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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이만수

81년 봄, 학교 운동장에서 그를 처음으로 봤다. 학교 야구단의 연습구장이 바로 상대건물 앞 이었기 때문에 나는 가끔 그를 볼 수 있었다. 높은 톤의 경상도 사투리와 걸쭉한 욕지거리, 호탕한 웃음소리를 아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참 물건이다 싶다.

당시 군대보다도 더 엄격한 위계질서가 유지되던 운동부에서 그의 장난끼 가득한 쩌렁쩌렁한 말 한마디에 후배들 전체가 운동장 이쪽에서 저쪽으로 뛰어다니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훈련인지 얼차려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명령하는 그의 말투도 장난끼가 가득했고, 그의 말에 따라 이쪽 저쪽 힘들게 뛰는 후배들의 얼굴도 고통스런 표정들은 아니었다. 참 후배들 잘 다루네.. 이렇게 생각했다.



82년이었나, 한국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되면서 그는 역사적으로 단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기록들을 죄다 꿰어 찼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안타, 첫 타점, 첫 홈런.. 3년 연속 홈런왕(83~85). 프로 최초 200타점, 300타점, 프로최초 100홈런.. 게다가 그가 한번 기록한 이후 아직도 다시 나타나지 않는 ‘트리플 크라운(타격, 타점, 홈런왕) 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정말 지독하게도 운이 좋은 사나이였다.

삼성에만 16년 동안 몸담으며, 통산 252홈런과 타율 0.296, 861타점을 기록하는 등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서 혁혁한 족적을 남긴 이만수는 97년 유니폼을 벗고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났다.

1998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마이너리그 싱글A팀 코치연수
1999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트리플A팀인 샤롯트 나이츠의 객원코치
2000-2004 시카고 화이트 삭스 불펜코치

그는 지도자로서의 수업을 성실하게 열심히 받고 있었다.


2005년 11월 22일 토요일 저녁, 지금시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월드시리즈 1차전이 열리고 있다. 화이트 삭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던 날 인터넷 신문에서 그의 얼굴을 오랜만에 다시 봤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우리 선배, 이만수의 소식이 반갑다. 얼굴도 옛날 그대로네..  하지만 그의 직함이 이상하다. '불펜캐처(Bullpen Catcher)'? 코치가 아니라 불펜에서 투수들 공 받아주는 캐쳐?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감독은 올해 41살의 베네주엘라 사람이다. 이만수는 알다시피 78학번 58년 개띠.. 47살이다. 가슴이 아프다. 허긴 미국에선 이런거 흔하니까.. 근데 현재 보직이 불펜캐쳐라니.. 그래서 찾아봤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현재 메이저리그 구단에는 불펜캐처라는 직책이 있는 팀도 있고 그렇지 않은 팀도 있다. 올시즌을 기준으로 화이트삭스를 포함한 9개 팀에는 존재하고, 나머지 21개 팀에는 직제에 불펜캐처가 따로 편성되어 있지 않다. 메이저리그에서의 불펜캐처는 감독이 주재하는 모든 회의와 코칭스태프 미팅, 각종 컨퍼런스에 참여해 구단 운영과 선수 지도를 함께 하는 정식 코칭스태프의 일원이다. 특히 불펜코치와 함께 상대 투수진의 전력 분석, 소속팀 투수들의 컨디션 조절과 회복, 볼 배합 등을 조언하며 때로는 새로운 구질 개발을 돕기도 한다. 따라서 그 존재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 코치는 현지의 모든 선수나 코칭스태프, 팬들로부터 정식 코치로 인정받고 있고, 실제로 '메이저리그 미디어 가이드' 등의 공식 책자에도 정식 코치로 등록되어 있다. 이 코치가 불펜캐처가 된 것은 2년전 한국 복귀가 무산되면서 불펜코치의 자리가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 것과, 메이저리그 규정상 코치숫자를 제한하는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화이트삭스의 모든 선수들이 '한국의 베이브 루스'로 알려진 그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심지어 일부 타자들은 타격코치 몰래 그에게 타격을 조언받고 있기도 하다. 또 본인 특유의 원만한 대인 관계와 성실한 자세로 인해 구단주부터 프런트에 이르기까지 구단 관계자 모두에게 신뢰받고 있다. 2004년 가을부터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감독을 맡고 있는 존 기븐스도 2002년에는 같은 팀의 불펜캐처였다. 이후 지도 능력을 인정 받으면서 1루코치를 거쳐 결국 메이저리그 감독의 자리까지 올랐다. 이는 불펜캐처가 엄연한 코칭스태프의 일원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 외에도 많은 메이저리그 불펜캐처 출신이 타격코치나 투수코치로 승격하고 있고, 마이너리그, 독립리그 등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코치의 경우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그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는 있지만, 현재 아지 기엔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고 지도 능력도 인정받고 있어 조만간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

조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여전히 가슴은 아프다.

선수시절 자타가 공인하던 한국프로야구 최고 기록의 사나이, 억세게 운이 좋던 이만수가 지도자로서 삼성 라이온즈와 빗나가게 된건 언제부터일까? 나 뿐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들이 삼성라이온즈의 감독에 이만수를 생각하고 있었을텐데..

우승에 목말라하던 부자구단 삼성이 느닷없이 해태로부터 김응룡감독을 영입한 것이 지난 2000년, 이만수가 처음으로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코치가 되던 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만수는 느긋하게 기다렸을 것이다. 김응룡감독의 나이도 있고 하니..몇 년만 더 기다리면 삼성에서 나를 불러주리라 믿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삼성에서 그가 가지는 독보적 상징성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을 터.

가슴이 완전히 쓸어져 내린 것은 아마 2003년이었을 것.. 일본에서 활약하던 선동렬이 김응룡 감독의 부름을 받고 삼성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영입되던 날, 그는 억장이 무너지는 쓰라린 배신감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믿었던 삼성라이온즈가.. 나를 버리다니. 그 3년 후배 선동렬이 그 삼성의 감독으로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내었다.


후배 선동렬이 헹가래쳐지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이 사진을 보며 이만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저 자리는 내 자린데..  솔직히 이랬겠지? 비록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해서 그 역시 머나먼 미국땅에서 동료들과 기쁨의 샴페인을 터뜨리고는 있지만..


샴페인을 터뜨리며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나만의 느낌인가.. 선동렬의 우승 소식을 듣고 그는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까. "한국에서 삼성 우승이라는 기쁜 소식이 있어 여러분과 함께 축하하고 싶습니다. 선동열 이하 후배들이 일군 값진 우승에 파란유니폼을 오래 입었던 선배로서 고맙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우승을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남겼다. 어쩔수 없잖아..ㅎㅎ


이만수 선배.
"한국이 제일 좋고 여기 생활은 나그네 같아 늘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다."
선배의 이 글을 읽으니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눈물같은게 흐르네요. 내 생각도 딱 그렇거든요. 먼저 이번 월드시리즈 꼭 우승해서 한국인 최초 월드시리즈 우승 코치가 되시고. 내년엔 다시 티오 때문에 밀려났던 정식코치자리에 다시 복귀하시고. 그리고 꼭 한국프로야구의 감독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떤 팀이 되었든 꼭 우승하셔서 삼성 라이온즈에 그동안의 그 쓰렸던 아픔과 시련을 툭 털어줘 버리시고 호방하게 웃으면서 복수하세요. 꼭 그렇게 되실겁니다.

선동렬은 타이거스감독이 어울리고 라이온즈감독은 이만수가 어울린다고 말하면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말이 되려나? 근데 이 느낌은 지역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한국프로야구사에 남긴 족적을 보면 그래야 되는거 아닌가 싶다는 얘기다.