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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조삼륜 5 - 사법 연수원, 연고주의의 온상

사시합격생들이 진짜법조인이 되기 위해선 한가지 과정을 더 거쳐야 한다. 2년 동안 집체교육을 받아야 한다. 바로 사법연수원, 한때 연수생사이에선 ‘서초고등학교’라고 통하던 곳이다. 수업방법이나 생활이 고3 교실과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늘어나면서 다른 곳으로 옮겼으니 더 이상 그렇게 부르지는 않겠다.

(일산 사법연수원)

사법연수원 교육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고 한다. ‘총 4학기로 이루어지는데 첫 두 학기는 원내 교육으로 수업을 듣고 기말시험을 보게된다. 과목구성을 보면 민사실무재판, 형사실무재판, 검찰실무의 세 과목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민사와 형사에 관한 변호사실무 두 과목이다. 변호사실무과목이 주요과목으로 자리잡은 것은 최근에 생긴 변화이다. 이들 법률실무과목의 교육내용은 판결문 작성, 공소장 작성, 기타 법률서류 작성에 관한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거기다 민사법, 형사법, 지적재산권법 등의 일곱 개 분야 중 하나를 `전공'으로 택하도록 해서 그 분야에서 두 과목 이상을 듣도록 하고 있는데, 실상 그리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밖에 강제집행법, 수사절차론 등 과목들도 배우고 2학기에는 미국민사법, 중국법 등 `외국법 및 인접과목' 중 하나를 선택하여 수강한다. 또한 최근에는 법조윤리 계열의 과목도 개설되었다. 이렇게 두 학기를 마치면 3학기에는 법원, 검찰, 변호사 실무수습을 2개월씩 나가는데, 검찰직무대리는 비교적 힘들지만, 법원이나 변호사 시보는 부담 없는 수준이라 한다. 마지막 4학기에는 한 달 연수원 원내 교육 후 앞서 언급한 주요 다섯 개의 법률실무 과목에 대한 시험이 있다. 나머지는 전공세미나, 특강 등의 일정이다.’

공부와 시험이라면 도가 트인 사시합격자 아이들도 이곳에선 시험과 석차에 대한 스트레스로 탈진할 지경에 이른다고 한다. 사시합격자들끼리 모여서 경쟁하며 석차를 정해야 한다니 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할지는 짐작이 간다.

근데 사시에까지 붙은 합격자들이 왜 이런 피 말리는 경쟁을 또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장래의 직업이 철저하게 연수원 성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판검사나 로펌에 취직하려면 성적이 좋아야 한다. 장래가 불안정한 변호사로 개업하려니 두렵기 때문이다. 기준은 오로지 연수원의 석차뿐이니 공부에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아무런 필터링 없이 사법고시를 패스한 일부 부적격자들 (사회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나 최소한의 인생공부도 하지 못한 사람, 또는 천부적으로 양심이 불량하거나 범죄속성을 가진 자들)을 걸러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이 연수원에서.. 오히려 그 전보다 더 치열한 성적지상주의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수원에서나마 마지막으로 걸러져야 할 부적격자, 예비 범죄인들도 연수원에서의 석차만 높으면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법조인에겐 진실을 밝히고 약자를 보호하는 그런 정의감과 패기가 있어야 한다. 설사 그런 것이 있었던 젊은이라 할지라도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거치는 동안 이런 의식들은 당연히 시들해진다. 솔직히 이야기 하면 그런 정의감과 패기를 가진 젊은이들은 중간에 스스로 그 잔인하고 무의미한 길을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오로지 남을 밟고 일어서는 데에만 뛰어나고 익숙한 사람들이 끝까지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들에게 진실을 파헤치거나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은 접수되지 않는다. 자신의 이해관계만 생각하는 단지 법률기술자일 뿐이다. 이들에게 도덕적 국가적 사명감은 이미 희석되고 없다.


교과과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연수생들은 확정된 사실관계를 제시받은 다음 여기에 관련법을 적용해 판결하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사 어떤 일에도 ‘확정된 사실’이란 없다. 특히 재판의 경우엔 더더욱 그러하다. 첨예하게 대립되는 양측이 제시하는 사실은 항상 서로 모순적이다. 법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계적인 법적용’이 아니라 진실에 접근해 가는 그런 능력이다. 그러나 연수원은 이미 검증된 논리훈련만 반복한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주입식 교육이다. 또 교수진이 현직 판사 검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교육내용이 폐쇄적이고 유연성이 결여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법적 사고력을 배양하기보다는 법률서류 작성방법 등의 교조적 기능 전수에 치중한다. 결국 이러한 교육체제로 인하여 법조의 전문화,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시대적 요구와는 역행할 수 밖에 없다.

또, 공부라면 이젠 다시는 하기 싫은 정도로 넌덜머리가 났을 때 본격적으로 관직에 임하게 된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겠다. 공부에 넌덜머리가 난 고등학생이 진짜로 공부를 해야 할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책을 집어 던지고 마냥 놀듯이 말이다. 대부분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그러하듯, 법조인들도 사법연수원을 나온 그 순간부터 더 이상의 공부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친구의 말로는 더 열심히 해야만 먹고 산다고 하는데 분명 엄살일 것이다. 옆에서 봐도 그는 예전처럼 공부하지 않는다. 물론 이 문제는 개인에 따라 다른 문제이므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사법연수원의 진짜 문제는 생각지도 않던 곳에 있다.

(어느해 연수원동기들 기념촬영이다. 대통령, 2인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검찰총장이 보인다)

한국 법조계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는 연고주의다. 우리나라에서 법치주의가 제대로 바로 서는 데에 가장 커다란 장애요인이 바로 이 연고주의이다. 어이없게도 이런 연고주의의 온상이 바로 이 사법연수원이다.

사시 합격자를 장래의 진로와 무관하게 모두 동일한 교육기관에서 집체적으로 교육함으로써 ‘연수원동기’라는 인맥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장래 법정에서 서로 치열하게 대립하여야 할 판사 검사 변호사가 인맥을 형성하는 기회를 이 연수원에서 갖는 것이다. 서로 생판 모르던 사시합격자들이 연수원이라는 만남의 장에서 거대한 친목단체 이익단체를 결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법조비리의 싹이 되고, 법조삼륜이 사이좋게 상부상조 공생하는 바탕이 된다.
법조 삼위일체, 법조 상생 먹이사슬의 관계로 변질되는 것이 바로 여기서 싹트는 것이다.


→ 법조삼륜 1 – 검사
→ 법조삼륜 2 – 변호사
→ 법조삼륜 3 – 판사
→ 법조삼륜 4 – 사법고시, 모자라는 2%
→ 법조삼륜 5 – 사법연수원, 연고주의의 온상
→ 법조삼륜 6 – 삼륜의 한심한 힘겨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