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메리카

LA 박살띠 작업

DMZ 박살띠 작업 - 우물가의 추억

DMZ에서 하던 작업 중 박살띠작업이란 게 있었다. (물론 군대에서는 '작전'이라고 부른다. 밥 나르는 것도 부식추진작전..^^) 철책이나 GP에 닿아있는 경사면의 모든 풀과 나무를 뿌리 채 솎아내어 민둥산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 이렇게.

철책과 GP는 대부분 급경사 산자락의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이 박살띠작업은 아찔한 경사면에서 하는 위험한 작업이었다. 작업면이 거의 눈높이에 있어서 허리는 아프지 않아 좋았지만, 굴러 내리는 돌에 맞기도 하고, 때론 사람 자체가 밑으로 구르기도 한다. 나란히 늘어서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옆사람이 휘두르는 도구에 맞아 부상을 입기도 하고, 땅벌집을 건드렸다가 벌에 쏘여서 의무대에 후송되기도 한다.

 

작업을 마치면 땀과 흙으로 온몸이 범벅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씻기 싫어하는 놈이라도 목욕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박살띠 작업을 하는 날엔 중대에 한개밖에 없던 우물가가 장사진이었다. 이 날의 우물가.. 군대에서 보기 드문 자유지역이었다. 소대원 전체가 계급장 없이 발가벗고, 고참이나 쫄병이나 어울려 우물물 뒤집어 쓰며 히히덕 거리던 곳. 그래서 DMZ 박살띠작업은 재미나게 목욕하던 우물가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LA의 박살띠 작업 - 깁슨을 위하여

Brush Clearance.. 산불을 대비해서 집 주변 일정 거리 이내의 모든 잡풀들과 작은 관목, 마른 가지들을 잘라버리는 일이다. 즉 박살띠 작업이다의무사항이기 때문에 재작년에는 사람을 시켜서 했었다. 의외로 돈 많이 들었다. 천오백불.. 작년에는 안 하고 버텼다. 규정을 자세히 읽어보니 우리집 언덕의 경우엔 잡풀이 아니라 Cultivated landscape vegetation에 속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프링클러가 그곳까지 다 설치되어 있다. 버텼더니 무사히 넘어갔다. 올해 또 통지서가 왔다. 할까 말까.. 규정을 잘 모르는 이웃들이 우리가 2년 연속 안한다고 신고할까 그게 걱정이다. ㅋㅋ 


그래 올해엔 하자. 사람을 부르면 되지만 잡풀들 베어내는 데 이천불이나 쓴다는 게 좀 아깝다. 예전 박살띠 작업 경험도 있으니 내가 직접 하기로 하고 그대신 아낀 돈으로 당당하게 깁슨을 사자. 운동도 하고 악기도 하나 사고 일석이조 아닌가완전무장하고 기계(trimmer)를 들고 내려갔다


그러나 시작부터 틀어진다. 내가 가진 장난감 수준의 trimmer론 택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들이대도 굵고 질긴 풀들은 끄덕도 안한다. 게다가 배터리가 작아 오분도 못 버틴다. 불가능.. 그래서 나뭇가지 트림할 때 쓰는 커다란 전정가위로 도구를 바꿨다. 되긴 되지만 100% 수작업이기 때문에 작업이 장난이 아니다. 하루 종일 매달려서 덱 바로 아래 부분만 겨우 끝내고 녹초가 되어버렸다. 먼지를 하도 마셔서 목도 칼칼하다.

 

얼마나 남았는지 보려고 밑으로 내려가봤다. 앞으로 해야 할 면적이 오늘 끝낸 면적의 열배도 넘는다. 게다가 더 문제는 잘라낸 풀들을 모두 위로 끌고 올라와야 하는데 밑으로 내려갈수록 그게 더 힘들어 진다는 점이다. 당까나 바구니가 없으니 그걸 손으로 다 들고 올라와야 한다. 숨이 턱 막힌다. 포기하기로 했다. 월요일에 가드너에게 전화하자.

 

오늘은 화요일.. 하지만 난 아직도 가드너에게 전화를 안했다. 깁슨 335가 눈 앞에 삼삼하기 때문이다. 결국 가드너에게 전화하는 대신, 잘라낸 풀을 담을 커다란 leaf bag과 밀림용 작업 칼을 주문했다. 이왕 시작한 거 내가 끝내. 눈치보지 말고 당당하게 깁슨을 사자.ㅎㅎ LA 박살띠 작업은 깁슨으로 남을 것이다.^^



'아메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홈디포에 욕하다  (11) 2012.06.30
어느 한국 여성의 시위를 보는 착잡함  (17) 2012.06.15
오라는 레이븐은 안 오고..  (4) 2012.04.24
비오는 LA  (2) 2012.04.14
초음속 세월  (14) 2012.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