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

'바다이야기'는 계속된다

1. 80년대 말, 모시던 부장이 추석날 고향에 갔다가 급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했다. 주식시장이 과열되어 온 나라가 주식투자로 들끓던 그때, 그 부장도 부친의 퇴직금을 자기가 일임받아 몽땅 주식투자에 쏟아붓고 일희일비하고 있었는데 과열된 주식시장이 갑자기 냉각되면서 막차를 타고 주식에 투자했던 부친의 퇴직금이 원금보다도 줄어들자 가족들간에 말다툼이 생기고, 급기야 서울로 올라간다며 몸을 일으키고, 말리던 가족들과 실랑이중에 마루 유리문을 덮치고 마당으로 떨어져서 그때 가슴 밑 깊숙히 큰 유리가 박히고 그 출혈로 사망한 것이었다. 이후 나는 주식투자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참 다행이다.



2. 포커게임 할 때의 내 별명은 ‘움직이는 현금지급기’였다. 따본 적이 거의 없다. 잃을 걸 뻔히 알면서도 사교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쫓아다니던 내가 포커에 완전히 손을 뗀 것은 90년대 중반 무렵, 직장 동료들과 밤을 새워 포커를 쳤던 어떤 날 이후이다. 밤 열한시 무렵부터 그 다음날 아침까지였는데, 그날 난 생애 처음으로 Four Card 를 두번이나 잡는 행운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 그날도 돈은 잃었다. 처참했다. 포카드를 잡았을 땐 다른 사람들이 개패를 받고 전부 죽어버리고, Flush 잡고 무리하게 베팅하다가 Full House 잡은 권익진에게 처참하게 작살나고, 낮은 Full House 잡고 올인을 했다가 끝수 높은 다른 풀하우스의 염장에게 작살나고.. 아침에 강석규가 개평을 주며 조용히 타일렀었다. ‘형, 형은 앞으로 포커 치지 마슈’ 나는 그날 이후 다시는 포커판에 끼어든 적이 없다. 참 다행이다.


내 주변엔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늘 많았다. 학교때부터 학비를 날리는 놈도 있었고, 경마에 정신이 팔려 결혼도 못하는 넘도 있었고, 블랙잭에 빠져 재산과 자신의 미래를 탕진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난 다행히 도박같은 것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참 다행이다.

---

‘화투나 카지노는 승패의 결정적인 부분이 우연에 좌우되기 때문에 도박이지만, 운동경기는 경기자의 기능과 기량이 지배적으로 승패에 영향을 끼치므로 내기 골프는 도박이 아니다’ 몇억짜리 내기 골프를 친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가 한 말이다. 운보다는 실력에 의해 좌우되면 도박이 아니며, 실력 보다 운에 더 많이 좌우되면 도박이라는 것이겠다.

과연 도박과 내기, 그리고 투기와 투자의 경계는 어디 일까?
모두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돈을 걸고 결과에 따라 돈을 버는 행위이지만, 도박과 투기는 뉘앙스가 더럽고 내기와 투자는 적법하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세가지 개념정의가 가능하겠다. 순전히 내 생각이니 거창하게 경제학 용어를 동원하거나 그러면서 태클 걸지 마시기 바란다. 공통점은 모두 미래의 불확실성에 돈놓고 돈먹기하는 행위이다.

1. 운보다 실력이 좌우하면 투자와 내기, 운에 좌우되면 도박, 나머지는 그 사이 정렬. 즉, 運七技三 정도이면 투자나 내기, 運八技二 정도이면 투기, 運九技一 혹은 運十技零 이면 도박이다.

2. 들어간 돈과 나오는 돈을 비교해서 나오는 돈이 ‘확률적으로’ 심하게 적은 경우를 도박이라 하고, 나만 이익을 얻고 남은 피해를 입으면 내기나 투기라 하고, 나도 벌고 다른 사람도 버는 경우를 투자라고 규정해 보자.


주식투자를 예로 보면.
1. 도박이 아니려면 수익의 실현이 운보다는 실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증권투자는 운에 의해 절대적으로 좌우됨을 누구나 안다. 기업들의 정보를 알고 산업정책을 알면 주식투자에 성공할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주식은 그런 고급 ‘정보게임’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게임’이다. 불법임을 무릅쓰고 주식투자를 하던 증권사 직원들의 대다수가 쪽박을 찬 것을 보면 안다. 개인들의 주식투자는 그래서 ‘도박’이다. 그러나 큰손들은 좀 다르다. 작전을 통해 주가를 조작하고 개인들의 피해를 바탕으로 내가 이득을 취하고 있으니 큰손들에게 주식투자는 ‘투기’이다.

2. 내 이익을 위해 수많은 개미들이 피해를 보기도 하니 ‘투기’이고, 자금이 조달된 기업을 통해 여러 사람이 이익을 얻기도 하니 ‘투자’이기도 하다.


모든 사행성 행위들이 전부 마찬가지이다. 어떨 땐 도박이고 어떨 땐 투자이고 어떤 때는 투기가 된다. 경계가 불분명하다.

----

‘바다이야기’ 라는 감성적 이름의 곳이 대형 체인 횟집인줄 알았다. 스트레스 받기 싫어서 한국뉴스를 잘 보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엊그제야 그곳이 변형된 슬롯머신 오락실이란 걸 알았다. 하필 그 좋은 느낌의 이름이 도박장이라니..


도박..
중독까지만 아니라면 도박을 잘 하는 사람들은 대개 소위 깡다구가 쎈 사람들이다. 언제 베팅을 하고 언제 죽어야 하는 지를 알기 때문에 머리도 좋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중독의 단계로 접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박 중독자들이 손을 못 끊는 가장 큰 요인은 ‘실패가 길어질 수록 성공할 때가 가까왔다고 확신’하는 바로 그 착각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쌈짓돈을 마련해서 도박장을 향한다. 드디어 때가 왔다면서. 또 그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라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돈을 잃을지라도 계속 나를 잡아 끄는 건 중간 중간에 한번씩 조금이라도 먹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패가망신하기 전에는 도박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사람을 망가뜨린다. 

엄밀히 따지면 이건 개인의 책임이기도 하다. 마약과 마찬가지로 파멸로 치달을 때 극단적인 행동을 해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망가지는 건 순전히 자기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엔 이런놈도 있고 저런놈도 있으니 ‘그렇게 살다 죽으라고 냅둬’ 하면 그만이다. 마약이든 도박이든,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심하게 빠져들지 않는다. 일부 처절하게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만이 도박에 빠진다.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우리나라는 참 스트레스가 많다. 평범한 사람들을 자꾸만 외국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기나라에 대한 희망이 희박하기 때문에 그런것이다. 사람을 가장 힘빠지게 만드는 것은 역시 돈이다. 빈부의 격차는 당연히 존재한다.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이다. 그러나 그런 빈부의 격차가 너무 억울하다고 느낄 수는 있다. 우리나라는 그게 심하다.


우리나라를 계층간에 심각한 갈등구조로 몰고 가는 원흉중 ‘부동산 투기’가 있다. 이 부동산 투기는 도박보다 훨씬 질이 나쁘다. 도박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 망가지면 그만이지만 부동산 투기는 불특정 다수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난 돈을 벌고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꿈을 짓밟는다. 사고 올려놓고 되팔아서 수십억을 손쉽게 벌어들인다. 정의사회 구현을 가로막는 가장 암적인 존재들이다. 부끄럽지만 내 친구중에도 이런 놈이 하나 있다. 20대 젊은 시절부터 오로지 부동산 투기만을 위해 사는 놈처럼 보였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배부르면 된다. 이런 기질은 외국에 나와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어디든 한국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다.


도박이 가려움만 일으키는 피부의 염증이라면, 부동산투기는 뼈가 썩어들어가는 중병이다.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운 사람들이다. 잃을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부동산투기를 하는 사람들은 힘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도박에 대해서는 말이 많고,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집값을 잡으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정부에서도, 국회에서도, 언론에서도, 검찰에서도..아무도 손발을 맞추지 않는다. 내 재산 올라가는 데 굳이 초를 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집값이 내려가는 중이라고 발표를 해도 언론이 바로 되받아친다. 오히려 계속 오르고 있다고. 거품은 터질 줄을 모른다.

힘을 쓰는 놈들은 예외 없이 모두 부동산을 쌓아두고 있으니 한국에서 부동산 투기는 결코 단죄받지 않는다. 개발계획이 발표되기 한참 전부터 예정지 땅값은 여지없이 뛰어오른다. 땅값이 몇백배까지 오르는 개발계획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저희들끼리는 미리 다 나눠 갖는다. 이런 정보누설행위를 처벌한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건설공무원이 자기가 가진 개발계획정보로 수십억, 수백억을 벌고 또 주변사람들을 그렇게 벌게 해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인데도 그것이 밝혀지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다. 입안하는 놈이나, 시행하는 놈이나, 그런걸 감시하는 놈이나, 이런놈들을 잡아들여야 할 놈이나 모두 그 단물을 빨아먹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렇게 더럽게 축적한 부를 대대손손 대물림하며 산다.



없는 사람들이 처절한 심정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며 로또를 긁고 슬롯머신을 당길 때, 부동산이 두둑한 넘들은 그런 그들을 결코 이해 할 수가 없다.

'저런 걸 왜 하지? 인생낙오자들의 정신병이라지 아마..' 


우리나라와 같은 천민자본주의엔 그늘이 너무 많다. 평범한 사람들이 열받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구역질나게 더러운 것들이 국회의원이니 신문사 기자니.. 힘을 쓰고 있다. 


이 구역질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굴복하거나, 좌절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평범하고 힘없는 사람이 돈을 벌려면,
남의 걸 빼앗거나, 훔치거나,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래서 바다이야기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