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십대 후반.
중동지역의 한 CF촬영현장. 촬영이 하루 일찍 끝나 도시로 나와 스탭들에게 하루 휴가가 주어졌다. 술과 여자가 있다는 시리아로 올라간다는 팀, 영화 인디애나 존스 '잃어버린 성궤'에 나왔던 석굴 ‘페트라’로 가겠다는 팀으로 갈렸다. 해외 출장을 나와서까지 술과 여자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질리지도 않나..ㅋㅋ 나는 페트라로 가기로 했다.
문제는 통역이었다. 당시 우리의 통역은 두단계였는데 우리팀의 영어를 잘하는 사람과 현지고용 쿠웨이트인이 영어로 대화해서 각기 한국말과 아랍말로 전하는 형식이었다. 그때 팀을 가를때 영어를 잘하는 그 한국인은 시리아로 간다고 하고 쿠웨이트인은 우리 페트라팀에 붙었는데.. 문제는 누가 그와 대화를 하느냐였다. 모두 무지랭이 스탭과 모델들.. 나만 쳐다본다. 졸지에 내가 우리 팀의 통역사가 되어버렸다. 내가 통역을? 갑자기 똥꼬가 조여져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쿠웨이트인과의 대화에 별로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단어를 아무케나 나열하는 수준의 영어였지만 의사소통에 별 지장이 없었다. 아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던 정도가 아니라 그 쿠웨이트인과 원대한 사업까지 구상했었다. 사해의 소금비누를 한국에 들여다가 팔면 부자가 될 테니 같이 잘해서 둘 다 부자되자고. 그 쿠웨이트인이 내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내게 팩스를 보내고 전화를 했었으니 내 영어가 확실하게 먹혔단 뜻이다. 내게 이런 영어 실력이? 내 영어실력에 적잖이 놀랐다.
5. 삼십대 초반.
호주 케언즈에서 래프팅 옵션투어를 가게 되었는데 통역 가이드없이 우리들만 가게 되었다. 골짜기를 오르는 2층버스의 맨 앞에 자리를 잡은 덕에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느니 들썩이며 가고 있었다.
해가 밝아올 무렵, 래프팅 투어회사 직원인 듯한 사람이 버스안의 각 개인개인에게 뭔가를 설명해주고 싸인을 받는 것 같았다. 우리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걱정은 없었다. 왜냐하면 난 영어를 잘하니까. 그 직원이 우리에게 와서 간단하게 인사를 하곤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근데 띠바..
그가 말하는 걸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정말로 단 한마디도.. 등줄기에 땀을 흘리며.. ‘아이벡유어파든?’ 웃으며 그가 인쇄물을 보여준다.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하겠느냐.. 너 문제생기면 어디로 연락하면 되느냐.. 이런 거였다. 이 간단한 걸.. Reading은 이렇게 쉬운데 listening (아니 이건 listening이라고 할 것도 아니지) 이 간단한 내용의 hearing조차 이렇게 안된다니..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너 뭐했냐.. 그동안 영어공부 안하고.. 근데 자신에 대한 실망은 나중 문제이고, 당장이 큰일이었다. 하나도 안들리고 한마디도 입에서 안 나오는데.. 아침부터 시작해서 저녁에 끝나는 그 장거리 래프팅을 어찌 한단 말인가..

이 사람들 영어.. 진짜 안 들린다. 사진에서 보듯 이 좁디좁은 보트위에서 호주인들과의 여섯시간 여행. 대화도 없이 노만 저어야 하나.. 암담했다.
그러나 다행히 시간이 흐르자 어느 정도는 같이 웃고 떠들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보트에서 내려 식사를 같이 하면서도 얼렁뚱땅 기분 좋게 즐길 수는 있었다. 근데 그 식사자리..정말 숨막히게 불편했었다.^^
이상했다. 불과 몇 년전 쿠웨이트인과는 별 불편없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는데 호주인과는 내가 왜 이리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아무리 호주영어 발음이 독특하다고 해도 이렇게 안 들릴 수가..
여기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내가 ‘영어를 국어로 쓰는 사람들에게 기가 죽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영어를 쓰는 백인들이다 보니 야코가 죽고 더욱 긴장해서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이며, 무식하게 단어를 나열하던 내 영어를 도무지 내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대여섯시간동안 보트위에서 뒹굴다보니 백인 네이티브에 대한 긴장감이 약간 풀어지고 그제서야 얼굴이 다시 뻔뻔해져 가까스로나마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한국인 쿠웨이트인)끼리는 편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못하는 영어지만 자신있게 튀어나왔던 것이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과는 언뜻 입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 차이는 천지차이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쿠웨이트인은 중동인이라 내가 쓸데없이 자신감이 흘러넘쳤었고, 백인들에게는 상당히 위축감이 컸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랬었다. 영어는 자신감이었다. 그래 맞아..영어는 자신감이야..
호주여행 갔다가 영어에 데인 나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영어로 다른 직원들 기를 팍팍 죽이던 유학파들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냐? 니네처럼 유학갔다 오는 거 말고’ ‘근데 왜요? 우리야 영어로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렇다 쳐도.. 영어 잘하실 필요 없잖아요?’
허긴 그렇다. 내가 무역상사 해외영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씩 해외에 갈때마다 통역이 있거나 가이드가 있을텐데 내가 무슨 영어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현지에서 돌아댕기면서 물건 사는 영어만 할줄 알면 되지.
‘그래도 이번에 가서 영어 때문에 너무 쪽팔렸거든.. 내 생각에 자신감만 가지면 될거 같은데..’ ‘맞는 말씀이긴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영어에 파묻혀 사는 거 외엔 방법이 없어요’ 안다 띠바야. 근데 내가 영어에 어떻게 파묻혀 사냐? 도대체가 방법이 없다는 뜻이구만..
이 무렵 누나가 매형을 만나러 스웨덴에 갔다가 거기서 두달정도 머물다 왔다. 내게 말해준 여행 후기, ‘스웨덴 사람들은 누구나 영어를 굉장히 잘 하더라.’ 학교에서 어렸을 때부터 영어로 수업도 받고 그러기 때문에 전 국민 누구나가 기본적으로 생활영어를 한다고 한다. 참 부러웠다. 우리나라 영어교육도 저래야 하는 건데.. 학교에서 생활영어를 할 수 있게끔 가르쳐준다는 스웨덴이 정말 부러웠다. 맞아. 영어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국가가 책임져 줘야 해..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6. 삼십대 중후반. 미국에 왔다.
→ 영어 이야기 1 – 십대후반 ~ 이십대 중반
→ 영어 이야기 1.5 – 싣니보이님의 의견
→ 영어 이야기 2 – 이십대 후반 ~ 삼십대 초중반
→ 영어 이야기 3 – 삼십대 중후반, 드디어 미국
→ 영어 이야기 4 – 영어몰입교육
중동지역의 한 CF촬영현장. 촬영이 하루 일찍 끝나 도시로 나와 스탭들에게 하루 휴가가 주어졌다. 술과 여자가 있다는 시리아로 올라간다는 팀, 영화 인디애나 존스 '잃어버린 성궤'에 나왔던 석굴 ‘페트라’로 가겠다는 팀으로 갈렸다. 해외 출장을 나와서까지 술과 여자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질리지도 않나..ㅋㅋ 나는 페트라로 가기로 했다.
문제는 통역이었다. 당시 우리의 통역은 두단계였는데 우리팀의 영어를 잘하는 사람과 현지고용 쿠웨이트인이 영어로 대화해서 각기 한국말과 아랍말로 전하는 형식이었다. 그때 팀을 가를때 영어를 잘하는 그 한국인은 시리아로 간다고 하고 쿠웨이트인은 우리 페트라팀에 붙었는데.. 문제는 누가 그와 대화를 하느냐였다. 모두 무지랭이 스탭과 모델들.. 나만 쳐다본다. 졸지에 내가 우리 팀의 통역사가 되어버렸다. 내가 통역을? 갑자기 똥꼬가 조여져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쿠웨이트인과의 대화에 별로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단어를 아무케나 나열하는 수준의 영어였지만 의사소통에 별 지장이 없었다. 아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던 정도가 아니라 그 쿠웨이트인과 원대한 사업까지 구상했었다. 사해의 소금비누를 한국에 들여다가 팔면 부자가 될 테니 같이 잘해서 둘 다 부자되자고. 그 쿠웨이트인이 내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내게 팩스를 보내고 전화를 했었으니 내 영어가 확실하게 먹혔단 뜻이다. 내게 이런 영어 실력이? 내 영어실력에 적잖이 놀랐다.
5. 삼십대 초반.
호주 케언즈에서 래프팅 옵션투어를 가게 되었는데 통역 가이드없이 우리들만 가게 되었다. 골짜기를 오르는 2층버스의 맨 앞에 자리를 잡은 덕에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느니 들썩이며 가고 있었다.
해가 밝아올 무렵, 래프팅 투어회사 직원인 듯한 사람이 버스안의 각 개인개인에게 뭔가를 설명해주고 싸인을 받는 것 같았다. 우리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걱정은 없었다. 왜냐하면 난 영어를 잘하니까. 그 직원이 우리에게 와서 간단하게 인사를 하곤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근데 띠바..
그가 말하는 걸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정말로 단 한마디도.. 등줄기에 땀을 흘리며.. ‘아이벡유어파든?’ 웃으며 그가 인쇄물을 보여준다.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하겠느냐.. 너 문제생기면 어디로 연락하면 되느냐.. 이런 거였다. 이 간단한 걸.. Reading은 이렇게 쉬운데 listening (아니 이건 listening이라고 할 것도 아니지) 이 간단한 내용의 hearing조차 이렇게 안된다니..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너 뭐했냐.. 그동안 영어공부 안하고.. 근데 자신에 대한 실망은 나중 문제이고, 당장이 큰일이었다. 하나도 안들리고 한마디도 입에서 안 나오는데.. 아침부터 시작해서 저녁에 끝나는 그 장거리 래프팅을 어찌 한단 말인가..

이 사람들 영어.. 진짜 안 들린다. 사진에서 보듯 이 좁디좁은 보트위에서 호주인들과의 여섯시간 여행. 대화도 없이 노만 저어야 하나.. 암담했다.
그러나 다행히 시간이 흐르자 어느 정도는 같이 웃고 떠들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보트에서 내려 식사를 같이 하면서도 얼렁뚱땅 기분 좋게 즐길 수는 있었다. 근데 그 식사자리..정말 숨막히게 불편했었다.^^
이상했다. 불과 몇 년전 쿠웨이트인과는 별 불편없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는데 호주인과는 내가 왜 이리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아무리 호주영어 발음이 독특하다고 해도 이렇게 안 들릴 수가..
여기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내가 ‘영어를 국어로 쓰는 사람들에게 기가 죽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영어를 쓰는 백인들이다 보니 야코가 죽고 더욱 긴장해서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이며, 무식하게 단어를 나열하던 내 영어를 도무지 내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대여섯시간동안 보트위에서 뒹굴다보니 백인 네이티브에 대한 긴장감이 약간 풀어지고 그제서야 얼굴이 다시 뻔뻔해져 가까스로나마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한국인 쿠웨이트인)끼리는 편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못하는 영어지만 자신있게 튀어나왔던 것이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과는 언뜻 입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 차이는 천지차이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쿠웨이트인은 중동인이라 내가 쓸데없이 자신감이 흘러넘쳤었고, 백인들에게는 상당히 위축감이 컸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랬었다. 영어는 자신감이었다. 그래 맞아..영어는 자신감이야..
호주여행 갔다가 영어에 데인 나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영어로 다른 직원들 기를 팍팍 죽이던 유학파들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냐? 니네처럼 유학갔다 오는 거 말고’ ‘근데 왜요? 우리야 영어로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렇다 쳐도.. 영어 잘하실 필요 없잖아요?’
허긴 그렇다. 내가 무역상사 해외영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씩 해외에 갈때마다 통역이 있거나 가이드가 있을텐데 내가 무슨 영어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현지에서 돌아댕기면서 물건 사는 영어만 할줄 알면 되지.
‘그래도 이번에 가서 영어 때문에 너무 쪽팔렸거든.. 내 생각에 자신감만 가지면 될거 같은데..’ ‘맞는 말씀이긴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영어에 파묻혀 사는 거 외엔 방법이 없어요’ 안다 띠바야. 근데 내가 영어에 어떻게 파묻혀 사냐? 도대체가 방법이 없다는 뜻이구만..
이 무렵 누나가 매형을 만나러 스웨덴에 갔다가 거기서 두달정도 머물다 왔다. 내게 말해준 여행 후기, ‘스웨덴 사람들은 누구나 영어를 굉장히 잘 하더라.’ 학교에서 어렸을 때부터 영어로 수업도 받고 그러기 때문에 전 국민 누구나가 기본적으로 생활영어를 한다고 한다. 참 부러웠다. 우리나라 영어교육도 저래야 하는 건데.. 학교에서 생활영어를 할 수 있게끔 가르쳐준다는 스웨덴이 정말 부러웠다. 맞아. 영어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국가가 책임져 줘야 해..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6. 삼십대 중후반. 미국에 왔다.
→ 영어 이야기 1 – 십대후반 ~ 이십대 중반
→ 영어 이야기 1.5 – 싣니보이님의 의견
→ 영어 이야기 2 – 이십대 후반 ~ 삼십대 초중반
→ 영어 이야기 3 – 삼십대 중후반, 드디어 미국
→ 영어 이야기 4 – 영어몰입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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