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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잔디는.. 황신혜 ^^

콘도냐 하우스냐

오랜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처음으로 집을 사던 때, 꽤 오랫동안 고심했었다. 도심의 멋진 Condo냐 아니면 나무 많고 마당 있는 House..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도심의 고층 콘도들을 보면 마치 광고 속으로 들어간 듯 세련된 도시생활이 매력으로 다가오고, 또 나무 많고 마당있는 하우스들을 보면 그 편안한 안정감이 매력으로 다가오고..

 

하지만 마음은 콘도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일을 하는 동안은 우아하게 살다가 은퇴를 하면 전원으로 가자..’ 그래서 화려한 로비와 편리한 부대시설이 있고, 숨막히는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이런 콘도쪽으로 거의 마음이 기울었었다.

발목을 잡은 것은 관리비였다. 우아한콘도들의 월 관리비가 물경 이천오백불이 넘었던 것이다. 우아한 도시생활을 위해 허공에 날려버리는 품위 유지비가 한달에 이천오백불? 다른 세상 사람들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관리비가 싼 곳을 찾았는데.. 관리비가 천불 이하의 콘도들은 그냥 우리가 살던 아파트와 전혀 다를 게 없는삼사층짜리 저층 콘도들뿐이었다소유권을 우리가 가지니 월 렌트만 내지 않을 뿐 아파트와 똑 같은 콘도라.. 그래서 결국 나무 많고 마당 있는 하우스를 택하게 되었었다.

 


손 많이 가는 하우스

미국에 처음 왔었을 때 후배의 와이프가 했던 말 하우스 사서 갈 수도 있지만 일부러 여기 사는 거예요. 하우스.. 그거 얼마나 귀찮은데요’ 물론 그때엔 이 말을 니들이 돈이 없어서 못 가는 거지..’ 라고 생각했었다. 오래전 들었던 이 말이 하우스로 이사한 지 한달도 되지 않아 실감나기 시작했다. 청소만 하면 되는그런 작은 아파트에서 십년 넘게 살다가, 갑자기 집이며 정원이며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 하우스로 옮기다보니 생활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주말 이틀은 종일 노가다로 보내야 했고, 집을 비우고 어디 놀러가서 자고 온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리모델링 비용.. 이거 어마어마했다. 돈은 돈대로.. 힘은 힘대로.. 생활은 생활대로.. 결국 하우스에 들어온 지 몇달만에 우린 하우스라는 올가미에 얽매여져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그런 감옥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오랫동안 꿈꿔온 은퇴후 전원생활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로도 힘들어 하면서 과연 시골 전원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은퇴계획 노후계획이 완전히 뒤틀려버리려는 순간이었다.


이년 정도가 걸렸다. 완서님의 말처럼 자잘구레한 마당 일들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어서 내 건강을 지켜준다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것이 이년정도가 지나서부터였던거다. 드디어 노동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되고, 토요일 일요일 내내 밖에서 땀을 흘리는 것이 즐거워졌다

 

뱃살도 들어가고, 은근하게 괴롭히던 어깨와 허리도 말짱해졌고, 답답한 코막힘도 없어졌고, 밖에서 짬짬이 일하는 덕에 자외선 걱정도 전혀 하지 않게 되었다. 지난 여름 반나절 풀에서 노는 사이, 썬크림으로 범벅했어도 뻘겋게 달아 올랐던 송규호와는 달리 나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맨몸으로도 멀쩡했다.

 

한동안 ‘편안함에 대한 그리움’.. 주말 내내 시원한 소파에 누워 맛있는 거 먹으면서 스포츠를 보는 생활에 대한 그 그리움이 사실 조금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것마저도 거의 사라져 버린 것 같다. 토요일 뭉개고 있다보면 몸이 근질거려 오히려 불편하니 말이다. 


우아한 도심 콘도생활을 꿈꿨었고, 또 하우스 생활 잠깐에 은퇴후 전원생활자체에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땀흘리는 노동의 기쁨을 알게 된 것이다. 할일 많은 하우스 생활이 즐겁다.. 수많은 바깥일들이 진심으로 고맙고 즐겁다..^^

 


잔디란 놈 

근데 아직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이 한가지 있다. 오래도록 로망이었던 잔디밭.. 그래서 하우스로 이사하면서 원래 돌이 깔려져있던 곳들을 들어내고 그곳에 일부러 잔디를 깔았었다. 그리곤.. 지금까지 내내 후회하는 중이다.^^ 잔디.. 굉장히 아름답지만 즐기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존재다. 마치 예쁜 여배우 같다. 보기엔 좋지만 데리고 살기엔 부담스러운..

자연상태에서 깨끗한 잔디밭이란 존재할 수 없다. 잔디의 키가 무릎 정도로 자라고 온갖 잡초들이 무성해진다. 따라서 이걸 깨끗하게 관리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특히 사막기후인 LA에서 잔디 관리는 그 어려움이 더하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툭하면 부분부분이 말라 죽는다. 그래서 때마다 잔디를 새로 깔아줘야 하는데.. 이게 이만저만 귀찮은 일이 아니다. 괜히 깔았어.. 괜히 깔았어.. 차라리 인조잔디를 깔걸 잘못했어.. 내내 이러고 산다.


말라 죽어 흉한 모습이 보기싫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아 미루고 미루다가 지난 몇주간 말라죽은 잔디들을 다 걷어내고(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이거 굉장한 중노동이다) 그 부분에 새 잔디를 깔았다. 홈디포에서 판매하는 잔디를 기준으로 삼십장 정도.. 엄청난 중노동이었다. 그리고 하루에 두세번 스프링클러로 흠뻑 물을 주고, 퇴근하고 돌아와서 다시 직접 물 주고 비료주고.. 그래서 어느 정도 뿌리가 착근되려던 차였다.

 


또 나타난 그놈

그런데 어제 아침, 토끼와 새들에게 먹이를 주려고 나갔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잔디쪽으로 가봤다. 난장판이다. 한동안 안보이던 그 놈이 나타난 것이다. 겨우 뿌리가 내리려던 잔디들을 모두 엎어놨다... 잠깐 울컥했었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어떡하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그래.. 새로 깔면 되지..’ 뒤집어진 잔디들을 정성껏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살아주면 다행 아니면 새로 깔고..' 근데 오늘 아침 다시 폭발했다. 그놈의 발자국을 다른 곳에서 발견한 거다. 설마 이 놈이 이틀 연속?

가보니.. 어제 겨우겨우 제대로 돌려놓은 걸 또 다시 엎어놨다. 더 난장판이다. 이 #$^**^(^$$% 끼가..

나는 동물을 무척 사랑한다. 진심으로 그들을 이웃으로 여긴다. 위생이나 안전관리상 쥐 파리 모기 개미만 잡아서 죽일 뿐 나머지들은 다 친구다. 두더지가 아무리 정원을 망쳐도 독약을 쓰지 않고 그냥 쫓는다. 새들이 아무리 똥을 싸고 덱을 긁어 상하게 만들어도 귀엽게 봐준다. 사슴이 꽃나무의 줄기를 잘라 먹어도 귀한 손님으로 여긴다. 때때로 정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 놈에게도 다 먹고 살려고 저러는 자연스런 행동이라며 그냥 넘겼다


근데 오늘 아침엔 평정심을 잃었다. 지난 삼주동안 고생한 게 너무 속상했고, 이틀연속 나타나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이놈이 너무 괘씸했었나 보다. 계속 입에서 #$*$$% .. &%^%$# .. 급기야 출근하는 차 안에서 야채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도저히 안되겠다. 독약 쓰께..


잔디는 이제 그만

그러나.. 다행히 지금, 이성을 다시 찾았다. 그놈 탓이 아니라 '자연스럽지 않은' 잔디를 억지로 즐기려는 인간들의 욕심 탓임을 인정했다. 가능하면 덫으로 잡아 멀리 보내기로 했다. (너구리를 함부로 죽이면 불법이기도 하단다) 대신.. 담에 이사가는 집엘랑 절대로 잔디 하지 않는다. 설사 있어도 갈아 엎고 돌을 깐다. 예쁜 여배우는 직접 데리고 살기엔 너무 버겁다. 

잔디를 증오하는 듯한^^ 싣니보이의 말에 동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