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던 건 국민학교 때였지만 체르니 30번을 시작하면서 그만 뒀다. ‘여자애들이나 치는 피아노’라는 편견을 극복하지 못했던 거다. 고등학생 때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듣고 생각이 바뀌어 피아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었지만 대학입시에 밀렸었고, 예비고사가 끝난 후 얼마 안 있다가 집 피아노가 없어지는 바람에 이후 피아노를 열정으로 할 기회를 가진 적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기초가 잡혀있는 덕에 그리 어렵지 않은 곡이라면 한동안 뚱땅거리면서 연습을 하면 귀에 크게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는 치는 정도다. 물론 이것도 옛날 얘기다.
반면 기타는 중학교 때부터 쳤었지만 시종일관 열정으로 대했었다. 먹고 사느라 기타를 가까이 하지 못했던 세월이 이십여년이 흐르고 본격적으로 다시 기타를 친 것은 미국에 오고 나서부터이다. 이때부터가 ‘연주’위주의 기타였으니 기타를 연주용으로 집중한 시간은 사실 십여년에 불과하다.
시작은 피아노가 먼저였지만 피아노는 중간에 그만뒀고, 기타는 좀 늦게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으니 기타의 구력이 피아노보다 훨씬 길다. 그래서 당연히 피아노보다는 기타를 더 잘 친다. 굳이 기타와 피아노의 실력을 비교하자면.. ‘체르니 30번 피아노’ 정도가 될 것으로 본다. 피아노와 기타가 워낙 다른 악기이기 때문에 비교라는 거 자체가 사실 어불성설이다. 그저 일천한 경험에 비추어 재미로 비교해 보는 거다. (디지털 피아노 & 일렉기타 제외)
배우기
처음 시작하기엔 피아노가 쉬운 것 같다. 피아노는 일단 누르면 소리가 나는데 비해 기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기타는 왼손으로 운지를 하면서 오른손으로 탄현해야 하기 때문에 맑은 소리를 내기가 한동안 어렵다. 만약 싸구려 기타로 시작을 한다면 이거 더 어렵다. 한동안 물집 잡혀가며 고생을 해야 ‘퉥’소리를 겨우 벗어난다. 그 단계를 넘어서면 이제 진짜 산이 기다린다. 기타입문에서 마주치는 어마어마한 산, 바로 ‘바레’ 코드다. 왼손 검지로 여섯줄을 같이 눌러야 하는 F 코드.. 기타 입문자의 반 이상이 ‘바레’로 잡는 이 F 코드에 막혀 그만 둘거다. 아마. ㅋ
바레코드 산만 넘으면 그 이후 ‘노래반주 수준’에선 기타가 월등히 쉽다. 물론 리듬감이 전혀 없어서 오른손 타법을 익히지 못하는 사람은 예외다. 이 수준에서 기타의 가장 큰 강점은 조바꿈(transpose)이다. 조금만 숙달되면 반주시 노래의 키를 올리고 내리는 것이 자유롭다. 카포를 이용하면 아예 거저고.
이걸 넘어 초보적인 곡을 연주하는 수준까지 오르는 데는 피아노와 기타가 엇비슷하다고 본다. ‘동요처럼 연주하는 수준’이라면 거기서 거기다. 굳이 따지자면 피아노가 약간 쉬울까?
이걸 지나 그런대로 ‘들을만한 연주’나 ‘상당한 수준의 반주’를 하려는 경우.. 이건 기타가 약간 더 쉬운 것 같다. 연주자체를 익히는 데엔 비슷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세세하게 다듬는 완성도 측면에선 기타가 약간 더 빨리 도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피아노를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내 친구 앤초비는, 고등학교때 순전히 독학으로 쇼팽과 리스트의 곡들을 그런대로 들을만 하게 연주해냈었다. 기타는 조금 배워보다가 포기한 놈이 피아노는 그리 쉽게 해냈던 것이다.
그 이후의 프로페셔널 연주는 난 모른다. 기타는 지금 열심히 그리로 가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피아노는 그 비슷한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악기 자체의 성능이 훨씬 뛰어나고 그만큼 포텐셜이 많은 피아노가 당연히 갈 길이 더 멀고, 그래서 넘어야 할 산이 훨씬 더 높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것.
폼 내기
사실, 대다수 일반인에게 더 중요한 건 연주의 수준이 아니라 과연 ‘얼마나 폼이 나는가’일 거다. 피아노와 기타.. 둘 다 엄청난 매력을 지닌 악기다. 피아노의 그 풍부한 표현력은 세상 그 어느 악기도 따라올 수 없음을 인정한다. 웅장할 수도 있고, 서정적일 수도 있다. 기쁠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다. 안되는 게 거의 없다. 기타가 따라가기엔 어림도 없다. 아무리 음향설비의 도움을 빌린다고 해도..
하지만 기타에게도 피아노가 가지지 못한 기타만의 매력 포인트가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기타의 분위기’다. 줄의 흔들림이 울림통을 통해 바로 흘러 나온다. 그래서 그 청아한 소리가 사람의 마음으로 직접 들어간다. 울림통에 직접 귀를 대고 듣거나 좋은 음향설비를 통해 들리는 기타의 소리는 가히 천상의 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답다. 그래서 넓지 않은 호젓한 곳의 차분한 분위기에선 기타만한 악기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흥청망청 사람들이 많은 공간, 음향시설도 별로인 곳에서 기타연주를 괜히 들이댔다가는.. 웅성웅성 아무도 듣지 않는 개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기타의 한계다.
같은 장소, 비슷한 수준의 연주실력, 같은 연주자, 음향설비의 도움으로 비슷한 음량이라고 할 때 과연 어떤 악기가 더 폼이 날까? 상상해 보자.
그랜드 피아노를 치는 남자 vs 기타를 치는 남자
고민할 것도 없다. 피아노 치는 남자가 훨씬 더 부티가 난다. 기타를 멋들어지게 치는 남자도 멋있지만 피아노를 멋들어지게 치는 남자가 훨씬 더 멋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어릴 적 ‘피아노는 기지배들이나 치는 거잖어’ 라며 뻐팅기던 내게 하시던 부모님 말씀이 맞았다. ‘남자가 피아노 잘 치면 얼마나 멋있는데’
기동력 - 크기와 무게
하지만 문제는 기동력이다. 피아노는1m정도의 높이에 1.5m정도의 넓이, 그리고 최대 3m에 육박하는 세로 폭을 가진다. 파이프 오르간을 제외하고는 아마 가장 큰 악기일 것이다. 무게도 장난이 아니다. 일반 가정용 피아노는 200~250kg, 그랜드 피아노는 최대 500kg까지 나간다. 아무리 작은 피아노라도 이동을 하려면 여러명이 붙어 여러 조각으로 분해를 해서 들어야만 하는 무게다. 이런 덩치와 무게 때문에 피아노는 ‘놓여져 있는 곳’에서만 연주가 가능한 악기다. 만약 그랜드 피아노를 가정에 놓고 싶다면.. 적어도 오스카네 집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아노 자체가 안쓰럽게 보인다.
그에 반해 기타는 품안에 들어올 만큼 작고, 깃털처럼 가볍다. 대개 1kg~2kg의 무게에 불과하다(일렉기타 제외). 내가 본 가장 무거운 기타인 오베이션 12현 기타도 2kg이 약간 넘는 정도다. 다만 기타보다 하드 케이스가 훨씬 더 무겁다.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7~8kg은 되는 것 같다. 그래도 기타와 케이스를 합쳐 10kg 정도이니 어느 곳에든 들고 갈 수 있다. 난 예전에 자전거 여행을 할 때에도 배낭옆에 기타를 메고 갔었다. 물론 비닐 케이스.
피아노가 아무리 위대하지만 기동력에선 빵점이다. 아무리 피아노를 잘 쳐도 장소가 마련되지 않으면 그 실력을 보여줄 수가 없는 거다. 반면 기타는 산속 해변가 펜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실력을 뽐낼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과 가까운 악기다. 그 옛날 근덕 바닷가.. 여자애들에게 자신의 피아노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앤초비가 생각난다. ㅋ
가격
현실적으로 중요한 건 역시 가격이다. 가정용 업라이트 피아노는 이삼백만원 정도 하고, 일반 그랜드 피아노는 천만원~3천만원 안팎, 하이엔드급 그랜드 피아노가 5천만원 안팎, 콘서트용 그랜드 피아노는 8천만원~1억원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기타는 일반적으로 50만원 정도면 그런대로 초보자가 쓰기에 무리가 없고, 하이엔드급이 3백~천만원, 그외 아주 특별한 기타들이 2천만원~4천만원 정도이다. (4천만원짜리라고 해서 소리가 그만큼 더 좋은 건 아니고 그 기타만이 가진 독특한 가치의 값) 대개 천만원 안팎의 하이엔드급 기타들이 연주용으로 쓰인다.
따라서 피아노와 기타의 가격은 같은 급으로 비교를 했을 때 약 10배 정도의 차이이다. 혼자서의 연주이든 청중앞에서의 연주이든, 용도만을 놓고 본다면 피아노는 기타에 비해 열배의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피아노가 주는 감동과 기타가 주는 감동이 열배의 차이가 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차이를 열배 까지라고는 느끼지 않는 일반인에겐.. 피아노는 너무 비싸다.
소리
앞 글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피아노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연주시에는 그 장점을 백분 활용할 수 있지만 평상시엔 그게 골치거리가 된다. 이만저만한 소음이 아니다. 똥땅거리며 연습하는 ‘엘리제를 위하여’.. 이거 최악의 소음이다. 가족간에도 스트레스이고 이웃간 분쟁의 소지도 된다. 방음시설을 갖추거나, 아니면 오스카네처럼 어마어마한 집이거나, 아니면 디지털 피아노로 헤드폰끼고 연습하지 않는 한 피아노의 커다란 소리는 영원한 골치거리다.
반면 기타는 이런 걱정 전혀 안해도 된다. 오히려 소리가 턱없이 작아서 걱정인 악기다. 그래서 남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선 음향설비가 필요하다. 음량도 키우고 음도 약간 가공하고.. 근데 이 설비들의 가격이 그리 만만치 않다. 기타에 욕심을 내듯 이런 설비들에 욕심을 내다보면, 경우에 따라선 기타의 가격을 능가하기도 한다. 혼자 즐기기 위해 간단한 효과가 몇 개 들어있는 앰프만 갖추는 거라면 그렇지 않지만. 나도 현재 설비 리스트를 뽑아놓고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오랫동안 별러오던 좋은 클래식기타를 하나 살지 아니면 그걸 포기하고 음향설비를 들여놓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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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사랑하지만 피아노도 늘 그립다. 앞으로 기타를 아무리 잘 치게 된다 해도 피아노에 대한 그리움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 것 같다. 피아노는 내게 어린 시절 스쳐간 처음사랑과 같은 존재, 그래서 다시 꼭 만나고 싶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실에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를 놓고 한쪽엔 기타를 위한 좋은 음향설비를 갖추는 것이 내 꿈이다. 피아노곡을 굳이 기타곡으로 편곡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피아노곡은 피아노로 치고, 기타로는 기타곡만 치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
→ 피아노 vs 기타 1 – 기타곡으로 편곡하기
→ 피아노 vs 기타 2 – 기타는 작은 피아노
→ 피아노 vs 기타 3 – 뭐가 더 좋은가
반면 기타는 중학교 때부터 쳤었지만 시종일관 열정으로 대했었다. 먹고 사느라 기타를 가까이 하지 못했던 세월이 이십여년이 흐르고 본격적으로 다시 기타를 친 것은 미국에 오고 나서부터이다. 이때부터가 ‘연주’위주의 기타였으니 기타를 연주용으로 집중한 시간은 사실 십여년에 불과하다.
시작은 피아노가 먼저였지만 피아노는 중간에 그만뒀고, 기타는 좀 늦게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으니 기타의 구력이 피아노보다 훨씬 길다. 그래서 당연히 피아노보다는 기타를 더 잘 친다. 굳이 기타와 피아노의 실력을 비교하자면.. ‘체르니 30번 피아노’ 정도가 될 것으로 본다. 피아노와 기타가 워낙 다른 악기이기 때문에 비교라는 거 자체가 사실 어불성설이다. 그저 일천한 경험에 비추어 재미로 비교해 보는 거다. (디지털 피아노 & 일렉기타 제외)
배우기
처음 시작하기엔 피아노가 쉬운 것 같다. 피아노는 일단 누르면 소리가 나는데 비해 기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기타는 왼손으로 운지를 하면서 오른손으로 탄현해야 하기 때문에 맑은 소리를 내기가 한동안 어렵다. 만약 싸구려 기타로 시작을 한다면 이거 더 어렵다. 한동안 물집 잡혀가며 고생을 해야 ‘퉥’소리를 겨우 벗어난다. 그 단계를 넘어서면 이제 진짜 산이 기다린다. 기타입문에서 마주치는 어마어마한 산, 바로 ‘바레’ 코드다. 왼손 검지로 여섯줄을 같이 눌러야 하는 F 코드.. 기타 입문자의 반 이상이 ‘바레’로 잡는 이 F 코드에 막혀 그만 둘거다. 아마. ㅋ
바레코드 산만 넘으면 그 이후 ‘노래반주 수준’에선 기타가 월등히 쉽다. 물론 리듬감이 전혀 없어서 오른손 타법을 익히지 못하는 사람은 예외다. 이 수준에서 기타의 가장 큰 강점은 조바꿈(transpose)이다. 조금만 숙달되면 반주시 노래의 키를 올리고 내리는 것이 자유롭다. 카포를 이용하면 아예 거저고.
이걸 넘어 초보적인 곡을 연주하는 수준까지 오르는 데는 피아노와 기타가 엇비슷하다고 본다. ‘동요처럼 연주하는 수준’이라면 거기서 거기다. 굳이 따지자면 피아노가 약간 쉬울까?
이걸 지나 그런대로 ‘들을만한 연주’나 ‘상당한 수준의 반주’를 하려는 경우.. 이건 기타가 약간 더 쉬운 것 같다. 연주자체를 익히는 데엔 비슷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세세하게 다듬는 완성도 측면에선 기타가 약간 더 빨리 도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피아노를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내 친구 앤초비는, 고등학교때 순전히 독학으로 쇼팽과 리스트의 곡들을 그런대로 들을만 하게 연주해냈었다. 기타는 조금 배워보다가 포기한 놈이 피아노는 그리 쉽게 해냈던 것이다.
그 이후의 프로페셔널 연주는 난 모른다. 기타는 지금 열심히 그리로 가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피아노는 그 비슷한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악기 자체의 성능이 훨씬 뛰어나고 그만큼 포텐셜이 많은 피아노가 당연히 갈 길이 더 멀고, 그래서 넘어야 할 산이 훨씬 더 높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것.
폼 내기
사실, 대다수 일반인에게 더 중요한 건 연주의 수준이 아니라 과연 ‘얼마나 폼이 나는가’일 거다. 피아노와 기타.. 둘 다 엄청난 매력을 지닌 악기다. 피아노의 그 풍부한 표현력은 세상 그 어느 악기도 따라올 수 없음을 인정한다. 웅장할 수도 있고, 서정적일 수도 있다. 기쁠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다. 안되는 게 거의 없다. 기타가 따라가기엔 어림도 없다. 아무리 음향설비의 도움을 빌린다고 해도..
하지만 기타에게도 피아노가 가지지 못한 기타만의 매력 포인트가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기타의 분위기’다. 줄의 흔들림이 울림통을 통해 바로 흘러 나온다. 그래서 그 청아한 소리가 사람의 마음으로 직접 들어간다. 울림통에 직접 귀를 대고 듣거나 좋은 음향설비를 통해 들리는 기타의 소리는 가히 천상의 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답다. 그래서 넓지 않은 호젓한 곳의 차분한 분위기에선 기타만한 악기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흥청망청 사람들이 많은 공간, 음향시설도 별로인 곳에서 기타연주를 괜히 들이댔다가는.. 웅성웅성 아무도 듣지 않는 개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기타의 한계다.
같은 장소, 비슷한 수준의 연주실력, 같은 연주자, 음향설비의 도움으로 비슷한 음량이라고 할 때 과연 어떤 악기가 더 폼이 날까? 상상해 보자.
그랜드 피아노를 치는 남자 vs 기타를 치는 남자
고민할 것도 없다. 피아노 치는 남자가 훨씬 더 부티가 난다. 기타를 멋들어지게 치는 남자도 멋있지만 피아노를 멋들어지게 치는 남자가 훨씬 더 멋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어릴 적 ‘피아노는 기지배들이나 치는 거잖어’ 라며 뻐팅기던 내게 하시던 부모님 말씀이 맞았다. ‘남자가 피아노 잘 치면 얼마나 멋있는데’
기동력 - 크기와 무게
하지만 문제는 기동력이다. 피아노는1m정도의 높이에 1.5m정도의 넓이, 그리고 최대 3m에 육박하는 세로 폭을 가진다. 파이프 오르간을 제외하고는 아마 가장 큰 악기일 것이다. 무게도 장난이 아니다. 일반 가정용 피아노는 200~250kg, 그랜드 피아노는 최대 500kg까지 나간다. 아무리 작은 피아노라도 이동을 하려면 여러명이 붙어 여러 조각으로 분해를 해서 들어야만 하는 무게다. 이런 덩치와 무게 때문에 피아노는 ‘놓여져 있는 곳’에서만 연주가 가능한 악기다. 만약 그랜드 피아노를 가정에 놓고 싶다면.. 적어도 오스카네 집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아노 자체가 안쓰럽게 보인다.
그에 반해 기타는 품안에 들어올 만큼 작고, 깃털처럼 가볍다. 대개 1kg~2kg의 무게에 불과하다(일렉기타 제외). 내가 본 가장 무거운 기타인 오베이션 12현 기타도 2kg이 약간 넘는 정도다. 다만 기타보다 하드 케이스가 훨씬 더 무겁다.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7~8kg은 되는 것 같다. 그래도 기타와 케이스를 합쳐 10kg 정도이니 어느 곳에든 들고 갈 수 있다. 난 예전에 자전거 여행을 할 때에도 배낭옆에 기타를 메고 갔었다. 물론 비닐 케이스.
피아노가 아무리 위대하지만 기동력에선 빵점이다. 아무리 피아노를 잘 쳐도 장소가 마련되지 않으면 그 실력을 보여줄 수가 없는 거다. 반면 기타는 산속 해변가 펜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실력을 뽐낼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과 가까운 악기다. 그 옛날 근덕 바닷가.. 여자애들에게 자신의 피아노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앤초비가 생각난다. ㅋ
가격
현실적으로 중요한 건 역시 가격이다. 가정용 업라이트 피아노는 이삼백만원 정도 하고, 일반 그랜드 피아노는 천만원~3천만원 안팎, 하이엔드급 그랜드 피아노가 5천만원 안팎, 콘서트용 그랜드 피아노는 8천만원~1억원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기타는 일반적으로 50만원 정도면 그런대로 초보자가 쓰기에 무리가 없고, 하이엔드급이 3백~천만원, 그외 아주 특별한 기타들이 2천만원~4천만원 정도이다. (4천만원짜리라고 해서 소리가 그만큼 더 좋은 건 아니고 그 기타만이 가진 독특한 가치의 값) 대개 천만원 안팎의 하이엔드급 기타들이 연주용으로 쓰인다.
따라서 피아노와 기타의 가격은 같은 급으로 비교를 했을 때 약 10배 정도의 차이이다. 혼자서의 연주이든 청중앞에서의 연주이든, 용도만을 놓고 본다면 피아노는 기타에 비해 열배의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피아노가 주는 감동과 기타가 주는 감동이 열배의 차이가 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차이를 열배 까지라고는 느끼지 않는 일반인에겐.. 피아노는 너무 비싸다.
소리
앞 글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피아노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연주시에는 그 장점을 백분 활용할 수 있지만 평상시엔 그게 골치거리가 된다. 이만저만한 소음이 아니다. 똥땅거리며 연습하는 ‘엘리제를 위하여’.. 이거 최악의 소음이다. 가족간에도 스트레스이고 이웃간 분쟁의 소지도 된다. 방음시설을 갖추거나, 아니면 오스카네처럼 어마어마한 집이거나, 아니면 디지털 피아노로 헤드폰끼고 연습하지 않는 한 피아노의 커다란 소리는 영원한 골치거리다.
반면 기타는 이런 걱정 전혀 안해도 된다. 오히려 소리가 턱없이 작아서 걱정인 악기다. 그래서 남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선 음향설비가 필요하다. 음량도 키우고 음도 약간 가공하고.. 근데 이 설비들의 가격이 그리 만만치 않다. 기타에 욕심을 내듯 이런 설비들에 욕심을 내다보면, 경우에 따라선 기타의 가격을 능가하기도 한다. 혼자 즐기기 위해 간단한 효과가 몇 개 들어있는 앰프만 갖추는 거라면 그렇지 않지만. 나도 현재 설비 리스트를 뽑아놓고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오랫동안 별러오던 좋은 클래식기타를 하나 살지 아니면 그걸 포기하고 음향설비를 들여놓을지..
---
기타를 사랑하지만 피아노도 늘 그립다. 앞으로 기타를 아무리 잘 치게 된다 해도 피아노에 대한 그리움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 것 같다. 피아노는 내게 어린 시절 스쳐간 처음사랑과 같은 존재, 그래서 다시 꼭 만나고 싶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실에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를 놓고 한쪽엔 기타를 위한 좋은 음향설비를 갖추는 것이 내 꿈이다. 피아노곡을 굳이 기타곡으로 편곡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피아노곡은 피아노로 치고, 기타로는 기타곡만 치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
→ 피아노 vs 기타 1 – 기타곡으로 편곡하기
→ 피아노 vs 기타 2 – 기타는 작은 피아노
→ 피아노 vs 기타 3 – 뭐가 더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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