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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KBS의 'LA 별곡' 표절인가 아닌가?

내 블로그 ‘LA 별곡’은 송강의 ‘성산별곡’에서 따온 제목이다. 송강 소시적 귀양에 처해진 아버지를 따라 머물던 곳의 4계절 풍광을 표현했다나 뭐래나. 물론 읽어본 적이 없어 성산별곡의 내용은 하나도 모른다. 그 외에도 더 유명한 '청산별곡', 또 무슨무슨 별곡.. 들이 더 있다. 내용들은 몰랐지만 별곡이라는 말 자체에서 외따로이 떨어져 지내는 외로운 내음이 물씬 난다고 느껴진다. 그 이름을 짓던 시절, 당시 이민생활이란 게 귀양생활이나 거의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진했었기 때문에, '별곡'이란 말의 의미는 내게 남달랐다. LA 별곡.. 지어놓고 보니 꽤 그럴 듯 했다. 비록 내 눈과 귀가 고국을 향해 있는 바람에 비록 글의 내용은 ‘별곡’과는 거의 관계없었지만 난 이 이름이 참 맘에 들었다.


1. 몇 년전 이곳 현지 신문중 하나에 ‘라스베가스 별곡’이라는 소설이 연재되었던 적이 있었다. 오로지 돈 섹스 폭력으로 점철된 쓰레기 같은 소설이었는데 제목이 하필이면 '별곡'이었다. 기분 나빴다. 이런 쓰레기같은 소설에 감히 'LA 별곡'을 표절해서 제목으로 써?

하지만 그가 내 'LA 별곡'을 알리가 만무할 터, 그도 나와 똑 같은 생각과 과정으로 ‘라스베가스 별곡’이라는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성산별곡이라면 한국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제목 아니든가. ‘별곡’이라는 글귀 하나로 의심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별곡이라는 단어 앞에 미국의 도시 이름을 집어넣은 건 나의 아이디어다. 라스베가스 별곡은 LA별곡의 표절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냥 봐주기로 했다. 내 주장은 말도 안되니까..


2. 어제 KBS America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제목이 놀랍게도 ‘LA 별곡’이었던 것이다. 머? LA 별곡?? 아니 내가 그새 그렇게 유명해져서 언제 나 몰래 날 취재해갔었단 말인가? ㅋㅋ 그게 아니었다. 그 프로그램의 정확한 제목은 ‘묘원씨의 LA 별곡’이었다. 유학온 남편 따라 온 어떤 아줌마 얘기.

윗줄에 ‘묘원씨의’ 라는 글은 작게 적혀있고 아랫줄에 LA 別曲 이라고 크게 쓰여 있어서 내가 순간 착각한 거다.


(에피소드 제목 '묘원씨의 LA 별곡'은 자막처리를 한 것이라 사진이 없다)

머? ‘묘원씨의 LA별곡’? 내 블로그 제목 ‘요팡의 LA별곡’을 아주 고대로 훔쳐다 쓴거다. 분명한 표절이다. 단어 뿐만이 아니라 어구의 패턴까지도 똑같다. ‘요팡의 LA별곡.. 묘원씨의 LA별곡’ 딱 걸렸어.. '라스베가스 별곡'은 봐줬지만 요건 안돼.

표절은 남의 작품이나 학설 따위의 일부를 허락 없이 몰래 따다 쓰는 것을 말한다. 이는 분명히 ‘요팡의 LA별곡’을 통채로 훔쳐다가 ‘묘원씨의 LA별곡’이라고 붙인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표절이다. 아 흥분된다. D 튜닝용 기타가 하나 더 필요한 참인데 잘 걸렸다. 약소하게 마틴 기타 한대만 사 내라고 하고 표절을 용서해 줘야징.

그래서 좀 알아봤다. 어문저작물로서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기 위하여는 그것이

① 창작성 있는 표현에 해당하여야 하고,
② 주관적 요건으로서, 침해자가 저작권 있는 저작물에 의거하여 그것을 이용하였을 것,
③ 객관적 요건으로서, 침해저작물과 피침해저작물과의 실질성 유사성이 인정되어야 한단다.

3번 조건은 완벽하게 충족된다. 세상 누가 보아도 ‘요팡의 LA별곡’ 과 ‘묘원씨의 LA별곡’은 실질적으로 많이 유사하니까. 근데 1번 조건이 안 맞는다. 창작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LA별곡’ 은 내 창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산별곡’에서 나도 훔쳐온 게 아니든가. 또 2번 조건도 안 맞는다. ‘요팡의 LA별곡’은 저작권이 전혀 없다. 등록한 적이 없으니까. 세개중 두개가 안 맞는다.

그래서 ‘묘원씨의 LA별곡’ 은 ‘요팡의 LA별곡’에 대한 저작권 침해나 표절이 아니다. 
봐주기로 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