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토론을 벌이는데, 특정용어에 대한 개념정의가 서로 다르다. 얼마 가지 않아 대화는 끊기고 상종 못할 바보천치라는 낙인을 서로 찍는다. ‘저 븅신새끼는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 쳐먹어..’
만약 이런 현상이 국민들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한다면, 즉 특정용어에 대한 개념정의가 국민들간 다르다면? 생각만 해도 골 때릴 일이다. 근데 바로 지금 한국에서 이 현상이 ‘현재진행형’이다. 바로 ‘좌파 우파’ 그리고 ‘보수 진보’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정의가 제 각각인 채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점잖은 표현이 아닌 ‘꼴통보수새끼’아니면 ‘좌빨새끼’ 다. 이런 모용적인 호칭을 서로 부르면서 서로 분에 못이겨 부글댄다. 난 진보인데 나보고 꼴통보수라니.. 난 빨갱이가 싫은데 나보고 좌빨이라니.. 가뜩이나 상대가 싫은데 더 싫어진다.
1. 좌빨 vs 꼴통보수
어느 국가이든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사라지면 ‘보수 vs 진보’ 의 구도가 자리잡게 마련이다. 이런 대결구도가 바로 국가가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우리나라도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는 이미 사라졌다. 하지만 새롭게 들어선 구도가 좀 특이하다. ‘좌빨 vs 꼴통보수’라는 구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용어의 상대적 개념에 따른 정확한 대칭은 ‘좌파 vs 우파(좌빨 vs 우꼴)’ 이거나 ‘보수 vs 진보(꼴통보수 vs 빨갱이진보)’ 여야 맞다. 근데 우리나라에선 ‘좌파 vs 보수’ 이다. 뒤에 얘기한다.
보수와 진보는 어느 한쪽이 나쁘고 좋다는 개념이 아니다. ‘똑같이 나라를 사랑하지만 다만 방법과 시기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상국가에선 이런 상호 이해와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조국에선 그런 정상적인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나와 다르면 무조건 ‘개정일의 쫄따구’ 아니면 ‘개부시의 머슴’이다. ‘빨갱이’ 아니면 ‘숭미 사대주의자’인 것이다. 이들에게 상대방은 '방법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라를 좀먹는 원수다. 같은 길을 가는 국민이 아니며, 같은 피를 받은 동족도 아니다. 싹을 자르고 뿌리를 뽑아내야 할 썩은 암세포다. 그래서 나와 다른 정치가 정권을 잡으면 악을 쓰며 비난하고 헐뜯고 흠집내어 기어코 파멸시켜 버린다.
우리나라에서 좌빨과 꼴통보수의 구분은 참 독특하다.
좌빨이란
김대중이나 노무현 지지자거나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거나
조중동을 안 읽는 사람들이다.
꼴통보수란
한나라당을 지지하거나
이명박을 지지하거나
조중동을 읽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좌빨과 꼴통보수를 나누는 기준은 세계적으로 독특하다.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 북한과 미국에 대한 인식, 근본주의 기독교, 그리고 읽는 신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좌우, 진보 보수의 구분은 무엇일까?
2. 보수 진보, 좌파 우파의 원래 의미
잘 알다시피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은 프랑스에서 비롯됐다. 프랑스 혁명 직후 의회에 급진파는 왼쪽 의석에 자리 잡았고 온건파는 오른쪽에 자리 잡은 데서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가 유래했다.
특별한 게 아니었다. 어떤 정책에 대해 변혁적, 급진적인 입장을 가지면 좌파이고 보수적, 온건적인 성격을 가지면 우파였다. 즉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같은 주장이라도 국가의 상황에 따라 좌파가 되기도 하고 우파가 되기도 한다. 이해를 돕기위해 예를 들어보자. ‘시장경제주의’라는 이념을 놓고 볼때, 한국에선 시장경제의 존속을 주장하는 사람이 우파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시장경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이 좌파가 된다. 즉 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을 주장하면 좌파이며, 체제의 유지 혹은 점진적 변화를 주장하면 우파다. 좌파나 우파는 특정한 사상이나 이념을 정의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상대적인 의미보다는 절대적 의미에서 좌우파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대부분 국가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나 민주주의의 결함을 문제 삼으면 좌파, 그것의 우월성을 옹호하고 그것의 유지 혹은 점진적인 개선을 주장하면 우파라는 개념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민족과 국가, 세계관도 포함되었다. 현재 좌우 진보 보수라는 용어의 보편적인 개념을 요약해 보면
좌파 - 진보(급진적 개혁) / 분배우선 / 범국가주의
우파 - 보수(점진적 개혁) / 성장우선 / 민족주의
3. 우리나라 좌파와 우파의 개념 생성에서의 왜곡
그렇다면 원래의 이 개념과 현재의 우리나라 좌빨과 꼴통보수를 비교해 보자. 좌빨이 진보성향이고 분배우선인 것은 맞다. 그러나 범국가주의는 아니다. 오히려 FTA를 반대하거나 북한동포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그런 민족주의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우리나라 좌빨은 일정부분 우파다.
꼴통보수가 보수적이고 성장우선인 것은 맞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아니다. 오히려 FTA를 강력 추진하는 등 범국가주의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우리나라 꼴통보수는 일정부분 좌파다. 이상하다. 다른나라들은 우익들의 극렬한 폐쇄적 민족주의로 몸살을 앓는데 우리나라 우익들의 시위엔 '성조기'가 등장한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 왜곡은 무엇일까?
일제강점기로 가봐야 이 의문이 풀린다. 당시엔 친일이 우파, 민족독립이 좌파였다. 물론 친일이든 독립이든 양쪽 다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 그리했었다는 것은 아마 공통적인 것일 것이다. 해방이 되자 우파였던 ‘친일’들이 골때려졌다. 비록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던 사람일지라도 ‘친일파’라는 부끄러운 족쇄가 옭아매어진 것이다. 다행히 그 무렵 그 족쇄를 단숨에 떨쳐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바로 반공 이데올로기였다.
그래서 그들은 미군정을 받아들이고 반공을 해야 국가가 발전한다며 부르짖기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애국 우파로 규정짓고, 그들과 대척점에 있던 민족진영을 국가전복의 위험이 있는 좌파로 몰아붙였다. 친일인사들이 친일파의 족쇄를 슬그머니 벗고 애국하는 우익으로 둔갑했다. 당연히 ‘미군정 반대’와 북한을 감싸안는 ‘민족주의’는 국가에 해가되는 좌익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 ‘민족을 말하면 불순한 좌파’라는 관념이 생긴 것은 이때가 시작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우파, 유럽의 우파를 보자. 우파들은 타인종 타민족에게 테러를 가하고 자기 민족의 융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우파의 최우선 요건은 ‘민족주의’와 ‘반 글로벌화’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정반대이다. 우파의 최우선 요건이 ‘탈민족주의’와 ‘글로벌화’이다. 희한한 왜곡이다.
앞서 말한대로 친일인사들이 확대 조작한 ‘약소국 콤플렉스’와 ‘반공 이데올로기’ 의 산물이다. 갈라진 이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비위를 맞추며 협조해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상황인식. 그래서 아직도 한국에서는 우익 혹은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한국땅에서 성조기를 들고 친미찬양시위를 할 수 있다.
4. 좌빨과 꼴통보수는 원래 실체가 없다.
앞서 말했지만 꼴통보수이든 좌빨이든 국가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은 같다. 다만 방법이 틀릴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진보와 보수는 상대를 그렇게 이해 배려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보수진영은 상대를 칭할 때 느낌이 좋은 ‘진보’라는 말보다는 빨갱이 냄새가 묻어나는 ‘좌파’라는 말을 쓴다. 마찬가지로 진보진영은 상대진영을 칭할 때 민족주의 냄새가 묻어나는 ‘우익’이라는 말보다는 고리타분한 느낌이 배어나오는 ‘보수’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좌파와 우파의 벽은 이미 없다. 좌빨은 좌파이면서 동시에 보수이며, 꼴통보수는 보수이면서 동시에 좌파이기 때문이다. FTA를 시작한 노무현정권은 범국가주의이니 당연히 좌파정권이지만, 그 FTA를 밀어붙이고 있는 이명박정권도 좌파정권이긴 마찬가지이다. 역시 범국가주의 국가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북한을 끌어안은 김대중과 노무현정권은 민족을 우선하니 우파정권이며, 민족보다 세계로 눈을 더 돌리는 이명박정권이 되레 좌파정권이다. 이건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FTA를 반대하는 진영이 진보진영이고 FTA를 밀어붙이는 부시정권이 보수정권이다. 이미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한가지로 뭉뚱그려 개념지을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성향을 비교해서 편의상 나누는 그런 상대적 개념으로 다시 바뀌고 있다. 그래서 ‘진보적 보수’니 ‘중도적 진보’니..이런 퓨전용어가 나온다. (물론 우리나라엔 꼴통보수가 실제로 있긴 있다. 숭미사대주의, 철 지난 반공주의, 기독교 근본주의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 일률적인 좌익이나 우익은 이미 없다. 일률적인 진보나 보수도 마찬가지다. 정책이나 상황에 따라 진보일 수도 있고 보수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진보와 보수가 무수하게 뒤얽혀있는 사람이다. 이건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이건 모든 국민들이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쓴다.
5. 좌빨과 꼴통보수가 있어야 연명하는 자들
이런 시대착오적 전투용어를 조장하는 건 정치인과 언론들이다. 편가르기를 해야만 존재의 의미가 있는 그 쓰레기더미들이다. 몇 달전을 돌이켜 보자. 이명박의 당선과 한나라당의 압승 전략이 무엇이었는지. 간단하다. 아예 있지도 않았던 좌빨의 유령을 끄집어내어 부관참시하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10년’ 이라는 유행가 제목 슬로건으로 그들은 국민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승리했었다. 당시에도 우리사회엔 좌파도 없고 우파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쓰레기더미들은 과거 친일파들이 그랬듯 교묘하게 IMF 족쇄를 슬그머니 벗어버리고 국민들을 분열 선동시켜 정권을 잡았다. 과거 군사정권이 전쟁위기로 위협했듯 모든 것을 좌파의 실정이라고 선동을 했다.
이 선동에 이성을 잃은 상당수 국민들은 경제정의가 바로서야 나라가 일어서는 게 아니라 우파가 정권을 잡아야 경제가 일어선다고 착각했었다. 소위 그들 우파들이 창조해 낸 허상, ‘좌파정권’의 망령에 미친 듯 휩싸이더니 결국 우파 이명박과 우파 한나라당에게 표를 쏟아 부었었다. 나라를 살리라며.
6. 이제 제발
근데 요즈음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죽을 쑤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명박이나 한나라당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을 욕할 자격이 없다. 불과 몇달전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선택한 건 우리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또 그 이명박의 당에게 국회 안정의석까지 준 것도 바로 우리 국민들이다. 그래서 우리들 전부는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에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욕할 자격이 근본적으로 없다. 이거 아주 쌤통이다.
다행히 많은 국민들이 이제는 이성을 되찾아가는 듯하다. 그래서 청계천에 나가 재협상촉구와 이명박 탄핵을 외친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현실적으로 돌이키기가 불가능하다. 국민들도 안다. 그냥 그렇게 이명박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다.
하지만 이명박에게 대한 경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몇 달 전 이성을 잃고 좌파와 우파의 분열획책에 휩쓸렸던 자신들을 반성하는 일이다. 그래서 맹목적으로 이명박을 지지하고 맹목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그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 좌파나 우파는 없다. 진보와 보수라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개념만 존재한다. 모든 것에 전부 다 보수적인 사람도 없고, 모든 것에 몽땅 진보적인 사람도 없다.
다시는 정치꾼들과 쓰레기 언론의 유치한 전략, 보수진보 우익좌익의 분열획책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 쓰레기더미들이 치워지지 않고 악취를 풍기는 한 이 분열획책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국민들부터라도 정신을 차리자. 이런 용어를 철저히 배척하자. 정치꾼들과 극우언론이 표를 위해, 편가르기를 위해 국민들에게 가르쳐준 말, 상대방을 비난하고 헐뜯기 위한 말 ‘좌빨’과 ‘꼴통보수’.. 이제 고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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