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

'구속'도 일종의 '고문'

친구가 검사 시보를 하면서 했던 얘기 중 두가지가 기억에 남아 있다. ‘검사님처럼 젊은 분이 날 어찌 이해하시겠수?’ 간통죄로 고소당해 조사받던 한 중년 여인의 얘기였는데 ‘구치소에 갇히는 순간 딱 지옥에 떨어진 느낌’이었다는 말도 그녀가 하더란다. 그 얘길 하면서 친구가 내게 말하길 ‘간통죄라는 것은 참 아리송한 죄’이며, ‘구속이라는 것은 오직 검사들만을 위한 제도인 것 같다’고 했었다. 간통죄는 기회가 나면 따로 이야기 하기로 하고, 오늘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구속’이라는 거 얘기해 보자.

내가 예전부터 ‘구속’이라는 거에 대해 거품을 무는 걸 보고 아마 일부 분들은 ‘아마 이자가 예전에 구속당했던 경험이 있는가 보다’ 라고 짐작하시는 줄 잘 안다. 하지만 난 구속경험은 없다. 구속은 간접경험만 두번 했을 뿐이다. 굳이 내 경험을 고백하자면 경찰서 유치장 한번 군대 군기교육대 두번이 전부다. 구속은 아니지만 비인간적인 곳에 일정기간 강제수감되었던 이 경험과 막 구속당한 사람을 꺼내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경험이 나로 하여금 구속이란 걸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동업자가 어떤 사람을 횡령으로 고소했다. 그래서 그가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았는데 검찰청에서 느닷없이 구치소로 직접 들어갔다. 다음날 구치소로 면회를 가서 사정을 들어 본 즉, 검사와 대화를 하던 중 검사가 갑자기 ‘이 새끼 콩밥을 멕여야 정신 차리겠군’ 하더니 바로 사람을 불러 ‘이 새끼 구속시켜’ 그리곤 곧바로 영등포 구치소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 시간이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평소 그 사람의 말투가 빈정대는 투인 데다가, 눈빛도 선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검사에게 조사받는 태도가 상당히 불량했을 것이다. 싸가지 없다고 생각한 검사가 열 받아서 그리 한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참내.. 검사님앞에선 좀 참으시지. 검사한테 엉기면 당연히 구속되지..

그는 면회 온 우리에게 미친사람처럼 외쳤다. ‘죽을 거 같아. 나 여기에 일분도 못 있으니까 당장 꺼내줘’ 절규를 하고 있었다. 그때 검사시보였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지옥에 떨어진 느낌이라는 게 바로 이런 상황을 얘기한 거구나. 구치소에서 딱 하루를 보낸 그는 정상인이 아니었다. 극도의 공포감에 떨고 있었다. 예전 남대문 경찰서 유치장이 떠올랐다. 경찰서 유치장도 들어가니 갑자기 기가 확 죽던데 구치소는 오죽할까.. 면회시간이 끝나 나오는 우리 뒷통수에 한번 더 그가 외쳤다. ‘오늘 안으로 못나가면 나 여기서 죽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는 이후 두달정도 더 구속된 상태에서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만 했었다. 그러다가 보석으로 나와 재판을 받았는데 ‘모두의 예상대로’ 가벼운 형량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근데 두달이나 구속되어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그가 그때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구속된 상태에서의 검찰 조사는 ‘무기 하나 없이 깡패들과 맞서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어차피 보석으로 풀어줄 걸 왜 두달동안이나 사람을 구속시켜 놓았는지 이유는 뻔하다고 했었다. 사람이 구치소에 갇히면 지옥의 나락에 떨어진 절망감으로 검사들의 추궁에 쉽사리 죄를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구속이라는 제도 덕에 검사는 귀찮게 증거를 수집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피의자를 일단 구치소에 쳐 넣기만 하면 궁지에 몰린 피의자의 자백으로 쉽게 끝낸다는 것이다.

---

하도 주변에 구속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우리 국민들은 구속의 관행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아니 ‘구치소’와 ‘교도소’를 구분 못하는 사람도 천지다.)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므로, 일벌백계의 필요가 있으므로, 사회적 파장이 크므로, 공안사건이므로..’ 등등의 이유로 무차별 구속하는 관행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교통사고를 냈는데도 구속되고, 동업자간 금전문제가 발생해도 구속되었었는데, 우린 이게 당연한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유들은 법이 정한 구속요건과 전혀 무관하다. 법이 규정하는 구속요건은 ‘증거인멸 또는 도주의 우려가 있는 경우’다. 이에 해당하는 경우 외에는 구속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불구속 수사 원칙’이다. (물론 ‘증거인멸 또는 도주의 우려’를 판단하는 기준이 너무 애매모호하긴 하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구속이라는 개념을 전혀 엉뚱한 기준과 목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일벌백계, 사회적 파장을 고려..

또 국민들이 검찰의 위상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검찰은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곳이 아니다. 수사기관이다. 구속의 결정 역시 판사만이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검찰은 건방지게 ‘구속수사할 방침’이란 말을 지껄이고,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고 사법정의 운운하며 국민들을 선동한다. 국민들은 검찰은 당연히 그런 곳인 줄 안다.

재판에서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피의자는 무죄일 것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이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그러나 검찰이 지목하여 ‘피의자’가 되는 순간 국민들은 그를 ‘범죄자’로 심증을 굳혀버린다. 검찰이 기소하면 그것이 바로 유죄가 되는 걸로 착각한다. 우리 국민들에겐 검찰이 혐의를 가지면 바로 ‘유죄확정의 원칙’이 발효된다. 국민들은 검찰을 그렇게 대단한 곳으로 안다.


부주의로 교통사고를 낸 사람을 왜 구속했을까? 그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었을까? 아니다. 근데 왜 구속시켰을까? 합의하는 피해자들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아닌데 왜 구속시켰을까? 재판에서는 형을 받지 않을 것이니 징벌의 의미로 구속시켰었다.

동업자간 금전문제인데 왜 구속시켰을까? 그것도 구속영장도 없이 검찰에서 곧바로 구치소로. 신분이 확실하고 모든 서류를 전 회사에 두고 온 그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었을까? 아니다. 근데 왜 그렇게 긴급 구속시켰을까? 어이없게도 이유는 하나, 검사에게 불손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들이 대한민국의 검사들이었다. 국민들에게 징벌을 가하는 무서운 권력.

---

조사를 받던 중, ‘검사님은 왜 그새끼 말만 듣고 내말은 안 믿는거요?’ 했다 치자. 혐의를 부인한거다. 그러면 검사 입장에서 앞으로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간다. ‘이 새끼 어떻게 빨리 끝내는 방법 없을까?’ 아주 좋은 방법이 있다. 구속시킨 상태에서 조사 하면 된다. ‘혐의 부인’을 곧바로 ‘증거인멸의 염려가 크다’라고 밀어붙이고 일단 구속시킨 다음,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피의자의 약점을 이용해서 빨리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다.

믿겨지지 않지만 그동안 검사들이 남용했던 구속은 다 이것 때문이었다. 구속이란 자백을 강요하는 수사기관의 악랄한 ‘고문’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피의자를 완전히 무장해제시키고 자기 마음대로 조사를 했다. 피의자는 결코 죄인이 아니다. 피의자도 검사와 똑같은 국민으로 공명정대하게 조사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검사들은 그 권리를 구속이라는 제도로 무력화시켜 버리고 자기 멋대로 구속이라는 '고문'을 지금껏 자행하고 있었다.

증거는 수집하지 않은 채 자백으로 기소를 하는 게 몸에 밴 대단한 대한민국 검찰에게 피의자의 구속여부는 기소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절차요 목표였다. 그래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니 이리 길길이 뛰는 것이다.

---

안다. 신정아가 크게 잘못해서 신정아를 잡아 넣으려고 조지는 게 아니라 신정아 배후를 캐기 위해 이런다는 걸. 그래서 언론이 신정아를 그렇게 모욕적으로 들쑤신 거고, 검찰도 그래서 신정아를 구속 수사하겠다고 한거다. 근데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덧붙이길, 이 혐의가 나중에 실형이 선고될 수 있는 사안인지도 아직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이 난리가 났다. 사법정의가 죽었네 어쩌네 하면서. 구치소에 쳐박고 길을 들여서 자백을 받아내려고 했는데 이년을 잡아 가두지 못했으니 자기들의 구태의연한 수사실력으로는 힘들게 됐다. 그래서 검찰 열 받았다. 연달아 청와대 누군가도 영장이 기각되었다. 이젠 열받는 정도가 아니라 개망신을 당했다. 그래서 국민들을 선동해서 여론을 검법갈등으로 몰아간다. 검찰권력의 최후의 발악처럼 보인다. 고맙게도 일부 국민들도 덩달아 난리가 났다. 죽일년을 왜 구속하지 않았느냐.. 그년 구속 안 시키면 무슨 수로 배후를 캐내겠는가.. 구속영장의 기각은 법원이 정권의 하수인임을 드러냈다.. 사법정의의 초후의 보루는 역시 검찰이다..

---

다시 말씀 드립니다. 구속은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을때’ 만입니다. 나쁜년이라고 구속하고,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서 구속하고, 배후를 캐기 위해 구속하는 게 아닙니다. 신정아는 지금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거 무죄상태입니다. 그간 우리가 구속을 징벌로 여겨왔지만, 구속은 그런 제도가 아닙니다. 검찰이 피의자에게 자백을 끌어내는 고문도 아닙니다. 구속은 피의자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때에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제도입니다. 우리들은 그동안 까맣게 속아왔었습니다.

오랫동안 ‘피의자는 구속이 원칙’인 것처럼 잘못 운용되어 온 탓에 피의자가 구속되지 않으면 제대로 응징되고 처벌되지 않는 듯이 느끼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누차 말했지만 ‘반성의 기미가 없음’, ‘일벌백계의 필요’, ‘사회적 파장’, ‘재범위험성’ ‘공안사건’ 등등은 구속요건이 아닙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검사가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대한민국 사법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법관들이 많다는 상징적 의미입니다. 비록 얼마전 재벌총수들에게 무더기 집행유예를 내린 법관도 있고, 관행대로 꼬투리 없이 영장을 턱턱 발부해주는 판사들이 아직은 더 많지만, 적어도 ‘무죄추정의 원칙’ 과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지키려는 법관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봐야겠습니다.

법원의 영장담당 판사에게 과연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판사들이라면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우리라고 믿습니다. 그들의 판단에 정치적 배려가 있든 없든, 그들의 이번 결정이 결과적으로 노무현에게 유리해지든 이명박에게 유리해지든, 혹은 대선에서 이명박에게 유리하든 문국현에게 유리하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사법정의의 실현입니다. 따라서 요건이 되지 않는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들의 행동은 박수받아야 마땅합니다.


IT 최강국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사회 곳곳이 이렇게 아직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음은 제발 우리끼리만 알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