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메리카

잉카트레일 첫째날 (11/29)

이번 여행을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페루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좀 안좋게 박혔습니다. 마추픽추, 잉카트레일, 꾸스꼬, 띠띠까까호수.. 이런 위대한 관광자원에 대한 보호 유지 관리 운용이 너무 엉망이었던 겁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도 그 모양이니 일반 도시와 마을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좀 실례되는 말이지만.. 사실 처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그 처참했던 페루의 모습과 찬란했던 잉카트레일을 머리속에서 완전 분리하고 있습니다. 


투어에이전트를 찾는것부터 난관이었습니다. 정부 허가업체를 일목요연하게 나타내주는 웹싸이트 자체가 없습니다. 비슷한 관광자원인 ‘히말라야 트레일’의 투어에이전트 관리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극명했습니다. 업체들을 무작위로 검색해서 최종적으로 제가 선정한 업체는 InfoCusco라는 곳이었습니다. 대여섯 업체를 먼저 뽑고 TripAdvisor에서 평판을 확인한 후 고른 업체입니다. 다행히 예약과 결제과정은 잘 되어있었습니다. 크레딧카드 정보를 노출하지 않고 Paypal을 이용해서 결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비행편은 직접 LAN항공사에서, 호텔은 Expedia를 통해 예약 결제를 했습니다.


11월 25일 밤 출발, 일곱시간 남짓 날아 26일 리마에 도착했습니다. 국내선 공항으로 걸어가며 힐끗 본 리마는 특색없는 회색도시였습니다. 바로 꾸스꼬로 이동했습니다. 꾸스꼬.. 해발 3,400m의 안데스고원에 위치한 도시, 과거 잉카제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한국의 경주처럼 도시 전체가 문화유적지라고 해서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본건 극심한 자동차매연과 '최악의 교통문화'뿐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문화유적지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야말로 모든것이 엉망진창인 곳이었습니다


사전에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다가 ‘3 agonizing days in Cusco’라는 글을 읽은적이 있는데 딱 그대로였습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위대한 선조들의 유산으로 겨우 먹고살면서 관리도 하지 못하는 한심한 후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도무지 정이 가지않는 곳이었습니다

둘째날, 사장과 가이드와의 미팅이 있었습니다. 가이드가 어떤 사람일지 몹시 궁금했었는데 눈빛이 날카로운 정통 잉카인이었습니다. 유창한 영어로 잉카트레일 전체 일정을 설명해주고 준비물을 점검하고 포터에게 맡길 짐을 넣을 배낭을 건네주고 뭐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가장 큰 관심은 산소통을 몇개나 가지고 가냐였습니다. 고산증으로 한창 고생하고 있을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굉장히 친절하던 가이드의 대답은 의외로 시크했습니다. ‘산소통 생각하지 마라. 없다고 여겨라.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만 내가 판단해서 사용한다.’  


셋째날, 어제보다 몸이 더 쳐집니다. 삼일째엔 괜찮아지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낭패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마음속으론 트레일을 포기했습니다. 잉카트레일 간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온걸 크게 후회했습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고도가 좀 낮은 '우루밤바'라는 곳으로 내려가려고 준비하던 중, 어찌어찌 죽 몇숟가락 먹고나서 기적적으로 기운을 회복했습니다. 고산증이 아니라 영양실조였던 겁니다. 아무튼 꾸스꼬에서 하루 더 머물렀습니다. 그날 밤 다행히 처음으로 잠을 좀 푹 잤습니다. 네시간정도.

 

출발 일입니다. 천만다행으로 몸 컨디션이 괜찮습니다. 페루 도착이후 이런 컨디션은 처음입니다. 일찍 쥬스와 과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밖에 승합차가 와서 기다리고 있는걸 보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삼십년전 입대하던 날 아침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호텔 프런트직원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차에 올랐습니다. 두시간쯤 달려 '오얀따이땀보'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가 출발지인 'km 82'로 이동했습니다. 이 과정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지나가는 마을들이 유명관광지의 진입로라고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처참하게 낙후된 모습 그대로였던 겁니다.

 

출발지에 도착했습니다. 자그마한 운동장 같은 곳에 여러팀들이 흩어져 분주합니다. 우리도 그곳에서 처음으로 팀 전체를 만났습니다. 우리를 포함해 총 9명입니다. 우리 둘을 위해 일곱명이나 도우미가 동행한다니 황공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일곱명 모두 백인피 하나 섞이지 않은 정통 잉카인들이었습니다. 포터들이 지고 갈 짐들을 분배하던 중 떱떠름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맡기는 짐이 너무 무거워서 포터 한명을 더 고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거짓말인줄 알고 있었지만 그냥 넘겼습니다. 며칠전 사전미팅때 등산스틱 하나를 더 빌려야 한다며 20달러를 내라고 하던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첨엔 농담인줄 알았습니다. 제가 사전 예약한 건 ‘2 walking sticks’.. 두명이 예약해서 두명분 물품을 빌리니 당연히 두사람 스틱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한짝, 스틱 두자루였습니다. ‘4 walking sticks’라고 했어야 했답니다.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20불 더 냈습니다. 참 아둔한 사람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겨우 20불 때문에 이런 느낌을 가지게 하다니. 그랬었는데 오늘 출발지에선 짐의 무게를 트집잡고 있는 겁니다


포터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한사람이 질수있는 무게가 최대 20kg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우리 짐이 너무 많아서 전체 중량이 초과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명을 더 고용해야 최종입산허가가 난답니다. 거짓말인줄 알고 있었지만 '페루경제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으로 기분좋게 웃어넘겼습니다. 결국 포터한명은 더 데려오지 않고 원래 포터 다섯명이 추가포터 한명분 돈을 나눠 받고 조금씩 더 지기로 했답니다. 사전에 허가증을 받지도 않은 추가인원을 당일날 무슨수로 허가증을 받겠습니까. 그냥 애교로 봐줬습니다. 

우리 가이드인 '헨리'입니다. 다른 경험담을 보면 가이드의 영어가 너무 형편없어서 불만이었다는 내용이 많이 나오던데 우린 그 반대였습니다. 이 친구는 영어를 너무 잘하는데다가 잉카의 직속후예로 잉카문명에 대한 자부심이 워낙 강해 설명이 너무 길었습니다. 우린 그게 불만이었습니다. 얘기를 듣다 지루해 딴청을 부리면 곧바로 지적이 왔습니다. 중요한 얘기다 잘 들어라.. 그리곤 자기가 한 얘기를 거꾸로 되묻기도 했습니다. 정말 똑똑한 친구였습니다.


머리주변을 모두 가리는 모자를 출발지에서 샀습니다. 준비했던 야구모자로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썬크림도 얼굴목 전체에 듬뿍 발랐습니다. 꾸스꼬 첫날, 구름이 잔뜩 낀 광장에 맨얼굴로 삼십분 정도 앉아있었다가 다다음날 얼굴이 온통 벗겨져버리는 무서운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산지대의 자외선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꼼꼼한 입산 심사를 거친 후 드디어 이곳에 섰습니다

인터넷에서 수도 없이 보았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한팀이 사진을 찍는동안 다음팀이 옆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고.. 이렇게 기계적으로 사진을 찍는거였습니다. 환하게 웃었지만 긴장감도 컸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읽었는지 헨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첫날은 피크닉같은 준비운동이다. 즐기면 된다.. 트레일 전체경로를 머리속에 한번 그렸습니다. 자 가자..



출발하자마자 오르막이 나와 잠시 질겁을 했는데 예상외로 걸을만 했습니다. 그곳이 꾸스꼬(3,400m)보다 800m나 낮은 곳(2,600m)이라 걷기가 한결 수월했던 겁니다. 으흠.. 자신감이 확 붙었습니다. 오늘 예닐곱시간 정도 걷는데 전체 고도상승이 겨우 400m 정도랍니다. 페루도착후 처음으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중간 휴게시설도 많고, 날씨도 좋고, 안데스의 경치도 숨막힐 듯 환상적이었습니다

세시간쯤 가뿐하게 걷고 점심을 위해 멈췄습니다. 포터와 요리사가 미리 도착해 텐트를 쳐놓고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포터 한명이 조그만 그릇에 물을 담아와 손을 씻으랍니다. 너무 친절해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요리사가 뭔가 열심히 만들어 여러가지를 내어 오는데.. 맛은 정말 없었습니다.^^ 우리가 먹는 동안 포터들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데, 나중에 보니 우리가 음식을 많이 남기면 그들이 더 많이 먹는다는걸 알았습니다. 식당텐트의 모습입니다. 식사때엔 식당, 밤에는 포터들의 숙소입니다.

우리는 밥만 먹고 휭 출발하면 포터들이 나머지를 다 정리한 후 뒤따라 옵니다. 엄청난 배낭을 짊어지고서도 거의 날아다닙니다. 얼마 걷다가 우릴 추월하려는 포터들을 만났습니다. 가이드가 그들을 세우더니 저더러 그중의 한 배낭을 져보라고 합니다. 의미가 있겠다싶어 배낭중 작은거 하나를 져봤습니다

인권보호를 위해 법으로 20kg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더니 아니었습니다. 30kg도 훨씬 넘는것 같았습니다. 출발지에서 저울로 잰 14kg짜리 배낭을 져봤었는데 그 두배도 훨씬 넘게 느껴졌습니다. 일부러 좀 오바해서 비틀비틀거리다 쓰러지곤 포터들에게 존경한다는 인사를 과하게 건넸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걸 지고 걷기란 불가능했습니다.

서너시간 즐겁게 걸어 첫 야영지에 도착했습니다컨디션같아선 몇시간 더 걸을 수 있겠는데 거기서 묵어야 한답니다3,000m 고도라는데 어느 민가의 마당입니다. 달랑 우리팀밖에 없습니다. 다른 팀들이 묵는 정규 야영지보다 20분쯤 이른 곳이랍니다. 우리가 잠을 잘 텐트가 이미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티타임이라며 우릴 부릅니다. 딱히 할말도 없고 차도 그리 입에 맞지도 않습니다. 오분정도 맹숭맹숭한 시간을 지나 일어나겠다고 하고 텐트로 돌아오며 가이드에게 나직이 말했습니다. '헨리.. 마음은 알겠지만 낼부턴 티타임은 안해도 된다'^^ 얼마후 저녁먹으러 오랍니다. 분위기를 위해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지고 갔습니다. 잉카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다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포터들과 함께 식사를 한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잉카의 안데스산속에서, 잉카의 후예들, 잉카음악을 들으며, 잉카음식을 먹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지만 뿌듯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2인용 텐트.. 그리 좁은지 몰랐습니다. 그 안에서 물휴지로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고.. 2인용 텐트는 숨이 막힐듯 답답했습니다. 없던 폐소공포증이 다 나타날 듯 합니다. 한동안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야 겨우 적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밤새 자다깨다를 반복했습니다. 별빛하나 없는 안데스의 깜깜한 오밤중, 텐트밖으로 나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한시간을 서성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경험자들이 입모아 말하는 '가장 고생스런 날'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밤새 뒤척이다 ‘아미고.. 꼬까띠라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포터 한명이 뜨거운 Coca Tea를 가져와 우리 텐트를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차를 받아 마시고 밖으로 나오니 조그마한 대야 두개에 뜨거운 물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게 세수를 했습니다. 운명의 둘쨋 날이 밝았습니다.










'아메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잉카트레일 셋째날 (12/01)  (0) 2014.12.13
잉카트레일 둘째날 (11/30)  (2) 2014.12.12
잉카트레일 성패 팩터  (2) 2014.12.10
잉카트레일 기막히고 숨막히던  (2) 2014.12.09
걷고 걷고  (3) 201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