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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김승연 회장의 자식사랑

새끼에 대한 사랑은 종을 보존하는 가장 중요한 본능이다. 따라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 희생은 자연의 이치에 한치 어긋남 없다. 그러나 한국의 그것은 좀 유별나다. 그래서 그걸 사랑이나 희생으로 표현하지 않고 ‘집착’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인들의 ‘자식에 대한 집착’이라고 한다지 않든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 도를 넘어 집착이 되었다면 그건 내가 못 이룬 걸 자식을 통하여 대리 만족을 느끼려는 욕심일 뿐이다. 자신이 못 배웠다면 자녀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르치고 싶고, 자신이 가난하게 살았다면 자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유하게 살게 되기를 바라고, 내가 못 다 이룬 꿈이 있다면 자식을 통해 이루고 싶다는 내 욕심이다.

이건 사랑과 희생이 아니다. 내 욕심을 위해 자식을 잔인하게 혹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을 위해 내 모든 걸 희생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모든 걸 무시한다. 부모가 잡아주지 않으면 내 자식 인생 망가진다는 강박관념에 자녀의 재능이 무시되고, 그의 개체적인 삶이 무시된다.

자식의 생존은 물론 미래의 행복한 삶까지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자식의 행복을 위해선 그 어떤 것이라도 감수하고,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이든 쳐부수겠다는 무서운 부모들이다. 자식에 대한 이런 맹목적인 집착을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미화하는 이런 끔찍한 부모들은 우리 주변에 숱하게 널려있다.

이것은 아이들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사회 발전에 큰 저해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자식에 대한 맹목적 사랑과 희생, 그리고 광적인 집착이 사회의 건전한 이념을 붕괴시키고 시스템을 망가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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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배웠고, 부유하게 살고 있고, 꿈을 이루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자식에 대한 집착은 예외가 아니다. 자식들도 최소한 그 수준은 유지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부자들은 온갖 추악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안간힘을 쓴다. 모범적인 기업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별로 없다. 어떤 사회적 비난도 감수하며 자기가 감방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이 자식에게 물려주고야 만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자식에게 유산 물려주기에 집착할까?

그것은 이 사회가 전혀 건전하지 않으며 그것을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썩은 시스템을 이용해 재산을 끌어 모은 장본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우리나라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장본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정직과 노력, 능력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장본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때문에 어찌 자식에게 네 힘으로 열심히 살아보라며 이 험한 세상으로 돈 한 푼 안주고 내동댕이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못한다.

정직한 방법으로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저 먹고 사는 문제나 빠듯하게 해결할 수 있을 뿐이란 걸 잘 아는 장본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성공이란 극소수 기득권만이 누리는 특권이고, 한번 추락하면 다시 제자리로 올라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장본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때문에 어찌 자식에게 열심히 노력해서 살라고 이 썩은 사회에 내동댕이 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못한다.

재벌들이 더러운 방법을 써가면서 자식들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것은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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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빌 게이츠가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고 약간의 돈만 상속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다. 유산이 오히려 내 자식을 망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약간의 돈’도 우리에겐 엄청난 것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추악한 한국의 재벌들만 보아왔던 내게 빌게이츠의 그 발표는 경이로웠다.

주변에 물어보니 미국에선 이렇게 빌게이츠처럼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가는 기업인들이 꽤 많다고 한다. 그들은 당연히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귀감의 대상이 된다.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불렀던 이유가 뭘까? 아마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능력이 있으면 그 능력만큼 대우 받고 성공할 수 있는 땅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역사가 200년 밖에 안 된 미국이 전 세계를 좌지우지 하는 이유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정말로 능력이 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중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대부호들이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 것은 아마도 이런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신념과 자신감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식에게 능력이 있고 열심히 한다면 성공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 능력과 노력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미국의 대부호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게 하는 기본이며, 미국을 지금과 같은 초강대국으로 끌어올린 견인차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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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의 빗나간 자식사랑이 도를 지나쳐 물의를 빚고 있다고 한다.
자식에 대한 증여나 상속 같은 이슈가 아니다. 얻어 맞고 들어온 아들을 보고 속상한 아버지가 대신 가서 때려줬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어린 아들이 친구들끼리 싸움을 하다 맞은거라면 몰라도, 동네 불량배에게 걸려 죄 없이 맞고 들어왔다면 대부분의 보통 아버지들도 아마 똑같이 그리 할 것이다. 하지는 못해도 아마 그리 하고 싶을 것이다.

한화 김승연 회장.. 깡다구 있다.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직접 가지 않고 몰래 아랫사람들 시켜서 그리 했을 텐데, 자기가 손수 나서서 아들을 대신해 때려줬다. 좀 모자라고 무식해 뵈지만 일면 멋있고 인간미 있다.. 자식사랑을 몸소 실천한 아버지 김승연.

근데 그게 아니었다. 그의 아들은 20대 초반의 건장한 청년이다.
그 아들이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시비가 붙었고, 그래서 누군가와 싸우다 맞아서 눈 어딘가가 찢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만약.. 그 아들놈이 정상적인 놈이었더라면 이런 모습을 부모님께 보이지 않으려 거짓말을 해서라도 숨겼을 것이다. 또 혹시라도 발각되었더라도 그 애비가 정상적인 아버지였더라면 ‘젊었을 때는 그럴 수도 있는 법’ 이러면서 차라리 아들에게 자중하라고 나무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 김승연, 조직폭력배처럼 경호원들을 잔뜩 대동하고 행차해서 자기 아들 때린 놈을 찾아내(못 찾았다고 하든가?) 무자비하게 손 봐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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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2세들의 실제모습이 어떠하리라고 생각하시는가?
혹시 TV에서 보는 대로 정중하고, 예의 바르고, 매사에 몸조심하고, 학업이나 회사 업무에 충실하고.. 이럴 것 같은가?

아무리 원래 제대로 돼먹은 아이였다 할지라도 재벌의 2세들은 성장하면서 사람이 변한다. 뭐든지 아버지가 다 해주기 때문이다. 설사 아버지가 해주지 않더라도(혹은 못하게 하더라도) 아버지의 이름만으로도 모든 것이 내 입맛대로 따라준다. 다행히 교육을 제대로 받아 제대로 돼먹은 청년으로 성장했다 치자. 그래도 그는 사회생활 하는 동안 사람이 변한다. 세상에서 아버지 외에 무서운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벌 2세들은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또 싸가지가 좀 있다 싶으면 불행히도 '멍청하다'. 싸가지도 있으면서 똑똑한 재벌 2세? 있으면 댓글 남겨달라.

재벌 2세들은 아버지를 굉장히 무서워한다. 아버지의 눈밖에 난다는 것이 어떤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지 잘 알고 있게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 눈밖에 나지 않으려 극단적으로 조심한다. 싸가지 없는 재벌 2세들이 그나마 사람 비슷한 구실을 하는 건 이렇게 무서운 아버지의 존재에 억눌리며 자중하고 노력하는 ‘흉내’라도 내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대의 나이에 그룹의 총수에 올랐던 김승연.
무서운 아버지의 존재마저도 약관 20대의 나이부터 없었다. 눈밖에 나지 않으려 노력할 필요도,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도,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그 새파란 20대의 나이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무서운 아버지의 존재에 억눌리며, 자중하고 노력하는 ‘흉내’라도 내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가 비정상적으로 자라났음은 정한 이치다. 또 어린나이에 그룹을 통솔하기 위해 억지 권위가 필요했을 것이다. 김정일이 그랬던 것처럼.

어쨌든 정상적인 인생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일찍 아버지를 여읜 덕에 진정한 자식 교육이 뭔지 모르는 김승연의 빗나간 자식사랑은 그로 하여금 경호원을 대동하고 직접 뛰어 나가 보복 폭행을 가하게 만들었다.

평소처럼 약간의 돈이면 아무도 모르게 상황정리를 하고, 광고를 빌미로 언론을 틀어막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어떤 놈이 중간에 불어버렸다. 아마 이걸 꼬투리 잡고 한 몫 단단히 챙기려고 김승연을 협박하던 놈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관계가 틀어지고 홧김에 불은 것 같다. 그걸 한겨레 신문이 그대로 대서특필해 버리고 말았다. 광고주에 주눅들지 않은 한겨레 신문, 참 잘했다. 그 기사를 막지 못한 한화그룹 홍보실.. 눈에 선하다. 임원들 쪼인타 까지고 줄초상 났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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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그룹의 총수가.. 이 행동이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전혀 개의치 않고, 위법행위임을 알면서도, 경호원을 대동해 내 아들 때린 놈에게 보란듯이 보복폭력을 행사했다면.. 그 동안의 그의 기업활동은 얼마나 이것과 닮아 있었을까?

더 답답한 건.. 이런 일들이 과연 김승연만의 일일까 하는 의문이다.
돈 많은 사람들이 전혀 '존경 받을만'하지 못한 우리사회가 참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