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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피아노 vs 기타 2 - 기타는 작은 피아노

작은 오케스트라
다른 악기의 도움 없이 혼자 독주를 하는데 듣기에 괴롭지 않은 악기는 바로 피아노다. 무반주 첼로 곡처럼 다른 악기들도 독주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몹시 지루하다. 하는 사람도 지겹겠지만 듣는 사람은 더 지루하다. 그러나 피아노는 (잘만 친다면) 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지루하지 않다. 다른 악기와는 달리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반주'도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아노는 혼자서 오케스트라 곡을 연주할 수도 있다. 단음으로 멜로디만을 연주하는 다른 악기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경지다. 쇼팽이나 리스트는 관현악곡들을 피아노곡으로 편곡 연주하곤 했었는데, 놀랍게도 관현악 원곡이 가진 느낌이 거의 그대로 살아있다. 80여 개의 악기가 연주하는 곡을 피아노 혼자서 비슷하게 재현해 내는 거다. 그래서 피아노는 ‘작은 오케스트라’다.

반주와 멜로디 연주를 함께 할 수 있는 악기, 그래서 솔로 독주가 전혀 지루하지 않은 악기는 피아노가 다가 아니다. 또 하나 있다. 바로 기타다. 그래서 기타를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솔직히 ‘작은 오케스트라’는 너무 심하고 ‘작은 피아노’ 정도라고 한다면 그런대로 격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얘길 피아노가 들으면 코웃음 칠 지 모른다. 기타 따위가 무슨 작은 피아노?


기타는 피아노를 따라갈 수 없다

1. 음량
피아노와 기타의 가장 큰 차이는 음량에서 나타난다. 피아노는 연주시 음량이 100 db정도 나온다고 하는데, 이에 비해 어쿠스틱 기타 연주시 음량은 80db 정도다. 100 하고 80? 얼핏 숫자로만 보면 기타의 음량이 피아노 음량의 80%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소리의 크기차이는 100배라고 한다. (10db 과 20db의 소리크기 차이는 2배가 아니라 10배란다. 또 20db과 30db의 차이도 또 10배이고. 즉 10 데시벨과 30데시벨의 차이는 3배가 아니라 100배, 따라서 80 데시벨과 100데시벨의 차이도 100배라는 얘기) 물론 이 차이는 전기음향기술이 보완해 줄 수 있다.

2. 음역
피아노는 건반이 모두 88개다. 즉 88개의 음을 낼 수 있다. 엄청난 음역대다. 그에 비해 기타가 낼 수 있는 음은 대략 40개 정도다. 기타는 피아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음역을 가졌다. 따라서 음악의 표현에 있어서 피아노에 비해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3. 한번에 내는 음의 숫자
피아노는 열개의 손가락으로 연주한다. 한번에 낼 수 있는 음이 10개이니 모든 화음 구사가 완벽하게 가능하다. 엄청난 표현력을 가진 악기다. 반면 기타는 네개의 손가락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한번에 낼 수 있는 음이 최대 4개다. (Stroke예외) 한번에 낼 수 있는 음으로 따져도 역시 피아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음량의 차이는 음향기술이 보완해 준다지만 음역대도 반 이하, 한번에 낼 수 있는 음의 숫자도 반 이하.. 단순하게 봐도 결국 기타는 피아노의 1/4 이하에 불과한 악기다. 따라서 원곡자체가 원체 심플한 곡이 아니라면, 기타로 피아노 곡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는 불가능하다.

4. 구조상 차이
피아노는 건반이 일렬로 늘어져 있으며 모든 건반이 각각 다른 음을 낸다. 그리고 왼손과 오른손이 완전히 별개로 연주를 한다. 따라서 오른손으로 아주 높은 멜로디를 연주하면서도 왼손으로는 아주 낮은 베이스를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멜로디와 베이스가 별개의 음역에서 자유롭게 연주될 수 있는 구조다.


이에 반해 기타는 왼손으로 줄을 눌러 높낮이를 결정하고 오른 손으로 퉁겨서 소리를 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타는 베이스 음과 멜로디 음이 아래 위로 무한정 갈라질 수가 없다. 멜로디가 높으면 베이스 음도 높아지고, 베이스가 낮으면 멜로디가 낮아진다. 멜로디와 베이스가 별개의 음역에서 자유롭게 연주될 수가 없는 구조다.

그나마 자기가 원하는 베이스 음을 찾을 수라도 있다면 다행에 속한다. 때에 따라선 그 베이스 음을 아예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왼 손가락이 무한대로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아노곡을 기타곡으로 편곡한 곡을 보면 소위 ‘괴물 운지’라는게 많다. 왼손가락들을 기괴하게 벌리고 찢게 되어있는, 그래서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매끄러운 연주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바로 Irregular Tune 이라는 거다. 일반 튜닝으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아예 줄의 조율을 달리 해서 연주를 하는 것)


그래도 기타는 작은 피아노다

1. 주법
대부분의 현악기들은 줄을 활로 긁어서 소리를 낸다. 그래서 한번에 낼 수 있는 음이 기본적으로 한 개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줄을 퉁기는(아르페지오) 기타는 한꺼번에 4개의 음을 낼 수 있다. 피아노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다른 악기들에 비해 월등하다. (하프는 내가 한번도 직접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또 사람 손가락의 구조가 엄지 손가락을 나머지 손가락이 바라보는 형국이다. 따라서 엄지 손가락으론 내려서 치고 나머지 손가락으론 올려서 치게 된다. 베이스와 멜로디로 분업하기가 아주 좋은 구조인 것이다. 여기에 몇가지 기교를 더하면 섬세한 리듬표현까지도 가능하다. 기타는 크기나 구조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가 가능한 악기다. 

2. 하나의 음을 여러 포지션에서
피아노에선 하나의 음을 내는 건반은 오직 한 개밖에 없다. 하지만 기타는 다르다. 하나의 음을 여러 군데에서 낸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C5가 기타에선 다섯군데나 된다.

상황에 따라 다른 곳에서 같은 음을 낼 수가 있는 것이다. 기타의 이런 구조가 피아노에 대한 열등함을 상당부분 상쇄해 준다. 숙달된 기타리스트(일렉기타나 플랫피킹기타)인 경우엔 피아노보다 더 빠른 속주가 가능하고, 클래식기타나 핑거스타일 기타에서 아름다운 화음을 가능한 게 다 이 덕분이다.


세상의 악보들은 피아노를 위한 악보다
악보대로 치면 저절로 음악이 되는 피아노와는 달리 기타는 악보를 초견에 보고 연주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예를 들어 C5음을 내야 한다고 하면, 네군데에 있는 C5중 도대체 어느 곳에서 소리를 내야 하는지 악보에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뒤의 음들과 연계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포지션에서 소리를 내야 하는지 때마다 다르다. 그래서 악보만 보고서는 아무리 기타를 잘 치는 사람도 초견연주가 어렵다. 연습할 때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야 하는, 초라해 보이는 그 짓을 꼭 해야만 한다. 같은 음을 여러 포지션에서 낼 수 있는 기타의 이 구조, 그래서 초견연주가 불가능한 점은 기타가 피아노에 비해 확실히 불리한 점이다. 이에 더해 더 난감하게 만드는 게 하나 더 있다. 기타 여섯줄의 줄간 음 차이가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음계라는 거 자체도 중간 중간 반음이 끼어있어 기타 연주가 어려운데, 줄간의 음 간격이 일정치 않다는 건 그걸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여러가지 조에서, 여러가지 상황에서 멜로디 연주를 하기 위해선 ‘스케일’이란 족보를 죽어라 하고 외우고 연습해야 한다. 물론 아무리 기본 스케일을 다 외워봐야 실전에서는 수시로 또 벽에 부딪힌다. 일렉기타리스트 지망생의 99.9%가 아마 이 벽을 넘지 못하고 포기할 거다.


타브악보 덕에 기타가 불리함을 이겨내다
핑거스타일 기타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느 줄에서 음을 내야 할 지 모른다. 다른 연결음들과의 거리를 따져가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야 한다. 결국 세상의 악보는 기타에겐 먼 나라 악보다.

그래서 가장 먼저 등장했던 게 숫자로 프렛의 위치를 표시해주는 거였다. 몇 프렛인지만 미리 알아도 연주하기가 훨씬 수월했었다. 하지만 요즈음 기타 악보는 Tablature 가 대세다. 흔히 ‘타브악보’라고 불리우는 악보다. 이 악보엔 오선지와 콩나물이 없다. 대신 여섯줄의 기타줄이 표시되어 있고 운지해야 할 포지션이 숫자로 표시되어 있다. 피아노 연주자가 피아노 악보를 초견으로 치듯이, 기타 연주자도 초견으로 연주가 가능하게 보여주는 악보다.

물론 타브악보에 단점도 있다. 악보만 보고서는 도대체 어떤 느낌의 곡인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시종일관 리듬이 거의 같은 밴조의 악보는 최악중의 최악이다. 악보만 보고선 곡의 느낌을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고자 대부분의 타브악보엔 위에 일반 악보도 같이 표시되어 있다. 아무튼 이 타브악보라는 것 덕분에 피아노에 비해 독보에서 크게 밀리던 기타의 단점이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기타를 '작은 피아노'라고 불러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피아노와 기타는 완전히 다른 악기다. 사실 비교하는 거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그렇지만 둘 다 워낙 친숙한 악기이다 보니 사람들이 여러면에서 비교하게 된다. 함 해보자.


→ 피아노 vs 기타 1 – 기타곡으로 편곡하기
→ 피아노 vs 기타 2 – 기타는 작은 피아노
→ 피아노 vs 기타 3 – 뭐가 더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