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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스마트폰 미루기

멀티플랜
사무용 프로그램중에 ‘멀티플랜’이라는 게 있었다. ‘컴퓨터’라는 걸 처음 알게 해준 후배만큼이나 내게 의미있던 존재다. '壯元'이라는 초간단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쓰다 만난 이 멀티플랜이 처음으로 ‘컴퓨터라는 게 정말 편하고 좋은거’라는 걸 알게 해줬었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운영체계가 DOS에서 WINDOWS 3.1로 바뀐 이후까지도 난 멀티플랜을 줄기차게 사용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빵으로부터 자료요청이 왔는데.. ‘엑셀’로 작성해서 디스켓으로 가져오란다. 엑셀? 처음 들어보는 거였다. 그는 나보다 컴퓨터에 대해 모를 것이니 멀티플랜처럼 좋은 걸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멀티플랜’으로 작성해서 디스켓에 담았보냈다. ‘멀티플랜으로 하면 훨씬 더 좋다.’ 그랬더니 대빵이 피식 웃으며 하는 말.. ‘아직도 멀티플랜 쓰냐?’

담날 한 영화기획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곧 갈테니 한시간 정도만 시간을 비워두란다. 이십여년 후 한국영화 최대관객을 몰며 한국 영화계에 힘깨나 쓰는 기획자 겸 제작자가 된 바로 그 분이다. 당시 우리 대빵이 이 분께 투자를 하고 있어서 자주 얼굴을 봤었는데.. ‘엑셀 깔아주고 좀 가르쳐 주라고 해서.. 아직도 멀티플랜 쓴다믄서요?’

충격이었다. ‘영화쟁이 날라리’에게 컴을 한수 배운거다. 근데 배울만 했었다. 멀티플랜이 경운기라면 엑셀은 람보기니였다. 우물안 개구리.. 그 이후 난 뭔가 새로운 게 있는지 늘 살피고 그런게 있으면 바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컴퓨터든 인터넷이든 통신이든 언제나 업투데이트 최신으로 유지하기 시작했었다. 


귀찮아 하는 걸 닮아간다.
56년생인 우리 CPA, 한국 고교시절 전국 상위 0.01%에 들었었다던 수재다. (물론 본인 얘기다) 근데 이 양반 컴에 아직도 윈도즈 2000이 깔려있다. 그래서 몇번을 얘기했다. ‘그러다 천연기념물 된다. 내가 XP 새로 깔아줄테니 제발 업그레이드 좀 하라.’ 근데 이 양반 요지부동이다. ‘난 2000이 제일 편하다. 이걸로 다 되잖어’ 부단히 새로운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던 내게 그는 참 게으른 사람이었다.

몇년전 Vista 라는게 나왔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XP를 지우고 그걸 새로 깔았었다. 근데 다른 때완 느낌이 영 다르다. 궁금해서 깔아놓고 신기해서 열심히 사용법을 익히던 다른 때와는 달리, 깔긴 깔았지만 새로 사용법을 익힌다는 게 영 귀찮았던 것이다. 마음자세가 그러니 사용법이 익혀질 리가 없었다. 마침 비스타에 문제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다시 XP로 다운그레이드 했었다. 역시 XP가 최고..

이번엔 Windows 7 이란 걸 새로 내놨단다. 나의 첫 반응은 이랬었다. ‘아 구찮게 뭐가 또 나온거야..’ 마침 플로리다 똥가가 LA에 왔다가 그걸 카피해주고 갔다. 그래서 일단 집에 있는 컴에 그걸 깔았다. 훨씬 편해졌다는데 난 도통 모르겠다. 오히려 XP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던 기능들이 사라져버려 불편하기만 하다. 바로 XP로 다운그레이드를 하고 싶었지만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2000에서 XP로 올렸을 때도 첨에 얼마나 불편했었던가, 근데 익숙해지고 났더니 세상없이 편하고 좋았잖아.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근데 이번엔 다르다. 도대체가 하기가 싫다. 금세 뜨는 첫화면만 익숙하고 좋을 뿐 그 담부턴 너무 불편해서 짜증이 난다. 새 기능을 찾고 익히는 것이 ‘너무 귀찮다’.

요즈음 유행한다는 소셜네트워킹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하긴 해야겠는데 도통 시작이 안된다. 사람들로부터 몇번 초대 메일을 받았는데 뭐가 뭔지 몰라서 뭉개고 있는 중이다. 그게 나같은 사람한테 무슨 용도가 있겠나 싶기도 하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배우는 것이 귀찮다. 그냥 옛날 게 편하고 좋다.



헉! 누굴 닮아가나?
그냥 살던 대로 살고 싶다. 눈과 귀를 닫아버리니 도통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급기야 ‘새로운 것은 틀렸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절대권력의 지배하에 복잡한 생각없이 살던 시절이 좋았단다. 전국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국가부흥에 매진하던 시절이 좋았단다.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도 생각해 봅시다’며 줄을 안 맞추는 놈은 ‘빨갱이’가 된다.

빨갱이는 분명히 북녘의 ‘발 맞춰 나가자, 대를 이어 충성하자’는 도당이다. 근데 남녘에선 ‘발 맞춰 나가는 거 이제 좀 그만 하자, 특권의 대물림을 이제는 끊자’는 사람들이 빨갱이가 된다. ‘빨갱이를 타도하려는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리는 이상한 세상인 거다. 진짜 빨갱이들로 부터.

작금의 한반도는 ‘북녘의 빨갱이’와 ‘남녘의 빨갱이’가 대치중이다.
색깔로 본다면 남녘의 빨갱이들이 훨씬 더 빨갛다. 한번 적은 영원한 적, 자자손손 절대로 화해해선 안되고 반드시 무릎을 꿇려 모가지를 꺽어야 한단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부득이 가스통을 들고 나서는 거란다. 애국심은 인정하지만.. 대한민국의 ‘문명화’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들일 뿐이다.

아찔하다. 끔찍하다. 이래선 절대 안된다. 자나깨나 'UP-TO-DATE' 다.


스마트폰 미루기
스마트폰이라는 게 뭔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딴 나라 이야기였다. 출장이 잦은 비즈니스맨이나 젊은 애들이나 쓰는 장난감정도? 근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온통 스마트폰 얘기다. 이제 우리 세상은 ‘스마트폰이 운영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뭐든지 스마트폰으로 다 한단다. 'XP 깔아놓은 컴퓨터에서 DLS 인터넷'이나 하는 나는 곧 원시인 소릴 듣겠다.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얼마전 버라이즌 2년 계약이 끝났다. 계약만료시점이 다가오던 무렵부터 고민에 빠졌다. 더 이상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나도 그 스마트폰을 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쓰는 휴대폰에서도 ‘전화를 걸고 받는 거’ 외엔 하지 않으면서 스마트폰? 귀찮았다. 그러나 하긴 해야한다. 뭘로 할까? 여기서부터 벽에 부딪혔다. 뭘 골라야 하는지 너무 복잡했던 거다.

블랙베리, 아이폰, 구글폰 그리고 윈도즈폰이 있다는데, 문제는 이게 기계의 종류가 아니라 운영체계의 종류란다. 뭐가 뭔지 전혀 모르는데.. 한참을 공부해서야 결론을 냈다. 내 멋대로 판단에 지금은 아이폰이 대세이지만 곧 구글폰이 대세가 될 것이라 결론 지었다. 스마트폰을 한다면 구글폰.. 일단 이렇게 결정했다.

마침 버라이즌에도 구글폰이 있단다. 근데 기계는 모토톨라와 대만의 HTC 뿐이란다. 대만 회사 HTC? 삼성 LG는 도대체 그동안 뭘 했기에 아직 제품조차 없는거지? 통신기기는 당연히 대한민국 제품이어야.. 그래서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버라이즌에 삼성이나 LG 제품이 나올때까지 기다리자. 근데 얼마 후 알아보니 진작부터 버라이즌에 삼성과 LG의 스마트폰이 있었단다. 그래? 핑계가 갑자기 없어졌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해야하나 보다..

근데 아직은 아니다. 획기적인 제품이 곧 나온단다. 삼성이 미국에 곧 출시한다는 갤럭시탭..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 하나 사볼까 하다가 휴대하기에 너무 크고 휴대폰기능도 없다길래 관뒀었는데,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지, 삼성에서 아이패드보다 크기는 작고 휴대폰기능까지 있는 태블릿을 곧 내어놓는단다.


눈이 번쩍 뜨인다. 그래 이거다. 이왕 늦은 거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이걸로 해야겠다.


안다. 이러다 세월 다 간다는 거.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