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른 아침, 먹이통 주변의 벌새들이 몹시 요란하다. 원래 요란한 아이들이니 처음엔 그러려니 했었는데 그날은 좀 비정상적으로 요란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먹이통 쪽을 보니, 벌새 예닐곱 마리가 마치 벌떼들처럼 먹이통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먹이통을 독차지 하려는 빨간마후라(왕초 벌새에게 붙여준 이름)가 아침부터 어지간히 친구들을 쫓는 모양이군.. 하고 무심코 지나치려는데 그게 아니었다. 뭔가 커다란 것이 먹이통에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벌새들은 그 커다란 것을 보고 주변을 요란하게 날아다니고 있는 거였고. 저게 뭐지?
바로 이 새였다. 색깔이 너무나 곱고 아름다운 새, 어디서 많이 본 노랗고 까만 예쁜 새.. 재빨리 스맛폰을 찾아 들고 사진을 찍으려 다가섰지만, 인기척을 느낀 그 새는 속절없이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이름이 뭘까.. 조류 도감을 손에 든 순간 '아! - ㅎㅎ' 웃고 말았다. 그 새의 사진이 도감의 표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들었던 건 바로 이거였다. 내가 가진 조류도감의 표지모델 ㅎㅎ
표지모델을 할 정도이니 오죽 예쁘겠는가. 정말 예뻤다. 어떻게든 이 새를 우리 집에 자주 오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이 새가 왜 뜬금없이 벌새 먹이통에 붙어있었던 걸까.. 찾아봤다. 이 새의 이름은 Hooded Oriole 한국말로 하면 ‘두건 꾀꼬리’쯤 되고, 과일즙을 먹는 새란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벌새 먹이통에 앉아 넥타를 빨아먹기도 한단다. 하지만 벌새 먹이통은 이 새가 앉기엔 너무 작다. 그래서 더 찾아보니 oriole feeder 라는 게 따로 있었다.
조류도감 표지모델을 할 정도로 예쁜 새다. 반드시 우리집 식구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꾀꼬리 먹이통과 먹이를 사서 내다 걸었다. 전체 모양이 오렌지 형상이다. 아마 오리올은 이 먹이통을 오렌지인줄 알고 오는 모양이다. 멀리서도 잘 보이라고 ‘동네 새들에게 이미 널리 잘 알려진’ 벌새 먹이통 바로 옆에 매달았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노랗고 까만 예쁜새 두건 꾀꼬리.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먹이통의 눈금이 전혀 줄지를 않는다. 기다리는 오리올이 감감 무소식인 거다.
'어떻게 된거야 금세 오리올이 떼로 날아올거라더니..'
아마 우리 동네 새가 아니라 어디 멀리 가던 중 휴게소삼아 잠시 들렀던 놈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좀 더 매달아두고 인내를 갖고 기다려볼 작정이다. 예쁘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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