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얘기

나가수.. '가창력'에 대한 착각

대중들은 노래가 ‘좋다 나쁘다’의 판단을 무슨 기준으로 할까?
사람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 ‘가수, 멜로디, 편곡’일 것입니다. 즉 누가 불렀느냐, 멜로디가 가슴에 박히느냐, 그리고 노래 전체의 편곡이 어떠한가를 기준으로 '좋은 노래, 별로인 노래'를 결정하게 되는 겁니다. 물론 지나간 노래 중 특정 노래를 좋아하는 건 이와 전혀 다릅니다. 그건 100% ‘추억’입니다.


가수
어린 시절엔 자기가 좋아하던 가수가 발표하는 모든 노래를 좋아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민기와 김창완의 노래는 무조건 좋아했었습니다. 그들의 음악에서 멜로디나 편곡따윈 전혀 중요하지 않았었습니다. 단지 그들이 불렀다는 것만으로 그 음악들은 내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젊은 아이들이 소녀시대나 2PM에게 열광하는 것을 백분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본질적으로 옛날의 저와 똑같기 때문입니다.

 

김민기 김창완.. 그들의 노래엔 ‘공감’과 ‘감동’이 있고, 가슴으로 오는 ‘전해짐’이 있었습니다. 후배들이 바치는 ‘헌정앨범’을 가진 몇 안되는 사람들, 한국 대중문화계가 공인하는 ‘절대지존’들입니다.

→ 김민기 참조 
→ 김창완 참조


멜로디와 노랫말
열광하던 가수의 노래가 아닌데도 기억에 오래도록 남은 노래들도 있습니다. 바로 이영훈의 음악들이 그렇습니다. 그의 멜로디..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귓속에서 맴돌 정도로 그의 멜로디엔 중독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건 아름다운 멜로디만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시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던 노랫말도 중요했습니다. 멜로디와 노랫말이 뛰어나면 대중의 사랑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덩달아 가수도 대중의 사랑을 받습니다. 이문세처럼 말입니다.

 

편곡
‘편곡’이 뭔지 정확히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습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편곡이라고 하면 ‘원곡 멜로디를 약간 수정’하는 것쯤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편곡은 음악 전체의 음(악기 & 가수)과 리듬의 배열을 말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작곡(기본적인 멜로디와 리듬의 구성)보다 이 편곡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음악의 완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편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천하의 김민기도 편곡은 다른 이에게 맡기지 않든가 말입니다. 이영훈의 멜로디와 노랫말도 그의 놀라운 편곡이 더해져 예술로 완성이 됩니다. 어떻게 이런 ‘코드 진행’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부분에서 이런 사잇음을 생각했을까.. 어떻게 이 부분에서 이런 변조를 넣었을까.. 어떻게 이 부분에서 이 악기를 떠올렸을까.. 그의 천재성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김태원이 가끔 말하는 ‘마지막 콘서트’.. 부활이 발표했을 땐 그냥 묻혔었다가 이승철이 발표해서 대히트를 친 노래. 김태원은 그것이 이승철이라는 가수의 역량이었다고 얘기하곤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좌절했었노라고.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건 가수의 차이가 아니라 ‘편곡’의 차이였습니다. 직접 들어보면 압니다. 부활의 ‘회상 III’와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가 얼마나 다른지. 

부활의 회상 III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


물론 부활의 보컬(김태원)과 이승철의 차이는 확연합니다. 김태원의 쥐어짜는 보컬이 더 호소력 있다고 여기는 분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분들은 아닐 겁니다. 그렇지만 이 보컬의 차이보다 더 차이가 컸던 게 바로 전체적인 편곡이었습니다. 멜로디는 같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많이 다른 겁니다. 특히 간주부분은 아예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태원과 유영석의 편곡 차이'에서 승패가 갈렸다고 봅니다. 그만큼 편곡은 중요합니다. 


그럼 가창력은? - 좀 중요한 악기의 하나일 뿐이다
산울림의 ‘김창완’. 만약 그가 가창력 유난히 따지는 ‘나는 가수다’에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한민국 가수 누구와 붙어도 꼴찌가 분명한 사람입니다. 또 김창완 정도는 아니지만 ‘김민기’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김민기 역시 ‘가창력 유난히 따지는’ 그 대회에 나갔다간 김창완 바로 다음으로 떨어질 사람입니다.

가창력.. 물론 중요할 겁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뚜렷한 실체가 없다는 점입니다. 가창력은 Singing Ability 즉, '노래하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 이 '노래하는 능력'이 전혀 다른 관점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떤 이에겐 ‘정확한 발음과 멜로디와 박자관념’이 가창력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겐 아름다운 목소리가 가창력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겐 고음 구사능력이 가창력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겐 현란한 바이브레이션이나 꺾기가 가창력일 수 있다는 겁니다.

‘국민가수’급으로 칭송받는 가수들은 조용필, 이승철, 변진섭, 김건모, 신승훈 등일 것입니다. 근데 과연 이들이 정상의 자리에 선 것이 그들이 ‘가창력을 갖춘 가수’들이라서 인가요? 아닙니다. 그들이 노래를 잘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가창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좋은 음악'을 많이 남겼기 때문입니다. 좋은 음악이란 좋은 멜로디와 노랫말, 좋은 편곡, 가수의 인간성, 가수의 스타성, 소속사의 프로모션등 셀 수없이 많은 요소들로 해서 이루어 집니다. ‘좋은 음악’에서 가창력은 그저 '중요한 악기중의 하나'일 뿐인 겁니다.


가창력? 어떤 이에겐 '기교의 범벅'
노래를 잘 하는 가수들은 속말로 쎄고 쎘습니다. 요즘 갑자기 유명해진 임재범, 나가수에 등장해 ‘미친 가창력’이라는 소릴 듣는다는 그 가수가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들어봤습니다. 내친김에 R&B 가수라는 박정현이란 여가수의 노래도 들어봤습니다.

둘 다 노래 정말 잘합니다. '신도'들이 따를만큼 정말 노래 잘합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들의 노래로부터 별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감동은 커녕 그들의 노랜 ‘듣기에 좀 불편한 노래’였습니다. 그들은 ‘가창력 뛰어난’ 가수가 아니라 ‘기교로 범벅된’ 가수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비슷하게 이런 느낌을 가졌던 분들도 아마 상당히 많을 겁니다. 다만 하도 가창력 가창력 하는 바람에 차마 말을 못 꺼내고 있을 뿐. 만약 임재범 박정현이 경연대회에 나왔는데 심사위원이 양희은과 박칼린이라 칩시다.
 
양희은 ‘아니 노래를 왜 그 따위로 불러?’
박칼린 ‘도대체 노래 어디서 배웠어요?’

이럴지도 모릅니다. 양희은과 박칼린에게 가창력이란 ‘감동을 전달하는 능력’이지, '겉멋 든 기교'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사람이 이렇게 말할 리는 없습니다. 다른 장르에 대한 '다름'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


나가수의 원동력은 편곡
대중들이 나가수에 열광하는 건.. 원래 있어 알고 있던 노래가 편곡이라는 마술을 거쳐 거의 새로운 노래로 탄생하는 것에 열광하는 겁니다. '나가수의 동력은 70%가 편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겁니다. 그만큼 나가수의 편곡은 뛰어납니다. 가창력? 좀 심하게 말하자면 '편곡의 들러리'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방송사와 언론의 폭력
물론 임재범과 박정현의 이런 기교들도 분명히 가창력의 일부입니다. 대중들 중엔 '그렇게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가창력의 정체가 무엇이든 가창력이라는 게 꼭 필요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밤의 여왕’같은 곡을 불러야 하는 조수미, 흐느적거려야 하는 R&B 가수, 꺾어야 하는 트롯가수 정도일 것입니다. 다른 가수들에겐 이런 의미에서의 가창력은 사실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임재범과 박정현의 '기교'를 가창력이란 개념으로 묶어, 그것을 가지지 못한 혹은 '일부러 가지지 않은' 다른 가수들에게 모욕감과 박탈감을 줍니다. 나가수의 가수들의 노래에 심취하지 못하면 천박한 청취자로 취급당합니다다. 방송과 언론이 벌이는 이런 선동에 대중들이 현혹되어 같이 광분하여 '특별한 잣대'하나로 가수들을 재단하는 이건.. 명백한 폭력입니다.


듣기에 좋으면 그게 좋은 음악
다시 말하지만 '좋은 음악'과 '좋은 가수'를 결정하는데 '가창력'이라는 요소는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괜찮은 목소리와 음감 리듬감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성도 좋고 인물도 괜찮은 사람이.. 좋은 프로듀서를 만나, 좋은 음악을 만나고, 좋은 편곡자를 만나면 좋은 가수 좋은 음악이 되는 거지.. 가창력 하나 있다고 좋은 가수가 되는 건 결코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 시대는.. 라이브로 듣는 음악만이 가치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특히 대중음악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설사 비주얼과 컴퓨터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듣기에 좋으면 그건 '좋은 음악'입니다. 아무리 가수가 가창력이 있어도 보기와 듣기에 나쁘면 그건 '나쁜 음악'인 시대입니다. 임재범의 소위 가창력에 감동을 받을 때도 있지만, 임재범 처럼 숭악하게 생긴 친구의 '잘 부른 노래'보다 때론 채연이 나긋하게 부르는 '편안한 노래'가 더 좋을 때도 있는 겁니다.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 그렇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이 정상적인 예술의 모습입니다. 누구는 누구의 음악이 제일 좋고, 또 다른 누구는 또 다른 누구의 음악이 최고인 것, 이렇게 제각각 다른 기준으로 다른 음악을 좋아하고 듣는 것이 바른 모습이지, 정체불명의 가창력이라는 기준으로 줄을 세우고 잘라내고 싸우고 난리법석을 떠는 것은 결코 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이 왜곡된 가요계를 보정하는 좋은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한다지만.. ‘가창력’에 너무 호들갑 떨면서, 온갖 구설수를 지펴 시청률을 올리는 건, 좋은 취지를 오히려 바래게 만듭니다.






'음악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자 타기 어려운 Govi - Language of the Heart  (18) 2011.06.25
The Boxer 기타 반주의 비밀  (12) 2011.06.21
이선희 섬집아기  (8) 2011.05.12
클래식 기타  (0) 2011.02.06
피아노 vs 기타 3 - 뭐가 더 좋은가  (0) 2011.01.13
  • 이전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