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 나이를 실감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중 하나는 아마 숙취일 겁니다. 예전엔 일어나기가 좀 힘들긴 해도, 일단 일어나기만 하면 금세 정상생활이 가능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숙취로 도통 맥을 못추기 시작합니다. 오전만 힘들다가, 하루종일 힘들다가, 급기야 이삼일 뒹굴거리며 고생하기도 합니다.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끊어야 하나.. ‘술이 주는 즐거움'보다 '숙취의 괴로움’이 훨씬 더 커진 겁니다.
숙취는 아직 의학적으로 불분명하답니다. Acetaldehyde니 Congener니 원인물질들을 얘기하지만, 그 흔한 숙취두통도 왜 생기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혈관확장때문이라느니, 독성물질때문이라느니, 수분과 산소부족때문이라느니.. 그 두통해소에는 타이레놀이 좋느니 아스피린이 좋느니.. 또 숙취해소에는 콩나물국이 좋느니 북어국이 좋느니.. 다 쓸데없고 잠과 물이 최고라느니..
사실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발기부전이 ‘섹스를 하지 말라’는 우리 몸의 신호이듯, 심한 숙취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신호입니다. 숙취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면 술을 안마셔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남자들에게 술의 유혹은 끈질깁니다. ‘알딸딸해진 상태에서의 인간교류’가 습관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담날 숙취가 무섭지만 그걸 각오하고 계속 술을 마십니다.
지구상에서 사회적 폐해가 가장 큰 중독물질이 바로 이 술입니다. 코케인같은 마약보다 술의 폐해가 훨씬 심각합니다. 술로 인해 셀 수 없이 많은 사건사고가 터지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칩니다. 당연히 마약으로 묶여야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막강한 산업자본 배후 덕에 술의 입지는 막강합니다. 술과 비슷하게 힘을 쓰는 담배는 백안시 당하는데도 술만은 당당합니다. ‘술보다 마리화나가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말했다간 마약중독자 취급을 받습니다. 이렇게 술이 군림하는 사회는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받아들입니다.
어제 정말 오랫만에 위스키를 한잔 하고, 아내가 마시다 남긴 와인을 좀 마셨습니다. 근데 오늘 아침 두통이 왔습니다. 위스키 딱 한잔, 와인 몇모금에 두통이라.. 위스키 두병정도는 거뜬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꼴이 참 서글픕니다. 범인을 따져봅니다. 위스키? 와인? 아님 그 조합이 문제?.. 알 길이 없습니다.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몸에 나쁜 술을 이렇게 신속하게 알려주는 제 몸이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몸이 일러주는대로 가능한 한 술을 피하겠지만, 꼭 마셔야 한다면 그나마 몸이 받아주는 맥주를 마셔야겠습니다.
위스키와인 두통에 해롱대며 그냥 주절거려봤습니다.
아 희경형수님.. 샤부샤부 참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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