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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올림픽 메달 집착증

냉전시대 메달 경쟁

80년대 후반 신용카드가 퍼지기 시작하던 무렵, 지갑 속에 신용카드 몇장 들었느냐가 자랑이던 시절이 있었다. BC카드 엘지카드 위너스카드 그리고 가입이 까다로워서 더 자랑스럽던 다이너스클럽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카드의 갯수가 마치 부와 신용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 친구의 지갑과 비교하며 치열하게 카드 숫자 경쟁을 했었다. 하지만 신용카드 갯수와 부/신용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결국 그건 바보들의 경쟁이었다. 따라서 요즈음엔 그런 사람 없다. 혹시 카드 갯수로 자랑을 하면 덜 떨어진 바보 취급 당한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절올림픽 메달이 몇 개냐가 자랑이던 시절이 있었다당시 올림픽은 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경쟁이었지만 동독을 필두로 한 동구 공산국가들의 선전도 대단했었다. 소련과 동구국가들.. 국가가 명하면 우리는 따르는’ 그 공산 국가들은 올림픽 메달기계들을 국가가 생산해 냈었다올림픽 메달 숫자는 공산체제의 수호신이며 국가의 자존심이었다하지만 공산주의는 무너졌고 올림픽 메달과 국가의 가치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음이 드러났다. 그래서 지구촌 국가들은 더 이상 메달기계들을 '국가 생산'하지 않는다혹시 그런 나라가 있으면 덜 떨어진 국가 취급 받는다.



중국의 부상 

오랜 세월이 흘렀다. 생뚱맞게 올림픽 메달 갯수 경쟁에 뒤늦게 열을 올리는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메달 집착은 냉전 시절 소련과 동구국가들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올림픽 메달에 체제와 국가의 명운이 걸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국가가 올림픽 메달기계들을 강제 생산해낸다. 그 결과 중국은 올림픽을 미국 중국의 양강체제로 개편해버렸다. 자랑스러워 할만 하다. 중국의 그런 약진에 세계도 놀란다.

 

하지만 그들의 기량에만 놀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그 뒤떨어진 전략과 감각에 더 놀라는 중이다. 사회자체가 스포츠 국가인 미국을 제외하고는 국력과 올림픽 메달숫자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전 세계가 다 아는데, 중국은 여전히 메달 숫자에 집착을 하고 있다. 중화주의의 산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아직 덜 떨어진 전체주의 국가라는 걸 알리는 중이기도 하다. '올림픽 메달 숫자 = 우리의 국력 = 체제의 우월감 = 자신감과 애국심 = 체제의 안정' 이 공식은.. 국가가 유도해서 국민들의 애국심을 억지로라도 고취시키지 않으면 체제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불안정 국가라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의 메달 집착

과거 소련과 함께 메달에 집착하던 동구국가들이 있었던 것처럼 요즈음 중국과 함께 메달에 집착하는 나라가 있다. 우리 대한민국이다. 올림픽 기간 중엔 우리나라 금메달 몇 개 땄냐라는 블랙홀이 한국인들의 사유기능을 거의 정지시켜 버린다. 금메달 숫자만으로 순위를 매겨선 우리가 세계 4위라고 호들갑을 떤다. 선수들은 인터뷰에서 목숨을 걸고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한다. 88 올림픽과 2002 월드컵 당시 주최국의 횡포를 부렸던 우리였건만, 오심 논란에 전 국토가 부글거린다. 

 

보기 좋지 않냐고? 선수들의 도전정신과 열정이 감동적이지 않냐고? 그럴 듯해 보이지만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 선수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좀 심하게 말하면 선수들은 개인의 인생역전을 위해 지독하게 훈련한 '메달 기계'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더 상투적인 말,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애국심을 가지게 되지 않냐고? … 이건 열살 미만 어린이들에게나 통할 소리다


한국인들이 올림픽에 관심 가지는 건 오직 금메달 갯수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엔 '태릉선수촌'이라는 '집단수용소'가 있고, 그곳에 전 종목 선수들을 몰아 넣고 반강제로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킨다. 그 수용소에서 메달기계들은 목숨을 걸고훈련하고, 올림픽에서 '목숨을 걸고' 경기에 임한다. 2012년까지도 여전하다.

  

올림픽 기간 동안 한국 사회는 철저하게 획일화된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자연스럽게 우러나야 할 애국심을 국가와 사회가 억지로 유도한다. ‘독일도 제치고 일본도 제치고 우리가 세계 4위다. 자 이래도 애국심을 가지지 않을테냐?’ 강요당한다. 방송과 언론은 올림픽 소식으로 도배된다. 새벽까지 잠을 설치지 않으면 마치 덜 애국하는 듯한 죄책감을 들게 만든다. 금메달리스트들의 감동스토리로 인해 ‘국가에 영광을 가져다 준 이 영웅들을 봐라. 국가가 널 위해 뭘 해 줄 지 기다려 자빠졌지 말고, 네가 국가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해라강요당한다. 발 맞추어 나가자 앞으로 가자.. 국가주의 전체주의 민족주의 광풍이 분다.



우리 대한민국.. 대단한 나라임은 이미 전 세계가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메달 집착증은 오히려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국가와 사회의 이 집착증은 국가 이미지를 좀먹게 할 수도 있다. 경제만 선진국일 뿐 이념과 정치와 문화수준은 여전히 후진국이란 이미지를 공고화 할 수도 있다. 집단수용소에서 생산된 메달기계들과 한국인들의 금메달 집착증.. 다른 지구촌 식구들에겐 조롱감이 될 수도 있음이다

조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에겐 올림픽이 인생 최대의 기회이며 순간이다. 조국의 이름도 걸려있지만 더욱 중요한 건 본인의 인생이다. 금메달 하나로 김연아 같은 졸부도 될 수 있고, 문대성처럼 언감생심 국회의원도 될 수 있다. 인생역전.. 그렇다. 선수 '개인의 금메달'이다. 이게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훈련과 경기에 임하는 이유다. 그들은 독립군도 전쟁 영웅도 아닌, 인생역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운동선수일 뿐이다. 따라서 우린 그렇게 올림픽에 나선 그들에게 따뜻한 응원과 박수를 보내면서 그냥 즐기면 된다. 때에 따라 좀 많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며 즐겨도 된다. 우리나라 금메달 갯수가 많으면 배달민족으로 자부심 느끼면서 열심히 기뻐하고 즐기면 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국가와 사회 전체가 죽기살기로 금메달에 집착할 건 전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