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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거대 벌새 체포

11월이면 벌새들이 남아메리카로 떠납니다. 그 조그마한 녀석들이 철새인 겁니다. 그 작은 날개로 그 먼 여정을 어찌 날아갈까 매우 걱정이 됩니다. 그 고난한 여행을 위해 떠나기 전 지방층을 충분히 늘린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먹습니다. 먹잇 값이 만만치 않지만 곧 떠날 녀석들이니 충분히 주기로 했습니다.

 

어제 아침.. 벌새가 아니라 박새인가 싶을 정도로 거대한 몸집의 녀석이 먹이통에 앉아 있습니다. 가까이 보니 벌새 맞습니다. 참 큽니다. 얼핏 보아 다르 벌새의 한배 반은 되어 보입니다. 다른 동네에 살다가 남미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른 녀석 같습니다. 그런데 이놈..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성질도 포악합니다. 자그마한 아이들을 먹이통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합니다. 다른 녀석들끼리 흔히 벌이던 그냥 쫓고 쫓기는정도가 아니라 다른 벌새들의 몸체를 직접 공격합니다.

 

때가 때이니 다른 아이들도 부지런히 먹어둬야 긴 여행을 가는데..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놈을 쫓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집요합니다. 쫓으면 잠시 근처에 매복하고 있다가 다른 벌새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날아와 또 무자비하게 공격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먹이통을 잠시 감추기로 했습니다. 잠시 들른 녀석일 테니 먹이통이 없어지면 곧 가던 길을 가겠거니 하구요그래서 먹이통을 잠시 떼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냥 지켜보고 있었는데.. 글쎄 이 놈 겁도 없이 가까이 와서 먹이를 태연하게 먹습니다. 제 손과 10센티 거리에서 말이죠. 그래서 현장에서 바로 체포 구속했습니다.

정말 크지요?^^ 정말이지 '거대'한 벌샙니다. 보기엔 꽉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느슨하게 잡고 있는 겁니다. 이 녀석이 구속 직후 처음엔 몇번 꿈틀대더니 곧 조용해졌습니다

 1분간의 징역형을 마친 후 출소시켰습니다. 다시는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고 사이 좋게 먹이를 나눠먹기를 기대합니다

근데 이 녀석, 날아가지 않고 손 위에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그새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얘가?? 다행히 십여초 후에 푸드득 날아갔습니다. 천만 다행입니다. 1분간의 징역형이 효과가 있었는지 한동안 이 녀석 보이질 않더군요. 이 놈이 사라지자 평소처럼 먹이통 주변이 바글바글 아이들로 북적거렸습니다


그런데 삼십여분 후 이 놈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아까보다 더 포악해져서 말입니다. 1분간의 징역으로 교화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것때문에 오히려 더 악이 받친 모양입니다.ㅋ 그래서 다시 체포해서 가중처벌 할까 하다가.. 관뒀습니다. 제가 개입할 일이 아니지요. 개입해서도 안되구요. 저런게 다 자연의 일부이니 말입니다


놈 덕분에 

비싼 먹이의 눈금이 훨씬 느리게 내려가긴 합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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