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40분 준비를 시작해서 포터들과 마지막 작별포옹을 하고 출발했습니다. 3시 조금 넘어 체크포인트 대기실에 1등으로 도착했습니다. 말이 대기실이지 지붕만 있는 곳입니다. 오분쯤 후 두번째로 영국팀이 오고, 그리고 그 뒤로 줄줄이 사람들이 도착합니다. 재밌는 풍경입니다. 사람들이 그곳에 도착하면 이삼분 시끌벅적한데 곧 머리의 등을 끄고 깜깜하게 조용해집니다. 이걸 줄줄이 반복합니다. 늦게 도착한 사람은 대기실 밖에서 비를 맞고 서있습니다. 두시간 반의 춥고 깜깜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5시 30분, 입장절차를 마치고 드디어 우리가 첫번째로 게이트를 통과했습니다.
1등이란 게 참 묘하더군요. 잉카트레일은 경주가 아니다... 귀가 따갑게 듣던 말이었습니다. 근데 '제일 앞'에 서자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그래 오늘만큼은.. 그래서 시작부터 속보로 내질렀습니다. 1등이라 그런지 숨도 안차고 다리 무릎도 안 아픕니다. 멀리 영국팀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20대 젊은이들인 그들은 분명 우릴 추월하려고 기를 쓰고 오고 있는거였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 빨리 올 수 없습니다. 어림없다. 더 내달렸습니다. 얼마후 거의 네발로 기어가야 할만큼 급경사인 계단을 만났습니다.
바로 기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스무개쯤 올랐을때 영국팀이 계단아래에 도착.. 잡히기 직전입니다. 힘을 더 냈습니다. 어디에 그런 힘이 숨어있었는지 모르지만 좌우간 놀라운 속도로 계단을 기어 올랐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pass인 Sun Gate에 섰습니다. 가이드가 혀를 내두릅니다. 체크포인트에서 여기까지 원래 두시간정도 잡고 오는 코스인데 우리는 45분만에 주파했답니다. 거의 초능력이었습니다. 그곳 Sun Gate에서 기대했었던 경관은 이거였습니다.
하지만 빗속 하얀 구름뿐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별로 속상하지 않았습니다. 마추픽추와 선게이트에 관해 설명을 듣습니다. 설명이 귀에 안 들어옵니다. 영국팀이 올까봐.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출발할때야 겨우 나타났습니다. 급경사 계단에서 헤맸던 겁니다. 젊은 것들이..^^ 앞으로 10분이면 마추픽추에 도착한답니다. 내달렸습니다. 구름을 뚫고 바람같이 내려가길 5분.. 드디어 마추픽추의 모습이 구름속을 뚫고 눈앞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마추픽추를 눈으로 직접 봤는데도 감동이 전혀 없었던 겁니다. 누군 마추픽추를 보고 눈물을 흘리더구만, 우린 '감동이 없다'는 이상한 사실조차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습니다. 잉카트레일을 마쳤다는 폭발적인 성취감만 있었뿐이었습니다. 도착기준으로 우리가 '120명중 1등'이라서 아마 더 그랬었을 겁니다. '마지막 승자가 진짜 승자다 음하하하..' 우리끼리 크게 축하했습니다. 사진 두어장 찍고 바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거기서 젖은 옷 갈아입고 잠시 쉬었다가 마추픽추에 다시 들어온답니다.
참고로 우리 가이드가 말해준 내용입니다. 사실여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잉카트레일 포터들만 대상으로 잉카트레일 빨리 주파하기 경주가 십몇년전에 열렸었답니다. 1등한 사람의 기록이 얼마였을까요? 우리가 3박4일동안 걸어온 45km 산악길.. 글쎄 열시간정도? 놀랍게도 3시간 40여분이었답니다. 일반 매니아들을 대상으로도 경주가 있었답니다. 1등 기록이 7시간 30여분이었답니다. 믿을 수 없는 기록입니다.
비가 계속 내립니다. 휴게실에서 젖은 옷을 벗고 회사 티셔츠로 갈아입고 뜨거운 커피를 마셨습니다. 노곤합니다. 가이드에게 말했습니다. ‘그냥 내려가자..’ 그가 깜짝 놀랍니다. ‘여기까지 와서 마추픽추 안보고 그냥 간다고?’ 아까 봤잖아..
비가 그치자 가이드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마추픽추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촌스런 회사 티셔츠입니다. 그때 그들을 만났습니다. Wow! You Are Here! 아마 그저께 쓰러져서 산소를 마시고 있던 저를 봤었고, 그 이후엔 절 처음 본 모양입니다. 당연히 제가 포기하고 내려갔을줄 알았는데 도착지에 제가 있는걸 보고 그 젊은이들이 환호했던 겁니다. 축하한다며 포옹하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들의 진심이 느껴져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자기들끼리 얘기합니다. '봤지.. 아무리 힘들어도 함부로 포기하는거 아냐..' 외국 젊은이들에게 살아있는 교훈이 되다니요^^
'지루했던' 마추픽추 투어를 마치고 가이드가 한 구석으로 우릴 끌고갑니다. 동영상 찍어도 되느냡니다. 자기네 회사 광고 동영상^^ 이럴려고 억지로 끌고 들어온 거였습니다. 따식.. 찍었습니다. 두시간 자유시간 줄테니 마추픽추 구경 많이 하고 내려오랍니다. 가이드가 사라지자 마자 우린 마추픽추에서 나와 휴게실에서 쉬었습니다. 그리고 약속시간에 맞춰 꼬불꼬불 버스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앞에 말씀드렸었지만, 출발전에 가졌던 궁금증.. 잉카트레일이라는 것이 ‘마추픽추를 보러 가는 길’일지 아니면 ‘가다보니 있는 마추픽추’일지.. 그 답이 뭐였을까요. 너무 명현했습니다. 마추픽추는 잉카트레일 도중 만나는 '잉카유적지중의 하나'일 뿐이었고, 그냥 '잉카트레일의 끝'일 뿐이었습니다. 삼십년동안 맘에 품고 있었던 마추픽추에겐 대단히 미안했습니다만 이건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만큼 잉카트레일이 특별했습니다.
휴게실에 앉아있으니 마추픽추 보겠다고 버스타고 올라와 꾸역꾸역 몰려드는 관광객들이 보입니다. 건방진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추픽추 뭐 볼게 있다고 저렇게들 오시나. 잉카트레일을 해야지..' 이적인가 유희열이 그랬었죠. ‘나 마추픽추 갔다 온 사람이야.. 이러면 그걸로 게임끝’이라고. 그들에게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끝'은.. 잉카트레일 마지막 날에 볼 수 있는 거란다^^
철든 이후 삼십여년동안 딱 두번 울었었습니다. 가깝던 이의 죽음. 보통의 한국남자들처럼 저도 남자의 눈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라 절대 울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이번 트레킹중 하루에 두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잉카트레일은 그만큼 특별했습니다.
아직 얼떨떨해서 제게 무엇이 남겨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신비롭고 영롱했던 느낌을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 고생을 하고서도 왜 그 길이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다시 가야겠습니다.
Pachamama, Camino Inka, Mother Earth, Inca 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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