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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무릎꿇은 여교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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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면서 좋은 것중의 하나가 한국 뉴스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정치뉴스로 도배가 되는 한국의 저녁뉴스는 큰 스트레스 제공원중의 하나다. 정치뉴스를 보지 않아도 다음날 대화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자유로움은 미국생활이 주는 극소수 행복중의 하나이다. 이곳 한국방송에서도 한국과 똑같이 9시에 뉴스를 시작한다. 보통 정치뉴스가 앞부분에 몰려있으므로 20분 정도가 지난 시간에 한국방송으로 채널을 돌리는데 그러면 대부분 그냥저냥 호기심있게 볼 수 있을 사회 문화쪽 보도들이 나온다.

그러나 엊그제는 이 시간에 채널을 돌렸다가 정치뉴스보다 더 스트레스를 주는 보도를 보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투실투실한 어머니들이 어딘가 떼로 몰려가서 누구에겐가 거세게 항의를 하고.. 누군가..하던 그 사람이 아이들의 담임 여교사였음을 알게되고.. 그녀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어머니들앞에 무릎을 꿇는 충격적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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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말했듯이 10여년 전 기자에게 크게 당한 이후 나는 언론의 보도를 별로 믿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피곤하게시리.. 일단 기자들의 자질과 양심을 무시하고 앞뒤상황을 맞춰보는데.. 이번 보도 역시 기자양반들 앞뒤상황 모조리 잘라먹고 그날의 현장 상황만 방송을 하셨다.

앞뒤 상황을 설명하는 거라곤 ‘여교사가 급식시간(15분)에 학생들에게 점심식사를 빨리 하도록 강요해 식사를 하던 학생이 체하는가 하면 식사시간을 못지킬 경우 반성문을 쓰게하고 심하면 벌도 주었기 때문에 격분한 어머니들이 그 전날 여교사의 집으로 찾아가서 이 문제를 항의를 하였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담날은 학교로 몰려가서 여교사의 해직을 요구하다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두가지가 의문이었다.
첫째, 생생하게 방송된 그 장면, 이거 아마추어의 촬영이 아니다. 방송국 카메라기자의 촬영이다. 이 카메라 기자는 어떻게 그때 그 상황에 같이 있게 되었을까.
둘째, 어머니들의 고함속에 "오늘은 왜 달라져요 어제처럼 해야지…" 하는 말.

방송에선 앞뒤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으므로 이에 대한 설명도 당연히 없다.
내가 멋대로 추리하는 앞뒤의 사정은 분명 이랬을 것이다.

학교 급식소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다)의 사정상 아이들의 식사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모양이다.
따라서 뒤에서 기다리는 아이들도 밥을 먹어야 할 것이므로 식사시간의 제한은 당연하겠다. 더욱이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라면 식사시간에 장난치고 떠들다가 식사시간을 넘기기가 일쑤였겠다. 그러니 당연히 교사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교육해야만 했을테고, 항상 어디나 말귀를 못 알아듣고 처지는 아이는 있게 마련, 그래서 그것이 몇번 반복되자 교사가 벌도 주고 반성문을 쓰라고 했던 모양.

그 와중에 이러한 체벌을 집에 가서 과장되게 털어놓은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한 ‘내 자식 세상 최고, 단순무식형’ 엄마가 격분, 다른 엄마들을 선동해서 교사의 집에 일차 출정하여 이성적으로 항의를 하고 사과를 받아내려 했으나 맹랑한 여교사가 사과는 하지 않고 오히려 싸가지 없게도 엄마들을 꾸짖으며 타일렀을 것. 당연한 처벌이었으며 어머니들께서 이러시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운운. 이 와중에 훈계를 듣던 엄마들이 지들보다 나이 어린 여교사에게 슬쩍 반말을 지껄였을 것이고, 이에 기분 나빠진 여교사도 당연히 싸가지 없이 대항했을 것은 자명.

험악한 분위기속에 싸가지 없는 어린 것에게 수모까지 당한 단순무식 엄마들이 나오면서 했을 말, ‘너 언제까지 이렇게 눈깔 똑바로 뜨고 대드는지 한번 보자. 네 년 반드시 모가지를 잘라주마’

다시 작전을 짜기를 ‘내일 학교에 카메라기자까지 같이 데리고 가서 공개적으로 망신 주고 사과를 받아내서 그년을 짤라버리자’ 일을 크게 벌이기로 공모하고 다음날 지방방송의 기자까지 대동하고 기세 등등 학교로 찾아가서 일을 벌인 것인 듯.

학교나 여교사가 엄마들이 학교까지 쳐들어 올 줄 짐작하고 방송국기자를 미리 불렀을 리는 만무하고, 엄마들 측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슈화하려고 ‘악질 교사 한년이 애들 밥 빨리 안 먹는다고 체벌한다’고 제보하여 대동하였을 것.

학교의 복판까지 진격하여 교장에게 교사호출 및 사표수리를 요구했으나, 학교측의 민둥민둥한 답변에 더 열 받은 단순무식 엄마들 드디어 자충수를 두기 시작하는데..

‘단순무식’과 ‘영리함’의 차이는 극단적인 순간에 더더욱 차이가 나는 법이다. 이렇게 대치하던 엄마들과 여교사는 단순무식과 영리함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를 보여주었으니..

'조용히 인정하고 사표내면 조용하다고 했지 않았나, 여기 다 지식인들이야, 왜 흥분하게 만들어? 단순무식 엄마들이 자기가 굳이 ‘지식인’이라며 기세 좋게 시작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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