 농사짓는 기술도 너무 엉망이라 우리 아버지가 그걸 잘 개간하게 도와주었고 농사기술도 가르쳤다고 한다. 농사기술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집안의 모든 것들이 너무 낙후되고 노후되어서 우리 아버지가 대부분 고쳐주고 새로 사서 들여놓아 주었다고 했다.
이렇게 여러면으로 옆집 아저씨네를 잘 살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옆집 아저씨는 고마운 걸 모르고 항상 대들기만 하더랜다. 그래서 가문이 틀려서 싸우는 거라고 생각하고 아예 같은 식구로 살면 모든게 해결되겠다 싶어서 그렇게 권유를 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고집만 센 그집 아저씨는 오히려 더 펄쩍 뛰면서 난리를 치더랜다.
인내를 가지고 어떻게든 그 아저씨를 설득해서 자손대대로 같이 잘 살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집 아저씨는 끝내 먼동네 사람들을 끌고와선 우리 아버지를 흠씬 두들겨 패서, 그동안 우리 아버지가 땀흘려 개간해준 땅을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낼름 도로 찾아 갔더랜다.
더 가관인건 이후 그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에게 피해를 입었다며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한다고 한다. 하루이틀이 아니라 지난 몇십년간을 그런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자 이번에는 그 아저씨뿐만 아니라 그집 자식들까지도 같이 그런다고 한다. 제 아버지 못났던 것은 생각하지 않고, 우리 아버지 덕에 그만큼이라도 살게 된 것도 모르면서 철없는 자식들이 오히려 더 난리이다. 우리가 좀 잘 산다고 어떻게 해서든지 뜯어내려고 안달이다.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집안제사를 지내는 것도 트집이고, 자식교육시키는 것도 트집을 잡고 하지 말라고 성화다. 이거 양식이 있는 사람들인가?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아직도 붙들고서 저러는가? 언제까지 과거지사를 붙들고 그것에 연연해서 이럴 것인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가 은혜를 모르는 상종못할 집안이다. 먹고 살만 하니까 오히려 은인을 잡아 먹으려고 대든다. 그냥 이웃으로 봐주면서 사이좋게 지내려고 했는데 하는 꼴을 보니 도저히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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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어른끼리 원수집안인 두 집안의 젊은이가 눈이 맞아 사랑을 하게 되는데 집안의 반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자 자살소동을 벌이다가 실수로 둘 다 뒈지고 마는 이야기이다. 맞나? 아들끼리 친구사이인 두 엄마가 만나보니 젊은 시절 숙적이다. 그 곳에 아이들이 왔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 손을 억지로 잡아 끌고 와선 ‘쟤하고는 앞으로 놀지 말아라’ 한다.
반일감정과 혐한감정이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 반일 vs 혐한 1 – 그냥 일본이 싫다
→ 반일 vs 혐한 2 – 이치로 망언?
→ 반일 vs 혐한 3 – 한일간의 시각차이
→ 반일 vs 혐한 4 – 실체가 없는 반일
→ 반일 vs 혐한 5 – 이제는 친일하자
세상사 인간사 모든 것엔 양면이 존재한다. ‘절대 나쁜놈’이나 ‘절대 착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측면에 따라 배신자도 되고 영웅도 되고, 착한사람도 되고 바보도 되며 은인도 되고 악당도 된다.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우리 아버지가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데 어느날 느닷없이 힘센 옆집 아저씨에게 힘으로 눌려서 강제로 전답을 빼앗기고 소작을 한적이 있었다. 우리 증조할아버지대에는 그쪽 집안이 워낙 무식해서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그집 사람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쳤었다고 했고, 할아버지대에는 그집 사람들이 머리 좀 깨쳤다고 우리 할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심하게 싸운 적도 있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혼내줬다고 했다.
그러더니 아버지대에서는 그집 아저씨가 일찍부터 서울생활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오고 힘이 세어져서 아예 우리 아버지를 자기 부하로 만들 요량으로 강제로 찍어 눌렀던 것이라고 했다.
작은아버지는 그 아저씨에게 대들다가 맞아서 죽었고, 고모는 그 아저씨네 인부들에게 겁탈까지 당했다고 한다. 심하게 두들겨 맞은 적은 부지기수로 많았다고 한다. 눈에서 피눈물이 솟았지만 힘이 없던 우리 아버지는 그 비극과 굴욕을 어쩔 수 없이 감내했어야만 했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아저씨에게 복종하면서 사는척 해야만 했었다.
그렇지만 자기 밑으로 들어오면 잘 살게 해주겠다는 그 아저씨의 강압적 요구는 끝까지 거부하고, 마침내 착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빼앗겼던 전답도 되찾고 못된 아저씨도 완전히 몰아내었다.
악몽과도 같았던 소작시절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치가 떨린다고 한다. 아버지의 소원은 돌아가신 작은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겁탈당한 고모에게 정신적, 금전적 보상을 받게 해주는 일이었지만, 뻔뻔한 옆집아저씨는 잘못한 일이 전혀 없다며 오히려 우리아버지를 과거에 연연하는 못난 사람, 과거를 빙자해서 돈을 뜯어내려는 치사한 인간으로 치부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 자식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렇게 반성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 집안은 기필코 단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대명천지에 이렇게 못 되어먹은 집안이 아직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비슷한 짓을 했었던 다른 동네 다른 집은 피해를 끼쳤던 집에 사과도 하고 보상도 했다는데 이눔의 집안만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자기넨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아직까지 우긴다. 그러더니 얼마전부턴 우리 집 뒷마당 자투리 땅이 자기네 땅이라고까지 우기기 시작했다. 미안하다고 사과는 못할 망정 땅까지 훔쳐가려고 수작이다.
도대체가 용서치 못할 악질들이다. 이눔의 집안이 잘되는 꼴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이 철천지 원수를 기필코 우리앞에 무릎을 꿇려야 한다. 이것을 자손대대로 교육하고 또 교육해야 한다.
2.
우리 아버지가 옛날에 옆집 아저씨네 전답을 잠시 빼앗은 적이 있었다. 그집 아저씨가 워낙 고집만 세고 게을렀었기 때문에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못 살던 집이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우리 땅도 좀 넓힐 겸, 또 무능한 가장 때문에 어렵게 살던 그집 사람들 잘 살게 해줄 요량으로 그랬었다고 했다.
그 아저씨의 동의를 구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때에는 누구나 힘센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의 전답을 빼앗던 시기였기 때문에 어차피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당하게 놔두느니 이왕이면 그집 사정을 잘 아는 우리가 그러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 집의 전답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고 한다. 개간도 아직 안 되어있고 농사짓는 기술도 너무 엉망이라 우리 아버지가 그걸 잘 개간하게 도와주었고 농사기술도 가르쳤다고 한다. 농사기술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집안의 모든 것들이 너무 낙후되고 노후되어서 우리 아버지가 대부분 고쳐주고 새로 사서 들여놓아 주었다고 했다.
이렇게 여러면으로 옆집 아저씨네를 잘 살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옆집 아저씨는 고마운 걸 모르고 항상 대들기만 하더랜다. 그래서 가문이 틀려서 싸우는 거라고 생각하고 아예 같은 식구로 살면 모든게 해결되겠다 싶어서 그렇게 권유를 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고집만 센 그집 아저씨는 오히려 더 펄쩍 뛰면서 난리를 치더랜다.
인내를 가지고 어떻게든 그 아저씨를 설득해서 자손대대로 같이 잘 살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집 아저씨는 끝내 먼동네 사람들을 끌고와선 우리 아버지를 흠씬 두들겨 패서, 그동안 우리 아버지가 땀흘려 개간해준 땅을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낼름 도로 찾아 갔더랜다.
더 가관인건 이후 그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에게 피해를 입었다며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한다고 한다. 하루이틀이 아니라 지난 몇십년간을 그런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자 이번에는 그 아저씨뿐만 아니라 그집 자식들까지도 같이 그런다고 한다. 제 아버지 못났던 것은 생각하지 않고, 우리 아버지 덕에 그만큼이라도 살게 된 것도 모르면서 철없는 자식들이 오히려 더 난리이다. 우리가 좀 잘 산다고 어떻게 해서든지 뜯어내려고 안달이다.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집안제사를 지내는 것도 트집이고, 자식교육시키는 것도 트집을 잡고 하지 말라고 성화다. 이거 양식이 있는 사람들인가?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아직도 붙들고서 저러는가? 언제까지 과거지사를 붙들고 그것에 연연해서 이럴 것인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가 은혜를 모르는 상종못할 집안이다. 먹고 살만 하니까 오히려 은인을 잡아 먹으려고 대든다. 그냥 이웃으로 봐주면서 사이좋게 지내려고 했는데 하는 꼴을 보니 도저히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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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어른끼리 원수집안인 두 집안의 젊은이가 눈이 맞아 사랑을 하게 되는데 집안의 반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자 자살소동을 벌이다가 실수로 둘 다 뒈지고 마는 이야기이다. 맞나? 아들끼리 친구사이인 두 엄마가 만나보니 젊은 시절 숙적이다. 그 곳에 아이들이 왔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 손을 억지로 잡아 끌고 와선 ‘쟤하고는 앞으로 놀지 말아라’ 한다.
반일감정과 혐한감정이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 반일 vs 혐한 1 – 그냥 일본이 싫다
→ 반일 vs 혐한 2 – 이치로 망언?
→ 반일 vs 혐한 3 – 한일간의 시각차이
→ 반일 vs 혐한 4 – 실체가 없는 반일
→ 반일 vs 혐한 5 – 이제는 친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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