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

법조삼륜 4 - 사법고시, 모자라는 2%

가까운 친구 중에 변호사와 회계사가 하나씩 있다. 당연히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회계사 시험을 패스했겠다. 2학년 무렵.. ‘공부에 전념해야 하니 나를 잠시 잊으라’는 말을 남기고 화류계에서 홀연히 사라졌던 두 친구였는데, 내 군대환송회 술자리에도 나타나지 않더니 둘 다 내가 군대 있을 때 시험을 패스해버렸다.

그 둘을 처음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나는 그 이전까지 줄기차게 가지고 있던 편견 하나를 바꾸게 되었었다. 공부잘하는 것들이란 ‘공부외엔 할 줄 아는게 없으니 공부만 잘하는 것’ 이 아니라 ‘원체 똑똑하고 독해서 공부 잘하는 것’ 이란 걸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래를 보고 청춘을 투자할 줄 아니 똑똑한 것이고, 목표를 위해 유혹을 물리칠 줄 아니 독한 것이다. 인생에서 둘째 하라면 서러울 정도로 재미난 그 피끓는 젊은 시절에, 하루 열 여섯시간씩 책상에 앉아 재미없는 책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예사 인물들은 불가능한 경지이다.

솔직히 이야기 하면..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아이들이다. 그 의지, 그 결단력, 그 집요함과 냉정함, 그 끈질김.. 놀기 좋아하던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겐 당시 그 ‘기쁜 젊은 날’을 뒤로 한 채 고시공부라는 무지막지한 고행의 길로 들어가는 그 아이들은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찌 이 나이에 저렇게 독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두 친구로 인해 비록 '공부 잘하는 것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은 버렸었지만.. 고시를 패스한 사람이 갑자기 쟁취하는 권한에 대해서는 여전히 편견이 있었다. 젊은 시절을 젊게 살지 않음으로서 결여되는 사회성, 도덕성, 창의성, 유연성.. 총체적 지식이나 지혜에 대한 검증 없이 오로지 암기위주 시험만을 통과한 함량미달 인간에게 주어지는 수직적 신분상승과 권력, 이것이 한국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인 요소의 하나로서 작용할 것이라는 편견. 이것은 아직도 유효하다.


사법고시가 어떤 과목으로 되어 있는지 보자.

[1차 시험]
필수 - 헌법, 민법, 형법
선택 - 형사정책, 법철학, 국제법, 노동법, 국제거래법, 조세법, 지적재산권법, 경제법 중 1과목
어학 - 영어

[2차 시험]
헌법, 행정법, 상법, 민법, 민사소송법, 형법, 형사소송법



1차 2차 시험은 모조리 법리지식만을 평가하는 시험들이다. 그래서 당사자의 '인간'을 보기 위해 면접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3차시험 면접]
1. 법조인으로서의 국가관 사명감 등 윤리의식
2. 전문지식과 응용능력
3. 의사발표의 정확성과 논리성
4. 예의 품행 및 성실성
5. 창의력 의지력 그 밖의 발전가능성

그렇다. 이런 게 가장 중요하다. 이런 걸 중요시하게 봐야 한다.
그럼 시험 합격자수를 한번 보자.

[2000년]
1차시험 합격자 1,905명
2차시험 합격자 801명
3차시험 합격자 801명

[1999년]
1차시험 합격자 1,842명
2차시험 합격자 709명
3차시험 합격자 709명

잘못 옮겨 적은 것 같다. 2차시험 합격자 수와 3차 면접시험 합격자 수가 같다. 그러나 맞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2차시헙 합격자수와 3차시험 합격자수는 100% 일치했다. 10년동안 면접시험에서 떨어진 놈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법조인으로 임무를 수행하는데에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법조인으로서의 국가관 사명감 등 윤리의식, 전문지식과 응용능력, 의사발표의 정확성과 논리성, 예의 품행 및 성실성, 창의력 의지력 그 밖의 발전가능성’에 대한 평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2차시험에 붙은 아이들이 다 그렇게 실제로 모든면에서 완벽했었다고 하면 할말은 없다.



내 친구가 '서초고등학교' 재학중 (그는 사법연수원을 이렇게 불렀었다) 검사 시보로 근무할 때 그가 술을 마시면서 이런 얘기를 한적이 있었다. 간통죄로 고소를 당한 중년여자를 조사하는 중에 그 여자가 그러더란다. ‘젊디 젊은 검사님이 날 무슨 수로 이해하겠습니까? 사랑이란 걸 해본 적이 있기는 합니까? 공부하느라 사랑 한번 못해봤을 검사님이 이년을 어찌 이해하겠습니까?’


처음 들어보는 일반 사람들의 독특한 일상들이 너무나 생소하다고 했었다. 그는 자기가 사람의 죄를 추궁하고 판단함에 인생경험이 모자라도 너무 모자란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고 했었다.

그러나.. 내 친구라서가 아니라 이 친구는 법관이나 검사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보아 왔기 때문에 내가 보증할 수 있다. 그는 공부만 잘하던 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고 뛰어났었다. 어느 추석 다음날 염천교에서 치러진 '총각딱지 떼기 대행사'에도 그는 참석했었을 정도로 모든 면에 두루두루 많이 경험한 친구였다. 


따라서 모든 3차시험 합격자들이 다 내 친구처럼 모든 소양을 갖추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일반적인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비록 고시보다 더 객관적으로 똑똑한 아이들을 뽑을 수 있는 대안이 당장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행 고시제도는 그것을 통과함에 따라 주어지는 열매에 비해 그 인재들에 대한 종합적 검증방법으로는 심히 부족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완벽한 평가기준에 의해 치러지는 선발이란 애초에 있을 수 없다.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시험'에 의한 선발이다.

그러나 사법고시는 훨씬 엄격해야 한다. 통과만 하면 수직적 신분상승, 막강한 권력이 주어지는 시험이기 때문에 사법고시는 다른 선발시험과 달라야 한다고 본다. 그들에게는 법리적 전문성뿐만이 아니라 엄격한 도덕성, 유연성, 사회성 그리고 종합적 분석력, 창의력, 사명감등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와 담쌓고 고시서적만 몇 년간 탐독하고 암기해서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이 같은 능력을 기대하기는 '일반적으로' 어렵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거치고 받는 사회교육이나 가정교육 결여된 상태에서, 가족들의 막대한 희생을 발판으로 시험에 합격을 했다. 사법시험 과목에서 보았듯이 도덕성과 같은 보편타당한 능력에 대한 검증 없이 법리지식의 경합으로만 선발되어 사회로 쏟아져 나온 이 젊은 영감님들이 도덕성이나 국가관  인생철학이 거의 없을 것임은 자명한 일. 이 경직된 예비 고위관료들은 본전을 찾으려 할것이 뻔하다. 국가를 정체시키고 부패시키고, 이들의 전철을 되밟고자 갈망하는 사람들로 인해 창의력 교육은 영원히 말살된다.



현재 대한민국에 고시준비를 하는 사람이 대략 10만명쯤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예전엔 법대생들만 고시를 보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전공과 특성을 막론하고 학생은 물론 직장인들까지 고시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문학의 위기니 뭐니하는 것들이 다 이런 고시의 병폐와도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다. 

고시에 올인한다. 가족과 주변의 피해가 극심하다. 통계를 보니 1차시험의 경우 1회 2회 도전자가 전체합격자의 91.5%이다. 첫 도전자들의 합격률이 월등히 높고(70%가까이) 두번째가 그 다음이고, 그 이후엔 시험을 보면 볼수록 합격할 확률은 더더욱 떨어진다. 그래도 달리 대안이 없는 고시 준비생들은 갈곳이 없다. '대박'과 '폐인' 의 차이가 고시에서는 종이 한장 차이이다.

10만여명의 지식인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도박과 로또에 목을 매듯 고시에 매달리고 있는 이 현상은 과연 바람직한가.


고시는 그렇다 치자. 합격자들이 들어가서 다시 2년을 교육받는 사법연수원이 진짜 문제다.


→ 법조삼륜 1 – 검사
→ 법조삼륜 2 – 변호사
→ 법조삼륜 3 – 판사
→ 법조삼륜 4 – 사법고시, 모자라는 2%
→ 법조삼륜 5 – 사법연수원, 연고주의의 온상
→ 법조삼륜 6 – 삼륜의 한심한 힘겨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