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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캘리포니아 분리운동

캘리포니아를 둘로 쪼개자는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하지만 언급이 워낙 짧아 자세한 내용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날 이후엔 더 이상의 언급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 내용이 뭔지 궁금해서 직접 알아보니, 네 가지가 독특했다.

첫번째, 캘리포니아를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쪼개자는 주장이라는 것.
두번째, 이걸 가난한 쪽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다는 것.
세번째, 그들이 농부들이라는 것.
네번째, 결국 캘리포니아 내에 뿌리깊은 지역갈등 탓이라는 것.


가뜩이나 긴데 이걸 세로로 쪼개?
칠팔년전 처음으로 캐나다 국경마을까지 차로 가던 때, 아침 일찍 LA를 출발했는데도 캘리포니아를 벗어난 것이 밤 아홉시가 넘어서였다. 중간에 많이 쉬지도 않았는데 열두시간 넘게 걸린 거다. 참 길다. 따라서 굳이 캘리포니아를 쪼갤거면 당연히 가로로 잘라야 한다. 근데 이 긴 캘리포니아를 세로로 쪼개잔다.

세로로 반으로 딱 쪼개는 것도 아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58개 카운티 중 서부 해안에 있는 13개 카운티만을 떼어내어 ‘Coastal California’로 만들고, 나머지 45개 카운티는 그대로 캘리포니아로 남기자는 거란다. 이런 모양이다. 한쪽 끄트머리만 깎아내는 모양새다.


가난한 쪽 사람들이 주장
떨어지는 13개 카운티의 면면을 보니.. Marin, Alameda, Contra Costa, San Francisco, San Mateo, Santa Clara, Santa Cruz, San Benito, Monterey, San Luis Obispo, Santa Barbara, Ventura and Los Angles 카운티다. 캘리포니아의 상징, LA와 샌프란시스코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난 당연히 이 분리안이 서부해안 13개 카운티쪽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했었다. 행정구역을 쪼개자고 나서는 쪽은 대개 잘사는 지역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는 세금이 우리 지역에 쓰이지 않고 못사는 사람들에게 쓰여지는 게 배 아파서 부자 동네가 따로 살림 차리겠다는 거.

그래서 ‘분리하면 우리야 좋겠지만 가난한 카운티 사람들이 반대할 터이니 통과되긴 힘들거다’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이 분리 주장은 가난한 카운티쪽에서 나온 거였다. 가난한 동네 사람들이 오히려 엘에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부자동네를 떨궈내겠다는 거였다. 서울의 예로 들자면.. 서울시민들이 강남3구를 떨궈내겠다는 것과 비슷하겠다.


표면적 이유 - 정의사회 구현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이 사람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다. 의외로 아주 단촐했다. 그들이 첫페이지에 올린 ‘분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The approval ratings of the Governor and legislature are in the tank. The legislature is stymied, hamstrung and virtually gridlocked, like L.A. traffic. State government is in a financial tailspin, without fiscal discipline or restraint. Radicals are infatuated with nature over mankind and are sympathetic to illegals and criminals. Expenditures on non-citizens, employment displacement and generational welfare rolls are leaving a massive, ong      oing debt to our children, grandchildren and their children's children..

별거 없다. 그저 일반적인 미국의 백인 보수주의자들이 하는 주장과 거의 같다. 자기들 나름의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다는 것. 근데 겨우 이런 이유로 캘리포니아를 쪼개자는 말이었든가? 이거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좀 더 깊이 알아봤다. 이 사람들 진짜 왜 이러는지.


약간 더 깊은 이유 - 농경 목축산업 보호

Farmers! Protect your way of life. It is the time to let the coastal and metropolitan counties have their own way. If they can’t appreciate agriculture, they should live without it. They should form their own state. Citizens for Saving California Farming Industries

그들의 포스터에 있는 글귀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것들과 따로 살자..’ 뭐 이런 내용이겠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서쪽 대도시 사람들 때문에 농경산업이 어려움에 빠진 모양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적(liberal) 성향이 강한 해안지역 카운티들을 분리해내고, 농경산업을 보호해서 캘리포니아를 옛날의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로 다시 변모시키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역시 뭐가 뭔지 잘 모르겠기는 마찬가지다.


조금 더 깊은 이유 - 뺀질이 니들이 뭘 알아?
이 분리 운동의 시작은 지난 해 말, 캘리포니아 Central Valley 지역의 농부들이 어떤 주민발의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연 것이라고 한다.

(비슷한 그림이 계속나와 짜증나겠지만.. 왼쪽 해안에서 약간 들어가서 녹색으로 칠해진 아래위로 길다란 타원형 부분이 바로 센트럴 밸리다. 캘리포니아의 곡창지대다.)

그 주민발의안의 내용은.. ‘농장에서 가축들을 열악한 환경에 가둬놓고 키우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잡아먹을 가축이라도 최소한의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라는 내용. 고기는 쳐먹으면서도 동물학대에는 반대하는 서쪽 대도시 사람들이 낸 발의안이었겠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농장 경영 조건이 까다롭게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동부지역 농민들이 반대를 한 것이었다.

근데 그 법안이 덜컥 통과되어 버렸다. '농장을 경영하려면 알을 품은 암탉, 수태 중인 송아지나 돼지가 충분히 뛰놀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민발의안이 캘리포니아 주민 63.4%의 찬성으로 통과됐는데, 이게 동부의 내륙 주민들을 격분시켰다. 위 4번째 문장 Radicals are infatuated with nature over mankind가 무슨 의미인지 이제서야 알겠다. 농업의 농자도 모르는 철없는 것들이 가축권익을 내세우느라 자기들의 사업을 어렵게 만든다고 느낀 것이다.

서부 대도시지역 뺀질이들에 대한 그들의 분노와 배신감이 상당했었던 모양이다. 이게 촉매제가 되어 이 참에 아예 지역을 분리해 버리자는, 리버럴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 해안지역을 아예 분리해 내자는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분리주장은 여전히 설득력이 모자란다. 자기들 농업에 방해가 된다고 주를 둘로 쪼개자고? 뭔가 더 깊은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제일 깊은 진짜 이유 - 뿌리깊은 지역갈등, 이념갈등과 인종갈등
나도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캘리포니아주 서부와 나머지 농업지역 주민들은 굉장히 이질적이라고 한다. 도시 생활 위주의 해안지대 주민들은 진보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이고, 농업이 생활 기반인 나머지 지역 사람들은 보수적인 공화당 성향이라고 한다.

이념이 걸린 이슈가 나올 때마다 캘리포니아는 완전히 둘로 쪼개지는 모양이다. 최근 동성결혼 이슈때에도 서부지역엔 ‘찬성 스티커를 붙인 세단’이 많았는데, 나머지 지역엔 ‘반대 스티커를 붙인 트럭’이 넘쳐났었단다.

이건 어쩌면 백인 보수층과 리버럴한 이민자들간의 갈등인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인종갈등 얘기를 하면서 언급했었던 이탈리안 식당을 기억할 것이다. 졸지에 인종차별을 당해 기분이 나빴었다던 그 식당이 있는 곳이 바로 이 센트럴 밸리 지역이었다. 백인 농장주들과 유색인종 일꾼들이 아직까지도 극명하게 나뉘어 사는 곳, 센트럴 밸리지역이다.

농장을 경영하는 백인 보수층, 이들은 백인 우월주의자이며 기독교 교조주의자들이며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불통의 사람들.. 이번 캘리포니아 분리주장은 이들 꼴통들이 벌이는 해프닝이다. 비록 겉으로는 농경과 목축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속내를 캐어보면 이념갈등과 인종갈등이 그 뿌리였다. 캘리포니아를 분할하자는 이런 시도는 1850년 캘리포니아가 주가 된 이후 무려 220여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프닝
어쩄거나 이 분리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어떤 각도로 보아도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여론조사에서도 캘리포니아 등록 유권자의 82%가 이 분리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설령 기적이 일어나서 주민투표에서 통과되더라도 주를 분리하는 것은 미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데, 거기서 이것이 통과될 가능성은 제로다.

하지만 어쨌든.. 스케일 하난 참 크다. 그리고 그 스케일에 비해 주민들의 반응은 너무 무덤덤하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한국에서 어느 특정지역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나머지를 분리해서 3개의 국가로 가자’ 혹은 ‘비기독교인들만 모여서 딴 나라를 세워라’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데, 그에 대해 반응이 거의 없는 거다.

만약 이런 주장을 만약 한국에서 진짜로 한다면 어떨까? 아마 온 나라가 냄비처럼 들끓으면서 여론 재판으로 그를 살해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황당무계한 정신병자라는 게 뻔한 허경영도 감옥에 가고, 한국 싫다는 한마디 했었다고 아이 하날 역적만들어 쫓아내니 말이다.

캘리포니아 분리 운동.. 이런 주장을 막 펼쳐도 되는 유연한 사회 분위기도 부럽고, 웬만한 건 사람들이 그저 웃어 넘기는 그들의 ‘무쇠 솥’ 근성도 부러워지는 해프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