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흑인 라띠노들에 비해 팔다리가 현격하게 짧은 동양인들이 미국에서 자기 몸에 딱 맞는 옷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유행과는 상관없이 품이 맞는 게 있으면 무조건 그걸 사다가 길이를 줄여 입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의 교포들은 유행이 지난 옷들을 많이 입는다. 근데 아무리 그렇다해도 너무 심하다 싶은 옷을 입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워낙 노랭이라 그냥 예전에 한국에 가져온 옷을 아직도 입나보다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곳 엘에이엔 '평화시장'이라는 한국 옷시장이 하나 있는데, 미국 가게에서 옷 고르기 힘들어 하던 사람들이 한국 옷을 사는 곳이다. 근데 그 시장의 옷들은 하나같이 흘러간 유행의 옷들이다. '아니 아직도 저런옷이 나오네'.. 왜일까? 주인에게 물어보니 한인들이 그런 옷을 찾기 때문이란다. 왜 그러냐하면 ‘자기가 한국을 떠나던 무렵에서 모든것이 딱 정지했기 때문에’ 그때의 유행에서 한발도 전진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사람의 옷차림만 보고서도 그 사람이 언제 한국을 떠났는지 가늠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떠난지 이십년이 됐는데도 첨단 유행을 따르는 사람도 있고, 떠난지 이삼년밖에 안됐는데도 이십년전 옷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원체 ‘겉모습으로 사람의 성향파악하기’가 취미인지라 옷차림과 사람의 성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폈다. 결론은 간단했다. 옷차림이 유행에 ‘어느 정도’ 따라가고 있으면 그는 뇌가 열려 있는 것이고, 과거 어느 때의 패션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그는 뇌가 닫혀 있는 것이었다.
뇌가 열려있는 사람은 눈과 귀도 열려있기 때문에 변화를 읽을 줄 알며 새로움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유행의 변화에도 신경을 쓰며 새로 나온 문명기기에도 익숙하다. 세상의 흐름을 보고 있기 때문에 이성적인 대화와 토론이 가능하다. 비록 과거에 주입식 교육을 받았었을지라도 그 허구성과 폐해를 깨닫고 낡은 가치관과 사고체계를 새시대에 맞게 바꾸었다.
그러나 뇌가 닫힌 사람은 눈과 귀도 닫혀있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에 벽을 쌓은 채 과거에 머무른다. 그래서 유행엔 아예 관심조차 없으며 전화를 걸고 받는 것 외에는 휴대폰의 다른 기능은 전혀 모른다. 세상의 흐름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누구와도 이성적 대화가 불가능하다. 어릴적 외부로부터 꾸겨 넣어진 가치관과 사고체계를 죽을때까지 신봉하며 죽기 전까지는 그것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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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티비에서 대한민국의 촛불집회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 올랐다. 명박산성이라는 해괴한 장애물을 보고 이명박이란 자의 암담한 현실인식에 잠시 절망했었지만 결론은 감동이었다. '이명박을 반대하는 몸짓들'때문이 아니라 그 집회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성숙함' 때문이었다.
비록 한쪽에서 군복을 입고 모자를 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성조기를 흔들며 고함을 지르는 추태가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그들을 그저 측은하게 생각하며 부딛히지 않았다. 또 폭력을 감행하려는 철없는 선봉대도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그들을 만류하고 꾸짖고 있었다.
혹시나 예전처럼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최루탄이 터지고 쇠파이프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예전처럼 출정가를 부르면서 나서는 눈물겨운 시위가 아니라 전가족이 나와 즐기는 문화시위.. 아름다웠다.
무엇이든 극단적인 것은 그저 노망난 늙은이나 철없는 몽상가들로 치부됨을 보았다. 이미 우리나라엔 극좌나 극우가 결코 용인되지 않음을 보았다. 그들은 결코 어느 쪽에 치우침 없이 그저 국가의 미래와 자존심을 위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든 사람들이었다. 비록 백여일 전 눈에 콩깍지가 씌여 이명박이라는 함량미달자를 대통령으로 뽑는 참담한 실수를 범했지만 곧 그 실수를 깨달은 우리 국민들. 그래서 그 자괴와 후회를 그렇게 비폭력 문화제로 승화시킨 국민들. 그런 성숙한 국민들이 비폭력 촛불로 거리를 채운 그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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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문제나 이명박 정권퇴진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군복을 입고 성조기를 흔들던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좀처럼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카메라를 향해 악받친 고함을 지르던 할머니들의 모습도 지워지질 않는다. 세상의 변화를 모른 채 사고능력이 퇴보한 버린 측은한 늙은이들이라곤 하지만 그들의 그 무시무시한 신념은 그냥 무시해버리긴 너무 절실하다. 이명박을 아직도 지지한다는 그 17%.
이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 이 사람들의 눈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은 전부 좌파 빨갱이였을 것이다. 육이오를 겪지 않아 공산당 무서운 줄 모르는 철부지였을 것이다. 먹거리를 걱정해 아이를 안고 나온 엄마들마저도 그들의 눈엔 친북좌파의 선동에 놀아난 정신병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의 존망이 위태해 그것을 침묵하는 다수들에게 알리려 나왔을 것이다.
군대라도 동원해 빨갱이들의 국가전복 기도를 진압해야 한다고 외치는 그들.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 미국이 혹시라도 우릴 보호해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북한이 쳐들어 오는 걸로 걱정하는 그들. 국가를 전복하려는 이 불순한 촛불세력에 맞서 자신들만이라도 떨쳐 일어나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그들. 북한은 결코 우리가 도와줘선 안되며 망해서 무릎꿇고 들어오거나 무력으로 절딴을 낸 후 접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들. 이들의 머리속은 무엇이 채우고 있을까?
1. 반공
전쟁을 겪었고, 아직도 분단상황에 놓여 있고, 그 반쪽이 국제적으로 정상 국가가 아니라는 특수한 처지의 우리나라. 이해는 된다. 아무리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완전 몰락했다 하지만 북녘땅의 김정일은 아직도 불안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해도 아직까지도 이 정도로 투철한 반공 이데올로기는 곤란하다.'공산당=전쟁' 은 이제 지구상에 없다. 오히려 '극우=전쟁'의 세상이다. 이 열혈 반공주의자들은 사실 '전쟁광'에 더 가깝다.
2. 숭미
이들은 육이오때 우리를 구해준 미국의 원조가 아직도 눈물겹게 고맙다. 그래서 이들은 그런 미국의 은혜를 배신하는 것은 천하의 호로자식들이나 할 짓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혹시라도 시위가 반미로 비쳐질까 걱정된다. 그래서 미국 오해하지 말라고 맞불집회를 열어 성조기를 흔든다. ‘오해하지 마셈. 대한민국에는 미국을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라는 뜻이다. 촛불을 드는 것은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배은망덕한 짓으로 경멸한다. 어찌 우리를 공산당의 침략에서 구해준 은인, 또 언제라도 우릴 그렇게 구해줄 은인 ‘미국’의 쇠고기 수입을 어찌 감히 가려서 하자고 한단 말인가? 이들에겐 큰일 날 소리다.
3. 기독 근본주의
생뚱맞게도 이 혼란에 종교가 스물스물 파고 들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기독근본주의자들의 신앙도 희한하게도 ‘숭미’와 동의어다. 즉, '반공=숭미=기독정신'이다. 미국이 강한 건 기독교가 번성하기 때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강해지기 위해선 우리도 미국처럼 기독교가 번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미국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로 이명박을 무조건 밀어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명박천국, 촛불지옥'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과연 친북이 있는가?
우리나라 평범한 국민들 중 친북은 없다. 어릴 적 골수에 박힌 반공방첩교육의 덕인지 북한의 정권을 인정하거나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국민은 결단코 없다. 다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그저 취향정도로 여기거나, 거시적으로 남북 민족이 하나로 합치면 그 상승작용으로 우리가 더 번영할 것이니 그를 위해 준비를 차근차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우리에게 반미가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나라 평범한 국민들중 ‘반미’를 하자는 국민은 없다. '반미'를 외쳤다간 시대착오 극좌로 몰려 매장되는 건 시간문제다. 미국과의 관계가 돈독해야 우리가 편안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미 FTA도 우리가 살기 위한 중요한 방편이라는 것도 다들 안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친미국가라는 것은 지구촌이 다 안다. 오히려 너무 '친미에 미친'놈들이 많아 걱정인게 우리나라다.
그러나 이들 기독근본주의나 숭미 반공 이데올로기에 젖은 이들은 이 정도로는 양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자기들 정도의 광적인 ‘숭미’ ‘멸공’수준이 아니면 그들 눈엔 무조건 다 ‘반미 친북좌파’인 듯하다. 지긋지긋한 same old song 친북좌파.. 북한을 측은히 여기기만 해도 친북좌파, 미국에 작은 의문만 제기해도 친북좌파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은 많이 잡아도 70만명이라고 했다. 즉 참여한 사람보다는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뜻이다. 다수의 이 침묵하는 사람들중에는 촛불문화제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저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어쩌면 대부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침묵하는 다수들은 아마 이런 촛불 시위가 곧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고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가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을 것이다. 바로 군복입은 노인들의 광적인 '멸공 숭미' 시위를 보면서 그 거부감에 마음이 바뀌었을 것이다. 에이 나도 촛불집회에 나가야 되겠구만.. 이 정도 심리학은 중학생도 안다. 그런데도 노인들과 광신도들은 여전히 '군복'을 입고 집결해 멸공 숭미를 외치고 찬송가로 마무리한다.
(파업현장의 붉은 머리띠에 대비되는게 극우들의 군복이다. 아마 '우린 피를 흘리며 나라를 지켰던 사람들이다' 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인 듯하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런 걸 싫어한다는 걸 이들은 모른다. 이런 걸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국민들은 되려 냉담해진다는 걸 이들은 모른다. '때가 어느땐데 군복을 입고 설쳐 늙은이들이..' 극좌와 극우는 이렇게 공히 사고력이 떨어지는 꼴통들이다.)
이들의 이 벽창호와 어거지는 풀어볼 방도가 없다. 이성적인 대화와 토론, 합리적인 설득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육이오 겪어봤냐?’ 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골수에 박힌 그들은 ‘그냥 저렇게 살다 죽게 놔두는 수’ 밖엔 도리가 없다. 세대가 바뀌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이 정도로 일부 노인들과 광신도들이 이성을 잃고 멸공과 숭미에 미쳐있는 것은 왜일까? 아무리 육이오를 겪은 전쟁세대에 나이까지 들어 사고능력이 퇴화했고, 영혼을 빼앗겨 이성이 없다는 걸 감안한다고 해도.. 어찌 세상 돌아가는 걸 이 지경으로 모를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 왕따되기를 자청하는 이들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바로 '세뇌'때문이다.
→ 조중동 살리기 1 – 멸공 숭미 기독근본주의
→ 조중동 살리기 2 – 정치인과 종교인의 밥줄
→ 조중동 살리기 3 – 미디어 세뇌의 무서움
→ 조중동 살리기 4 – ‘보이지 않는 손’이 없다
→ 조중동 살리기 5 – 족벌언론의 폐해
→ 조중동 살리기 6 – 지금의 조중동은 민족의 해악
→ 조중동 살리기 7 – 조중동을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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