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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조삼륜 6 - 삼륜의 한심한 힘겨루기

몸에 똥 묻은 놈에게 '냄새나니 가서 씻고 오라'고 했다. 물론 내 몸에도 똥이 묻어 있으니 그것도 씻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똥묻은 놈들이 그걸 까발렸다고 들고 일어섰다.

‘판사들은 당사자한테 물어볼 걸 복사한 서류기록을 본다. 그러니까 검사가 조사한 대로 흘러간다. 내가 “기록분량을 줄여라”고 하는 이유는 검사가 조사한 수사기록이 나온 서류를 던져버리란 얘기다. 왜 그것에 의해 재판하나, 법관은 그럴 능력이 없나? 서울의 한 판사가 공판정에서 열심히 재판한 건 무죄인데 나중에 수사기록 보니까 유죄라서 유죄를 선고했다고 얘기한 걸 들었다. 그렇다면 판사는 무엇 때문에 법정에 서 있나, 검사서류 갖다가 읽고 유죄판결하고 끝내지. 민사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는 법정에서 판사를 설득할 생각을 안 한다. 검사는 유죄라고 판사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동안 검사는 그런 역할을 안했다. 수사기록을 제출하는 역할 외에 그 이상도 이하도 안했다는 거다. 내가 전국 법원 다니니까 법원보다도 검찰청사가 한 층이라도 높다. 몇센티라도. 돌아다닐 때마다 판사들이나 직원들이 속상하다고 한다. 꼭 검찰이 저런다고. 재판을 제대로 하면 검찰청 건물 좀 높으면 어떠냐. 수사기록 확인하는 일밖에 안하니까 검사가 법원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왜 판사가 밀실에서 검사가 조사한, 아무도 보지 않는 비공개된 장소에서 조사한 진술을 공개된 법정에서 한 진술보다 우위에 놓고 재판을 하느냐는 말이다. 영장발부율을 보니까 86~87%다. 그런데 발부한 영장의 20%는 검사가 수사단계에서 풀어준다. 판사가 발부한 영장을 왜 검사가 풀어주나. 영장발부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법조3륜(법원, 검찰, 변호사단체)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사법의 중추는 법원이고, 검찰과 변호사단체는 보조하는 기관이다. 무슨 같은 바퀴냐. 변호사들이 내는 자료라는 게 다 상대방을 속이려는 문서가 대부분이다. 내가 변호사 해봐서 안다. 그걸 믿고 재판하는 건 곤란하다. 수사서류만 갖고 하는 게 무슨 재판이냐. 그럼 검사보고 재판하라고 하지, 도장만 찍는 게 재판인가.’

’판사들이 사람을 구속하는 것을 사무처리로 생각하는데 구속영장이 발부된 가족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도 당사자의 아픔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이 발언대로 실제 시행을 하려고 한다면 현실적으로 벽에 부딪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겠으나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무기 삼아 구시대적 수사관행을 영원토록 버리지 않겠다는 집단과, 승소를 위해서는 그 어떤 비상식이나 불법도 불사하겠다는 집단이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골 농사꾼같은 대법원장, 대통령 연수원동기 검찰총장, 기름이 번지르한 변협회장이다) 


나라가 시끄럽고 내부에서조차 비난이 일자 발언 당사자가 사과를 했다.
[대법원장의 사과, 법조 상생의 계기 돼야] 어느 신문의 사설 제목이다. 법조 상생? 이젠 아주 노골적이다. 없었던 일로 치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들끼리 계속 해먹으라는 말이다. 그들이 相生하면 어쩌자는 말인가? 그들은 서로 相剋해야 하는 관계이다. 상극이라는 말이 원래 서로 죽이라는 뜻이 아니라 서로간에 적당히 억제하면서 전체를 살리라는 의미이다. 골이 빈 건지, 골이 더러운 건지.. 신문사 논설위원은 서로 상생하라고 훈수를 두었다. 우리는 그런 신문을 읽고 있다.


法曹三輪이란 용어. 세 바퀴로 굴러가는 삼륜차에 비유된 것으로 보인다. 예전엔 삼륜차가 아주 많았다. 주로 연탄을 싣고 다니던 삼표연탄 트럭이었는데 그나마 큰 것은 트럭의 모양새였지만 작은 건 거의 오토바이 수준이었었다. 그걸 용달차라고 불렀었다.


당시 좁은 길에서는 이 삼륜차가 아주 유용했다. 삼륜차의 특성상 작은 회전반경으로 쉽게 회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곳곳의 길에는 이 삼륜차가 장악하고 있었다. 근데 문제는 이 삼륜차가 잘 넘어진다는 것이었다. 당시 길을 가다가 옆으로 쓰러진 이 삼륜차를 보는 건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니었었다. 원래 삼각형은 가장 최소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이상적인 받침구조이다. 그런데 이 삼륜차는 잘 넘어졌었다. 균형잡힌 정삼각형 구조가 아니라 길다란 삼각형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차가 정삼각형의 삼륜차였다면 어땠을까? 잘 넘어지지는 않았을지는 몰라도 자동차로서의 효용은 거의 제로였을 것이다. 달에서 쓰는 월면차라면 모를까. 그래서 삼륜차는 멸종했다.

삼륜차는 앞 바퀴나 뒤의 두 바퀴나 모두 한 방향으로만 나간다. 조화와 균형, 견제라는 명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자동차가 가려는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어느 한 바퀴라도 방향을 틀을지라면 자동차는 넘어진다. 

따라서 '법조삼륜'이라는 용어는 사법부와 검찰과 변호사에 대한 우리들의 기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퇴역한 구시대 유물이란 것과 자기들끼리 긴밀한 공생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요즈음 서로 싸우는 모습 때문에 우리가 잠시 잊고 있지만 그들은 본래 고시라는 제도를 통해 신분이 하루아침에 수직 상승하고, 연수원기간동안 인맥과 연줄을 형성하고, 특별계층에 진입하여 서로 이해하고 도와줌으로써 그 달디 단 행복을 공유하고 있는 '그나물에 그밥'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국가에 대한 사명이나 국민의 이익이 아닌, 법조인들만의 이익을 우선으로 추구해 온 집단들이었다.

일간신문에 가끔씩 변호사 개업 인사가 나온다. 어느 고등학교와 어느 대학교를 나와서 어떤 법원이나 검찰에서 이런저런 경력을 거쳤고, 마지막에는 어느 고장에 있었는데, 이번에 그 정든 공직을 떠나서 바로 그 고장에서 개업하게 되었으니 많은 지도편달을 바란다는 내용이다. 서울의 동부지원이나 동부지검 출신은 동부지원 앞에 변호사사무실을 개원하고, 서부 출신은 서부지원 앞에 개원을 한다. 왜 그럴까? 전관예우때문이라나?

흔히 얘기하는 ‘좋은 변호사'의 의미는 ‘법원 검찰에 인맥이 든든한 변호사'를 의미한다. 검사와 판사는 변호사를 통해 받는 뇌물이나 인맥에 의한 영향력으로 불구속, 집행유예, 무죄선고 등을 해왔다. 법조삼륜 모두 이 시스템에 공생하며 적극 가담한다. 어느 누구도 이 시스템이 불편하지 않다. 어떻게 고생해서 올라온 자리인데.. 이 시스템은 법조삼륜 모두에게 돈을 많이 벌게 해주는 상생의 시스템이었다. 결국, 그들은 법조삼륜이라는 용어를 대외적으로 견제와 균형의 의미를 강조하려 사용했었지만, 실제로 법조삼륜이란 이렇게 그들 간의 삼위일체, 긴밀한 먹이사슬의 의미였다. 


요즈음 이 법조삼륜의 자동차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아주 바람직하다. 물론 지금 삐걱거리는 것은 '집단 간의 기 싸움' 에서 시작한 것이지만 일단 ‘후진적 사법제도’와 ‘법조삼륜의 더러운 공생관계’가 일반 국민들에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들이 곧 다시 결집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여론에 밀리면 할 수 없이 개혁을 하는 척 하다가 공동의 이익 앞에서는 다시 끈끈한 동지애를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케의원들처럼 말이다.



대법원장의 발언이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약간 무책임한 면은 있다. 자기가 반성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만 충분하다면 굳이 이렇게 검찰과 변호사를 깔아 뭉개며 공격적으로 대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먼저 법원의 과오부터 충분히 반성한 다음에 곁들여서 검찰과 변호사를 지적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법원의 과오는 은근슬쩍 넘어가고 검찰과 변호사만 아프게 때렸다. 게다가 아직은 법원이 재판의 모든 과정을 담당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허락하지도 않는 상황인데 말이다.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맞은 아이들이 간파하고 그걸 믿고 거센 반발이 있을 거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던 것은 대법원장의 과오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일단 문제들을 공론화했다는 점에서는 대 성공이다.


그러나 쌍수를 들고 대 환영해야 할 법관들이 조용하다. 답답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기록이 없으면 그들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런 재판을 해 본적도 없고 지금 당장은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이대로가 난 편하다. 가끔 변호사들로부터 짜웅받는 재미가 상당히 쏠쏠하다. 가사에 무척 도움도 된다. 괜히 검찰과 변호사를 깔아뭉개 놓으면 내가 누리는 이 평화가 깨질 것 같다. 그리고 대법원장이야 사법부 수장까지 올랐으니 뭘 더 바라겠는가 만은 나머지 법관들은 언제 옷을 벗을지 모른다. 천년만년 판사를 할게 아니라면 변호사 개업을 해야 하는데 이런식으로 장래의 내 직업을 매도하는 게 과히 달갑지만은 않다.


뒷바퀴인 주제에 자꾸만 앞장서려는 바퀴 우리나라 검찰. 인간세상의 상식보다 자신들의 조직논리가 더 우선하는 조직, 수사를 위해서라면 국민들의 기본권 따위는 침해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조직. 그들 검찰에게 사법개혁을 운운하며 자신들을 비난하는 대법원장의 말은 고깝기 그지없을 것이다. 게다가 대다수 국민들이 그 대법원장의 말에 시원하다고 느끼며 그간 검찰이 누려오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비로소 잘못된 것으로 보기 시작하니 더 속상하다. 그러나 그들은 섣불리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다. 괜히 잘못 대응했다간 여론이 대법원장의 발언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몹시 억울할 것이다. 검찰의 수사기록에 의한 ‘조서재판’이 주가 되고 판사중심의 ‘공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가 사실은 검찰에게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런 공판을 원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판이 실현되지 않는 근본적인 책임은 그간 법원에 있었다. 법원 스스로가 나태하여 그것을 포기해 온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검찰의 책임인양 선수 쳐 버리는 대법원장이 심히 못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합법적으로 고단수로 대응한다. ‘판사 니들 엿 한번 먹어봐라..’ 공소장만 한장 달랑 제출하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검찰이 진짜로 공소장만 한장 달랑 제출하면 법관은 재판을 할 수가 없다. 해 본적도 없고, 할 시간도 없고, 할 줄도 모른다. 판사들 병신되는 거 시간문제다. 역시 검찰은 검새스럽다.


변호사들의 ‘이익단체’인 변협. 물론 자신들을 도둑놈 취급한 대법원장의 발언이 몹시 불쾌했을 거라고 본다. 내 몸에 아무리 똥이 제일 많이 묻었기로소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쟤 몸에 똥 묻었대요’ 대놓고 이야기 하는데 기분 나쁘지 않을 사람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국민들로부터 도둑놈집단이라고 욕을 먹고 있는데, 대법원장이 ‘저놈들 도둑놈 맞다’ 해버렸다. 그러나 변협의 대응은 너무나 유치하고 경솔했다. 도둑놈집단이라는 불신에 시달려온 그들은 대법원장의 발언에 들쑤셔진 벌통꼴이 되고 말았다. 가만히 있자니 그걸 인정하는 꼴이 되겠고 한마디 하자니 별로 할말도 없고..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성명을 발표했다. ‘대법원장이 법원과 검찰, 변호사의 역할을 무시하고 사법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발언을 한 것은 매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장은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법 전체의 불신을 초래해온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국민들이 모두 코웃음만 치고 있음을 그들도 안다. 옛날 누군가의 표현대로 ‘참 자궁이 답답’하다. ‘툭하면 사퇴촉구’는 이제 국회의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변협도 그걸 흉내내고 있다. 변협의 이 유치한 반응에 내심 회심의 미소를 띠는 곳이 있으니 다름아닌 검찰이다. 손 안대고 코를 풀게 된 것이다. 변협은 검찰대신 흙탕물을 스스로 뒤집어 쓰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들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은 이게 아니었다. '대법원장은 옳은 말을 했고 변협은 겸허하게 반성하며 환골탈태하겠다’ 라고 했으면 오히려 이번 사태를 이용해서 부도덕한 이익집단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유일한 승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밥그릇 뺏길까봐 성내다가 밥줄 사람마저 쫓아버렸다.



어쨌거나 이렇게 겉으로는 법조삼륜이 지금까지 유지해온 긴밀한 관계가 일단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곧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어깨동무하고 ‘우리가 남이가’ 할 것임을 우리는 안다. 판사, 검사, 변호사가 스스로 반성하고 자기의 역할에만 충실해지는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버리기가 죽기보다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청춘을 고스란히 바치고 어떻게 고생하며 쟁취한 판사의 권위, 검찰의 권력, 변호사의 돈이든가..

그들이 스스로 이 기득권을 버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카사노바가 스스로 자기 좆을 잘라버리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무리다. 그래서 인위적인 사법개혁이 필요하다. 독일병정이 군화발로 짓밟든지, 국민들 뜻을 모아 평화적으로 하든지.. 인위적으로 필요하다.


그 사법개혁에 관한 것들 - 로스쿨, 기소독점주의문제, 법조일원화문제, 공판중심주의등에 대해서도 이어가려 했으나 여기서 관둔다.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워낙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ㅎ 이 문제에 달통한 독일병정이 글을 이어간다면 모를까. 난 여기서 관둘란다. 헐


→ 법조삼륜 1 – 검사
→ 법조삼륜 2 – 변호사
→ 법조삼륜 3 – 판사
→ 법조삼륜 4 – 사법고시, 모자라는 2%
→ 법조삼륜 5 – 사법연수원, 연고주의의 온상
→ 법조삼륜 6 – 삼륜의 한심한 힘겨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