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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하늘지기의 꿈 2 - 악전고투

아니나 다를까.. 기체가 급격하게 턴을 하면서 급선회를 하려 한다. 아래를 힐끗 보니 까마득하다. 새삼스레 내가 하늘위로 날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바람개비같은 이 자그마한 기체를 믿고 지상 500미터 하늘위에 떠 있다. 기체가 빙그르 한번 돌자 숨이 컥 막히면서 똥꼬가 확 저려온다. 근데도 교관은 바를 잡을 생각을 전혀 안한다.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얘기인데 띠바 난 아무것도 할줄 아는게 없다. 최소한의 기본개념도 없는데 급선회를 할 때 어떻게 기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를 내가 어찌 알리오. 그대로 빙글거릴 수밖에.. 온 머리털이 쭈삣 섰다. 교관님.. 당신이 하세요.

단 한마디 교육도 없이 이 바람에, 이 높은 하늘에서 급한 턴을 하면서 나한테 조종간을 맡긴 강심장이 우리 교관, 그는 쉴새없이 내 팔을 치면서 당겨라 밀어라 하지만 내가 그게 될 턱이 없다. 기체가 선회를 하자 땅과 하늘이 번갈아 눈앞에서 왔다갔다 한다.

(두번째 비행에서 깨달았지만 이때 난 그 무거운 바를 좌우로만 움직이려고 했었다. 한쪽은당기고 한쪽은 밀면 훨씬 수월했을 것을.. 그래서 팔 옆으로 쉽사리 쥐가 내려왔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조종 바가 움직이지도 않을 뿐더러 기체가 워낙 심하게 요동을 치니 거의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교관의 고함소리도 안 들리고 기체가 위로 치솟는지 앞으로 고꾸라 지는지, 오른쪽으로 도는지 왼쪽으로 도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 높은 하늘에서 정신이 들락거린다. 이거 보통문제가 아니다.

‘죽고 싶어요?’ 다시 정신이 번쩍 든다. 근데 팔 전체에 쥐가 났는지 팔을 펼 수조차 없다. 교관이 잠시 조종간을 잡고 바람의 반대방향으로 기체를 자리세웠다. 기체의 요동이 좀 적어졌다. 또 나보고 잡으란다. 교관을 원망할 겨를도 없다. 또 잡았다. 내 팔이 내 팔이 아니다. 아무 감각도 없고 극심한 통증만 있다. 다행히 바람을 옆으로 받을때보단 조금은 낫다. 그러나 기체가 요동치는 건 막을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그렇게까지 위험한 게 아니니까 이 인간이 나한테 맡기는 거겠지. 당황하지 말고 생각을차분하게 하자.. 기체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면 당연히 바를 왼쪽으로 잡아 당기면 되고..’

근데 팔이 안 움직인다. 아무리 힘을 줘도 조종 바는 꼼짝을 안한다. 근육이 끊어질 듯 죽을 힘을 다해야 겨우 기체가 기울어지는 걸 약간 막을 수 있고, 바로 서는가 싶으면 바로 반대방향으로 또 기울어 진다. 음주운전 하듯 기체가 계속 지그재그로 흔들린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악전고투가 쉴새없이 지속된다.

그래도 시간이 좀 흐르자 그 상황에 약간 적응이 되었는지 다시 주변과 아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사이 얼마나 더 높이 올라왔는지 이제는 밑의 자동차들도 잘 안 보인다. 원래 오백미터만 올라간다고 했었는데 그것보다는 더 올라간 듯하다. 허긴 기체가 높이 있어야 추락을 하더라도 리커버리할 시간과 기회가 더 많겠지.. 이렇게 딴 생각을 잠시 하던 찰나.. ‘왜 자꾸 오른쪽으로 가요?’ 교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내가 오른쪽으로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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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보니 하늘에서 난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첨엔 정신이 잠시 나가서 그랬다치지만 지금 어느정도 안정을 하고 주변을 살펴도 전혀 모르겠다. 기체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왼쪽으로 가는지 오른쪽으로 가는지.. 전혀 모르겠다. 밑의 경치가 허허벌판 사막만 아니라도 어느정도 방향감각을 가지련만 이쪽을 보나 저쪽을 보나 똑같은 사막이다보니 도저히 내가 어디로 날아가고 있는지 감을 못 잡겠다. 다만 멀리 보이는 산을 보면서 대충 감만 잡을뿐. 

그때 갑자기 기체가 심하게 요동치며 왼쪽으로 급선회를 한다. 아 띠바.. 팔 근육이 터져라 힘을 주고 기체를 바로 세웠다. 이제 바람을 정면으로 맞이한 상태가 되었다. 아 비행이고 뭐고 빨리 내려가서 뻗고 싶다.. 아 드디어 저 멀리 우리가 출발했던 지점이 깨알같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정면으로 쭉 가다보면 곧 이 살인적인 비행이 끝나겠지.

근데 ‘오른쪽으로 크게 턴하라’는 교관의 고함소리다. 왼쪽으로만 턴 해 버릇하면 안된다나.. 아 띠바 그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그러나 교관은 요지부동이다. ‘뭐해요? 빨리 안틀고’ 할 수 없이 오른쪽으로 틀었다. 역시 왼쪽으로 할때보다 훨씬 힘든다. 기체가 이리갔다 저리갔다 난리가 났다. 팔에 또 쥐가 나는지 칼로 쑤시듯 아파온다. ‘팔에 쥐났습니다’ 고함을 쳤지만 들은척 만척이다. 그래 설마 죽기야 하겠냐.. 심정으로 팔에 힘을 줘봤으나 진짜로 팔에 아무런 힘을 줄 수가 없다. ‘진짭니다. 팔에 쥐났어요’ 그제서야 교관이 다시 조종간을 잡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다시 손을 뗴어 버린다. 참 대단한 교관이다. 뒤에서 이렇게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또 다시 나보고 하란다. 이제 머리속엔 아무것도 없다. 빨리 내려가고 싶다.

그래서 바를 힘껏 잡아당겨 기체를 밑으로 내리려 시도했다. 근데 이 교관 재빨리 바를 낚아 채더니 다시 위로 상승한다. 우리 교관, 첫날 내 야코를 완전히 죽이려고 작정을 했다. 좋다. 나도 오기가 생긴다. 그러고마고 했다. 얼마 시간이 흘렀을까 손 팔 어깨 등 허리 모두다 칼로 쑤시듯 아프다. 아픈 것까지는 참겠는데 점차 팔이 마비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다. 감각이 전혀 없어져 간다. 교관의 어깨를 치면서 신호를 보냈다. 팔이 완전히 말을 안 듣는다고..

‘뭐 이거가지고 그래요?’
‘진짭니다. 팔이 죽었어요’

딱 맞는 표현이었다. 팔이 진짜 죽어버렸다. 그제서야 다시 교관이 바를 잡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땅으로 내려가는구나. 살았다. 내려가기만 해봐라 내 이 인간에게 단단히 따져야겠다. 어떻게 사전 한마디 교육도 없이 이런 걸 갑자기 시키냐고.. 까먹기 잘하는 이 교관, 아마 그 교육마저도 깜박 까먹고 날 이 고생을 시켰을 거다.. 내려가기만 해봐라..

까무라칠뻔한 첫 비행이 끝나고 드디어 땅에 착륙을 했다. 마비된 듯한 손으로 겨우겨우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서는데..

‘머릴 좀 써요. 생각을 조금만 해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텐데, 왜 생각을 못해요?’

내리자마자 뭐라고 좀 불평을 할 요량이었는데 오히려 자기가 먼저 내 머리를 타박한다. 아깝다. 선방을 놓쳤다.근데 뭐가 어째? 나보고 생각을 좀 하라고? 오백미터 하늘에서 급하게 턴을 하면서 그 흔들리는 기체를 갑자기 넘겨주고 나보고 생각을 하라고? 어떻게 하면 기체가 오른쪽으로 가고 어떻게 하면 기체가 기우는 걸 잡아 올리는 건지 단 한마디 사전 교육도 없었으면서 나보고 생각을 좀 하라고? 핑계를 대거나 반격할 시간도 없이 그의 타박은 계속 이어진다.

‘자전거도 안 타봤어요? 왜 그렇게 감각이 없어요? 또 느리긴 왜 그렇게 느리고.. 힘은 도대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그게 모가 힘들다고 그거 하나 못 잡고 있으니 원..’

졸지에 머리 나쁘고 운동에도 잼병인 약골등신이 되고 말았다. 운동에 관해서라면 여지껏 살면서 다른사람에게 뒤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한심한 등신이 되고 말다니.. 마지막 결정타,

‘일흔되신 회장님보다도 못해 어떻게..’

졸지에 새가 되어버린 건 둘째치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었다. 노인네는 착륙하고 나서 가뿐하게 기체에서 내려선 재미있었다고만 했는데 난 이게 뭔가. 완전 탈진에 초죽음 상태 아닌가. 이럴 수가.. 일흔 노인네가 가뿐하게 끝내고 온 걸 나는 이게 뭔가? 최소 20회 교육(20시간) 교육후에 라이센스 시험을 보게 될거라는 말을 듣고 ‘난 10회정도면 될거다..’ 이렇게 자만하고 있었는데, 내가 일흔 노인보다도 감각이 없고 힘이 없다고?

‘쫌 있다 또 올라갈거니까 그땐 좀 잘하세요’


→ 하늘지기의 꿈 1 – 다시 꾸다
→ 하늘지기의 꿈 2 – 악전고투
→ 하늘지기의 꿈 3 – 일단 접다
→ 하늘지기의 꿈 4 – 하늘이 좋아 하늘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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