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메리카

잉카트레일 성패 팩터

잉카트레일.. 해볼만 합니다. 오십대 이상이라도 준비만 잘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도전입니다. 잉카트레일 성패를 좌우하는 팩터가 무엇인지 정리해봤습니다.

 

1. 고산증

잉카트레일 성패의 95%가 이 고산증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고산증 발생은 남녀노소, 체력, 건강여부와 연관 없다고 했었습니다. 가보니 실제로 그랬습니다. 약해 보이는데 하루만에 말짱해져서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도 있고, 건강한데도 삼일이 지나도록 음식은 커녕 걸음조차 제대로 못 걷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가 전자에 속하는지 후자에 속하는지는 겪어보기 전엔 아무도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부부는 완벽한 후자였습니다. 삼일의 적응기간이 있었지만, 트레일 출발 전날까지 정상적인 걸음조차 걷지 못했었습니다. 여기엔 쿠스코의 심각한 자동차 매연도 한몫했을 겁니다. 목과 눈이 따가울 정도로 심각한 자동차 매연때문에 걷기는 커녕 숨쉬기도 어려웠습니다. 

 

고산증의 증상은 필름이 끊기도록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심한 숙취증상과 매우 비슷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두통과 물조차 마시기 어려운 속 느글거림, 온몸은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여기에 두가지가 더해집니다. 가슴답답함과 불면증입니다. 잠이 들면 호흡이 짧아지기 때문에 산소부족으로 두통이 훨씬 심해져 바로 잠에서 깹니다. 산소를 십분정도 들여마신후에야 안정이 됩니다. 이걸 밤새 계속합니다. 더 공포스러운 건 이게 삼일동안 끝없이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지옥같은 경험이었습니다. 갖가지 약들도 그 유명한 코카차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해결하길 기다리는 수밖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고산증을 넘길 확률도 굉장히 높기 때문입니다.

(운 좋게도 일회용 산소통이 아닌 이렇게 큰 의료용 산소통을 우리가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트레일 출발 전날 오후, 저희는 잉카트레일을 99%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삼일동안 음식을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잠도 거의 못잤습니다. 몸이 엉망이었습니다.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100m 정도 걸으면 쉬어야 했습니다. 이런 몸 상태로는 출발자체가 무리였던 겁니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한다는것이 너무 분했습니다. 그래서 출발 전날 마지막 시도를 하나 해보기로 했습니다. 쿠스코(3,400m)를 떠나 우루밤바(2,600m)로 내려가기로 한겁니다. 어차피 다음날 들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하룻밤이지만 그곳에서 어느정도 몸을 회복시켜 시작이라도 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루밤바로 가진 않았습니다. 쿠스코 호텔 체크아웃 후 혹시나하고 죽 몇 숟가락을 억지로 밀어넣었는데 이후 기적처럼 몸이 회복되기 시작한 겁니다. 고산증도 고산증이지만 심각한 '영양실조'가 더 문제였던 겁니다. 


 

2. 음식

속이 워낙 느글거려 음식을 단 한번도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독특한 향의 현지음식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쿠스코에 한국식당이 하나 있었지만 밥과 김치조차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오지의 한국식당이라고 해도 맛이 너무 없었습니다^^ 잉카트레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이 한국식당대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었으니 말입니다) 쿠스코에서 삼일동안 먹은걸 다 합쳐도 아마 밥 한공기가 채 안될겁니다. 마지막날 기적같은 죽 몇 숟가락이 아니었다면 영양실조/에너지고갈로 인해 아마 시작도 못하고 실패했을 겁니다.

트레킹 기간중에도 음식고생은 계속됩니다. 팀의 요리사가 만들어주는 현지음식들이 너무 입에 맞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우리가 입이 짧은편이 아닌데도 독특한 향의 현지음식은 먹기가 어려웠습니다. 라면을 가져갈까하다가 너무 유난떠는거 같아 관둔것을 두고두고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결국 영양실조 상태로 트레킹을 했습니다


 

3. 체력

적어도 잉카트레일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중상급 이상의 체력은 준비하고 있을거라고 봅니다. 저는 출발 삼개월전부터 일주일에 5, 하루 세시간씩 산을 올랐습니다. 빠른 속보로 걸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코로만 최소한 숨을 쉬는 훈련을 했습니다. 오래도록 절 괴롭혔던 왼무릎도 삼개월간 훈련을 하면서 어느정도 좋아졌습니다

 

체력적인 문제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오르막에서 '호흡압박'과 '근육압박'입니다. 고산지역에서의 등산은 낮은 지역에서의 같은 등산보다 서너배는 힘든것 같습니다. 서너걸음 걷고 쉬고, 너덧걸음 걷고 쉬고.. 이걸 너덧시간 반복해야하는 마의 구간이 있습니다. 둘째는 내리막에서의 '무릎압박'입니다. 잉카스텝 이천계단이니 삼천계단이니 말이 달랐는데 실제 가보니 모두 틀렸습니다. 둘째날 셋째날 내리막을 합쳐 족히 몇만개는 넘습니다. 게다가 비까지 내려 무척 미끄러웠습니다. 등산스틱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할 공포의 내리막입니다.

연령대는 대부분이 이삼십대였습니다. 우리와 같이 오른 그날 참가자가 대략 120명정도라는데, 그중 80% 이상이 이삼십대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십대로 보이는 사람들 열댓명, 오십대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를 포함해서 예닐곱명 정도였는데, 그 오십대중 네명이 둘쨋날 오전에 포기하고 내려갔고, 마지막날까지 남은 오십대는 아마 우리 부부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체력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고산증은 미리 준비할 수 없지만, 이 체력은 충분히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체력은 필수입니다.

 

우리는 개인짐을 대부분 포터에게 맡기고 Lumbar Pack에 물과 캠코더, 기타 비상물품만 넣고 걸었습니다. 자기 배낭에 자기 짐을 모두 넣고 걷는 사람의 비율은 1/3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나머지 2/3의 사람은 우리처럼 포터에게 짐을 맡기고 작은 배낭을 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제 짐을 모두 짊어졌었더라면 성공확률 0%입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틸 문제가 아닙니다. 무거운 배낭에 대한 장기간 특별 훈련이 따로 없다면 짐은 ‘무조건포터에게 맡겨야 합니다. 내게도 좋지만 포터들의 생활에도 도움을 주는 '좋은 일'입니다. 고집부리지 마십시요. 일본인으로 보이는 삼십대 커플이 하나 있었는데 둘 다 큰 배낭을 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첫째날이후 그 둘은 영원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거북이팀'이었습니다. 빨리 걷지는 못하지만 '천천히 계속'해서 걸었습니다한번 쉬고 나면 재출발이 엄청나게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가뜩이나 우리만 동양인이라 눈에 띄는데, 워낙 천천히 걸으며 쉬지도 않으니 사람들과 우리가 서로 여러번 봤습니다. 수도없이 추월하고 추월당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참가자들의 연령대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이었습니다.

 

 

4. 환경

캠프지역엔 가장 기초적인 시설들만 있었습니다. 전기와 더운물이 없습니다. 얼음같이 찬 물에 괴성을 지르며 샤워하는 사람도 있긴 있었습니다만 그건 젊은애들이 객기로 하는거지 우리에겐 불가능합니다. 셋째날 머리를 감았는데 하도 물이 차서 머리통 깨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몸 전체를 닦을 물휴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땀에 젖은 옷을 벗고 뽀송뽀송한 몸을 만들어 따뜻한 옷을 입고 잠을 청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밤엔 무척 춥습니다. 특히 셋째날 야영지는 정말 추웠습니다. 내복도 입고 가져간 옷을 모두 껴입었는데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회사가 제공하는 침낭의 품질이 별로입니다. 게다가 너무 폭이 좁아서 저는 침낭을 펼쳐 덮고 잤습니다. 침낭 내피를 따로 준비하는 것도 필수입니다. 벼룩에 물린 자국이 팔과 다리에 수십개 선명한 사람들 투성이였습니다.

 

7시쯤 저녁을 먹고나면 다음날 새벽까지 아무것도 할일이 없습니다. 밖은 어둡고 추워서 어쩔 수 없이 텐트안에 있어야 하는데, 불빛 하나없는 산속, 좁디좁은 2인용 텐트속은 상상외로 답답하더군요. 마인드컨트롤을 해서야 겨우 적응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10인용쯤 되어보이는 큰 사각 텐트에서 조잘대며 놀다 자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화장실은 거의 포기해야 합니다. 음식도 잘 먹지 못하니 나올것도 별로 없고, 새벽 5시에 기상해 아침 먹고 6시쯤 출발하다보니 한가하게 똥눌 시간도 없습니다. 사전에 듣기로 수세식이라고 들었었는데, 가서보니 물만 내릴수 있을뿐 100% 재래식 화장실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의 똥이라 그런지 냄새가 정말이지 고약했습니다. 까짓거 3일동안 똥 안누겠다고 마음 먹는게 편합니다.

 

참가자 절대 대부분이 백인들입니다. 거리 가까운 미국과 캐나다인이 절대다수고 일부가 유럽 호주 남미의 백인들입니다. 일본인 커플이 포기한 이후 동양인은 우리 부부뿐이었고, 인도계 영국인 한명과 흑백혼혈이 한명 그리고 인종이 불분명한 한두명이 있었을 뿐 모두 백인들.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당신이 백인들만 우글대는 팀에 끼이게 된다면, 아마 언어적 문화적 스트레스가 꽤 심할겁니다. 중간에 포기한 일본인커플이 배낭뿐만 아니라 이 스트레스로도 힘들어하는것 같았습니다. 



5. 마음가짐

쿠스코에 도착한 둘쨋날 가이드와 사전 미팅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가 두가지 마음가짐을 강조하더군요Be Positive! & Be Honest! 자신감을 가지라는 건 알겠는데 '솔직해지라'는 게 무슨 뜻인지 그때는 몰랐었습니다. 왜 솔직하라는 건지.. 며칠 뒤 제가 온몸으로 절감했습니다. 힘든 걸 끝까지 숨기다가 하마터면 죽을뻔 했습니다.


  

6. 만약 제가 다시 도전한다면

빈말이 아니라 '꼭' 다시 가고 싶습니다. 이번엔 몸 겨우겨우 추스리고 급히 따라가느라 사전에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도전한다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 최소 일주일이상 고소 적응기간을 잡고, 더 낮은 지역에서부터 천천히 고도를 올리겠습니다.

- 뜨거운 물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한국 음식을 충분히 준비하겠습니다

- 대화가 통할 수 있는 한국인 4~6명정도로 팀을 꾸리겠습니다.

- 오륙인용 이상 텐트, 넉넉하고 두꺼운 침낭을 준비하겠습니다

- 비 안오는 겨울 건기에 가겠습니다. 이번 여름 4일동안 2.5일 비가 왔습니다.  

 

이렇게만 준비한다면 정말이지 '즐겁고 재미있는' 잉카트레일이 될겁니다

참 희한합니다. 그 고생을 하고서도 왜 또 하고 싶은건지.










'아메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잉카트레일 둘째날 (11/30)  (2) 2014.12.12
잉카트레일 첫째날 (11/29)  (4) 2014.12.11
잉카트레일 기막히고 숨막히던  (2) 2014.12.09
걷고 걷고  (3) 2014.11.26
2014 인디언 써머  (0) 201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