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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Black Friday, 이틀을 날려먹다

대부분 남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샤핑하러 돌아댕기는 걸 참 싫어한다. 땡스기빙 연휴 4일.. 이 핑계 저 핑계로 몇달을 미루던 아웃렛 샤핑이지만 4일 연휴엔 더 이상 댈 핑계가 없다. 그래서 연휴중 하루 날을 잡아 '대대적'인 샤핑을 하기로 했다. Palm Springs쪽의 Cabazon 아웃렛으로 갔다가 오는 길에 Mathis Bros 가구점까지 들르기로 했다. 한번 나서는 김에 두군데를 한꺼번에 들르기로 한 것이다. 

그나저나 어떤날 가야할까? 그 유명한 '블랙 프라이데이'는 땡스기빙 다음날이다.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은 집에서 쉬고 싶고.. 남은 건 땡스기빙 당일뿐이다. 사람들이 다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테니 샤핑몰이 한산할 터, 인터넷으로 확인을 해보니 땡스기빙 날 마침 카바존과 매이티스 두군데 다 오픈한단다. 그래서 땡스기빙 날 다녀오기로 했다.

당일 날.. 서너시간 운전에 대여섯시간 걸어다닐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그래서 가구점은 포기시키고 그냥 아웃렛에만 다녀오기로 했다. 그렇다면 굳이 그 먼 카바존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래서 LA에서 가까운 Camarillo 아웃렛으로 정했다.

언제 출발할건데? 점심 먹고 출발하자. 제일 한가할 거야 그 시간이.. 프리웨이로 향하는 동네길들이 마치 예전 한국의 추석날처럼 한산하다. 유리창을 조금 열어보니 알싸한 가을 향기.. 전형적인 LA 가을날씨, 마치 삼사십년전 한국의 깨끗한 가을을 방불케 하는 그런 날씨, 나오길 잘했다.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하지만 프리웨이에 들어서자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예상외로 엄청나게 밀리고 있었던 거다. 아마 사람들이 전부 나처럼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밀리는 길에서 '돌아갈까 그냥 갈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차에 다행히 이삼십분 만에 길이 시원하게 뚫리기 시작했다. 시원한 드라이브에 멋진 음악. 멀리 아웃렛 입구가 보이는데 아주 한산하다. 거봐 오늘 오길 정말 잘했지..

주차장에 들어서고 나서야 알았다. 모든 매장 CLOSED!

우씨 확인했다며? 확인했는데.. 아 맞다. 카바존 아웃렛에 갈 생각에 이곳 까마리요는 확인 안 해봤다. 아니면 아웃렛은 오픈한 게 맞지만 각 매장들이 문을 열지 않았거나. 좌우간 헛걸음이다. 가슴 졸이며 야채의 눈치를 살피는데 다행히 화를 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 걱정을 해준다. 휴 다행이다. 왕복 두시간 반.. 그냥 시원한 드라이브에 음악감상한 셈 치기로 했다. 그나저나 우리같은 사람들 꽤 많다. 주차장 한바퀴 빙그르 돌고 나가는 차들이 꽤 된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 나같은 멍청이들이 꽤 된다.

담날 블랙 프라이데이.. 자발적으로 아침부터 서둘러 일찌감치 출발을 하기로 했다. '블랙 프라이데이'이긴 하지만 백화점에나 사람이 많지 그 먼 아웃렛까지 설마 사람들이 오겠나.. 아홉시반쯤 출발했다. 마침 프리웨이도 뻥 뚫려있다. 50분만에 까마리요에 도착했다. 후딱 샤핑하고 점심은 집에 가서 갈비찜 먹장.

입구에서 알았다.

말로만 듣던 블랙 프라이데이. 만주벌판처럼 넓은 주차장이지만 주차할 곳이 없어 자동차들이 수십대씩 길까지 밀려있고, 교통정리하는 자원봉사 할아버지들이 수십명, 그 넓은 아웃렛 전체가 사람들로 인산인해, 아직 오픈하지 않은 매장앞에도 수십미터 줄이 벌써 서있고, 오픈한 매장 안은 남대문 돗대기시장.. 아 잘못왔다 띠바. 하지만 어제도 헛걸음, 오늘마저 헛걸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동안 헤매다가 아웃렛 젤 외곽 주차장에 운 좋게 자리 하날 얻었다. 필요한 것만 사고 바로 가기로 했다.


세번째 가게.. 야채가 자기옷 내옷 몇벌 골랐단다. 하지만 계산하는 줄이 엄청나게 길다. 이거 꼭 오늘 사야 돼? 사야 돼. 지루하면 나가서 기둘려.. 그래서 나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앉을만한 곳은 모두 점령당하고 없어서 기둥에 기대어 서서 사람들을 구경한다. 인종 구분하기.. 쟤는 남부유럽 백인, 쟤는 동유럽 백인, 쟤는 라띠노, 쟤는 무슬림.. 그리고 동양인 구분하기.. 쟤는 짱깨, 쟤는 일본애, 쟤네들은 월남,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한국인들. 그리고 인종구분이 전혀 안되는 혼혈들.. '인종 전시장' 구경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을 보니 삼십분이 넘었다. 아니 이 여편네가.. 매장안에 들어가보니 야채 아직도 줄에 있다. 앞에 옷을 산더미처럼 산 놈들이 있어서 그놈들 계산에 몇십분이 걸렸단다. 40% 50% 세일을 하니 그럴만도 하겠다. 보따리로 떼어다가 동네가게에서 팔려는 놈들. 겨우 계산을 끝내고 나왔다. 기다림에 확 질린다.

다음 가게, 그 다음 가게.. 마찬가지다. 계산대의 줄이 끝도 없이 길다. 물건을 고를 엄두가 나질 않는다. 다행히 옷가게가 아닌 곳은 사정이 좀 낫길래 옷은 포기하고 신발이나 사기로 했다. 미국에서 구두사기.. 스타일 따질 겨를이 없다. 사이즈 맞는 게 있으면 그냥 사야한다. 한국남자 표준인 '10 문 7' 이건만 미국 가게엔 이 사이즈가 가물에 콩나듯 한다. 마침 그 사이즈 구두가 있길래 일단 골랐다. 야채도 하나 골랐단다. 계산하고 나오길 밖에서 기다리는데 또 감감소식이다. 다시 들어가보니 초보 점원이 카드결제를 헤매고 있단다. 카드를 취소하고 현금결제를 하고 싶어도 이 초보놈이 확실히 카드결제를 취소 할지 믿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거기서도 십분이상 기다려야만 했다.

지친다. 

시간이 벌써 두시를 향해 가고있다. 산것도 없는데 사람에 휩쓸리다가 시간만 흘렀다.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보니 허리도 아프다. 몇가지 살게 남았지만 도저히 더 돌아다닐 엄두가 나질 않는다. 오늘은 그만 가고 담에 다시 오면 안될까? 다행이 야채가 동의를 한다. 그래 그러자. 

돌아오는 길, 아웃렛으로 향하는 프리웨이가 꽤 멀리까지 차로 꽉 막혀있다. 아마 다 이 아웃렛으로 오는 차들일거다. 프리웨이가 뻥 뚫려있었던 오전에도 돗대기 시장이었는데 오후엔 아예 전쟁터가 되겠다. 지금이라도 빠져나가길 참 잘했다.

헛웃음이 나온다. 겨우 옷 서너벌에 신발 두켤레.. '이틀'에 걸쳐 '두번'이나 와서는 백불어치도 못사고 그냥 돌아가는 거다. 연휴 4일중 이틀을 이렇게 날렸다. 띠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