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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침팬지 사살 만평이 가능한 미국

뉴욕포스트 Sean Delonas의 만평

경찰관이 원숭이 한마리를 길거리에서 총으로 쏴죽이고 있다. 그러면서 'They'll have to find someone else to write the next stimulus bill'.. 사전을 보지않고 해석을 떠듬거려보면 ‘다음 stimulus bill 을 write 할 다른사람을 찾아야만 한다’는 말이다. 영어도 영어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이 만평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찰이 왜 길거리에서 원숭이를 총으로 쏴죽이면서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침팬지 사살사건
이 ‘침팬지 사살사건’은 실제로 지난 16일 코네티컷주 스탬퍼드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집에서 기르던 Travis 라는 이름의 몸무게 80kg의 침팬지가 놀러온 한 여성을 갑자기 공격하다가 출동한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하는데.. 근데 이놈이 TV에도 출연하는 등 꽤 유명세가 있었던 놈이었기 때문에 이놈의 사살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었던 거란다.

이 정도의 사건은 그냥 미국에서 흔히 있는 사건이다. 집에서 기르던 호랑이가 우리를 탈출해 나갔는데 경찰이 헬기까지 동원해서 동네 산속에 숨어있던 호랑이를 사살하고, 그걸 두고 호랑이 주인이 격분해서 경찰들이 자기 호랑이를 무참히 ‘살해’했다고 경찰을 고소하고, 하지만 결국 쇠고랑을 찬건 호랑이 주인이고.. 뉴스에서 잠시 쉬어가라는 의미에서 내보내주는 이런 사건중의 하나이다.

이 만평은 바로 코네티컷에서 있었던 이 침팬지 트래비스 사살사건을 인용한 거라고 했다. 


뉴욕포스트에 인용
근데 이 침팬지 사살사건을 인용한 뉴욕포스트의 만평이 갑자기 논란이 되었다. 침팬지 사살사건 얘기를 알고나서도 이 만평이 왜 논란이 되었는지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림 위에 쓰여진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만 짐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They'll have to find someone else to write the next stimulus bill 이 무슨뜻인지 알아보자.

‘stimulus bill’ 이란 economic stimulus bill의 준말인데 여기서 'bill'은 청구서나 영수증이 아니라 '제출된 법안'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stimulus bill'이란 ‘경기부양법안’을 의미한다. 요즘 미국이 들썩이는 그 경기부양법안이다. 공화당 하원 상원의원의 거의 전원이 반대했다는 그 법안. 그렇다면 ‘write’ 은 뭘까? 법안을 쓴다?.. 아니다. 여기에서 write은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서명'을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They'll have to find someone else to write the next stimulus bill 의 뜻은 “다음 경기부양법안에 서명할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만 한다” 이다.


원숭이는 누구일까?
슬슬 느낌이 이상해진다. 경찰관들이 길거리에서 원숭이를 쏴죽이면서 왜 이런 고차원적인 말을 했을까. 지금까진 저 원숭이가 서명을 했지만 내가 지금 죽여버렸으니 이제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뜻 아니든가. 그렇다면 설마..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서명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Monkey는 흑인들을 경멸해 부르는 말이다. 
오바마는 흑인이며 이 흑인대통령이 법안에 최종 서명한다. 

이제 별로 복잡하지도 않다. 침팬지 한마리를 쏴죽이면서 (내가 이놈을 없애버렸으니) 다음 법안에 서명할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한 것은.. 그렇다. 다른 '대통령'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간단하다. 이 만평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오바마 대통령이다. 좀 비약한다면.. 오바마를 죽이고 새 대통령을 뽑자는 주장일 수도 있다. 신문에 난 만평치고는 정말 무시무시한 만평이다. 

물론 그림을 그린 저자와 신문사는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해명을 했다. 만평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오바마 개인이 아니라 경기부양법안을 엉터리로 통과시킨 정치권 전체를 빗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명은 흑인들이 인종차별이라는 민감한 이슈로 들고 일어났기 때문에 한 마지못해 한 해명이다. 흑인들의 반발만 없었다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즉 인종차별에 대한 해명이지 정치적인 해명은 아니었다.


인종차별 이슈?
내가 놀라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보기에 따라 대통령을 죽여버리자는 것일 수도 있는 이런 극단적인 만평이 미국에서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 미국사람들은 이런 정도의 만평도 그저 자기의 의사표현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만약 우리였다면? 당연히 '국가원수 모독죄'다. 이런 죄가 아직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미국에선 달랐다. 흑인들을 제외하곤 이 만평에 흥분하는 사람조차 없다. 이 만평을 두고 문제를 삼는 사람들은 오로지 흑인 커뮤니티뿐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이슈라는 게 딴것도 아니다. same old story ‘인종차별’ 이슈다. 흑인을 원숭이에 비유했다고..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 만평을 보고 흑인들이 들고 일어난 이유가 '왜 흑인을 원숭이에 비유하냐'다. 왜 대통령을 비난하느냐,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다.. 이게 아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흑인이다. 미국의 그 신랄한 비평가들이 아직은 오바마에 대해 잠잠하다. 부시를 옆집 강아지처럼 가지고 놀던 그들이 말이다. 집권초기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대통령이 흑인이기때문이기도 하다. 자칙 잘못하면 인종문제로 번질지도 모르기때문이다. 인종문제로 일이 번지면 여러모로 곤란해진다. 미국에선 아주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처음으로 오바마를 걸고 넘어진 게 바로 이 만평이다. 그러자 곧바로 흑인들의 입에서 인종차별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백인들의 노림수에 순진한 흑인들이 걸려든 건지, 아니면 흑인들이 미리미리 오바마 주위에 방어막을 친건지-오바마 건들면 바로 인종차별 이슈로 응수하겠다는.. 노림수들이 뭔지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시각에 따라선 대통령을 죽여버려야 한다는 이 위험천만한 만평을 미국의 국민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그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의사표현’이라고 받아들이나보다.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문화다. 


표현의 자유
미국이란 나라의 이 ‘표현의 자유’.. 참 상상을 초월할만큼 엄청난가 보다. 대통령을 죽은 원숭이에 빗대어 '죽여버려야 한다'고 해도 세상이 조용하다니. 이 만평을 소개한 기사에 대한 댓글들도 평온하다. '어이! 이 만평에 호들갑떠는 인간들.. 대통령이 부시였다면 이 만평이 문제되었겠냐? 그냥 피식하고 웃고 지나갔을거 아니냐? 우린 아무렇지도 않은데 너희들이 이걸보고 흥분한다는 건 부시와 오바마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건 바로 너희들이라는 증거아니냐?' 이게 주류다. 뻔하디 뻔한 인종문제 정도로만 여길 뿐 그 누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KKK들이 도심 복판에서 집회를 열어 흑인들을 모두 살해해버려야 한다고 주장을 해도 되고, 유대인들을 멸족시켜야 한다고 강연회를 열어도 되고, 공공장소에서 성조기를 불태워도 되고, 오바마 암살계획을 세우자는 웹싸이트를 만들어도 되고.. 놀라울 뿐이다. 주입식 관제교육에 물든 나같은 사람이 느끼기엔 섬뜩하기조차 하다. 아무리 개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선 어느정도 그 표현의 자유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미국은 제 멋대로 말을 하면서 산다.


만약 한국에서
상상해본다. 만약 이런 만평이 진짜로 한 신문에 등장한다면 한국은 어땠을까?
강호순이 쥐 한마리를 밟아 죽이면서 말하길..

'난 쥐새끼를 보면 못참아, 쥐새끼를 없애야 대한민국이 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