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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기타 고르기 1 - 참 어렵네

제대로 된 기타를 하나 장만하기로 했다. 흔히 말하는 하이엔드급으로. 마눌의 결재도 받았다. 앞으로 살면서 이럴 기회는 한두번 더 있을까 말까 하겠다. 따라서 상당히 여러 가지를 고려 하고 있는데, 따지면 따질수록 기타 선택하기가 점점 어려워 지고 있다. 벌써 거의 한달 째.. 늪에 빠져 있었다.

어렵게 사는 거 이왕이면 명기라는 소리를 듣는 기타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쿠스틱 기타중 명기라고 불리우는 메이커들을 찾아봤다. Martin, Guild, Taylor, Larrivee, Gibson, Collings.. 자동차보다도 비싼 것들도 상당수, 그러나 제조사들이 심혈을 기울인 주력제품들을 포진시켰다는 가격대는 과히 비싸지는 않다. 다행히 내 예산대와 일치한다.

일단 메이커를 선택하는 것이 순서일 듯싶었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1. 메이커 선택
전문가들의 의견은 거의 마틴으로만 쏠렸다. 이구동성 ‘써보니 역시 마틴이야’ 였다. 다른 의견을 내준 사람은 오직 윤설하씨 하나. ‘테일러 소리 참 좋아요.’ 마틴과 테일러라..

계속 지리한 인터넷 서핑을 하며 Sound clip을 있는대로 다 들어봤다. 결론은 ‘이 소리도 좋지만 저 소리도 참 좋다’ 였다. 한가지씩 다 샀으면 좋겠다. 그러다 한국의 한 기타강좌 싸이트에서 기타 몇 개를 차례대로 연주하며 소리를 들려주는 곳을 찾았다. 길드, 마틴, 깁슨, 오베이션, 콜트.. 그때 길드기타의 소리가 내 귀에 정통으로 박혔다.

그래서 메이커를 셋으로 정했다.
마틴, 길드, 테일러. 고르고 보니 어쿠스틱 기타의 빅3다.

그러나 의문이 생겼다. 과연 기타 메이커에 따라 음색의 차이가 진짜로 그리 확연할까? 중저음이 좋다는 마틴, 찰랑찰랑 소리의 깁슨 테일러, 부드러운 길드.. 이렇게 메이커에 따라 음색을 함부로 규정 짓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메이커보다는 바디의 형태나 기타모델, 스트링이 소리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전문가들에 문의를 구했다. 그러나 대답은 다시 ‘메이커’였다. 제조사마다 각각 추구하는 음색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찰랑찰랑한 소리의 테일러는 빼야하겠다. 마틴과 길드, 둘만 남았다. 자 이제 바디 형태를 선택해야 한다.


2. 바디 형태 선택
가장 일반적이지만 뽄때가 없는 Dreadnaught 형태로 할 것이냐, 소리가 좀 작다지만 예쁜 OM 바디로 할 것이냐, 아니면 웅장한 점보로 할 것이냐.. 다행히 이건 쉽게 답이 나왔다. 내가 어떤 형태의 플레이를 위주로 할 것이냐를 결정하면 저절로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처럼 핑거스타일 위주로 연주를 하려는 사람은 당연히 넥의 폭이 넓은 것이 편하다. 클래식기타처럼 넓을 필요는 없겠지만 분명히 일반 어쿠스틱 기타보다는 넓어야 한다. 넥의 넓이가 대부분 1  1/2 ~ 1 11/16인치(1.5인치 38mm 1.68인치 43mm)인 드레드넛과 점보는 여기서 탈락했다. 남은 건 OM형 바디.. 소리가 청명해서 핑거스타일에 적합하다는 OM, 모양까지도 허리가 잘록하게 이쁘니 꿩먹고 알먹고다.

이제 마틴과 길드 중에서 OM 기타를 고르면 된다.
많이 좁혀지고 진전이 되었다. 이제 구체적인 스펙을 따지기만 하면 된다.


3. 구체적인 스펙
이제 주력제품들이 포진해 있다는 그 가격대중에서 내게 맞는 걸 고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곧바로 벽에 부딪혔다. 기타 스펙때문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내가 아는 거라곤 몇개 되지 않는다. 물론 무엇을 뜻하는지는 대충 알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를 주는 건지를 모른다. 명색이 기타를 삼십년 붙들고 있던 넘이 막상 기타의 전문 스펙을 보곤 아는 게 별로 없다니.. 참담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광고에 나오는 그 복잡한 스펙들.. 소비자가 컴퓨터를 선택할 때 그거 누가 다 따져 보나? 기껏해야 CPU, RAM, 하드디스크.. 좀 안다 하면 마더보드 그리고 비디오카드, 사운드카드 이 정도 아니던가? 나머지는? 그냥 제조사와 가격대를 보고 믿는 거 아닌가? 싼 컴퓨터는 싸구려 부품들을 썼으니 쌀테고, 비싼 컴퓨터는 좋은 부품들을 썼으니 비쌀테고.) 


따라서 마틴이나 길드처럼 세계적 명성을 가진 회사라면 주력제품군에서 각자 회사의 명예을 걸고 경쟁을 할터이니 얄팍한 눈속임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로 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스펙중에서 과연 내가 꼭 따져봐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나무의 재질, 컬러패턴, 프렛의 길이와 넓이, 컷어웨이 여부, 픽업의 장착여부의 다섯가지 정도이다. 이건 분명히 따지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1.나무의 재질은 일반적으로 기타의 상판은 Spruce나 Cedar 재질, 옆면과 뒷판은 로즈우드(고급)나 마호가니 재질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엔드 기타에 합판을 쓰는 경우는 없을 것이니 당연히 Solid, 즉 Solid Spruce Top 에 Rosewood Back & Side 면 되겠다. 내가 저울질하는 모든 것들이 다 이 재질을 썼다. 당연한 모양이다. 앞으론 이거 안 따져봐도 되겠다.

2.컬러패턴은 일반적으로 단색의 형태를 띤 Natural과 가장자리는 찐하고 안으로 색이 엷어지는 Sunburnst가 있다. 결코 싫증 날 일 없는 Natural을 택하기로 했다.

3.프렛의 넓이는 일반적인 어쿠스틱 기타가 대부분 1.5~1.68인치인 것에 비해, 핑거스타일용은 주로 1.75인치를 사용한다. 클래식 기타의 경우 1.87인치까지도 하지만 어쿠스틱 핑거스타일 연주엔 1.75인치가 가장 적당하게 느껴진다. 프렛의 길이는 당연히 14 클리어프렛(전체 20프렛)이어야 하겠다. 즉 Fingerboard Width at Nut 1.75” 에 14 Clear Frets, Total 20 Frets다.

4.고음 운지하기 쉬우라고 기타의 몸통에 움푹 파고 들어 온 Cut-away된 기타를 한번 써보았지만 보기엔 좋은데 효용은 거의 없다. 거기까지 올라가는 고난도의 연주를 할일도 없다. 게다가 소리를 좀 잡아먹는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다. 컷어웨이는 없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5.Pickups (Electronics)가 남았다. 잭으로 연결해서 앰프로 연결하는 장치이다. 지금까지 내가 픽업이 장착된 기타를 쓰면서 한번이라도 이걸 제대로 써먹은 적이 있었던가? 사실 거의 쓸모없는 무용지물이었다. 게다가 나무를 깎아서 장치를 삽입하니 틀림없이 소리의 자연스런 공명을 방해할 것이다. 이걸 할까 말까? 그러나 언젠가 작은 음악실을 만들고 디지털 작업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니, 당장은 쓸일이 없지만 이번에도 역시 픽업이 있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Cut away와 Pickups에서 문제가 생겼다. 컷어웨이가 없으면서 픽업이 장착된 모델이어야 하는데 내가 찾는 모델중에는 그게 별로 없었다. 둘 다 함께 달려 있거나, 둘 다 없거나 뿐이었다. 옵션으로 장착하게 되어 있는 것이 많았다. 즉, 공장에서 만들때 애초에 그렇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판을 잘라내고 설치해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전문가가 한다고 해도 음의 손상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분명히 컷어웨이 때문에 입는 손상보다 더 클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냥 컷어웨이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리스트에 남은 것이 이 세가지이다.

Martin OMC-28E




Martin OMC Fingerstyle 1




Guild CV-1C


이 세가지를 직접 가서 쳐보고 고민을 하다가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물론 매장에서 라리비나 깁슨, 테일러를 쳐보곤 갑자기 헤까닥할 여지는 아직 있지만.



→ 기타 고르기 1 – 어렵다
→ 기타 고르기 1.5 – 명필일수록 붓을 가린다
→ 기타 고르기 2 – 비싼 기타가 좋은 기타
→ 기타 고르기 3 – 마틴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