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메리카

괴력의 너구리

스컹크를 잡은 후, 매일 밤 벌어지던 잔디 공격이 멈추고 오래도록 시달렸던 잔디 스트레스에서도 벗어났다. 그러나 그 평화는 잠시.. 며칠 후부터 다시 잔디 공격이 시작되었다. 스컹크 말고 또 다른 놈이 있었던 거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역시 너구리.. 발자국으로 증거를 남겼던 그 너구리다. 느닷없이 스컹크가 잡히는 바람에 잠시 용의선상에서 벗어났었지만 가장 유력한 아니 확실한 용의자는 너구리다.


이 놈을 잡아야 한그래서 트랩을 다시 놓았다. 신선한 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저녁 미끼를 새로 갈았다. 싱싱한 사과와 탕수육 조각들 그리고 엄청난 향내의 너구리 전용 미끼.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잔디순찰과 트랩확인이었다. ^^ 


오늘 아침.. 잔디 공격 흔적이 있다. 어젯밤 놈이 왔다 간 것이다. 외면할 수 없는 싱싱한 미끼를 놓았으니 틀림없이 놈이 잡혔을 거다. 트랩을 확인하는 순간.. 어? 트랩의 반대쪽 문이 번쩍 들려있다

문을 고정하고 있어야 할 굵은 철선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다. 놈이 잡혔다가 뒷문을 밀치고 탈출한 거다아니 어떻게 이 굵은 철선을 휘어버리고 탈출했을까? 


문을 잠그는 디귿()자로 생긴 철선.. 한쪽은 트랩에 나란히 걸치고 또 한쪽 끝엔 고리가 있어 그것을 트랩에 걸게끔 되어있었다. 근데 이 고리를 걸지 않았었다. 뼈아픈 내 실수다.

지난번 스컹크를 꺼낼 때 트랩 전체가 약간 휘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설치하면서 뒷문을 고정하려는데 그 고리가 잘 걸리지 않았다. 뻰찌를 가져다가 했어야 했는데.. 고게 귀찮았다. 그래서 그냥 걸쳐놓기만 했었다. 그래놓고 손으로 세게 밀어봤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길래 이 정도면 되겠지 했던 거다. 잠시 착각을 했었다. 놈을 스컹크 정도의 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렇게나 큰 놈이었다.

괴력의 너구리.. 나를 비웃으며 가볍게 빠져나갔다. 확실하게 잡았었던 놈을 놓쳤다. 뻰찌 가지러 가는 고게 귀찮아서.. 아깝고 아쉽고 속상하고 화나고.. 고리만 걸었어도.. 고리만 걸었어도.. 허억- 허억- 하도 열을 받아 입속이 바짝바짝 말라들었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아쉬움과 분이 가라앉질 않는다^^ 


놈이 잠시나마 갇혀서 놀랬을테니 웬만해선 이 트랩으로 다시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적에게 모든 전술이 다 노출된 셈이다. 이제 놈을 잡으려면 전혀 새로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 띠바.. 대체 이 놈을 뭘로 잡느냔 말이다.. 








'아메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워싱턴주에 다녀왔습니다  (31) 2013.01.04
크리스마스 트리.. 生 전나무에 대한 오해  (4) 2012.12.05
테하차피의 고양이  (4) 2012.11.14
거대 벌새 체포  (5) 2012.11.13
미국 대선 방식 이해하기  (13) 2012.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