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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중국인 폭력사태 1 - 한국인들의 눈에 비친 중국인


십몇년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입국심사대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도 북적거렸다. 웅성거리긴 했어도 시끄럽지는 않았던 그곳이 갑자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이 입국장안으로 밀려들어온 것이었다. 싸우는건지 욕을 하는건지.. 독특한 사성발음의 중국인들 때문에 입국장안은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워졌다. 그들의 시끄런 고함소리(대화)에 어느정도 귀가 적응했을 무렵, 이번엔 커다란 트림소리가 들렸다. 역시 중국인들 무리쪽이었다. 아 드러.. 잠시후 트림소리가 또 들렸다. 잠시후 또 트림소리, 또 트림소리.. 범인을 찾았다. 기지바지에 흰 운동화, 그리고 누리끼리한 잠바를 입고 머리에 기름때가 흐르는 투실투실한 전형적인 중국인 남자. 저놈 도대체 비행기안에서 뭘 쳐먹었길래 저렇게 트림을 해대는 걸까? 근데 가만보니 그놈 트림을 일부러 만들어내고 있는 거였다. 공기를 일부러 쳐 마시곤 길고 커다랗게 트림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무료할 때 휘파람을 불 듯 그놈은 우렁찬 트림소릴 심심풀이로 내고 있던 거였다. 근데 이상한 것은.. 그놈의 일행중 아무도 그놈의 엽기 행동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트림소리에 일행들이 키득거리고 웃기라도 했다면 그나마 이해해 줄만 했겠지만, 아무도 그걸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국제공항이라는 특수상황도 그들에겐 별 문제가 아니었다. 예전에 미국유학중이던 친구가 말한게 맞았다. ‘짱깨들 증말 드럽드라..’


십여년전, 미국의 어느 관공서. 사람들은 많고 공간이 좁아 줄이 창자처럼 꼬불꼬불 여러겹으로 겹쳐있었고 사람들은 몇십분씩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때 그곳에 일단의 중국인들이 나타났다. 하도 시끄러워서 그들이 중국인임을 알아봤다. 근데 실내를 둘러보던 그들 갑자기 줄을 하나 더 만들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맨 앞으로 줄을 끼워넣는다. 순간 흥분하여 그들에게 ‘헤이 헤이’ 고함을 질렀다. 쳐다본다. 근데 띠바 ‘줄 서’라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다. 그냥 한국말로 '줄서 씨바' 하면서 손짓으로 뒤로 가라고 했다. 마침 그 중국인들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이 그들에게 상황 얘길 한다. 그 중국인들, '뒤로 가면 그만아니냐'는 표정으로 당당하다. 앞뒤에 있던 타인종 사람들에게 ‘쟤넨 차이니스이고 난 코리안’이라고 애써 밝혔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어덜트스쿨에서 만난 한 한국남자가 한말이 맞았다. ‘짱깨들 정말 어글리해요’


미국생활.. 워낙 여러민족들이 모여 살다보니 아무래도 민족에 대한 편견들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가능하면 ‘개인차’ 나 ‘개인의 문제’라고 마음 넓게 생각하면서 특정민족에 대한 편견을 희석시키려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안되는 게 하나 있다. 미국의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민족, 바로 중국인에 대한 편견이다.

아무리 개인문제라고 봐주려 노력해도 안된다. 중국인들은 정말로 몰상식하고 무례하고 더럽다. 입을 열면 그 시끄런 언어때문에 금새 구분이 가능하지만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옷차림이나 표정 행동만 봐도 그들은 구분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어글리 차이니스’ 혹은 '차이나 맨' 으로 멸시를 당한다.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멸시를 당해도 싸다.

타인종 사람들이 중국인과 한국인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미국 한인들이 중국인들을 경멸하고 싫어하는 건 그들과 도맷금으로 같은 취급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억울함도 상당부분 차지한다. 어글리 차이니스와 도맷금으로 같이 취급하지 마라.. 난 깔끔한 코리언이란 말이다.. 에이 띠바 저 드런 짱깨새끼덜 땜에.. 이렇게 속상하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에서 갓 이민온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나서 자란 중국계 미국인들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이거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중국에서 나서 자라다가 미국에 온 사람은 그렇다 치지만, 이곳에서 나서 자란 아이들까지? ‘어글리 차이니스’는 성장환경이나 생활환경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유전자문제라는 뜻이다.

중국인들.. 왜 이렇게 뼈속까지 유전자까지 ‘어글리’ 할까?
대만의 사학자 황문웅이라는 사람이 쓴 ‘중국인이 미움받는 일곱가지 이유’를 보자.

1. 자기중심(자기 이외는 인간이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중국인에게는 이 자기중심이 국민성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규모로 확대되어 자국중심주의가 된다. ‘중국’이라는 이름이 바로 그 결정적 증거이다. 객관적으로 봐서 이 둥근 지구에 중심이 되는 지점이 있을 리가 없다. 천하(세계)의 중심을 의미하는 ‘중국’은 지리상의 중심점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중심을 가리킨다. 간단하게 말하면 자신이 세계의 중심, 문화의 중심이라는 강한 망상인 것이다.

이 정신적인 중심의식으로부터 나온 것이 중화문명 지상주의이다. 중화문화가 가장 뛰어나며 주변에 그것을 전하여 그 은혜를 전파하고 있다고 하는 동심원적인 관념이 중화사상의 기본적 정신적 구조이다. 중국인은 옛부터 주변국을 경시해왔다. 이 관점은 그들의 문화가 다른 사람을 사람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 우월의식은 과거 남아공의 인종차별주의 그 이상이다. 그 증거로 중국인이외는 모두 짐승으로 여기어 주변 민족 이름엔 짐승 수자나 벌레 충자를 넣어서 불렀다.

당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은 한유는 저서 원인에서 夷狄(이적)을 반인반수로 말하고 있으며 짐승보다는 조금 진화된 존재로 평하였다. 서양제국이 청국에 대하여 통상요구를 할 때 무엇보다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그 굴욕적인 三脆九叩의 예를 강요당하는 것이다. 아편전쟁종결후인 1842년 외국인을 夷狄로 여기는 청국에 대하여 영국은 남경조약제17조에서 일부러 영국을 "英夷"라 부르지 말것이라는 조항을 넣었다. 그러나 청나라가 계속 그것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천진조약체결시 재차 문서화하였다. 청조 말기에 중국인과 접촉한 외국인은 대부분 그 오만함에 질려서 영국통상 특사로 북경에 파견된 매카트니는 거꾸로 중국인을 반야만인이라 불렀다. 영국의 홍콩총독 데이비스는 중국문명을 반문명으로 칭하였고 초대 총세무서장 레이 에이르러서는 아시아의 야만인으로 부르며 경멸하였다.

2. 지멋대로 주의
자기중심인 사람은 자기 멋대로 행동을 한다. 따라서 이 지멋대로주의가 그 사람에겐 보편적인 것이 된다.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생각은 다음 다음의 다음 정도로 애초에 고려사항이 아니다. 정치의 흐름을 보아도 1950년도에는 소련과 밀월관계를 맺고 있었음에도 60년대에 들어서는 소련 수정주의 반대, 소련 사회주의타도의 슬로건을 제창하여 돌변하였다. 그리고 60년대 미일안보 및 미제국주의 반대를 내걸고 구 일본의 사회당 및 공산당과 공동성명까지 발표해놓고 70년대에 들자 어느날 갑자기 미일안보찬성, 반소친미로 급변하였다.

3. 독선
중국인의 독선적 사고 방식은 세계각국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옛서독과 덴마크에서 티벳의 인권침해문제를 논의하는 의회에 압력을 넣어 그것을 결의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였다. 또 강택민은 스위스에서 데모행렬과 조우했을 때 환영차 나온 스위스 국가원수에 대해 ‘자국 관리도 못하냐’는 무례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미국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간섭을 한다. 이등휘 대만 총통이 자기 모교인 코넬대학을 방문하기 위해 미국 비자를 신청했을 때 미상하원은 이씨의 방미를 찬성하는 결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 결의에 대하여 잘못된 결의라고 반성을 촉구하였다. 일당 독재, 전체주의국가인 중국에선 그렇지 않지만 미국의 건국이념은 민주주의이다. 의회는 민의를 대변하고 어떤 결의사항도 민의를 대변함에는 틀림이 없다. 의회의 결정은 대통령조차도 무시할 수가 없는 나라이다. 강택민은 모르고 있다. 미국의회에 대한 반성요구는 중화사상의 노골적 표현인 것이다.

4. 책임전가
나쁜 것은 전부 남이고 성과는 자기 때문이라는 책임전가와 독선의식이 중화사상의 뼈대이다. 나는 대만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에는 근대 중국이 빈곤했던 것은 열강의 침략과 청조의 부패, 군벌들의 내전에 원인이 있었다고 배웠다. 중공에서는 그것이 모두다 국민당정부의 책임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문화혁명이 끝나자 동란의 10년의 책임은 전부 4인조의 몫이 되고 모택동의 잘못엔 전혀 언급 없이 그와 같은 대혼란의 책임을 전부 4명의 정치지도자에 전가시켰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중국인의 파렴치한 무책임의식의 표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혁개방정책이 되자 급격한 경제개발로 강도살인, 도박, 마약밀매, 매춘, 인신매매, 사기 등등 6해, 7해등으로 불리는 흉악범죄가 횡횡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이런 무질서는 중국의 본래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 국민성의 부활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정신오염이라고 칭하여, 사회주의 신문명을 창조하라고 당대회 등에서는 결의하고 있다. 서구문명의 동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친 후의 중국인의 불행, 낙후는 모두 서구열강 탓이 되었다. 근대 중국은 몰락은 아편전쟁이후 모두 열강의 침략의 결과로 귀속되어, 중국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는 일이 없다. 이런 책임전가는 중국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고착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5. 인간불신(둘이 우물을 들여다보지 말라)
중국인은 국가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도 사람도 신용하지 않는다. 자기 처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이나 형제조차도 믿지 못할 정도이다. 모택동의 극좌정책 시대에는 부모보다 주석님에게 친근감을 느낀다는 말이 중국사회에서 유행하였다. 당시는 가족조차도 계급의 적으로 간주되어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일도 빈번하였다. 劉少奇,林彪 등은 정적이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 밀고 당해 한 사람은 옥사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도망가는 도중에 죽었다.
중국 속담에 둘이 같이 우물을 들여다보지 말라는 말이 있다. 둘이 같이 들여다보면 상대방이 우물 안으로 빠뜨릴 수 있으므로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불신 사회에서는 살아남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병법이 발달하게 된다.

손자는 ‘전쟁은 사기이다’고 해석하였다. 중국인 기질의 최대 특색은 이 사기에 있다. 중국인은 사기의 국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남에게 속지말라고 교육하며 항상 그것을 상기시킨다. 세계도처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중국의 가짜 상품들이다. 지적소유권의 도난은 별도로, 약, 담배, 술, 식품 등 잘못하면 사람의 생명에도 지장이 있는 물건들의 불량복제품들이 넘쳐나며 중국정부는 打假運動이라하여 이에 대해 대대적 단속을 하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 현재의 중국은 공금횡령, 사기, 부정부패의 천국이며 가짜 상품의 천국이다. 이런 거짓이 판을 치는 인간불신의 사회에서 중국인은 위에서부터 밑에까지 서로 속이고 있다. 정부는 매스컴을 통하여 국민을 속이고 민중은 온갖 거짓말로 국가예산을 타먹는다. 중국사회에서 사기꾼들이 판을 치고 가짜가 범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6. 도적국가
최근 수년간 일본에서는 중국인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외국인 범죄의 반수 이상이 중국인에 의한 것이다. 어떤 자위대 대원은 일본 경찰서에 수용된 중국인에 제공하는 식사비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라고 지적하였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각국의 대도시가 중국인 밀입국자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시베리아에서도 중국인밀입국자는 연간 50만명에 이른다는 믿기지 않는 데이터도 있다. 중국인이 해외에 유출되면 그들이 모인 곳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대만에서의 생활환경의 변화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대만에서는 2차대전 이전에는 열쇠를 잠그지 않고 외출하여도 물건이 도둑 맞는 일이 없었다. 일본인이 물러가고 대륙으로부터 200만명의 중국인이 유입되자 대만은 금새 도둑놈의 나라가 되었다. 도둑이 많기 때문에 초고층빌딩의 최상층도 자물쇠를 굳게 잠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대만에서는 중국본토인을 보면 도둑이라 생각하라고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치게 되었다.

94년에 중국의 소주의 호수에서 대만관광객 24명을 태운 유람선이 호수에서 강도를 만나 전원 선실이 갇혀서 강도에 의해 태워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대만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건이다. 이 때 중국정부는 이 사건이 강도살인 사건임을 계속 은폐하였다. 이등휘총통은 격노하여 중국을 도적국가라고 비난하였다. 중국이 도적국가임은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청나라 때 영국통상대표 매카토니는 중국엔 거지와 도적만이 눈에 들어온다고 말하였다. 중화민국초기에는 도적이 없는 산과 호수는 없다고 말하여질 정도로 그 수는 약 2000만명, 군인보다 많았다. 당시의 상해나 만주의 공공버스에는 무장병사가 항상 두명 동승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안전이 확보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 여러 곳에서는 차량도둑에 주의하는 간판이 여기저기 걸려져 있으며 도적떼들과의 총격전으로 순직한 경찰은 매년 2000명이 넘는다.

왜 그렇게 도둑들이 많은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전통문화인 것이다. 왕조말기에는 생활수단을 잃어버린 백성이 도적떼가 되어 그것이 역성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역성혁명은 바로 도적을 정당화하는 중국의 역사적 원리이기도 하다. 티벳 문제에 관하여서도 대만에 대하여서도 이 강탈행위를 정당화 하여 주변국가들과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급증하는 밀입국자로 인하여 중국인 범죄가 세계에 퍼짐에 따라 옛날 백인들이 두려워했던 황화론이 "화화론"이 되어 더욱더 혐중감정이 증폭되어질 것이다.

7. 위험한 "우호"
친선, 호의를 의미하는 우호라는 말은 본래 좋은 말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우호는 약간 다르다. 중국을 상대하는 나라에 대해서 중국이 강조하는 우호처럼 희한한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호의 해석권이 전적으로 중국 측에 있어서 중국이 정한 우호에 범주에 얌전하게 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호를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면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것은 역사를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중소, 중인도, 중월 전쟁이 일어 났을 때를 보면 모두 양국관계가 밀월 관계의 절정에 있을 때였다. 중국과의 우호는 그들이 정한 독선적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한가지만 더 첨가하자면.. ^^

8. 지저분하고 시끄럽다.
어떤 문화적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오해할 만큼 중국인들은 잘 씻지 않는다. 상대방의 느낌같은 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잠옷바람으로 부부가 동네를 산책하기도 하고, 아무데서나 양말을 벗고 발톱을 깎기도 한다. 중국어는 구조적으로 사성이라는 게 있어서 다른 어느 나라 말보다도 방정맞고 시끄럽다. 중국인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는 걸 들으면 고함을 치며 싸움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애초에 조용하게 발성이 되지 않는 언어이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은 그런 언어의 특성을 마음껏 살려 아무 곳에서나 큰소리로 떠든다. 특히 중국식당에 들어가면 이건 완전히 시장바닥보다도 더 시끄럽다.


신나게 중국인들을 욕해봤다. 근데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이 중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민족이 바로 우리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그들 중국인이 한국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은 도대체 뭘까?


→ 중국인 폭력사태 1 – 한국인들의 눈에 비친 중국인
→ 중국인 폭력사태 2 – 중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
→ 중국인 폭력사태 3 – 우리의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