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메리카

영어 이야기 1 - 십대후반 ~ 이십대 중반

1. 십대 후반.
주한 미군들이 평범한 한국 가정을 방문해서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행사가 있었다. 선택된 집에 나도 같이 있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미국사람’을 가까이에서 만나봤다. 사실 걱정을 많이 했었다. 미국사람 미국군인.. 다행히 걱정과는 달리 미국사람도 우리랑 똑 같은 사람들이라는 걸 새삼스레 알았다. 다만 언어가 틀려 서로 마주보고 웃을 일이 많다는 것. 통역을 해주던 선생님 한분이 계셨고, 친구의 대학생 형과 그의 친구가 같이 어울려 있었기 때문에 미국사람과의 첫 대면은 문제없이 훌륭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통역을 해주던 선생님이 일찍 자리를 뜨게 되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통역이 자리를 뜸과 동시에 대학생형들 두명도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같이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이중 한명이 훗날 문화일보 사건의 주인공이다^^) 눈치껏 미국사람들도 그때 같이 일어서주면 좀 좋았을까마는 그들은 태연히 남았다. 사람들을 배웅하고 미국사람들과 다시 마주 앉았다. ‘미국사람’ 두 명과 마주앉은 한국 고등학생 네 명. 아 띠바.. 숨이 콱콱 막혔다.

‘아이엠어보이 유아러걸’ 과 성문종합영어만 떠받들던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영어를 배운 적이 한번도 없다. 오로지 손짓 발짓 몸짓 외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대화가 안되니 웃고 떠들기만 하면 되는 게임을 하기로 했다. 렛쓰 플레이 게임.. 뭘 어떻게 했는지 시간은 흘러 얼마 후 그만 가야 한다는 ‘미국사람’들. 날아갈 듯한 심정으로 ‘바이바이 씨유어게인’을 외쳤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우린 바로 반성했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게 벌써 몇 년째인데 이모냥 이꼴이냐.. 문법과 독해만 할게 아니라 회화를 꼭 공부해야 한다. 그래.

그해 추석 큰댁에 갔다가 영어가 날고 긴다는 유학파 큰형님께 여쭤봤다. ‘영어 잘할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분의 대답은 간단했다. ‘무조건 외워. 니가 알고 있어야 그게 들리고, 니가 외우고 있어야 그걸 말할 수 있는거다’ 30년후에야 이 말씀이 진리임을 알았지만.. 그러나 그때엔 ‘띠바 그걸 누가 모릅니까?’ 내가 했던 것이라곤 오로지 성문종합영어밖에는 없었다. 첫번째 기회는 그냥 지나갔다.


2. 이십대 초중반.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친구가 일시 귀국을 했다. 수년전 미군들의 한국가정 방문 행사때 집주인이었던 친구다. 이왕 온 김에 내 무역영어 시험이나 대신 쳐주고 가기로 하고 시험장에 같이 앉았다. 시험 중간에 갑자기 문제의 뜻을 잘 모르겠다더니 교수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알려줬더니 바로 교수를 부른다. ‘Mr. Protzman!’ ‘아 띠바셰이.. 대리시험 봐주는 넘이 질문이라니’ 그러나 이미 교수는 우리 앞에 와 있었다. 그러나 친구는 전혀 주눅들지 않고 뻔뻔하게 교수와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아 이 셰이 용됐네.. 그놈은 답안지로 종이 석장을 빼곡하게 메웠다. 근데 연필로 써 갈겨놨다. 이넘 악필중의 악필이다. 근데 걱정말랜다. 다시 펜으로 또박또박 옮겨쓰겠댄다. 근데 시간이 다 됐다. 할 수 없이 연필로 써 갈긴 답안지를 냈지만 무조건 A+를 의심치 않았다. 내용이 중요한거니까.

일주일쯤 성적이 발표되었는데 놀랍게도 'F' 다. 미국유학중인 친구가 낸 답안지인데 F 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찾아가서 따지기로 했다. 영어가 딸리니 카츄사를 제대한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이 친구가 쓰기는 잘하는데 말하기가 좀 안된다. 그래서 내가 통역으로 왔다. 점수를 확인하고자 한다.’ 돌아온 답은.. ‘하도 게발세발로 써놓아서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시험때에 말은 굉장히 잘 하던데 어째 쓰는 건 이 모냥인지 나도 믿을 수가 없어 안그래도 불러서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뜨끔했다. 아 그걸 기억하는구나.. 그러나 표시는 내지 않았다. 통역친구를 통해 '읽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내용을 조금만 보고 제발 F는 면케 해달라'고 했다. 잠시 눈을 찡그려가며 읽어보더니 날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좋다. D를 주겠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건 니가 직접 말해라.’ 통역보고는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란다. 대리시험이었던 걸 간파를 하고 내가 어느정도의 영어실력인가를 보겠다는 뜻이다. 뜨끔했다. 하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은 척 능그럽게 웃으며 ‘굿! 썡큐베리마취 써’ 했다. 그리곤 통역친구에게 내가 지금 굉장히 급한 일이 있어서 바로 가야 한다고 하곤 '바이 써' 하고 도망쳐 나왔다. 아 띠바..

생각이란 걸 할줄 알던 친구들은 카츄사라도 다녀오고, 가정이 받쳐주는 친구는 유학이라도 가는데.. 나도 이제부터 진짜로 영어 열심히 해야겠다. 마침 같은 과 84 현역 아이들이 스터디그룹을 짜서 영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거기에 낑겨 들어갔다. 1학년때부터 계속 영어공부를 해오던 아이들 틈에 갓 제대한 복학생이 낑겨들어간거다. 그러나 30개월 들과 산에서 구르다 막 나온 복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들과 한 방에서 영어회화공부를 한다는 것은 지옥이었다. 그 아이들은 상당한 정도의 회화실력들을 가졌었다. 그룹의 리더는 정말 영어를 잘했고. 아이들에게 방해만 되는 것 같아 슬그머니 안 나갔다. 근데 멤버하나가 갑자기 빠지면 당연히 나오라고 재촉하는 게 인지상정이겠구만 이거떨 ‘형 요새 바쁘신가봐요’ 이걸로 끝이다. 앓던 이 뺀 기분인가보다. 그래 바쁘다 이 따바들아.. 코 앞의 현실에 밀린 나는 '보캐불러리 22000'과 '토플'에만 매달렸다. 두번째 기회도 그냥 지나갔다.


3. 이십대 중후반.
직장관계로 일본인들과 식사자리가 있었다. 10여명의 일본인과 20여명의 한국사람. 못하는 일본어로 떠듬떠듬 옆자리 일본인과 대화를 하는데 이놈이 좀 건방져 보인다. 엿먹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에이고 데끼마쓰까?’ 영어 할줄 아냐는 엉터리 일본말이다. 일본사람중에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을 한번도 못봤기 때문에 기를 죽일려는 심산이었는데.. 웬걸 이놈 ‘오우.. 유스픽 잉글리쉬?’ 원어민 발음의 영어가 튀어나왔다.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 조때따.

얼렁뚱땅 인사만 하고 혀를 굴려 '익스큐즈미' 던지곤 화장실로 튀었다. 띠바.. 밖에 한참 있다가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근데 나를 발견한 그놈, 날 부르면서 자기 옆으로 오랜다. 싫어 띠바야.. 못하는 영어로 다른사람 듣는데서 말할 수도 없고.. 그냥 눈과 손으로 잠깐 이쪽에 중요한 볼일이 있으니 끝나고 그리로 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알았다며 끝나는 대로 빨리 오란다. 물론 그리론 다신 안갔고 자리가 파할때도 미리 일찌감치 나가서 그놈과의 조우를 피했다. 눈치를 챈 멧돼지 부장이 한마디 던진다. '니 영어따메 도망친거 맞제? ㅋㅋ 영어공부 열심히 하거래이' 아 이게 무슨 망신인가.. 한일 대결에서 숨도 한번 못쉬고 참패를 당했다. 아 띠바.. 

매일 아침 일본어 교수를 모셔다가 하던 일본어 회화시간이 끝나고 멧부장에게 건의를 했다. 영어회화도 공부하자고. '영어공부도 회삿돈으로 할라꼬? 그건 니가 니돈 내고 따로 해라 자슥아' 할 수 없이 영어회화 테이프를 샀다. 몇주일 열심히 하다가 또 먼지가 덮혀갔다. 영어를 도통 쓸일이 없으니 이게 끈기있게 될 턱이 없었다. 세번째 기회도 그냥 지나갔다.


→ 영어 이야기 1 – 십대후반 ~ 이십대 중반
→ 영어 이야기 1.5 – 싣니보이님의 의견
→ 영어 이야기 2 – 이십대 후반 ~ 삼십대 초중반
→ 영어 이야기 3 – 삼십대 중후반, 드디어 미국
→ 영어 이야기 4 – 영어몰입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