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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얘기

과거로의 여행에서 딜레마에 부딪히다



흰 수염의 할아버지가 ‘너 옛날로 돌아가고 싶냐?’ 물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네’ 라고 대답하고 빛나던 한 시절로 돌아간다. 먼저 근덕 바닷가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눈에 밟히던 동해 바다도 실컷 보고, 보고 싶은 근덕멤버들도 만나야지.

그 순간 예상치 못했던 심각한 물음 하나에 봉착했다. 내가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면, 그때 이후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가야 하나 아니면 죄다 깡그리 지우고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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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
그렇다면 인생을 내가 고쳐 살 수 있겠다. 한번 겪은 인생이니 미리미리 준비하고 어려움을 피해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십여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수룩하게 돈을 절대 빌려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돈을 떼이지 않았었다면 그때 그 돈으로 그걸 샀을 것이고,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다.

다음으론 아마 ‘중학교 2학년’ 때나 ‘대학 4학년’ 때로 돌아갈 것 같다. 모범생이 갑자기 불량학생으로 바뀌었었던 때와, 가고 싶었지만 힘든 그 길을 포기하고 대신 쉬운 길을 선택해 발등의 불을 꺼야만 했었던 때다. 그 두 시점에서의 내 행동과 판단은 내게 대단히 큰 전환점이었기 때문에 그때 다른 결정을 했었더라면 내 인생은 분명히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또 이것만이 아니라 내 판단과 결정을 후회했던 상황들은 수도 없이 많았었다. 이런 상황들에 다시 또 닥쳐 후회했던 행동과 판단을 달리한다면 어쩌면 내가 훨씬 행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또 양심을 팔고 돈만 벌려고 나서기만 한다면 부동산이나 증권으로 떼돈을 벌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잠시의 나쁜 경험이 내게 피와 살이 된 것일 수도 있고, 가고 싶어했던 길을 갔었다 하더라도 영원히 목적지를 찾지 못한 채 좌절했을 수도 있으며, 후회했던 결정과는 반대로 결정을 내렸는데도 상황이 오히려 더 나빠졌을 수도 있고, 쉽게 번 돈으로 인생이 황폐하게 망가졌을 수도 있다. 두번째 겪는 인생에서 내리는 판단과 결정이 꼭 행복을 보장해준다고는 장담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내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내 친구들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못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내 친구들과 사람들은 전혀 모른 채 전혀 생소한 사람들과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잔인하다. 또 이것만큼이나 끔찍한 게 한가지 더 있으니.. 남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지 아는, 중년남자의 영혼을 가진 스무살 아이.. 이거 돗자리 펴고 나앉기 밖에 더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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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후 기억을 몽땅 지우고 간다.
난 내가 해온 모든 판단과 결정을 똑같이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똑 같은 사람들만 만나 똑같은 일을 하면서 똑 같은 경로를 걷게 될 것이다. 즐거움도 많았지만 사이사이 수도 없이 비집고 들어오는 힘들었던 일들이 참 많았다. 시종일관 번갈아 스치는 빛과 그림자들, 그건 극한 롤러코스터였다. 그러니.. 즐거움이야 물론 좋겠지만 그 고통들도 다시 다 똑같이 겪어야 한다. 근덕 바닷가로 돌아가 잠시는 대가리가 터지게 재미나고 즐겁겠지만 곧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채양이 기다리는 남강 교실로 돌아가야 하고, 피튀기던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가질 즐거움이 얼만큼이고 내가 겪을 고통이 얼만큼인지 한번 재보고 그걸 비교하면 되겠다. 즐거움이 훨씬 많다면 까짓거 작은 고통쯤이야 감수하지 뭐. 좋은 일이 뭐뭐 있었나.. 그래 이것도 있었고 저것도 있었고.. 근데 좋은 일을 떠올리는 중에도 힘들었던 기억들이 막 튀어나온다. 힘들었던 일들이 훨씬 더 많은가보다. 좋은 기억찾기는 벌써 끝났는데도 피곤한 기억은 아직 나래비로 늘어서 있다. 어? 그럼 내 인생은.. 고난의 연속?

내 삶의 목표인 ‘오 즐거운 인생’ 은 커녕 졸지에 ‘인생은 나그네 길’이 되어버린다. 그 인생을 다시금 똑같이 살아야 하는 것.. 그렇게 롤러코스터처럼 살다가 다시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컴 자판을 두드리게 될 거라면.. 그거 아무래도 너무 힘들고 지치는 일일 것 같다. 안 가고 싶다. 띠바.


알고 가든 모르고 가든..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산다는 허황된 꿈은 다신 안 꾸기로 했다. 그냥 앞으로나 열심히 착하게 재미나게 살다가, 좋은 일 많이 해서 다음 인생에서 좋은 데 태어나 진짜 ‘대가리 터지게 재미난 즐거운 인생’을 사는걸 기대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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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일주일간의 과거여행, 요런게 있다면 요건 진짜 기가 막히겠다. 과부 땡빚을 내어서라도 요건 꼭 가야겠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이런 기막힌 휴가가 주어진다면? 어느 시절 어디로 갈지 그 궁리나 해봐야겠다. 그때 타고 갈 타임머신이다. 송충 4호. 지금 만드는 중이다. 뚜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