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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새 식구, Antigua Casa Nunez Concierto Especial

오랜 기간동안 클래식 기타보다는 어쿠스틱 기타의 청랑한 소리를 더 좋아했었습니다. 그래서 어쿠스틱기타는 괜찮은 라인업을 갖추고 있지만 클래식 기타는 이십여년전 상계동 백화점에서 산 세종기타 한대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몇해전 격을 좀 맞추는 차원에서 Jose Ramirez를 하나 샀었는데 버징문제가 있어서 바로 반품했었습니다. 그리곤 또 차일피일.. 

얼마전 Govi의 곡 Language of the Heart 을 접하게 되면서 클래식 기타의 부드러운 소리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 며칠전부터는 영화 대부의 테마음악에 정신이 홀려서 세종 클래식 기타로 그걸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소리가 영 따라주질 않습니다. 기타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겠고 관리소홀의 문제이기도 할 겁니다. 새줄을 끼우면 그나마 좀 나을 것 같아서 줄을 갈아 끼우는데.. 브릿지 한부분이 부서져 내렸습니다. 아 놔 귀찮게스리.. 함몰된 브릿지에 그냥 줄을 매기도 그렇고 이거 하나 사자고 나가기도 그렇고.. 낑낑대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등 뒤로 지나가던 어부인께서 말씀하십니다.

‘맘에 드는 걸로 하나 사’

꿈의 장난감들이 모여 있는 곳 Guitar Center에 갔습니다. 일렉기타들에 밀려 반지하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어쿠스틱 기타 매장, 클래식 기타들은 그나마 거기에서도 한쪽 구석에 밀려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직접 쳐보니 역시 이름값들을 합니다. 한동안 이것 저것 쳐보고 한 기타로 마음을 굳혔는데.. 연주실 안쪽 벽에 걸려있는 한대의 기타가 계속 나를 잡아 끕니다.

‘used’라는 딱지 하나만 붙어있고 제작사 표시는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열쇠로 잠궈져 있어서 만져보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쳤었던 기타입니다. 하지만 '중고 기타' 주제에 저렇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열쇠로 잠궈져 있는 걸로 봐서 예사 기타는 아닌 듯 했습니다. 하지만 직원에게 열어 달라고 해야 하니 좀 귀찮습니다. 이미 마음을 정한 기타가 있으니 그걸로 그냥 결정하려 하는데..

날 쳐봐.. 날 쳐봐.. 그 기타가 나를 계속 부릅니다. 놓치면 후회할거야.. 후회할거야.. 

그래서 직원에게 부탁해서 그 기타를 손에 들었다. 자신의 정체를 나타내는 거라곤 안에 붙어 있는 라벨뿐인데.. 난생 처음 보는 이름이다. Antigua Casa Nunez.. 이거 뭐야 도대체?

직원을 불러 문을 열어 그 기타를 잡았습니다. 쳐봤습니다. 놀랍게도 그 기타에 바로 빠져들었습니다. 어쩌면 횡재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가 없으니 그게 약간 찜찜했습니다. Antigua Casa Nunez? 직원들도 잘 모른답니다. 누가 ‘아마 스페인' 같은 곳에서 사서 가지고 왔다가 사정이 생겨서 내어 놓은 걸거랍니다. 고민입니다. 이 정체불명의 중고기타를 과연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샀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스페인'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기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