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 올림픽.. 올림픽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서울에 자동차 홀짝운행을 시행하기로 했고, 서울시민들은 이 불편을 기꺼이 감내했다. 당시 차가 없었던 나는 감내고 뭐고 할 것도 없었지만.. 그런데 만약 이 ‘자동차 홀짝 운행’이 자기들 생업에 지장을 준다며 올림픽 경기는 ‘일요일’에만 치르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어 기어이 모든 경기를 일요일에만 치르게 만들었다면?.. 이런 미친사람들이 실제로 있을리 만무하지만, 만약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맞아 죽었거나 그걸 피해 한국을 떠났을 것이다.
물론 이런 미친 사람들은 당시에 없었다. 개인의 생업이 약간 지장을 받더라도, 그것이 아주 짧은 기간이라면 국민들의 행복과 국가의 중대사를 위해 그 불편을 잠시 감내하는 것이 기본적인 상식이고, 당시 서울시민들은 모두 이런 상식을 가지고 있엇기 때문이다.
근데.. 2000년대 미국 LA에, 이런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다.
LA 국제마라톤에 딴지를 건 사람들
LA 국제마라톤은 1986년에 처음 시작된 이래 해마다 3월 셋째주 일요일에 개최된다. 참가자가 이만명이 넘는 꽤 큰 마라톤 대회다. 이 LA마라톤 대회는 우리 한인들에겐 특별히 익숙한 대회인데 그 이유는 그 마라톤 코스에 우리 코리아타운이 길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LA 마라톤 TV중계에 상당히 긴 시간동안 우리 코리아타운이 비춰진다. 그래서 이 LA 마라톤 대회는 코리아타운을 널리 홍보하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한인들은 다들 이 대회를 고맙게 여기고 있었다.
근데 같은 한인이지만 이 LA마라톤이 못마땅하여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LA의 한인교회들이었다. 난 처음엔 이걸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역사적으로 마라톤과 교회가 혹시 나쁜 관계? 알고 보니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마라톤 대회가 벌어지는 '일요일의 교통통제' 때문이었다.
마라톤이 열리는 구간엔 필연적으로 교통통제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코스에 길게 포함되어 있는 한인타운도 그 날은 거의 하루종일 교통통제로 막히게 된다. 하지만 일반시민들은 물론 한인들도 이를 전혀 불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한인교회의 처지는 그게 아니었다.
LA의 한인교회
대회일인 일요일.. 교회에 가는 날이다. 따라서 마라톤으로 인한 교통통제로 인해 교회에 못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까짓거 그날 하루쯤은 각자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근데 교회의 입장은 처절했던 모양이다. 턱없이 줄어드는 헌금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LA엔 속말로 ‘일요일 하루 벌어 다음 일주일 살아가는’ 영세한 한인교회가 많다. 한인교회들이 코리아타운에 바글바글 와글와글 꼬물꼬물 몰려있기 때문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개척교회가 생기는 곳이다. 목사끼리 싸우고 찢어지고, 교인들끼리 싸우다 찢어지고.. 이러다 보니 ‘하루 벌어 일주일 먹고 살아야 하는’ 영세한 한인교회가 마라톤 코스내에만 무려 350 개였다고 한다. 우리 생각엔 '까짓거 하루인데..' 였지만 이들에겐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 한인목사들이 모여 1994년 ‘LA 국제 마라톤 날짜 변경위원회’ 라는 걸 발족시켰다. 마라톤 개최일자는 일요일에서 다른 요일로 바꾸겠다는 거다.
하지만.. LA 국제 마라톤은 20여년간 지속되어왔던 LA시민전체, 나아가서는 세계인 전체의 축제다. 인종과 국적과 종교가 배제된 세계인의 스포츠 행사다. 따라서 이런 행사에는 특정지역이나 특정종교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는 없다. 아니 그래서도 안된다. 이건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진 상식이다. 그러나 LA 한인교회들은 이 평범한 상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대회 요일을 변경해달라..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5년 2월)
한인목사들은 ‘헌법에 보장된 예배 드릴 권한을 보장해 달라’ 를 주장하며 공청회를 요구했다. 마라톤으로 인해 ‘주일성수에 불편을 겪는 크리스천’ 들을 위해서 마라톤 대회를 일요일이 아닌 다른 요일로 바꾸라는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국적과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참가하는 국제마라톤 대회를 ‘우리 신자들이 우리 교회에 못 오니 일요일이 아닌 다른 요일로 바꿔라’라는 얘기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요구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기독교의 탈레반 한국 교회', '기독교의 알카에다 미주 한인교회'의 악명이 괜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여실히 증명시켜 주는 ‘만행’이었다. 기독교의 나라 미국에서, 그 많은 미국 교회들이 단 한번도 트집잡은 적이 없던 행사를, 일부 한인교회들이 기독교의 이름을 들먹이며 뒤집어 엎으려 하고 있었던 거다.
당연히 LA시나 마라톤 주최측은 이들의 무식한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LA시는 여러 번의 공청회 후 [1. 어떤 날에 마라톤을 하건 간에 누군가 피해를 보게 된다. 그게 사업체이건 교회이건 누구건 간에 결국 이 짐을 져야만 한다. 2. 일요일날 교통 통제로 인해 예배를 못 드리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일요일 교통통제가 가장 피해자가 가장 적다. 3. 교회측이 성도들이 교회로 올 수 있는 지도를 제공하든지 셔틀버스를 운영한다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마라톤은 계속 일요일에 열겠다]고 결정했다. 이거 아주 당연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LA시와 주최측은 이 사건으로 인해 징글징글한 한인교회를 인식하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계속 딴지를 걸게 분명한 그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회유책을 하나 내어 놓았다. 2007년부터 코스를 대폭 변경하여 코리아타운 지역 통과를 최소화했고, 교회시간 이전 이른 시간에 통과하도록 하여 한인교회들의 불편을 덜어주었다.
개최요일 변경 재차 요구, 결국 받아들여졌다 (2008년 9월)
그러나 한인교회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커뮤니티의 교회와 연합하여 요일변경을 더욱 강하게 요구했다. 3년간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인교회의 징그런 요구에 시달리던 LA 시의회는 결국 2009년 마라톤 개최일자를 연방공휴일인 프레지던트 데이(2월 셋째 월요일)로 변경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설마설마 했는데 한인교회들이 기어코 일을 내고 만 것이다. 기독교의 나라 미국, 그 미국의 모든 교회들이 말없이 받아들이던 LA마라톤을 LA 한인교회들이 뒤집어 엎어버린 거다. 주일성수를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국제마라톤 대회의 개최일을 기어이 변경해버린 것이다.
우리끼리만 알고 쉬쉬하던, 지독스럽고 유난스런 한인교회들의 광기가 만방에 알려졌다. 아니나 다를까 LA 타임즈등 주류언론에서는 ‘마라톤 대회를 평일로 변경해 달라는 한인교계의 요구는 오직 주일 헌금이 줄기 때문’이라 보도하는 등 조롱과 비난 일색이었다.
그러나 이런 조롱과 비난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라톤 대회 요일변경을 주도했던 송정명 목사는 ‘이제 주일 마라톤대회 개최 요일이 변경됐으니, 최근 주일에 열렸던 철인 3종 경기 개최 요일 변경을 제2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한인목사들의 단세포적 사고가 바야흐로 점입가경이다.
(프레지던트데이는 공무원들만 쉬는 날이라 교통대란이 우려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날 마라톤 대회를 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2008년 말에 주최측과 한인교계가 다시 합의하여 개최날짜를 메모리얼 데이(사기업들도 쉬는)로 변경하고 코스도 코리아타운을 통과하던 코스로 환원조치하였다.)
그래서 2009년 대회는 한인교회의 소원대로 월요일인 메모리얼데이(5월)에 열렸다. 하지만 문제가 발견되었다. 날짜를 변경한 이후 마라톤 참가자가 급감했던 것이다. 2008년 대회의 경우 2만명 가까이 행사에 참가했으나 메모리얼 데이로 날짜를 변경한 2009년엔 참가 신청자가 9천여명에 그쳤던 것이다. 게다가 연방 공휴일에 마라톤 행사가 치러지면서 TV 방영기회가 줄어 LA시를 홍보하는 기회도 대폭 축소됐고, 또 공휴일 근무자가 많아 봉사자 참여 등 대회운영에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일요일로 환원, 그 대신 코스에서 '코리아타운 제외' (2009년 11월)
그래서 엊그제 LA 시의회에는 2010년 LA 마라톤 대회 개최일을 원래대로 3월 셋째주 일요일로 다시 복귀 시키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한인교회들이 그렇게 반대하던 일요일로 개최일을 다시 바꾼거다. 그렇다면 이 번복에 대해 한인교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의외로 가만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성수만은 꼭 지켜야 한다며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그들 아니었던가. 한인 교회들은 당연히 이를 거부했어야 했다. 그런데 한인교회들은 가만 있었다. 왜냐하면 일요일로 개최일자가 환원되었지만 마라톤 코스에서 코리아타운이 완전히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즉 일요일에 개최되지만 자기네 교회들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거였다. 결국 LA언론들이 수없이 지적한 대로 한인교회가 마라톤 대회 요일 변경을 한 것은 '주일성수' 때문이 아니라 '헌금' 때문이었음을 스스로 널리 고백했다. 어이가 없다. 기가 막힌다.
새 마라톤 코스는 ‘LA를 상징하는 할리우드와 웨스트 할리우드, 선셋 스트립, 산타모니카 불러바드, 로데오 드라이브를 통과하는 코스’라고 한다. 코리아타운 한참 위쪽이다.
장하다! 한인교회들
‘LA를 상징하는’ 마라톤 코스에서 코리아타운이 쏙 빠졌다. 아니 코리아타운을 피해 멀리 도망갔다. 얼마나 한인교회가 징그럽고 넌덜머리가 났으면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코스를 내어놓았을까? 한인 교회들.. 코리아타운을 더 추가해 달라고 로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잘 있던 걸 땡깡을 부려 빼버렸다. 아주 잘했다. 한인커뮤니티 전체보다는 교회의 헌금과 부흥이 더 중요했던 한인교회들.. 아주 장하다.
한인교회가 이루어 낸 역사적인 쾌거다. 주일헌금 때문에 마라톤대회에 딴지를 걸다가, TV에 코리아타운이 생중계로 소개되는 소중한 기회를 아주 화끈하게 없애버렸다. 상당수 미국인들로 하여금 한인교회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들어 놓았다. 헌금 준다고 마라톤 대회를 바꾸자는사람들.. 참 잘했다. 교회 운영권쟁탈로 목사들끼리 패싸움을 벌이고, 법정까지 끌고가서 망신을 당하는 걸로도 모자라, 이젠 아주 만방에 널리 추태를 보이고 있다.
LA 마라톤과 한인교회의 싸움 - 한인사회에 상처
일년에 딱 하루인데도 ‘예배가는 길을 막지 말라’며 한인교회들이 마라톤대회 날짜를 바꿨다가 결국 마라톤 코스를 먼곳으로 몰아냈다. 예배가는 길이 뚫려 헌금 받는데 지장이 없게 되었으니 한인교회의 소원대로 됐다. 그래서 한인교회들은 철없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우리 한인사회의 전체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힌 치욕의 사건이었다.
세계의 유명 대도시들이 일요일 하루종일 길을 막아가며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는 이유가 뭘까? 홍보효과도 있지만 결국은 돈 때문이다. 5만여명이 참가한 뉴욕 마라톤 대회가 창출하는 경제효과는 2억2천만달러, 3만5천명이 참가한 시카고 마라톤 대회는 1억 5천만 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2만명 정도가 참가하는 LA 마라톤의 경제효과도 어림잡아 1억달러 정도는 될 것이다.
이걸 한인교회들이 들쑤셔 날짜를 월요일로 바꿨다가 참가자가 9천명으로 줄어드는 대실패를 겪었다. 이 덕분에 지난 3년간 LA마라톤 대회를 주최하던 회사는 30만불의 적자를 남긴 채 문을 닫았고 올해부터 운영사가 바뀌었다. 하지만 LA 마라톤대회가 실패하면서 입은 적자는 30만불이 아니다. 참가자가 반으로 줄면서 경제효과마저 반으로 줄었다. 얼추 5천만달러의 경제효과가 날아가버린 것이다. 한인교회의 등쌀에 날짜를 바꿨다가 내년에 다시 일요일로 환원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면서 말 많은 코리아타운을 피해 아주 멀리 가버렸다.
마라톤 대회가 돈을 위해 열리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LA 한인교회들이 그 마라톤 대회의 날짜를 바꾼 것도 역시 돈 때문이라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 결국 이번 한인교회들과 LA마라톤 대회간의 전쟁은 서로 돈 싸움을 벌이다가 한인교회들이 한번 작게 이기고, 결론적으론 한인사회 전체가 크게 져버린 꼴이 되었다.
'서울마라톤'을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반대했다면?
입장을 바꿔 상상해 보면 안다. '서울 마라톤대회'가 25년째 열리고 있었다고 치자. 근데 코스의 일부에 걸쳐 살고있던 소수의 방글라데시인들이 자기네 종교활동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법적투쟁을 벌여 서울 마라톤대회 날짜를 변경시키게 만들었다고 치자. 부글부글했지만 참았는데 마라톤대회로 인해 수백억원의 경제효과까지 날려버렸다고 치자. 우리들 입에서 과연 어떤 말이 나왔었을까?
‘저 씨팍 개 썅노무 방글라썀시키…’ 이랬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어서 감히 우리가 25년 해온 행사를 지들 종교문제로 딴지를 걸어? 예의도 상식도 모르는 &$%^#$%*&* 방글라 개쉑히들.
우리가 이 짓을 미국 LA에서 한거다. 자기네 예배길을 막는다는 이유로 1년에 단 하루뿐인 25년전통의 마라톤 대회 날짜를 기어이 바꾸게 했었다. 비상식도 이런 비상식이 없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왕따를 자초했다. 한인교회의 이 망발은 한인교회나 한인 개신교만이 아니라 고스란히 한인사회 전체의 피멍으로 남았다.
예수님이 없는 교회, 한인 교회
한인교회들.. 꼴에 양심은 있을 터이니 묵묵 무반응이었겠지? 하지만 ‘무뇌’ 한인교회들은 박수치고 난리가 났다. 미진한 부분이 있지만 대체로 만족한단다. 한인들의 단합된 힘을 아주 잘 보여주었댄다.
‘헌법에 보장된 예배 드릴 권한을 보장해 달라’고 주장한 땐 ‘기독교의 문제’였다가, 자기네 교회가 코스에서 빠지니 이젠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라 남의 문제가 된거다. 우리 헌금만 줄지 않으면 된거란다. 최소한의 수치심조차 이들에겐 없다.
분노가 아니라 측은함이다. 저걸 교회라고 만들고, 저런 델 교회라고 가고, 저런 것들을 목사라고 믿고 따르는 성도들.. 예수는 없고 마귀 목사들만 우글대는 한인교회, 사랑과 희생은 없고 시기와 질투만 있는 한인교회, 하나님의 말씀은 없고 탐욕만 그득한 한인교회..
역시 그들은 기독교의 탈레반, 기독교의 알카에다였다.
헐벗고 가난한 한 흑인 소년이 예배를 드리고 싶어 교회를 찾았다. 교회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로 그득했다. 초라한 흑인소년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린다. 그리곤 결국 그 흑인소년을 교회밖으로 쫓아냈다.
흑인소년이 교회 문 밖에 앉아 울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 옆에 앉았다.
소년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그 사람이 말했다.
‘나는 예수다. 나도 교회에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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