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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잉카트레일 셋째날 (12/01)


제일 먼저 출발한다고 나섰는데도 우리 앞에 남자와 여자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여자가 큰 배낭을 지고 남자는 비무장입니다. 누군지 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남자가 배낭을 지고 여자는 비무장으로 가던 커플입니다. 하루하루 교대로 하는건가?.. 근데 남자가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추월했습니다.

 

구름이 잔뜩 끼어 우리가 구름속에 있습니다. 즐기면 될 코스라더니 웬걸 시작부터 엄청난 고바위입니다. 하지만 이제 고바위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제 교훈으로 아침을 든든히 먹었더니 다리 힘도 튼튼합니다. 우리도 놀라고 가이드도 놀랄정도로 그 고바위를 거뜬하게 올랐습니다

캠프가 아래로 까마득하게 보이는 여기까지 한시간 20분만에 주파했습니다. 원래 두시간 코스랍니다.

내리막입니다. 듣던대로 엄청납니다. 그러나 잉카트레일의 독특한 이 돌길들.. 정말 멋집니다. 이제 관건은 언제나 해가 뜰까입니다. 경치는 못 보고 돌길만 보면서 걷길 벌써 몇시간 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구름이 걷히긴 커녕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루종일 빗길을 걸었습니다. 아무리 비를 좋아하고 아무리 이 돌길을 좋아한다고 해도 하루종일은 좀 길다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무릎이 좋질 않으니 그 통증도 내내 괴롭혔습니다. 만약 날씨가 좋았다면 정말 경관은 숨막혔을것 같습니다. 구름속에 조금씩 보이는 경치만으로도 황홀하니 말입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데 바깥이 시끄럽습니다. 내다봤더니 웬 들것이 하나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포터 여섯명이 들것을 이고 가고 있는데, 아침에 본 그 여자가 뒤에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같이 가던 그 남자가 들것에 실려가고 있었던 겁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찡했습니다.

  

빗속 내리막 길은 저녁 캠프에 도착할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경치는 안보이지만 나름대로 운치있는 '구름속 돌계단'을 하루종일 걸었습니다. 무릎에 부담주지 않으려 스틱에 전적으로 의존해 내려오다보니 무릎보다 팔과 어깨가 더 아픕니다. 저녁무렵 마지막 캠프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 포터들이 좀 늦게 도착했던 모양입니다. 씻기에는 좋았지만 냄새가 좀 났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하루종일 내린 비때문에 짐들이 모두 젖었습니다. 침낭과 옷을 부지런히 털고 말렸습니다.

셋째날 저녁엔 팀이 모여 파티를 합니다Farewell Ceremony라고 부른답니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인사하는 거라는데 사실 진짜 목적은 팁을 주고 받기 위한행사입니다. 다음날 워낙 이른 새벽에 포터 요리사와 헤어지기 때문에 셋째날 저녁이 그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출발하기 전에 도대체 팁을 얼마나 줘야하는지 조사를 했습니다. 천차만별입니다. 인터넷에선 중구난방이고, 꾸스꼬의 식당주인은 포터들에게 각각 10솔씩 가이드에게 30솔정도만 주면 된다고 하고, 사전미팅때 물어보니 포터에게 50솔정도, 요리사에겐 그보다 좀 더 주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트레킹을 해보면 포터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게됩니다. 회사에서 일당을 얼마나 받는지는 모르지만 안쓰러울 정도로 고생을 많이 합니다. 개중엔 샌달을 신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게다가 얼마나 순박한지 모릅니다. 절대로 팁을 아낄 게 아닌 겁니다. 저는 권장합니다. 포터 일인당 100솔 이상, 요리사 150솔 이상, 가이드 200솔 이상. 더 주고 싶었는데 가져간 현찰이 없어서 못 줬습니다.

 

컴컴한 텐트안에서 저녁을 먹자마자 곧바로 세레모니가 시작됩니다. 먼저 가이드가 포터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더군요. 축구팀 감독과 선수들 사이처럼 분위기가 엄했습니다. 무슨애길 했나 했더니 가이드 자기 인생얘길 했답니다. 나도 너희들 처럼 포터출신이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이렇게 투어 가이드까지 되었다. 너희들도 노력해라.. 이렇게 말했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가이드가 포터출신이었다니.. 그 집념에 존경심이 우러났습니다. 그리고 포터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 소개를 하고 마지막으로 저보고 인사를 하랍니다. 오랜기간 꿈이었다.. 당신들 도움으로 그 꿈을 이루었다.. 내 꿈을 이뤄준 당신들을 평생 기억할 거다.. 뭐 이렇게 대충 말했습니다. 그리곤 케익(그 와중에 케익을 만들었더군요)의 촛불을 끄고 행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 날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출발해야 한답니다. 캠프 바로 아래 체크포인트 개장은 5시 반부터인데 왜 그렇게 일찍 서두르냐하면, 포터들이 6시까지 산 아래로 내려가 기차를 타야하기 때문이랍니다.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근데 다른 텐트에서는 아직도 시끌벅적합니다. 워낙 여러가지 사람들이 모여있다보니 그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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