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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오바마.. 김대중보다는 노무현이 되세요

저녁시간, '서울뚝배기'를 보려고 티비를 켰는데 한국 티비에서 미국 대선개표 속보방송을 하고 있었다. 아 열받는다.. '서울뚝배기'를 안한다. 대한민국이 왜 미국 대선 개표상황을 리얼타임으로 방송하고 난리란 말인가. 그 방송때문에 서울뚝배기를 끊어? 도대체 대한민국에게 미국이란 나라가 뭐길래? 대한민국에게 미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중요하길래 대선개표방송을 리얼타임으로 연결한단 말인가.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 우리나라의 대통령들 몇명이 떠올랐다. 오바마와 아주 비슷한 양반들.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김대중

시종일관 보수와 경상도만의 잔치판이었던 한국정치의 틀을 처음으로 깬 사람이 바로 김대중이다. 비보수이며 비경상도였던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은 한국 정치사에 새 장을 연 대사건이었다. 전라도 출신에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던, 게다가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어 이념적으로도 박해를 받던 영원한 야인 김대중. 김영삼이 거덜 낸 나라를 인계받고 나라 살림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그의 어깨에 올려졌었다.

이 양반이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능구렁이였기에 망정이지, 만약 노무현처럼 할말 다했었더라면, 이 양반 아마 조중동과 꼴통보수들의 공격에 제명대로 못 살고 중간에 하야를 했거나 일찌감치 세상을 달리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련한 김대중은 자기 색깔을 감추면서, 보수와의 정면대결을 피하면서, 나라 살림도 일으켜 세우면서.. 다행히 끝까지 살아남았다. 어쨌거나 그의 대통령당선은 그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의 정치사에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노무현

바보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이 됐다. 바보스러울 만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5년뒤의 대통령 선거를 가른 것은 노무현에 대한 국민들의 증오였다. 국민들이 왜 이토록 노무현을 증오했을까? 전두환처럼 총칼로 정권을 잡은 것도 아니고, 노태우처럼 천문학적인 돈을 해먹은 것도 아니고, 김영삼처럼 나라를 거덜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 정치사회 모든 분야에 권위주의를 없앴고, 국가와 기업의 체질을 튼튼히 함으로써 성장 잠재력을 축적시켜 놓았고, 거시경제 지표는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대다수 국민들의 분노를 사 무참하게 난도질을 당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노무현이 저질러 놓은 ‘소득양극화’와 ‘부동산 실책’ 때문이라고 한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피부로 느끼는 살림살이가 어려워졌으니 분명히 실책은 실책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국민들의 그 엄청난 증오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노무현에 대한 국민들의 증오와 분노의 뿌리는 어이없게도 다른 데에 있다.

우리에겐 잊고 싶은 불편한 역사가 있었다. 친일 청산의 문제, 그 친일파에 기생했었던 지배계층의 정통성 문제, 전쟁과 분단 이후 이념대립의 문제, 남북문제, 계층간 이념갈등의 문제.. 이런 것들이 서로 얼키고 설켜 대한민국의 국가이념이 되어 대한민국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국민들은 암묵적인 동의하에 이런 과거의 일들을 이제 그냥 묻어버리기로 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배계층과 보수언론들의 카르텔에 국민들이 세뇌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노무현의 집권으로 그 고요와 평화가 깨지기 시작했다. 노무현은 소위 이런 ‘불편한 진실’을 거침없이 까발린 것이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 지배계층이라는 자들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국민들은 그들의 부끄런 과거와 탐욕스런 행태를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사실 국민들에게도 이런 불편한 진실은 가능하면 대면하고 싶지 않은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무현은 그 불편한 진실을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알려줬다. 겨우 잊을만 했었는데 노무현이 계속해서 들추는 그 불편한 진실은 결국 국민들을 피로하게 했다. 

자신들의 목에까지 겨누고 들어오는 개혁이라는 칼날에 분기가 폭발한 족벌언론들이 합심해서 노무현에게 융단폭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상고출신 김대중에 이어 또 상고출신 노무현이 대통령인 것이 못마땅하던 모든 보수 엘리트계층들.. 드디어 그들이 족벌언론이 벌이는 이 전쟁에 참전하기 시작했다. 그중엔 정동영도 있었다. 

전쟁이 점차 확전되면서 계층간 극단적인 이념갈등으로 나라가 두동강 나 버렸다. 이런 폐허의 상태에서 우군이 하나도 없는 노무현을 역사의 죄인으로 떨어뜨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러던 차에 경제문제마저 터졌다. 담합한 보수기득권계층의 교묘한 반칙으로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담합한 보수기득권층의 집단 반발로 부동산 값은 더욱 치솟고, 거기에 불경기에 청년실업문제까지 겹치자 국민들이 폭발하고 말았다. ‘노통 아가리 좀 닥치고 돈이나 좀 벌게 해 달라’는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노무현에 대한 분노의 뿌리의 실체는 바로 이런 ‘불편한 진실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무현에 대한 증오가 경제문제라고만 생각했다. 노통 아가리때문에 이렇게 살기 힘들어졌다는. 


이명박

그 와중에 '경제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타난 '사기꾼 장사치'에게 국민들이 혼을 뺏겼다. ‘장사치’와 ‘경제전문가’를 전혀 구분할 줄 모르는 국민들은 ‘경제대통령’이라는 그 사기구호에 넘어갔다. 국민들이 노무현에 대해 가진 증오와 실망덕에 이명박은 대통령이란 자리를 거저 줏었다. 천하의 이 우라질 놈이 겁도 없이 그 자리를 낼름 받아 쳐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취임하자마자 속빈강정이던 이놈의 거품이 급속도로 꺼지면서 국민들이 크게 실망을 했다.

'거시경제'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깡통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래도 '실물경제'나 '미시경제'는 좀 알려나 했더니 그 역시 깡통이긴 마찬가지였다. 공사판의 노가다십장, 밀어부치기만 할줄 아는 낡은 불도저 덩어리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배달민족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을 우리국민들이 자랑스럽게 뽑았다. 하지만 이건 실망할 일이 아니다. 눈에 뭐가 씌여 희대의 사기꾼을 대통령으로까지 뽑은 미욱함을 땅을 치며 탓하는 자책을 해야 한다. 역사는 그런 미욱한 국민들을 역사의 이름으로 준엄하게 꾸짖으며 다시는 그런 바보같은 짓 하지말라고 가르쳐 준다.



오바마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탄생했다. 수십년전까지만 해도 흑인들에겐 투표권조차 없었다던 그 미국에 흑인이 대통령으로 들어선다니.. 이건 새로운 장이 열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책이 열리는 일대 사건이다.

당선의 의미로만 본다면 김대중과 비슷하다.
김대중이 보수 경상도의 정치판을 한순간에 허물어 버렸듯. 오바마는 백인보수층이 독점하던 미국의 정치판을 한순간에 허물어 버렸다. 그러면서 오바마는 김대중과 똑같이 국민들로부터 무너진 경제를 일으켜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부여 받았다. 비주류인 흑인에 경험마저 일천한 40대의 대통령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 보인다.

개인의 정체성으로 본다면 노무현과 비슷하다.
오바마는 한국의 노무현처럼 상고출신의 못생긴 대통령정도가 아니다. 백인들이 한동안 노예로 ‘사용’하고 학대했었던 흑인의 핏줄이다. 이런 흑인 대통령이, 부시와 공화당에 대한 반작용으로 선출된 흑인 대통령이 겁도 없이 ‘미국판 불편한 진실’을 여는 순간, 한국의 보수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굳건한 미국 보수층과의 정면 대결이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다. 꼴통 백인 보수주의자들의 그 해꼬지를 어찌 감당해낼지.. 젊은 흑인 대통령이 감당하기엔 아무래도 무리로 보인다.

선거운동의 일등공신으로 본다면 이명박과 비슷하다.
이명박이 노무현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 때문에 당선되었듯, 오바마는 부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금융위기 때문에 당선되었다. 이렇게 분노와 혐오감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대통령이 되면, 그 거품이 순식간에 꺼짐을 우리는 지금 한국에서 경험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의 오바마의 앞날도 그래서 어두워 보인다.


오바마의 선택
이래저래 오바마의 앞날은 어두워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바마를 열심히 응원하며 지지할 것이며 그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한다. 비록 비주류 흑인으로서 백인주류층의 엄청난 저항과 방해공작에 시달리겠지만, 그가 그런 백인보수층의 극렬한 방해와 반대공작을 넘어 결국에는 미국을 건강하게 탈바꿈시킬 것이라 믿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삼는 깡패국가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꽃피는 위대한 미국으로 탈바꿈 시킬 것이라 믿고 있다.

그가 김대중처럼 노련하게 피해갈 지, 아니면 노무현처럼 정면으로 맞붙을지는 아직 모른다. 모든 것이 그의 신념과 정신력과 상황판단에 따른 선택이지만, 나는 그가 일신의 안위나 정권의 안위보다는 국가를 생각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피해가는 선택보다는 굳건히 그들과 맞서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오바마의 앞길에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여정이 기다리지만, 그는 모두 이겨내리라 믿는다.


리틀 아메리카
비록 어제 오바마 때문에 '서울 뚝배기'를 보지 못해 열받았었지만 미국의 대선개표방송을 리얼타임으로 진행하는 대한민국의 방송사들, 그 개표방송에 이목을 집중하는 대한민국을 보고 내심 기뻤던 게 있었다. 오바마의 '당선확실'이 어떤 기쁨으로 다가왔다. 비록 자존심은 상하지만.. 미국의 개조가 곧 대한민국의 개조일 것이라는 현실을 봤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파트너가 이명박이 아니라 노무현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리틀 아메리카 대한민국.. 미국의 일거수 일투족에 밤잠을 설치고 눈치를 살피는 대한민국. 이 현실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 앞으로 4년 6개월을 암흑속에서 살아야 했던 대한민국에도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이명박이 짝사랑하던 부시와 공화보수정권이 막을 내리고 미국에 개혁의 신호탄이 올라가는 순간, 리틀 아메리카 대한민국에도 다시 희망의 신호탄이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과 배달민족의 앞길에 영원히 걸림돌이 될 거대한 쓰레기더미들, 그 역겨운 쓰레기더미들을 이제는 오바마가 자의든 타의든 치워주기 시작할 것이다. 친미반북만이 유일한 살길인 족벌언론들, 부시 좇다 지붕 쳐다보게 된 이명박의 반응이 기대된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정말 기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