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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너무 오래 살지도, 너무 일찍 가지도..

사실 먼 훗날 일로 여기고 살았었습니다하도 ‘백세시대’라 떠들어대니, ‘적어도 삼사십년 후의 일’일 거라고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그가 떠나면서 막연했던 이 안심이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우리 중의 하나가 ‘다음 순서’임을그리고 그 날이 오늘일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죽음.. 가장 중요한 나의 일’인데도 내가 전혀 관여하지 못합니다그래서 죽고 사는 걸 흔히 ‘팔자소관’이라고들 말합니다하지만 이 말은 '틀린 말'인것 같습니다.

 

그가 떠나기 서너달 전, 유명한 명리학자 두명을 그가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물론 회사 일을 상담하기 위해서였습니다두명 다 희망적인 대답이었습니다. '3년 가까이 계속되던 힘든 일이 다음달 무렵 해결되고 당신이 이긴다..' 그러더니 진짜로 6월 중순에 그 말대로 되었습니다. 그와 극한갈등을 빚던 사장이 물러나게 되고전무였던 그의 '사장 진급'이 확정된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게 해결되어 영국 본사로부터 정식 인사발령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그런데 느닷없이 병이 났고, 두달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일을.. 바로 직전 상담을 했었던 명리학자 두명이 전혀 예견하지 못했었습니다물론 사람을 앞에 두고 ‘당신 곧 죽을 것이다’라고는 말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건강에 조심하라’라고는 했어야 했습니다그러나 건강문제를 따로 질문했던 그에게 그 두사람 다 '건강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습니다. 이건 내 추측이 아닙니다. 폐이식을 기다리면서 그가 내게 푸념했던 '사실'입니다사장 진급은 맞추면서 어떻게 사람 이렇게 되는 걸 못 맞추냐 띠바.

 

그 명리학자 두명 다 굉장히 유명한 사람들이지만 특히 그중 한사람은 우리나라 명리학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따라서 그 둘 모두 보지 못했다면, ‘사주팔자에 죽을 때는 정확히 나타나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사주팔자에 죽음이 전혀 나와있지 않다면.. 어쩌면 죽음의 시기와 모습에 아주 약간은 내가 개입할 여지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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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죽음은 '과거의 일정부분'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회복이 빨랐습니다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극단적인 슬픔도 사실은 우리가 그 빈자리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 추스렸었습니다그리곤 그리움과 죄책감만 남기었었습니다하지만 가까운 친구의 갑작스런 떠남은 좀 달랐습니다과거만 사라지게 한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현재의 상당부분 그리고 미래의 상당부분까지 없어져버린 것입니다꿈에라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헛헛한 빈자리였습니다


남은 가족들은 어떠합니까.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더 힘든 것은 그들을 보살펴주던 가장이 사라졌다는 '현실적인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떠나는 그도 그점 때문에 무척 힘들어했었지만, 남은 가족들이 훨씬 더 힘든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분은 바로.. 어머님이일겁니다. 

아들을 앞세운 어머니의 고통을 어느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젊어서 가는 것.. 여러사람들의 애도와 배웅을 받으며 간다는 거 하난 좋을지 몰라도, 이렇듯 남은 사람여럿에게 고통을 주는 몹쓸 짓입니다. 절대로 일찍 가버리는 게 아닙니다

 

젊어서 가는것 보다 더 나쁜 짓도 있습니다. ‘건강하지도 않으면서 오래만 살아있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 건 분명히 축복받은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건강하지도 않으면서 오래 사는 건 불행입니다. 모아놓은 재산 다 탕진하면서 병원에서 약으로 연명하는 사람들 의외로 많습니다. 가족과 사회에 재앙입니다건강하게 살다가 적당한 때에 금세 죽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정떼임'당하지 않고 갑니다.

너무 일찍 가지도 말아야 하고, 그렇다고 너무 오래 '살아만' 있지도 말아야 하는겁니다. 그야말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입니다. 만약 위에서 말한것처럼 우리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 때와 모습을 아주 약간이라도 개입할 수 있다면.. 이렇게 더도말고 덜도말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몸의 준비'입니다. 저만 편해지는 '마음의 준비'보다는 이 몸의 준비가 훨씬 더 중요한 겁니다.


‘언제 갈지 모르는 나이'인 오십이 넘었는데도 몸 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 참 많습니다. 보름전 떠난 그도 이중의 하나였습니다. 너무 바빠서.. 스트레스가 심해서.. 내가 게을러서.. 하지만 이것이 ‘개인의 게으름’ 차원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오십이 넘어서도 건강관리를 하지 않는 것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짓인 겁니다. 

 

건강하게 책임 다하며 살다가 부르시면 네하고 바로 일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히기 위해.. 평소 건강관리를 반드시 하고 살아야 합니다. 꾸역꾸역 오래 살자는게 아닙니다. 우리 인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알맞게 살자는 겁니다.


마침 한가위입니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가 가르쳐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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