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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언론권력 4 - 무소불위의 언론, 이승복 진실게임

미국 프로 풋볼(NFL)엔 다른 스포츠에서 잘 보지 못하는 이상한 제도가 하나 있다.(얼마전 테니스대회에도 이 제도가 도입된 걸 봤다.) 바로 챌린지(Challenge)라는 것이다. 이것은 경기의 승패를 가름할 수도 있는 중요한 심판의 판정에 대해 감독이 현장에서 재심을 요청하는 제도이다.

감독이 챌린지하면 주심은 수십대의 카메라가 잡은 해당 장면의 여러가지 앵글들을 자세히 보면서 자신들의 판정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검토한다.

그러나 ‘무릎이 먼저 땅에 닿았는지 공이 손에서 먼저 빠져나갔는지’ 같은 애매한 장면은 모니터를 아무리 뜯어봐야 알 수 없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그래서 판정을 번복 할 때에 이런 원칙이 있다.

‘확실하게 심판의 판정을 뒤집을 수 있는 증거가 있을 때에만 원심을 번복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모니터를 들여다보아도 무릎이 먼저 닿았는지 공이 먼저 빠져나갔는지 알 수가 없다면 이런 경우 무조건 필드에서 심판이 내린 원래 판정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이승복 어린이의 ‘난 공산당이 싫어요’ 사건.
북한공산집단의 잔혹성을 상징 해오던 이 말 한 마디가 10년 이상 도마 위에 올랐었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언론이 없는 일을 꾸며 국민들을 속인 사기극인지 아니면 이것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좌파세력들의 공작인지.. 잘 모르지만




곰 산다니 싫어요 (북한엔 곰이 살고 있다고 자랑하는 공산군에게)
공 상당히 싫어요 (공놀이 같이 하자고 보채는 공산군에게)
콩사탕이 싫어요(이승복이 먹던 과자와 자기 콩사탕과 바꿔먹자고 하는 공산군에게)
공산당이 실어요 (이삿짐을 마차에 실으라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

이말을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들은 공산군이 격분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학교 2학년짜리 어린 이승복 어린이를 찢어 죽였다. 머 이런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전역의 국민학교에 이승복 어린이의 동상이 세워지고 해마다 이승복 웅변대회, 이승복 기념관건설..



이승복 기념관에 가서 요모저모 살펴보더니 '들으면 기분 나쁜 말을 그렇게 면전에서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라고 하는 어린이와 이승복이 가수 이승기의 동생이냐고 묻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요즈음 세상.

이 사건이 다시 세상에 등장한 것은 기자협회가 발행하는'저널리즘'이라는 잡지 92년 가을호에 김종배 기자협회 기자가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신화 이렇게 조작됐다”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부터이다. 그후 미디어 오늘,말,중앙일보가 동시다발적으로 조작설을 제기했으며, 98년 9월 MBC는 PD수첩 ‘오보, 그 진실을 밝힌다'에서 조선일보의 '이승복 기사'는 작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98년 8월 ‘언론개혁시민연대(상임대표 김중배)’는 서울 시청역 지하도와 부산역 광장에서 ‘개혁을 위해 돌아본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과거들 정부수립 50년 한국신문 50년' 전시회에서 '기사가 아닌 소설'이라는 설명을 달아 조선일보의 이 기사를 내걸었다.

이 기사의 발원지였던 조선일보는 이들 두명(김종배 김중배)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면서 이 오보 논란이 법정으로 가게 되었고, 6년간의 법정다툼끝에2004년 10월 28일 항소심 재판부는 ‘오보전시회’를 주도한 ‘언론개혁시민연대’ 전 사무총장 김주언에게 허위사실 유포죄 등을 적용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사실’을 보도한 두 신문을 차례대로 보자.
먼저 당사자인 조선일보의 기사다.

[이승복의 '공산당이 싫어요'는 사실]

항소심 법원 "조선일보 당시 현장취재했다"
오보주장 언개련 김주언 사무총장 유죄선고

1968년 12월 9일 밤 이승복군 가족 4명이 북한 무장공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은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승복군의 발언이 발단이 됐으며, 이 사실은 조선일보 기자들의 현장 취재를 통한 특종보도로 세상에 알려졌음이 법원의 형사 항소심 재판에서 재확인됐다. 조선일보의 이승복군 사건 보도는 역사적인 진실이며, ‘이승복 사건 조작설’이 거짓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난 92년 ‘조작설’이 처음 제기된 이후 우리 사회 일각에 “이승복은 조선일보 또는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퍼지고, 이승복군 동상이 철거되거나 이승복군의 유족들이 모욕을 당하는 등 엄청난 폐해를 낳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9부(재판장 강형주, 주심판사 곽윤경)는 28일 조선일보 1968년 12월 11일자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 찢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오보전시회’에 포함시켜 “거짓 보도?소설”이라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언론개혁시민연대 전 사무총장 김주언(50?현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승복 보도’에 대해 “허구, 조작, 작문기사”라고 허위 보도한 혐의로 기소된 미디어오늘 전 차장 김종배(38)씨에 대해서는 “허위 내용을 보도한 것은 사실이나 기사 작성 당시에는 허위임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김종배씨가 92년 이후 최근까지 무려 12년간 허위 내용을 반복 주장한 것에 대해 허위임을 인식하지 못했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면서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건 당시 “남한이 좋으냐, 북한이 좋으냐”는 공비의 물음에 이승복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해 일가족이 살해됐다는 승복군의 형 학관씨의 진술과 당시 이를 전해 들은 이웃주민 최순옥?서옥자?최순녀?유경상씨 등의 일치된 증언, 시신 중 유일하게 입가가 찢어진 이승복군의 시신 사진 등을 종합할 때 이승복군이 공비들에게 공산당이 싫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은 사실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 조선일보가 보관해온 살해 현장을 찍은 사진 15장의 원판 필름과 사진의 내용 기사를 송고한 대관령 목장(고령지농업시험장)과 전화가 존재하는 점 당시 조선일보 기자들의 구체적인 증언 등을 종합하면 1968년 12월 10일 조선일보 강인원?노형옥 기자가 사건 현장에 직접 가서 취재?보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피고인들이 주장해온 ‘허구, 조작, 작문, 오보, 소설, 조선일보 기자들은 현장에 없었다’는 등의 주장은 허위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똑 같은 ‘사실’을 한겨레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이승복기사 작문 의혹제기 공익성 있다]

명예훼손혐의 항소심 선고
김종배 무죄, 김주언 집유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재판장 강형주)는 28일 <조선일보>의 ‘이승복 사건’ 기사를 ‘작문’이라고 주장해 조선일보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에게 원심을 깨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김종배 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선일보가 보관하고 있던 현장사진의 원본필름과 여러 증거들에 비춰볼 때, 지난 1968년 <조선일보>의 이승복군 보도는 기자의 현장취재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하지만 김종배씨가 관련 기사를 취재해 쓸 당시에는 이 기사가 허구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고, 이승복은 반공교육의 상징으로 국민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주언씨에 대해서는 “김씨가 충분한 확인없이 ‘오보 전시회’에서 조선일보의 보도내용을 오보라고 주장한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만, 이는 김종배씨의 기사에 근거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의혹 제기였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

완전히 다른 별개의 두 판결을 보는 듯하다.


조선일보는 사설까지 동원한다.

“지난 10여년간 이승복군과 가족들의 명예는 이승복 사건에 ‘반공 조작극’이라는 색깔을 칠해온 좌파들의 선전선동에 무참하게 짓밟혀왔다. 언론개혁이라는 위장간판을 걸고 정권의 비호를 받아온 좌파세력들은 재판과정에서 당시 현장취재로 진실을 전했던 조선일보 기사가 “기자가 현장에 가지도 않고 쓴 소설”이라며 진실을 덮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해왔다.“

“서울중앙지법은 1968년 무장공비들에게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참혹하게 살해된 이승복군 사건이 [역사적 진실임을 인정]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조선일보 보도가 ‘조작’이라고 주장한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에서는 법률 해석과 적용의 타당성만 판단하므로 이승복 사건의 진실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내려진 셈이다.“

“ 좌파세력들은 거둘 수 있는 선전?세뇌 효과는 다 거두고, 이승복의 진실은 잔해처럼 흩어져 땅바닥에 버려진 게 6년 재판의 결과다. 이제 그 어린 나이에 비명에 간 이승복군의 넋은 누가 무엇으로 달래고 거짓이 진실을 몰아세웠던 조작의 역사는 어떻게 되돌려 놓을 것인가. 장본인들은 1심 판결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반성과 사과의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좌파의 인민재판식 공세 속에서 10년 만에 진실을 되찾은 이승복 사건의 역사는 이 정권이 온 힘으로 매달리고 있는 과거사 뒤집기의 의도와 전개과정을 예고해주는 살아 있는 사례다. ”


위 사설을 읽다 보면 우리는 이 글이 전해주는 그 사실 속으로 저절로 빨려 들어간다.
아하.. 그랬었구나..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들여다 보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승복 사건은 진실일 가능성이 매우 크고 당시 조선일보 기자들이 현장취재를 한 것은 사실로 인정"되지만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한 작문 의혹 제기 역시 “언론,표현의 자유에서 용인되는 범위의 ‘있을 수 있는’ 의혹제기”라며 김종배 씨에 대해 무죄 판결했다. 다만 김주언 전 언개연 사무총장에 대해서는 "충분한 확인없이 김 전 편집장의 기고만을 토대로 ‘오보 전시회’ 등을 통해 이승복군 보도가 허위라고 주장한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 유죄 판결했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이승복군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다가 살해 당했다고 보도한 조선일보 보도내용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것은 죄가 될 수 없다]고 무죄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숨기며, 충분한 확인이 없었으므로 명예훼손을 인정 한 것을 가지고 이승복군 사건을 [역사적 진실임을 인정]했다고 자기들 멋대로 보도했다.

재판부는 “이승복군의 발언에 대한 진위(眞僞)는 유일한 현장 생존자인 승복군의 형 학관씨와 당시 마을 주민 등 관계인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진술하고 있어 이제는 더 이상 따질 수 없는 문제”라고 했으며 “당시 조선일보의 사진기자였던 노형옥 기자가 촬영해 조선일보사가 제출한 현장 사진 등 제반 증거와 증인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에서 취재했다는 사실을 뒤집을 만한 반증이 없다”고 밝혔을 뿐이다.


참 기가 막히지?


사람들이 조선일보의 이승복군 보도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것은 이승복군의 죽음자체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 아니었다. 이승복군이 무장공비인지 국군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서만 의혹을 제기하며 지나친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에 대해서만 비판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지난 10여년 간 이승복 군과 가족들의 명예는 이승복 사건에 ‘반공 조작극’이라는 색깔을 칠해온 좌파들의 선전선동에 무참하게 짓밟혀왔다”라며 조선일보의 ‘이승복 사건’ 보도 의혹제기가 마치 이승복 사건 전체를 부정하여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것처럼 몰아갔다.


주제와는 다르게 말이 자꾸 확대되므로 일단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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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축구에서 심판 판정에 대한 챌린지.
뒤엎을 만한 절대적 증거가 없으면 그대로 원심을 확정하는 원칙이 있다고 했다.

이승복 어린이가 왜 죽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현장에 있었던 이승복의 형 이확관씨 밖에는 없다. 아니 사실은 이학관씨도 모를 수도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평생을 죄인처럼 쉬쉬하며 살던 그가 조선일보 명예훼손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져서 ‘조선일보의 기사가 사실이다’라고 말을 했으니.. 이제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다가 죽은게 아니라는 증거를 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이승복 사건은 이렇게 미제사건 혹은 찝찝하지만 역사적 진실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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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인터뷰 기사로 곤욕을 치렀던 그때 그 사람.
인터뷰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동아일보 기자와 당사자, 그리고 나밖에는 없었다.
촬영된 사진도 없고 녹취된 테잎도 없다.

‘배후에 정치음모 있다’고 얘기한 증거도 없었지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었다.
즉, 심판 판정을 뒤엎을 만한 절대적 증거가 없었다.

호되게 당했지만 그렇게 그냥 앉아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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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앞으로 어떤 기회이든지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으면
꼭 전 과정을 녹음 하기를 권한다.


→ 언론권력 1 – 스타킹에 오줌물 튀긴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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