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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학

빙의 3 - 두개의 운영체계

윈도즈 인스톨
생명이 탄생되는 시점에 한 영혼이 육체에 깃든다. 이건 깨끗이 포맷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정품 윈도즈 하나가 인스톨 되는 것과 같다. 고유 시리얼넘버를 가진 정품 윈도즈가 컴퓨터에 인스톨 되어 컴퓨터가 작동하기 시작하듯, 고유한 시리얼 넘버를 가진 영혼 하나가 육체에 뿌리를 내려 육체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정해진 운명을 살게 되는 것은 이렇게 나름대로 캐릭터를 가진 수많은 영혼들이 순번으로 대기하고 있다가 육체가 준비되면 차례대로 깃들기 때문일 것이다. 육체가 죽으면 영혼은 저승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새로 포맷되어 다음에 들어갈 영혼을 기다린다. 근데 이걸 봤냐고? 누가 이렇게 관리하고 있냐고? 난 모른다. 삼신할미든 야훼든 알라든 부처든, 아니면 북극성이든 북두칠성이든. 하여튼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받으면서 지적으로 성장하는 건 여러가지 정품 응용소프트웨어가 컴퓨터에 인스톨 되는 것과 같다. 이 소프트웨어들이 육체라는 하드웨어에 깔리면서 갖가지 작용을 하는 것이다.


컴퓨터 바이러스
세상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컴퓨터는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이 된다. 원하지 않던 바이러스가 컴퓨터에 침입해 들어온다. 이 바이러스는 자기 모습을 철저하게 숨긴다. 비밀번호를 몰래 빼내기도 하고 메일을 엿보기도 하고, 중요한 자료들을 삭제해 버리기도 한다.

사람의 육체에도 떠돌이 영혼이 들어오기도 한다. 육체가 죽었지만 저승으로 가지 않고 이승에서의 영혼 그대로 떠돈다. 포맷되지 않은 상태로 다른 육체에 잠시 깃들기도 한다. 그러나 철저하게 자기 모습을 숨긴다. 때로는 ‘신앙’의 모습으로 때로는 확고한 ‘신념’의 모습으로 문제 일으키지 않으면서 공존한다. 내가 좀 피곤하고 주변사람과 가끔 푸닥거려서 그렇지 그런대로 괜찮다. 주중에는 사악한 사채업자로 살다가 주말엔 교회에 나가 믿음 좋은 신앙인으로 사는 사람. 평소엔 조신한 가정주부로 살다가 어떨때는 갑자기 섹스광으로 돌변하여 남자를 사냥하러 나가는 여자. 섹스가 시작되면 갑자기 사디스트나 마조히스트로 돌변해 버리는 사람.. 수도 없이 많다. 이것도 다 약한 정도의 빙의들이다. 별거 아니다. 주변에 빙의된 사람투성이다.


두개의 운영체계
문제는 다음부터다. 이런 시시한 바이러스 차원이 아니라 아예 컴퓨터에 두개 이상의 운영체계가 깔리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다른 운영체계를 선택하면 완전히 다른 컴퓨터를 이용하듯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당연히 두번째 운영체계는 정품이 아니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얻은 불량들이다.

인간의 육체에 들어온 떠돌이 영혼이 워낙 강력하여 가끔 일상생활을 접수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저승으로 돌아가 포맷되어 나온게 아닌 불량 영혼이다. 하지만 두개의 영혼이 존재하지만 이 두 개의 영혼은 서로를 인식한다. 그래서 터줏대감인 주인과 잠시 머무는 손님이 서로 명확해 지고, 손님이 주인에게 대부분 순응하여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 둘이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이다. 주인이 병약해지거나 손님의 지나치게 강성해지면 둘간의 갈등이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사공이 둘인 사람의 정신과 육체는 병이 든다.

컴퓨터 바이러스 정도는 백신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두개의 운영체계가 서로 충돌하여 발생하는 에러는 치료 방법이 없다. 예전에 컴퓨터에 윈도즈 NT와 98을 같이 깔았던 적이 있었다. 갑자기 부팅이 안되기도 하고, 전체가 다운되기도 하고, 시간이 갈수록 속도가 느려지고.. 하나를 지우면 괜찮아질거라고 해서 하날 지우려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어렵게 하나를 지웠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컴퓨터를 깡그리 포맷했다. 이 방법밖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을 포맷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직 그런 기술은 없다. 따라서 차선책으로 한가지 운영체계만 기술적으로 빼내어야 한다. 굴러들어 온 돌, 그 영혼만을 빼내어야 하는 것이다. 그걸 빼내지 않으면 인간은 끊임없이 혼돈속에서 고통을 받는다. 빙의 증상들을 보이는 것이다. 자기를 정식으로 인정하고 나도 좀 살자는 아우성이다.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혼이 어떤 ‘물질’에 붙어있는 것이 빙의다. 마을 앞 느티나무에도 빙의령이 있고, 장승에도 있고, 집안 사주단자에도 있다. 인간의 몸도 결국 물질에 불과한 것이니 인간의 몸에도 있다. 하지만 인간 본래의 터줏대감이 안쪽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면 설사 빙의령이 주변에 붙어 있더라도 감히 어쩌지 못한다.


자아가 허약하면 위험하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사람들은 빙의에 잘 걸릴까? 말할 것도 없이 정신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이 일차 타겟이다. 매사에 자신감 없고 소극적이고 피해의식에 젖어 있고.. 이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의외의 사람들도 빙의에 잘 걸린다. 바로 단전호흡, 참선, 기도, 명상과 같은 소위 정신수련을 한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 중에 삔이 좀 나간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정신수련을 하고 영적인 생활을 하는데 오히려 빙의가 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정신수련 한답시고, 영적으로 깨어나겠다고 영혼을 일깨우면 자유로워진 그 영혼이 외부의 영혼과 쉽게 접신을 해 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자아이다. 자아가 투철하게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정신수련을 하다간 쉽게 접신을 해 버린다. 도 닦다가 걸린다는 ‘주화입마’라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외부의 영혼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곤 자아가 허약해 질 때 빙의는 찾아온다. 노력해도 노력해도 인생이 풀리지 않을 때, 아무리 희망이라는 걸 붙들고 싶어도 좌절만이 괴롭힐 때 사람들은 신을 찾는다. 그때 떠돌이 영혼들은 그 허기진 육체에 깃든다. 종교라는 이름의 잡신이든, 잡신 그대로의 모습이든 사람들은 그렇게 스스로 접신이 된다. 나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감사하고 기쁨에 충만되게 살지 몰라도 다른 사람을 심히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 부류의 접신은 마약과도 같다. 그러나 이렇게 마약에 도취되어 환상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내 영혼을 신뢰하고 따라야 한다. 내 영혼을 신뢰하지 않을 때 자아는 자신감을 잃고 떠돌이 영혼을 만나게 된다. 그 떠돌이 영혼의 재롱으로 하루하루가 즐거울지는 몰라도 당신의 영혼은 자신감을 잃고 상처를 받으며 당신의 육체가 죽어 없어져도 저승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원히 떠돌이로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종교가 창궐하면 할수록 떠도는 영혼들의 숫자는 늘어만 간다. 떠도는 영혼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종교가 더욱 창궐한다. 악순환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종교가 지나치게 창궐하면 그 문명의 멸망이 늘 뒤따랐다.


신앙인지 귀신인지
떠돌이 영혼의 존재를 느끼면 당연히 빼앗긴 내 자리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해야겠건만 대부분은 본인 스스로가 하지 않으려 한다. 대부분 신념과 신앙의 탈을 쓴 잡신의 유혹에 이미 넘어갔기 때문이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뒤집어 씌인 접신은 치료할 방도가 전혀 없다. 그냥 놔둬야 한다. 설득해봐야 싸움만 나고 사이만 갈라진다. 본인이 행복하다는데.. 띠바 그냥 놔두자.

그러나 이유없이 아프거나 가끔 정신이 들락거릴 때는 어떻게 하나.. 내 영혼의 컨트롤을 벗어나버린 떠돌이 영혼은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강제로 빼내는 수 밖엔 방법이 없다. 근데 문제는 도저히 남의 눈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 거다. 오죽 못났으면 무당을 찾아.. 오죽 한심하면 귀신이 들었을까.. 내 안에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느끼지만 어쩔 수 없이 놔둔다.

하지만 이럴땐 영혼 대 영혼으로 잡신을 보는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퇴마사들을 불러도 되겠다. 바이러스정도의 잡신들이 심심해서 찾아 들어와 심통을 부리는 정도라면 비전문 퇴마사정도라도 능히 쫓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존재를 확인하고 ‘나가주세요’ 하고 부탁을 하면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붙어 있는 경우엔 보다 더 전문적인 사람에게 가야 한다.

전문적인 최면치료의사나 스님등을 찾아야 한다. 무슨 연유인지 물어보고 설득도 하고 얼르기도 하면서 잡신을 내 보낸다. 에지간히 독한 잡신이 아니라면 이 단계에서 대부분 떠나 간다고 한다.


빼내자
그러나 이승에 한이 남아 있거나 특별히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잡신의 경우엔 그래도 안 된다고 한다. 이럴 땐 할 수없이 마지막 단계로 무당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무당을 그저 ‘귀신씌인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무당은 여느 귀신 씌인 사람과는 질적으로 틀리다. 컴퓨터 세계에서의 안철수가 바로 무당이다. 잡신 쫓는 걸 운명으로 타고나 안철수의 영혼이 끝없이 대물림 되는 사람들이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가끔 돈을 좀 밝히는 것들이 있어서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명감을 가지고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무당의 호통이 최면술사나 스님보다도 약발이 먹히는 것은.. 수배된 깡패 잡는데엔 강력계 형사보다 조직에서 선발된 다른 깡패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빙의령을 조지는데엔 훨씬 강력한 빙의령이 제격이다. 스님중에 ‘구병시식’이란 의식을 섣불리 하다가 초강력 빙의령을 만나 오히려 빙의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허접한 무당들도 마찬가지이다. 귀신을 쫓는다고 들썩대다가 오히려 귀신에 당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면 돈을 왕창 뜯기거나 오히려 증상이 악화되기도 한다. 다시는 이런 짓 못하게 하느라 그렇댄다. 그러므로 만약 무당을 찾아야 할 정도의 심한 빙의로 고생하는 사람이라면 무당을 잘 골라야 한다. 얼굴 예쁜 무당을 얼굴만 보고 찾았다간 오히려 망하는 수도 있다는 말이다. 종교단체의 기도원 같은 곳에 들어갔다가 빙의를 고치는 수도 있다. 사실이다. 이 역시 똑 같은 기전이다. 기도원의 목사가 무당노릇을 한거다.


어떻게 조심할까
이야기가 자꾸 이상한 데로 흐르고 있는데.. 왜냐하면 어떻게 결론을 지어야 할지 나도 갈피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띠바. 귀신이 있다고 하자니 좀 덜 떨어진 놈으로 보일 것 같고, 그렇다고 없다고 하자니 엄연한 현상을 모른체 하는 것 같고. 어차피 무슨 결론을 내려도 말이 안되긴 마찬가지이니 상관없긴 하지만.

귀신들림을 정신병의 차원에서 보아도 무방하고 귀신의 존재를 부인해도 된다. 또 귀신의 존재를 믿어도 역시 상관없다. 다만 우리가 신경쓸 것은 어떻게 하면 그런 증상 없이 평생을 살다 가느냐이다. 귀신이든 정신병이든 그것이 오는 건 우리 마음이 허약해졌을 때이다. 

귀신들림은 살펴본 바와 같이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늘 우리주변에 있는 일상의 일부이다. 설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거나 당신에게 이상한 증세가 나와도 놀라지 말자. 정신력으로 극복하거나 그게 안되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귀신 안들고 사느냐이다. 답은 간단하다. 마음 굳건히 먹고 살면 된다. 너무 추상적이라고? 그럼 재밌게 살면 된다. 재밌게 살면 귀신이 들어 올 틈이 없다. 그러니 늘 대가리가 터지게 재밌게 살면 된다.

하루하루 사는 게 고난인데 무슨 재미.. 자기 인생에 만족하고 재밌게 사는 방법은 각자 찾으시길. 그거 못 찾으면 귀신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걸 배워야 한다. 절이나 교회를 좀 심하게 다니는 사람들중 상당수가 바로 이 부류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죽을때가 가까워 그 죽음의 공포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면 그때 가서 귀신 하나 받아 들이면 된다. 죽음 이후를 보장해 주는 아주 좋은 놈으로다가.


→ 빙의 1 – 도대체 이거 뭐야?
→ 빙의 2 –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 빙의 3 – 두개의 운영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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