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의 딜레마
한국인들이 많이 이민가는 미국 캐나다 호주.. 거주환경 좋고 교육여건 좋고 주변경치 좋고 사회시스템 좋고 기후날씨 좋고 나무 많고 공기 맑고 물 맑고.. 여자들은 시댁 스트레스 없어서 좋고, 남자들은 골프 맘대로 칠 수 있어서 좋고.. 고국에 계신 분들께 어떻게 들린런지 모르지만,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약이 오를 만큼 좋다. 아마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이런 것들을 찾아 한국을 떠난 걸 거다.
정말 좋은 나라 예쁜 동네다. 내가 이런 곳에 산다는 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때도 간혹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지들을 많이 불러들여서 이 좋은 곳에서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실제로 '가족초청 자격'을 얻기위해서 시민권을 따는 사람들도 있기도 하다. 이럴 정도로 이 나라들의 환경은 월등히 좋다.
근데 은근히 괴롭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오랫동안 살면서 이 나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 ‘여전히 난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좀처럼 지워지질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국적을 완전히 버리고 아예 외국시민이 된 사람들도 이 느낌은 마찬가지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 나라에 살았건만 여전히 ‘남의 집에 빌붙어 사는 듯’한 느낌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단다.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다. 인종문제, 문화차이, 외로움..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언어장벽'때문일 것이다.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영어’에서 멈춰 더 이상 전혀 늘지 않는 영어실력.. 물론 본인들은 다른 이유를 대겠지만 ㅎㅎ 언어습득이 가능한 나이에 왔거나, 늦은 나이에 왔어도 초인적인 노력으로 현지화에 성공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이 언어장벽이란 것은 이민자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다. ‘가서 그렇게 오래 살았으니 이제 영어는 술술 잘 하겠지?’라는 일반 인식은 이들을 더욱 괴롭게 만든다.
아름답고 풍요한 나라이지만 언어가 불편하니 그 혜택을 별로 누리지 못한다. '반벙어리'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반벙어리 신세는 이 나라의 풍요로움을 상당부분 희석시켜 버린다. 하고 싶은 말 못하고, 하고 싶은 거 못하면서 살다보니 아무리 나라가 예뻐도 마음은 늘 불편하고 답답하다. 새로운 정보습득이 거의 없고 이웃과 소통이 적으니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포지션도 자꾸 위축된다. 그러다 보니 사회구성원으로서 누리는 것들도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점점 소외감이 자꾸 커진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어간다. 100% 언어소통이 되는 자기 나라에 살아도 나이가 먹으면 점차 소외될텐데, 언어소통이 불편한 나라이다 보니 그 소외감은 훨씬 더 하다.
그래서 늘 한국이 그립다.
비록 자연환경도 나쁘고,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지만 그래도 나의 고국이 그립다. 문화코드가 맞고 언어가 편하고 그리운 사람들이 살고있는 고국이 그립다. 그래서 고국의 소식이 늘 궁금하고 고국의 소식에 기뻐하고 흥분하고 열 받으면서 산다. 그래서 언젠가 여건만 갖춰진다면 '꼭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다.
이상한 경험 - 고국이 더 이상..
그러다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고국에 대한 관심과 그리움이 엷어지기 시작하는 슬픈 경험.. 바로 '고국 여행'이다. 그렇게 가슴 아프게 그리워하던 고국 여행이건만 오랜만에 한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얘기를 한다.
‘한국 너무 좋아졌더라.. 신나고 재밌고.. 근데 잠깐은 너무 좋은데.. 오래는 못 있겠더라’
고국에 계신 분들이 상당히 기분 나빠할 말이다. 뭐 오래는 못 있겠다고? 물론 삶의 터전이 그곳이 아니니 그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다른 이유들 때문이다. 기후.. 한국의 습기와 더위, 추위를 도저히 못 견디겠단다. 공기.. 한국의 공기가 생각보다 너무 나빴단다. 특히 황사철에 나갔던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복잡함..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사는 것이 처음엔 재밌었지만 얼마 안가 스트레스와 짜증이 되더란다. 환경.. 값싼 콘크리트 건물들이 아무렇게나 늘어선 회색빛 도시에 숨이 콱 막히더란다. 탁 트인 푸른 초원에 있다가 갑자기 밀폐된 콘크리트 박스에 갇힌 듯한 느낌.
그리고.. 개발논리에 밀려 허물어져 버린 추억의 장소들, 너무 변해버린 친구들, 멀어진 친척들, 사람들의 생경한 매너, 불친절등등..
복잡한 심경으로 돌아온다. 그리곤 심한 '가슴앓이'를 하기 시작한다. 절절한 그리움의 대상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사라져 버린 허전함 때문이다. 가슴한쪽이 무너져 버린 느낌이다. 고국으로 돌아가 살고 싶던 그 강렬했던 꿈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살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평생 이곳에 살다가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건 더 끔찍하다.
길을 잃는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그렇다고 이곳에 계속 살다 뼈를 묻고 싶지도 않다.
날아가지도 착륙하지도 못하는 '인공위성'이 되어 버리는 거다.
난 아직 한번도 한국에 나가보지 못했다. 초반엔 여건이 허락칠 않아 못 나갔었지만 여건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못 나가봤다. 올 겨울엔 꼭 나가봐야지.. 하다가도 막상 시간이 다가오면 취소하곤 했었다. 바쁜 일이 핑계였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고국에 나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와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게 두려웠을 수도 있었다는 거다. 반드시 고향에 돌아가 살리라 다짐하고 있는데.. 괜히 여행한번 잘못 했다가 고국에 돌아가고 싶지도, 이곳에 뼈를 묻고 싶지도 않은 인공위성 처지가 될까 그게 두려웠을 수 있었다는 거다.
독일마을
TV프로그램 토렌트를 찾다가 우연히 ‘다큐멘터리 3일 독일마을’이라는 제목을 봤다. 독일마을? 오랫동안 독일에서 살던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역이민 영구귀국해서 모여사는 마을이란다. 눈이 번쩍 뜨였다. 나 자신 이역만리 타향살이를 하면서 호시탐탐 역이민과 영구귀국을 꿈꾸고 있는데다가 70년대 초반 김포공항에서 파독간호사를 배웅했던 경험도 있고.
가장 궁금했던 건 그들이 ‘과연 한국에 어떻게 적응했을까’하는 점이었다. 한인들이 많은 미국에 살다가도 한국에 가면 적응을 못해 쩔쩔매는데, 독일에서 수십년 살던 이분들은 과연 어땠을까?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한국사회에 적응했을까?
그러나 그 프로그램은 내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진 못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아닌 감수성 다큐이다 보니 민감한 부분, 즉 적응과정에서 힘들었던 부분이나 진짜 속마음이 어떠한지는 전혀 보여주질 않았던 거다. 서독에서 고생한 이야기, 독일인과 결혼하고 독일인으로 살던 이야기,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영구 귀국하게 된 이야기.. 이게 다였다.
사실 구체적인 상황은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진짜로 한국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마음 편하게 살고 있는건지 아닌지. 괜히 돌아왔다고 후회하고 있거나 그러다가 진짜 다시 짐을 싸서 독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는지, 그건 잘 모른다.
하지만 난 그 프로그램을 보고 상당한 위안감을 얻었다. 그들이 영구 귀국해서 살고 있다는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것만으로도 뿌듯했던 것이다. 그들이 독일인과 결혼해 독일인으로 살면서도 끝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미국보다 훨씬 더 환경이 좋고 훨씬 더 Civilized 된 나라에서 살다가도 결국 한국이 더 좋아 한국에 들어가 한국에 적응해서 살고 있다는 사실로 난 가슴이 뿌듯했다.
그래 바로 저거야.. 나도 빨리 은퇴해서 한국에 돌아가서 맘 편하게 살리라..
아빠 나 한국 너무 싫어
‘싸가지의 極’과 ‘무개념의 極’이 전동차 안에서 조우하는 바람에 서로 화끈하게 通했다. 충격적인 ‘지하철 난동사건’ 비디오 얘기다.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 것들을 못마땅해 하시던 분들은 계집아이를 욕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늙은이들에게 질린 적이 있었던 분들은 할머니를 욕한다. 내 개인적으론 '할머니의 무대뽀 활극'이 훨씬 더 경악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걸 따진다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 이런 계집애나 할머니들이 주변에 쎄고 쎘기 때문이다. 늙은이들은 ‘교육자체를 아예 못 받아서’ 버르장 머리가 없고, 중년들은 무식한 부모밑에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버르장 머리가 없고, 어린것들은 ‘잘못된 교육을 너무 많이 받아서’ 버르장 머리가 없다. 상황이 이런대 누굴 탓 하겠는가. 근데 이 동영상 얘기를 꺼낸 건 그 동영상의 한 장면이 머리에서 오래도록 떠나질 않기 때문이다. 계집애가 절규하며 비명처럼 외치던 말,
‘나 한국 너무 싫어.. 한국 너무 싫어’
중도 귀국한 조기유학생인지, 외국에서 살다 역이민 들어온 아이인지, 아니면 잠시 고국에 들렀던 교포아이인지, 아니면 그냥 한국에 살고 있는 보통의 애인지 그건 모르겠다. 사실 그애가 누구이든 상관은 없다.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애가 내뱉은 말이니 그냥 무시해도 된다. 하지만 그 아이의 비명이 쉽사리 떠나질 않는다. 지난주 오랜만에 통화했던 친구, 국제변호사로 한국과 중국을 왕래하는 그 친구의 말과 이 계집애의 말이 묘하게 겹쳐졌기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올려고? 글쎄다. 웬만하면 그냥 살지 그러냐. 요즘 한국은 말이다. 니가 생각하는…’
나는 한국이 정말 그리워 돌아가고 싶은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한국인들이 많이 이민가는 미국 캐나다 호주.. 거주환경 좋고 교육여건 좋고 주변경치 좋고 사회시스템 좋고 기후날씨 좋고 나무 많고 공기 맑고 물 맑고.. 여자들은 시댁 스트레스 없어서 좋고, 남자들은 골프 맘대로 칠 수 있어서 좋고.. 고국에 계신 분들께 어떻게 들린런지 모르지만,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약이 오를 만큼 좋다. 아마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이런 것들을 찾아 한국을 떠난 걸 거다.
정말 좋은 나라 예쁜 동네다. 내가 이런 곳에 산다는 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때도 간혹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지들을 많이 불러들여서 이 좋은 곳에서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실제로 '가족초청 자격'을 얻기위해서 시민권을 따는 사람들도 있기도 하다. 이럴 정도로 이 나라들의 환경은 월등히 좋다.
근데 은근히 괴롭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오랫동안 살면서 이 나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 ‘여전히 난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좀처럼 지워지질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국적을 완전히 버리고 아예 외국시민이 된 사람들도 이 느낌은 마찬가지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 나라에 살았건만 여전히 ‘남의 집에 빌붙어 사는 듯’한 느낌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단다.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다. 인종문제, 문화차이, 외로움..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언어장벽'때문일 것이다.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영어’에서 멈춰 더 이상 전혀 늘지 않는 영어실력.. 물론 본인들은 다른 이유를 대겠지만 ㅎㅎ 언어습득이 가능한 나이에 왔거나, 늦은 나이에 왔어도 초인적인 노력으로 현지화에 성공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이 언어장벽이란 것은 이민자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다. ‘가서 그렇게 오래 살았으니 이제 영어는 술술 잘 하겠지?’라는 일반 인식은 이들을 더욱 괴롭게 만든다.
아름답고 풍요한 나라이지만 언어가 불편하니 그 혜택을 별로 누리지 못한다. '반벙어리'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반벙어리 신세는 이 나라의 풍요로움을 상당부분 희석시켜 버린다. 하고 싶은 말 못하고, 하고 싶은 거 못하면서 살다보니 아무리 나라가 예뻐도 마음은 늘 불편하고 답답하다. 새로운 정보습득이 거의 없고 이웃과 소통이 적으니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포지션도 자꾸 위축된다. 그러다 보니 사회구성원으로서 누리는 것들도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점점 소외감이 자꾸 커진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어간다. 100% 언어소통이 되는 자기 나라에 살아도 나이가 먹으면 점차 소외될텐데, 언어소통이 불편한 나라이다 보니 그 소외감은 훨씬 더 하다.
그래서 늘 한국이 그립다.
비록 자연환경도 나쁘고,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지만 그래도 나의 고국이 그립다. 문화코드가 맞고 언어가 편하고 그리운 사람들이 살고있는 고국이 그립다. 그래서 고국의 소식이 늘 궁금하고 고국의 소식에 기뻐하고 흥분하고 열 받으면서 산다. 그래서 언젠가 여건만 갖춰진다면 '꼭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다.
이상한 경험 - 고국이 더 이상..
그러다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고국에 대한 관심과 그리움이 엷어지기 시작하는 슬픈 경험.. 바로 '고국 여행'이다. 그렇게 가슴 아프게 그리워하던 고국 여행이건만 오랜만에 한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얘기를 한다.
‘한국 너무 좋아졌더라.. 신나고 재밌고.. 근데 잠깐은 너무 좋은데.. 오래는 못 있겠더라’
고국에 계신 분들이 상당히 기분 나빠할 말이다. 뭐 오래는 못 있겠다고? 물론 삶의 터전이 그곳이 아니니 그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다른 이유들 때문이다. 기후.. 한국의 습기와 더위, 추위를 도저히 못 견디겠단다. 공기.. 한국의 공기가 생각보다 너무 나빴단다. 특히 황사철에 나갔던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복잡함..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사는 것이 처음엔 재밌었지만 얼마 안가 스트레스와 짜증이 되더란다. 환경.. 값싼 콘크리트 건물들이 아무렇게나 늘어선 회색빛 도시에 숨이 콱 막히더란다. 탁 트인 푸른 초원에 있다가 갑자기 밀폐된 콘크리트 박스에 갇힌 듯한 느낌.
그리고.. 개발논리에 밀려 허물어져 버린 추억의 장소들, 너무 변해버린 친구들, 멀어진 친척들, 사람들의 생경한 매너, 불친절등등..
복잡한 심경으로 돌아온다. 그리곤 심한 '가슴앓이'를 하기 시작한다. 절절한 그리움의 대상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사라져 버린 허전함 때문이다. 가슴한쪽이 무너져 버린 느낌이다. 고국으로 돌아가 살고 싶던 그 강렬했던 꿈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살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평생 이곳에 살다가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건 더 끔찍하다.
길을 잃는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그렇다고 이곳에 계속 살다 뼈를 묻고 싶지도 않다.
날아가지도 착륙하지도 못하는 '인공위성'이 되어 버리는 거다.
난 아직 한번도 한국에 나가보지 못했다. 초반엔 여건이 허락칠 않아 못 나갔었지만 여건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못 나가봤다. 올 겨울엔 꼭 나가봐야지.. 하다가도 막상 시간이 다가오면 취소하곤 했었다. 바쁜 일이 핑계였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고국에 나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와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게 두려웠을 수도 있었다는 거다. 반드시 고향에 돌아가 살리라 다짐하고 있는데.. 괜히 여행한번 잘못 했다가 고국에 돌아가고 싶지도, 이곳에 뼈를 묻고 싶지도 않은 인공위성 처지가 될까 그게 두려웠을 수 있었다는 거다.
독일마을
TV프로그램 토렌트를 찾다가 우연히 ‘다큐멘터리 3일 독일마을’이라는 제목을 봤다. 독일마을? 오랫동안 독일에서 살던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역이민 영구귀국해서 모여사는 마을이란다. 눈이 번쩍 뜨였다. 나 자신 이역만리 타향살이를 하면서 호시탐탐 역이민과 영구귀국을 꿈꾸고 있는데다가 70년대 초반 김포공항에서 파독간호사를 배웅했던 경험도 있고.
가장 궁금했던 건 그들이 ‘과연 한국에 어떻게 적응했을까’하는 점이었다. 한인들이 많은 미국에 살다가도 한국에 가면 적응을 못해 쩔쩔매는데, 독일에서 수십년 살던 이분들은 과연 어땠을까?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한국사회에 적응했을까?
그러나 그 프로그램은 내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진 못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아닌 감수성 다큐이다 보니 민감한 부분, 즉 적응과정에서 힘들었던 부분이나 진짜 속마음이 어떠한지는 전혀 보여주질 않았던 거다. 서독에서 고생한 이야기, 독일인과 결혼하고 독일인으로 살던 이야기,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영구 귀국하게 된 이야기.. 이게 다였다.
사실 구체적인 상황은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진짜로 한국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마음 편하게 살고 있는건지 아닌지. 괜히 돌아왔다고 후회하고 있거나 그러다가 진짜 다시 짐을 싸서 독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는지, 그건 잘 모른다.
하지만 난 그 프로그램을 보고 상당한 위안감을 얻었다. 그들이 영구 귀국해서 살고 있다는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것만으로도 뿌듯했던 것이다. 그들이 독일인과 결혼해 독일인으로 살면서도 끝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미국보다 훨씬 더 환경이 좋고 훨씬 더 Civilized 된 나라에서 살다가도 결국 한국이 더 좋아 한국에 들어가 한국에 적응해서 살고 있다는 사실로 난 가슴이 뿌듯했다.
그래 바로 저거야.. 나도 빨리 은퇴해서 한국에 돌아가서 맘 편하게 살리라..
아빠 나 한국 너무 싫어
‘싸가지의 極’과 ‘무개념의 極’이 전동차 안에서 조우하는 바람에 서로 화끈하게 通했다. 충격적인 ‘지하철 난동사건’ 비디오 얘기다.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 것들을 못마땅해 하시던 분들은 계집아이를 욕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늙은이들에게 질린 적이 있었던 분들은 할머니를 욕한다. 내 개인적으론 '할머니의 무대뽀 활극'이 훨씬 더 경악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걸 따진다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 이런 계집애나 할머니들이 주변에 쎄고 쎘기 때문이다. 늙은이들은 ‘교육자체를 아예 못 받아서’ 버르장 머리가 없고, 중년들은 무식한 부모밑에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버르장 머리가 없고, 어린것들은 ‘잘못된 교육을 너무 많이 받아서’ 버르장 머리가 없다. 상황이 이런대 누굴 탓 하겠는가. 근데 이 동영상 얘기를 꺼낸 건 그 동영상의 한 장면이 머리에서 오래도록 떠나질 않기 때문이다. 계집애가 절규하며 비명처럼 외치던 말,
‘나 한국 너무 싫어.. 한국 너무 싫어’
중도 귀국한 조기유학생인지, 외국에서 살다 역이민 들어온 아이인지, 아니면 잠시 고국에 들렀던 교포아이인지, 아니면 그냥 한국에 살고 있는 보통의 애인지 그건 모르겠다. 사실 그애가 누구이든 상관은 없다.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애가 내뱉은 말이니 그냥 무시해도 된다. 하지만 그 아이의 비명이 쉽사리 떠나질 않는다. 지난주 오랜만에 통화했던 친구, 국제변호사로 한국과 중국을 왕래하는 그 친구의 말과 이 계집애의 말이 묘하게 겹쳐졌기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올려고? 글쎄다. 웬만하면 그냥 살지 그러냐. 요즘 한국은 말이다. 니가 생각하는…’
나는 한국이 정말 그리워 돌아가고 싶은데, 이게 무슨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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