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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역이민.. 과연 가능할까?

얼마전 한국인의 이민에 관한 통계발표를 보니, 한해 11,000 명 정도의 한국인이 한국을 떠나고, 4,200명 정도의 교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단다. 어림잡아 이민을 떠났던 열명중 네명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역이민이다.


80 만불
50대 중반의 여자분. 몇주전 이 여자분이 갑자기 실신을 했다. 다행히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가 정신을 되찾고 제발로 걸어서 퇴원을 했다. 그리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가족들이 이분에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여자분이 퇴원 이후 이틀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집에서나 가게에서나 평소와 똑같이 정상적인 생활을 했었던 '이틀'이 이분에게 전혀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검사결과는 모든 것이 정상이랜다.

하지만 본인은 원인을 잘 알고 있단다. 이민생활 이십여년만에 수중에 쥔 돈이 80만불. 일반적으로 봐서 무척 성공한 케이스에 속한다. 나이도 있고해서 이젠 좀 편안히 살 요량으로 찜질방을 인수했었단다. 앞으론 그저 먹고만 살면 된다는 생각에 평생 모은 돈 80만불을 거기에 쏟아부은거다. 근데 그 돈을 다 날리게 생겼단다. 사기를 당했단다. 사기를 친 당사자는 딸의 친구. 그래서 뼈와 살이 타들어 가고 있었단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죽을수도 있어서 그래서 졸도를 하고 순간 기억상실을 했던 걸거란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 그들의 심경을 헤아려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숨이 막힌다. 낼 모레면 육십인데 갑자기 전재산을 날렸다.. 가진 돈이 아예 없었더라면 일찌감치 꿈을 포기하고 LA에서 흔히 보는 무개념의 노인들, 정부돈 축내면서 약으로 연명하는 그런 추한 노년을 대비하고 있었을텐데, 이들에겐 80 만불이라는 돈이 있었다. 그래서 윤택하지는 않겠지만 나름대로 아름답고 품위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노년에의 꿈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자기가 그토록 경멸하던 그런 추한 노인의 삶만이 기다리고 있다. 그분의 눈빛엔 촛점 없는 무망함만이 있다. 희망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200 만불
San Diego에서 호텔체인을 운영하던 노부부가 동반 자살했다. 부인을 먼저 총으로 쏴 죽이고 남편이 따라서 자살했단다. 비록 저가 호텔체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호텔을 소유하고 운영하던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부를 축적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호텔 운영이 어렵다고 자살을 했단다.

그는 이 호텔을 2년전 동업자 두명과 함께 현금 600만불을 넣고 2천4백만불에 인수했었다고 한다. 셋이서 동업을 했었다니 일인당 투자금액이 2백만불 정도였겠다. 2백만불 현금 동원능력이 있었다면 일반적으로 미국이민에서 '굉장히 성공한' 케이스에 속한다.

그는 이전까지 작은 모텔을 운영하던 사람이라고 한다. 부부가 직접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았을 것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좀 편안하게 살고 싶었을 것이고, 내심 번듯한 ‘호텔’ 사장의 꿈을 펼치고 싶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뜻을 같이하는 동업자들을 만나 대망의 호텔사업을 시작했었을 것이다. 평생 모은 전재산이었는지 여웃돈이었는지는 모르지만 2백만불로 그 꿈을 이루었을 것이다. 시시껄렁한 ‘모텔주인’에서 꿈에도 그리던 ‘호텔 사장님’으로 올라섰었다.

하지만 2년전이라면 미국 부동산 경기가 천정을 치던 무렵이다. 물론 상업용 부동산은 주택만큼 폭락한 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시절은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광풍으로 미쳐있던 시기였었기 때문에 그도 이 호텔을 터무니 없이 비싸게 주고 인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주택시장 붕괴와 극심한 경기침체를 맞은 거다. 호텔의 운영이 순식간에 어려워졌을 것은 당연한 일. 호텔의 시세도 당연히 폭락했을 것이다. 그래서 호텔의 현시세가 은행 융자금에도 못 미치는 깡통 호텔이 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분이 한국을 떠났던 건 70년대 초 한국정부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인력을 수출하던 때였다고 한다. 이 분은 그 당시 서독으로 광부일을 하러 떠났었단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나이 예순 중반에 2백만불 정도의 현금을 쥐었다. 모텔주인에서 벗어나 폼나는 호텔 사장님이 되었다. 내가 드디어 성공했음을 만천하에 자랑스럽게 알렸다. 근데 그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 일로 이분들이 계속 살아갈 희망을 잃은 모양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아마 이분에게도 그 2백만불이 전재산이었던 듯 하다.


척박한 이민생활
어려울 때 도와줄 가족도, 손을 잡아줄 이웃도 없는 곳이 이민 생활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실상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남이다. 그래서 비록 내색하지는 않지만 매일매일이 외롭고 고독하고 불안하다. 주변에 사람이 북적대는 줄 알았지만 어려움에 직면했을때 심각하게 상의할 사람이나 도움을 청해볼 사람은 없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의 이민자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대처하는 능력이 매우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절망의 순간, 희망의 끈을 쉽게 놓아버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이민자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이 실상이다. 고국의 가족이나 친지들에겐 적당히 부풀려 이야기를 했겠지만 이게 실상이다. 근데 이런 이민자들과는 달리 소위 성공하는 이민자였던 호텔체인의 경영주가 덜컥 자살을 했다. 

하루벌어 하루 먹고사는 평범한 이민자들에게 이 자살소식이 어떻게 느껴질까? 얼마 전 최진실이 자살했을 때, ‘최진실 같은 사람도 자살하는데 나 같은 게 뭐한다고 바둥거리며 살아?’하는 자괴감에 많은 국민들이 힘들어 했었다고 들었는데, 이번 자살사건으로 많은 이민자들이 그와 비슷한 심경에 빠졌을 수도 있겠다. 아무리 그의 자살에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지라도 평범한 이미자들에겐 좌절을 준다.


고민
한국을 떠난 사람들.. 떠나기 전 수많은 고민을 했었다. '머물까 떠날까..' 머물자니 답답하고, 떠나자니 불안하고. 그래서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들의 이민 결정이 보다 인간다운 환경을 찾았던 것이든, 그저 막연히 외국생활을 동경했던 것이든, 아니면 먹고 살기위한 것이었든, 아무튼 사람들은 용감하게 한국을 떠났었다.

상당수 사람들은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 많고 공기 맑은 발코니에서 우아하게 모닝커피를 마시고, 사업체는 ‘종업원 운영’하면서 나는 골프나 치는 생활, 이런 꿈같은 생활을 꿈꾸며 한국을 떠났었다. 그래 나도 나가서 이렇게 폼나게 살아봐야지.. 그러나 그 꿈이 깨지고 현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곤 한국에선 생각지도 않던 그런 일을 하면서 겨우겨우 살아간다.

그렇게 길을 잃는다. 나아갈 길도, 돌아갈 길도 안 보인다. 위기에 처하면 곧바로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외로운 이민 생활.. 그래서 요즘같이 더욱 척박한 때엔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 한국을 떠날 때 했었던 그 고민을 똑같이 다시 하겠다.

머물까 돌아갈까..

그렇지만 실상은 한국을 떠나던 그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돌아가면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요란떨면서 가더니 겨우 요걸 버티고 되돌아 왔다고 날 한심하다 여기진 않을까.. 그나저나 가면 도대체 뭐해먹고 사나.. 애들은 과연 한국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냥 여기서 죽을때까지 살아야 하나.. 이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역이민을 포기하고 있겠다.

역이민을 가는 40%의 사람들.. 버티다 버티다 벼랑끝에 몰려 한국으로 돌아가는 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참 팔자 좋은 분들이라 느껴지기도 한다. 최소한 한국으로 돌아는 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