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트레일 첫 포스팅의 제목 '기막히고 숨막히던'은 바로 이 둘째날 얘기였습니다.
밤새 뒤척였던 것 같습니다. 둘째날에 대한 기대와 흥분, 압박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남들보다 20분 이른 지점에 캠프를 했으니 20분먼저 출발해야하기 때문에 서둘렀습니다. 아침도 먹는둥 마는둥.. 최대한 빨리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습니다. 올라가다보니 큰 야영장이 나옵니다. 우리딴엔 일찍 출발했다고 했는데 벌써 사람들은 다 출발하고 포터들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말로는 서두를 필요없다면서 가이드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두번째 check point까지 쉴새없이 올라왔습니다. 지도팻말 앞에서 오늘의 일정을 알려줍니다. 곧 만나게 되는 오르막 계단이 잉카트레일 전체 코스중 가장 힘든 코스인데 두시간 정도 이어지고, 그게 끝나면 잠깐 쉬었다가 다시 두시간정도를 더 오르면 dead woman’s pass (4,215m)를 넘는답니다. 4시간에 3천에서 4천2백까지 1,200m 고도 상승을 하는 겁니다.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일반인 하루 고도상승이 600m이던데 4시간에 1,200m라.. ‘생각보다 힘들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어라’ 이런 얘길 하고 있는데 윗쪽에서 50대 중년여자 두명이 내려옵니다. 포기하고 내려오는거랍니다. 헉..
이제부턴 가이드가 뒤에 선답니다. 그래서 제가 선두에 섰습니다. 천천히 숨 고르며 올라가고 있는데 두명의 여자가 또 내려옵니다. 아.. 대체 길이 어떻길래.. 이윽고 그 계단앞에 섰습니다.
이런 계단이 두시간동안 이어진다고 하니 기가 질려 포기할 만도 합니다. 지상같으면 한걸음에 한계단씩 쑥쑥 올라가겠지만 고도가 고도인지라 두걸음에 한계단씩 올라야 할 것 같습니다. 두시간을 그렇게 올랐습니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고도탓인지 호흡의 압박과 근육의 압박이 엄청납니다. 펄펄 날던 포터들도 이 계단에선 가끔 쉬어가더군요. 두시간쯤 그렇게 오르자 평지가 나타납니다. 가장 어렵다는 코스를 가뿐하게 넘긴겁니다. 기분이 날아갈 듯 합니다.
이 높은 곳까지 원주민들이 올라와 물과 음료수를 팔고 있었습니다. 가격이 대여섯배 비쌌지만 당연히 여겨졌습니다. 포터들과 사진도 찍으며 분주했습니다. 가이드가 말했습니다. '너무 쉬면 오히려 더 힘들어질 것이니 빨리 출발하라..' 다시 확인했습니다. '제일 힘든 코스는 이제 지난 거지?' 그렇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한참 오르다보니 정상이 멀리 보입니다. 경험자들이 수도 없이 얘기하던 바로 그 길입니다. 정상이 빤히 보이기 때문에 더 힘들다는 그 길. 그들의 권고대로 땅만 바라보며 거북이처럼 천천히 걸었습니다. 한시간쯤 걸었습니다.
갑자기 다리를 옮기기가 굉장히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를때에도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무력감이었습니다. 팔과 다리가 약간 저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선두를 양보했는데 아내와의 거리도 점점 벌어지다가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쉬는 빈도와 시간이 점점 길어집니다. 4천미터 고도 탓이거니 했습니다. 한시간 가까이 더 그렇게 걸었습니다.
쉬어도 호흡이 잦아들지도 않고 기운도 회복되질 않습니다. 팔과 다리가 점점 더 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분이 나빴습니다. 속도를 더 줄이고 더 자주 더 오래 쉬었습니다. 고갤 들어 정상쪽을 보니 직선거리로는 백미터, 높이로는 삼사십미터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지상이라면 이삼십초만에 뛰어 올라갈 거리입니다. 진짜 거의 다 온겁니다. 힘내자.. 발을 옮겼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손에 갑자기 마비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손은 마비되어 전혀 움직여지질 않고 다리의 저림증상도 급속히 심해집니다. 곧 다리도 마비될 수 있으니 넘어지기 전에 빨리 앉아야합니다. 그런데 몸이 안 움직입니다. 등산스틱에 몸을 겨우 의지하고 그 상태로 멈춰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황해서인지 호흡도 더 급해지기 시작합니다. 호흡이 가빠지자 공포감이 몰려왔습니다.
다행히 가이드가 그때 도착했습니다. 괜찮냐고 묻습니다. 아뿔싸.. 말이 안나옵니다. 가이드가 황급히 저를 앉혔습니다. 뭔가를 제게 계속 묻는데 잘 들리지도 않습니다. 약간 몽롱합니다. 잠시후 제 얼굴에 산소마스크가 씌워졌습니다. 사전미팅때 말하길 ‘응급상황’에만 사용하겠다던 그 산소마스크를 제게 씌운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응급상황? 기분이 급격히 더 나빠졌습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다행히 산소를 오분쯤 들이쉬자 정신이 다시 맑아졌습니다.
팔다리가 마비되긴 했지만 두통 메스꺼움 어지럼도 없고 가슴통증도 없습니다. 즉 고산증이나 심장이상은 아닌겁니다. 이건 에너지 완전고갈, 즉 생명유지를 위해 팔다리부터 차단시키는 과정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빨리 초컬릿.. 그런데 아직 말이 안나오고 손을 못 움직이니 가이드에게 알리질 못합니다. 다행히 가이드도 바로 진단을 내리고 급히 제 주머니에서 초컬릿을 꺼내 제 입에 밀어 넣더군요.
씹지도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입은 움직였습니다. 연달아 다섯개정도를 밀어 넣은 것 같습니다. 오분쯤 지나자 드디어 손의 마비가 풀리기 시작했고, 십분쯤 지나자 호흡도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이드가 나직히 묻습니다. '내려가야 하지 않겠냐..' 노 웨이!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말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봐라 나 이제 말하잖아..' 하지만 그는 단호했습니다. ‘십분 더 기다려보고 상태가 100% 회복되지 않으면 무조건 돌아 내려간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반드시 100%여야 한다.’
정상을 보니 바로 코앞입니다. '저기가 정상 맞냐' 물으니 정상 맞답니다. 갑자기 눈물이 솟았습니다. 백미터도 안 남았는데 여기서 포기해야만 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허탈했던 겁니다. 그 한번의 눈물로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근데 가이드가 제 등을 두드리며 말합니다. ‘그래 니 맘 안다. 넌 정말 최선을 다했다. 여기까지 올라온 니가 나는 자랑스럽다..’ 울컥 눈물이 터졌습니다. 몇분 후, 위에서 기다리던 아내가 내려왔습니다. 올라오던 사람이 이렇게 말해주더랍니다.
‘빨리 내려가봐. 니 남편 지금 밑에서 쓰러져서 울고 있다..’
아.. 띠바 쪽팔림..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올라가야 합니다. 얼마 후 팔다리 마비증상이 완전히 없어졌길래 일어서겠다고 했습니다. 부축을 받아 일어서다 잠시 비틀했지만 금세 괜찮았습니다. '자.. 나 올라간다..' 그냥 큰소리 쳐본건데 진짜로 몸이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아니 훨씬 좋아져있었습니다. 에너지 고갈 상태였던 때보다 오히려 초컬릿 대량투입후 몸에 정말로 힘이 불끈 난 겁니다. '영양공급'이란게 이렇게 중요한 거였습니다.
움직이기 시작하며 위를 보니 정상 넓다란 바위에 앉아 우리쪽을 보고 있는 이십여명의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자기들끼리 소식전달이 됐을까요 '동양인 남자 저 아래 쓰러져서 산소마스크 쓰고 있더라.. 아 그남자 내가 올땐 울고 있더라..' 저라도 궁금했을 겁니다. 그 한심한 놈이 과연 올라오는지 포기하고 내려가는지.
체력은 훨씬 빨리 걸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더 천천히 걸었습니다. 사람들 좀 없어진 다음에 올라가려고. 근데 사람들이 계속 기다립니다. 저를 기다리는건지 아니면 그냥 쉬고있는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좌우간 제가 정상에 오르던 순간까지 사람들은 거기에 있었고, 제가 정상에 발을 딛는 순간 그들은 제게 와- 하며 박수와 환호성을 질러줬습니다. 순간 놀랐습니다. 평생 한번도 느껴본 적 없던 '벅찬 감동'이 훅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폼나게 손을 흔들고 웃을 작정이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놈의 영양실조.. 꾸스꼬에서 거의 먹지 못하고, 트레일을 시작해서도 거의 먹지못했었습니다. 얼마나 못먹고 몸을 혹사했는지 트레킹을 끝내고 몸무게를 재어보니 6kg가까이 빠졌더군요. 그런 상태로 둘째날 게토레이 한병 영양분으로 버티며 올라오다가 그 사단이 났던 겁니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멋지게 정상정복을 즐겼을텐데.. 사전미팅때 말했던 be honest! 가 바로 이런 걸 경고했던 거였습니다. 팔다리 저림증상이 나타났을때 그때 바로 말했어야 했던 건데, 그때 초컬릿 한개만 먹었어도 폼나게 올라왔을텐데, 그걸 숨기고 미련하게 버티다가.. 이게 계속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며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누가 이런 경험을 해보겠습니까. 산을 오르다 에너지 고갈로 죽을뻔한 이런 경험을 누가 해보겠습니까. 물론 사람들이 있었고 아내와 가이드도 앞뒤에 있었으니 제가 내팽겨쳐져서 죽을리는 없었을겁니다. 하지만 안데스 고원에서 죽을뻔했던 건 사실입니다. 누가 이런 경험을 해보겠습니까. 고비를 이겨내고 올라온 제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내리막 길입니다. 트레일 시작 이후 처음으로 맞는 내리막입니다. 호흡과 근육의 압박은 없지만 무릎 압박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최악의 경험을 하고 난 이후라 모든것이 훈훈했습니다. 두시간만에 고도를 3,500m로 낮추며 캠프에 도착했습니다. 포터들의 박수를 받으며 식당에 들어서자 바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타이밍도 절묘합니다. 식사를 하며 가이드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며 과하게 고마워했습니다. 사실이니까요.
첫날 캠프는 사방이 산에 막혀 답답했는데, 둘째날 캠프는 앞이 뚫려있어 좋습니다. 밤새 의외의 강추위와 싸워야 했지만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아메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잉카트레일 넷째날 (12/02) (7) | 2014.12.14 |
---|---|
잉카트레일 셋째날 (12/01) (0) | 2014.12.13 |
잉카트레일 첫째날 (11/29) (4) | 2014.12.11 |
잉카트레일 성패 팩터 (2) | 2014.12.10 |
잉카트레일 기막히고 숨막히던 (2) | 2014.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