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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미국 의료보험 개혁을 보며

미국 의료의 문제
요즈음 미국이 의료보험 문제로 시끄럽다. 과거 많은 대통령 당선자들이 공약했다가 모두 실패했었다던 미국의 의보개혁 문제를 오바마가 다시 본격적으로 건드린 거다. 지구상 최고 선진국이라는, 특히 의료분야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미국에서 왜 아직껏 의료보험 문제로 시끄러운 것일까? 미국 의료시장의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1.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가 없다.
미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전국민 의료보험이 없는 나라다. 이거 아주 의외다. 물론 공적보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메디케어(Medicare)와 주정부가 지원하는 메디케이드(Medicaid)가 있고, 그 외 응급실이나 기타 공공의료 제공들이 있다. 하지만 미국의 전체 의료비 구성에서 이러한 공적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2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민간보험(68%)과 현찰 빡치기(15%)이다.

공적보험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가입 대상은 65세 이상 노인들과 빈곤층들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공적보험을 받으려면 ‘늙었거나 가난하거나’ 둘 중의 하나여야만 한다. 근로능력이 있는 젊은 사람이 의료보험혜택을 받으려면 따로 민간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그러나 보험료가 워낙 비싸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그래서 민간 건강보험은 고용주(회사)를 통해서 가입하게 된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들이 직장을 선택하는 요건중 이 건강보험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엔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2007년 현재 미국의 무보험자는4,60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미국의 인구가 3억명정도라니 이 정도 숫자는 그리 많은 비율은 아니다. 하지만 보험이 있어도 보험의 내용이 형편없는 경우(underinsured) 즉, 막대한 본인부담을 지불하지 않고는 의료이용을 사실상 할 수 없는 경우를 포함하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의료사각지대가 전체인구의 3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나도 띠바 여기에 포함된다.


2. 지나치게 비싼 의료비
왜 이렇게 무보험자가 많을까? 간단하다. 보험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험료는 왜 그리 비쌀까? 더 간단하다. 의료비가 터무니 없이 비싸기 때문이다. 치과에 가서 입만 한번 벌려도 백불이다. 과장이 아니다. 입 아- 벌리고 치과의사가 이곳저곳 들여다보고 입을 닫았는데 거기까지가 백불이다. 손목에 동그란 게 솟아서 그걸 절제했는데 그 수술비가 만불이다. 제왕절개수술을 하고 그날 퇴원했는데 그 비용이 이만오천불이다. 교통사고가 난 후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가서 하루 있다가 나왔는데 그 비용이 만오천불이다.

미국의 병원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쳤다. 보험 없이 병원에 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같은 약이라도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60% 정도가 비싸다.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돈 없으면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가 괜한 소리가 아니다. 비싼 의료비는 개인 파산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고 한다. 파산 가정의 절반가량이 바로 이 의료비 때문이라고 하니 말이다.

의료비는 기업들에게도 엄청난 부담이 된다. 자동차 한대당 원가에 포함된 의료비를 나타내는 자료가 있다. 미국 GM 자동차 한대의 원가엔 직원들의 의료비가1,525달러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캐나다 GM은 187달러, 일본 토요다는 97달러에 불과하다. 이만 저만한 차이가 아니다. 미국의 GM이 파산한 데엔 이렇듯 직원들에 대한 의료비가 큰 역할을 했다.

의료비는 정부에게도 부담이다. 지난번 캘리포니아 재정위기에서 언급했듯 공적보험을 제공하는 정부에게 막대한 의료비 지출은 골칫거리중의 골칫거리다. 그래서 캘리포니아도 이번에 의료비 지출에서 상당부분을 삭감했다. 막대한 의료비는 지방 정부에 심각한 재정부담을 야기하고 있다.

미국의 의료비 지출은 GDP의 약 15%라고 하는데 OECD평균은 9%라고 한다. 물론 미국 의료비 증가의 원인에는 의료기술의 발전 등의 영향도 있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을 기준으로 보아도 미국은 높아도 너무 높다. 게다가 의료비에 그렇게 돈을 많이 쓰면 의료의 질과 국민건강이 월등히 좋아야 하는데 미국의 건강수준은 OECD국가중 거의 꼴등이다. 미국의료에 근본적인 구멍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연 그 높은 의료비는 다 어디로 갔을까?



떡고물로 부동산 투자하는 의사들
LA 윌셔가 건물의 2/3를 가지고 있다는 한 한인 부동산 투자회사가 있다. 그 유명한 제이미슨 프라퍼티.. 이 회사의 대표가 놀랍게도 의사다. 대표만 의사가 아니다. 투자자 대부분이 의사들이다. 의사들이 웬 부동산 투자회사? 말도 안되게 높은 의료비가 고스란히 의사들의 주머니로 들어가 의사들이 그 돈으로 부동산 투자를 했다. 그렇게 사들인 수천만불 짜리 빌딩이 백개가 넘는다. 그렇다면 의사질해서 돈을 긁어 모아 그 돈으로 부동산 투자를 했고, 그 투자로 다시 돈벼락을 맞은 그 의사들은 계속 ‘의사 질’을 하고 있을까? 안한다. 그냥 놀고 먹는다. 죽쒀서 개줬다. 높은 의료비가 의료의 질적성장에 재투자 된 게 아니라 탐욕의 의사들로 인해 부동산에 흘러 들어갔다.

물론 의료비 상승의 주범은 이런 의사 나부랭이가 아니다. 의사는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원흉은 독과점으로 시장을 장악한 민간 보험회사와 제약회사다. 터무니 없이 비싼 의료비는 터무니 없이 높은 보험료가 되고, 터무니 없이 높은 보험료는 수많은 무보험자들을 양산해 낸다. 미국 의료체계의 문제는 높은 의료비가 알파요 오메가다.


복잡한 보험
하지만 건강보험이 있다고 해도 안심할 수가 없다. 민간보험은 약관이 엄청나게 세분화 되어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자기 보험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회사별, 가격대별, 계약된 병원별로 보험내용의 편차가 너무 심하다. 따라서 병원에 가면 접수대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어느 보험회사인지, 어떤 프로그램인지, 그 프로그램에서 커버해주는 서비스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한다. 그래서 찾아간 병원이 내 보험을 안 받는 경우에는 다른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 또 어렵게 찾은 병원이라도 보험 커버가 안 되는 서비스가 있다면 그에 대해선 막대한 본인부담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디덕터블이 얼마, 이럴땐 코페이 얼마, 저럴땐 코인슈어런스 얼마.. 무슨 소리인지 이해도 안되는 상황에 그만 넋이 나간다. 어떤 경우엔 보험이 있으나 마나 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선 보험회사에서 보험 가입자를 중간에 쫓아 내는 것이 다반사다. ‘돈 없거나 자격이 안되면 나가라’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어느 날 갑자기 편지를 받고 졸지에 무보험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보험회사들의 횡포에 가입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래서 의료보험 개혁에 동감한다
미국인들도 이런 문제점을 매일매일 피부로 실감하면서 산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70%는 ‘의료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번번이 실패했었다. 국민의 70%가 필요성을 절감하는데 막상 하려고 하면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다? 앞뒤가 안 맞는다. 왜일까?

혹자는 미국인들은 국가가 주도하여 전국민 의료보험을 공공보험으로 커버하겠다는 발상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국가주도 공공보험은 다분히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라는 거다. 웃긴다. 우리로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세계 모든 선진국들이 이미 수십년전에 이러한 의료보험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세계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아직 사회주의 운운하고 있다는 게 희한하다. 또 의보개혁 설명회장엔 좀처럼 보기 힘든 고성과 욕설이 오간다. 찬반 양쪽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으면서 캠페인 광고를 해대지만 국민들은 아직 의보개혁의 자세한 내용을 잘 모른다. 뭐가 그리 복잡하길래 그럴까? 그러나 오바마 의료개혁 내용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첫째, 의료비 줄이기
둘째, 공공보험(public option)을 통한 전국민 의료보험 구축
셋째, 예방의료 공공보건 확대


근데 늘 실패한다
이게 다다. 사회주의적 발상 어쩌고 할 거리가 아니다. 결국 의료개혁의 발목을 잡는 것은 국민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아니다. 의료보험 개혁이 늘 실패하는 건 이에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의 밥그릇 지키기 싸움때문이다.

가장 민감하게 대치하는 부분이 바로 공공보험, 즉 public option 이다. 정부에서 저렴한 공공보험회사를 직접 운영해 민간 보험업자들과 경쟁하게 하는 것이다. 돈을 쓸어 담던 민간보험회사는 앞이 캄캄하다. 이익이 급감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제약회사 병원 의사들의 이익도 줄어들 게 뻔하다.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또 기왕에 공공보험을 가진 노인들은 자기들이 누리던 혜택이 줄어들까 전전긍긍한다. 기왕에 좋은 민간보험을 가졌던 사람들은 괜히 내 보험의 질이 떨어질까 걱정이다. 걱정은 또 있다.

공공의료보험을 위해 1조 달러라는 재원이 필요하다는데, 내야 하는 세금이 많아질게 뻔하다. 따라서 개혁에는 공감하지만 막상 내 주머니에서 돈이 더 나가는 건 달갑지 않다. 이렇게 얼키고 설켜서 뭐가 뭔지 잘 모르는 국민들은 광고에 휩쓸린다. 내용도 모르면서 광고를 보고 한 편에 선다. 쓸데없는 국론 분열이다.


오로지 하나, 비싼 의료비
하지만 인과관계로 따지면 오로지 한가지로 귀결된다. 의료비가 지나치게 높아서 지금 이 지경이 된 것이기 때문에 개혁 역시 한가지로 귀결된다. 의료비 줄이기.. 의료비 상승의 가장 큰 원흉은 뭐니뭐니해도 민간보험회사들과 제약회사들의 과도한 이윤추구행위다. 병원과 의사는 새발의 피다. 짜고 치는 고스톱에서 개평을 받아먹는 정도다. 그래서 오바마도 이 점을 간파하고 의료개혁의 모든 역량을 보험사와 제약회사의 지나친 영리행위에 대한 개혁에 맞췄다. 자세한 내용은 너무 지루하니 그냥 생략한다.


오바마 의료개혁의 성패
어려울 거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쉬워보이지도 않는다. 오바마 개혁의 성패는 딱 두가지에 달려있다. 이해당사자(보험회사, 제약회사, 의사협회, 병원협회 등 그리고 기왕에 보험을 가진 기득권층)와의 합의와 막대한 비용의 조달이다. 이해당사자가 자기 밥그릇을 내어 놓아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또 공공의료보험은 막대한 공적 자금이 필수다. 하지만 최근 경제위기로 예산조달을 위한 증세가 큰 이슈로 떠올랐다. 그래서 이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 의료개혁안을 피를 토하면서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 셋 중 하나다. 보험회사와 제약회사의 선전에 속았거나, 지금 좋은 보험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남 위해 세금 더 내는 게 죽어도 싫은 사람이다. 내용을 잘 모르는 국민들은 그저 여기저기 휩쓸린다. 캠페인 광고에 수천만불을 투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보개혁의 성패는 누가 국민들을 더 많이 설득하느냐에 달려있다. 아무튼 여러가지 상황으로 오바마의 개혁은 실현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불투명하다. 지겨운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고..


혼자서 반대로 가는 나라
보다시피 지구상 선진국중 유일하게 자유시장경쟁 체제하에 의료보험을 내맡겨 두었다가 곪을대로 곪아서 수술을 서두르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료시스템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한다. 미국 스스로도 아주 넌덜머리를 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식 의료체계를 따라 하겠다는 나라가 지구상에 유일하게 하나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오바마는 의료개혁을 추진하면서 한국을 언급했다고 한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매우 훌륭하며 미국도 그러한 방향으로 의료 개혁을 진행하려 한다는 것이다. 근데 오바마의 모델 우리나라는 생뚱맞게 우리 껄 버리고 미국식을 따라 하시겠단다.

앞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밀가루 라면 대신 비싼 쌀 라면을 사먹을 거라고 티비 방송에서 자신 있게 말하는 자가 우리나라 대통령이다. 국민 전체소득이 높아지면 물가도 따라 오른다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해도 해도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경제에 무식하신 분이 자칭 ‘경제’ 대통령이시다. 그런 그이니, 모두가 실패했다고 하는 미국식 의료민영화를 본 따 추진하겠다고 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모든 선진국이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데도 저 혼자서만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그 아니던가.

이명박이 대학 일학년 때 배웠을 경제학 원론이 대한민국을 피곤하게 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무식한 놈이 부지런하고 추진력만 있어가지고선.. 우리 국민들, 앞으로도 두고두고 고생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