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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잊혀진 그리움이란 불치병

어느 한가한 날, 하루 종일 해바라기의 노래만 들었습니다. 나름 죽을 고비를 한번 넘긴 후^^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추억여행 삼매경..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어둠이 내린 거리, 오랜 침묵은 깨어지고.. 늘 그렇듯 해바라기의 음악들은 신통방통 타임머신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동안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았았던 노래 하나가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잊혀진 그리움’ 



달빛이 머리맡에 곱게 비춰도 

지금은 잊혀진 그리움이외다
내 맘 속에 남아있던 님의 노래도 
지금은 잊혀진 그리움이외다
이제나 저제나 못잊던 마음도
지금은 잊혀진 그리움이외다

 

잊혀졌다면 이미 그리움이 아닐진대 잊혀진 그리움이라고 했습니다. ‘침묵소리의 완전 모순되는 두 단어가 나열된 Sound of Silence 정도는 아니지만 잊혀진 그리움’의 모순도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당시 삼십대 초반이었던 젊은 해바라기의 말장난’? 세월이 흐르면서 옛사랑에 대한 그리움 자체가 옅어져 가는 데에 대한 안타까움? 혹은 잊을 수 없던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자기 최면? 너깟년 아니라도 난 잘 살아.. 이 정도 생각하다 말았습니다. 전혀 중요한게 아니니까.

 

근데 귀신에 홀린 듯 이 노래를 자꾸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문법에 생각이 이르렀습니다잊다의 '피동사' 잊히다. 그리고 '중복피동' 잊혀지다.. 즉 잊혀진 그리움이란.. 상대로부터 잊힘을 당한그리움이었던 겁니다. 즉 나는 그리워하는데 그 대상은 날 잊어버린.. 일방적으로 잊힘을 당한 나 혼자만의 불쌍한 그리움이었던 겁니다^^

이역만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은 옛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겹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만 갑니다. 그러던 중 쓸쓸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뜸해지는 연락과 소식. 사는 모습에 따라 갈려 흩어지게 되는, 우리 또래 남자들의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자위를 하지만, 한편 나라는 존재가 너무 오랫동안 그곳에 없었다는 사실도 자각하게 됩니다. 나는 그리워하지만 정작 나는 잊혀지고있었다는.. 그래서 몹시 그립지만 돌아가기는 망설여지는모순된 상황에 빠집니다. 갈 수가 없어서 더 그립기도 하고.. 바로 잊혀진 그리움’이란 불치병을 앓게 되는 거였습니다.

 

삼십대 초반의 젊은 해바라기가 노래하던 사랑노래 하나가

이 나이에 이렇게 가슴 싸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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